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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系韓國人. 일본에선 日系韓国人이라 부른다. Japanese Korean.
1 개요
현재의 의미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을 말한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은 재한일본인을 확인할 것.
2 비슷한 사례
고대에도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에 도래인과 같은 인구 교류가 있었다. 도래인은 보통 한반도나 중국에서 건너간 사람을 말하고 건너가는 사람이 있으면 건너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이 두드러졌던 시기는 항왜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귀순했다. 1593년부터 투항하는 자들이 늘었고 포로 개념 따윈 없었던 당시 전투답게 처음엔 죽였으나 1594년부터는 항왜를 받아들였다. 당시 억지로 끌려와 거의 총알받이 신세였던 파벌의 일본군이 탈영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목책을 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약 1만 명 정도였다고. 다만 교차 검증이 안 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전술적으로 이들은 상당히 도움이 됐다. 이괄의 난을 진압하거나 병자호란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인 마을을 이뤄 살았으나 통혼에 따라 차츰 사라졌으며, 이에 따라 조선후기에 커뮤니티가 완전히 소멸되어 일부 족보 등에만 남아있다.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역시 현재는 커뮤니티가 소멸했으나 지방분권적인 성향이 강했던 일본의 사회 분위기 덕분에 19세기까지 어느 정도 조선인 마을이 존재했다고 한다. 도고 시게노리가 대표적인 케이스.
그러나 조상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지 1904년에 일본의 탐험가들이 가토 기요마사 군에 종군했다가 한반도에 남은 일본계 후손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3 현대에 이르러
그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통혼이 약간 이뤄졌다. 호적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국적을 나누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패망한 뒤 일본인 신부들은 법적으로 한국인이 된 것으로되어 일본으로 강제송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국적을 회복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것도 인정되었다. 한편 일본에 호적을 둔 재한일본인들은 미군정의 강제 송환에 의해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이들을 히키아게샤라고 한다. 일본인 신부중 상당수는 뒤에 일본국적을 회복하여 일본에 돌아가기도 하고, 일본국적을 회복한 후에도 재한일본인으로 한국에 남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만 일본인이고 어머니가 조선인인 조선에 거주한 가정의 경우에 어머니가 잔류하는 것도 허용이 되었는데, 혼혈아이가 한국에 남은 경우 외가에 입적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가 있었다.
현대의 일본계 한국인의 대다수는 이들보다는 해방 후에 한국 내국인과 결혼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부계혈통주의를 유지하던 시절에는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할 경우에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것으로되어 귀화가 간단했고, 현재는 이를 폐지한 대신 여전히 결혼이민자에게 특별귀화제도를 두면서 남성이 외국인인 결혼이민자의 귀화 절차가 간단해졌다. 현재 한국인 내국인과 결혼하여 한국에 체류 중인 결혼 이민자 일본인은 2012년 기준으로 12,338명인데 이 중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606명이며 11,732명은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1] 결혼을 통한 귀화자를 포함한 일본 귀화자의 숫자는 통계가 확인되지 않으나 결혼 귀화자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재일교포 북송으로 북한인 가운데도 일본계 혈통이 흐르는 사람이 있다. 재일교포 북송 당시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 국적자는 최소 6,839명으로 추정한다. 일본인 배우자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인 자녀들이다. 계급사회에다 순혈주의가 강한 북한에서 이들은 차별을 받으며 일부는 탈북하여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한반도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의 통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배우자가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는 한은 자녀들이 이중국적으로 한국 국적도 보유하게 된다. 이런 일본계 한국인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하나 해외교포의 혈통에 대한 통계는 딱히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숫자인지 추정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