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재

張希載, 1651~1701

조선시대의 외척. 희빈 장씨의 친오빠로 알려져 있다.

1 생애 초반

평민이였다가 여동생 덕에 뜬금없이 한성판윤에 임명되었다는 드라마상에서 내용과는 달리, 실제로는 희빈 장씨궁녀가 되기 전에 이미 무과에 급제해서 종사관을 하고 있었다. 1683년에는 그 관직이 종6품 포도부장에 달했다.

1683년 3월 13일에는 정명공주의 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숙정에게 취객이 꼬여들자 숙정을 취객의 행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것 때문에, 인현왕후의 큰아버지 민정중에게 공무이탈 혐의로 엄청난 매를 맞기도 했다.

장희재는 이미 정6품 사과 김덕림의 딸[1]과 결혼한 상태였으나, 숙정과 이러한 인연이 맺어져 결국 조강지처였던 작은애기를 소박하고 노비 신분의 숙정을 정실로 맞이했다.

2 여동생에 의해 갈리는 운명

명성왕후 김씨의 장례가 모두 끝난 후 자의대비 조씨의 중개로 1686년 초에 장옥정은 다시 궁녀가 되었으며, 이 때 숙종의 승은을 입었다. 그리고 1688년에 원자가 태어남에 따라 장희빈은 중전이 되었는데, 이 때 여동생 덕으로 장희재는 종3품 훈련원부정, 정3품 내금위장, 종2품 금군별장 등에 임명되는등 출세의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으며, 1692년에는 정2품 총융사로 승진했다. 이 후 정2품 한성판윤도 맡다가 1694년 갑술환국 당시엔 종2품 포도대장을 맡았다.

그러나 장희빈이 중전 자리에서 쫓겨나 다시 후궁(희빈)으로 강등되자 따라서 입지가 좁아졌다. 갑술환국의 여파로 인해 사형당할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장희재가 세자의 외숙부였던 관계로 영의정 남구만 등 소론 대신들이 참수를 강력하게 반대해서 장희재는 제주에 유배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후에도 숙원 최씨를 독살하려 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조사를 당하기도 했으며 자작극을 벌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기도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1701년 8월에 인현왕후가 사망하자 희빈 장씨와 같이 이에 연루되어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해 11월에는 그의 시체까지 부관참시 되었다. 장희재가 참수당하던 날 여동생 장옥정도 사약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부인들 중에서는 작은애기와 숙정이 체포되었다. 자식들 중에서는 어린 아들은 체포를 모면했으나 큰아들 휘는 체포당해 심한 매질을 당했다.

남편에 의해 평생동안 괄시를 받아온 작은애기는, 장희재와 장희재와 친했던 동평군이 그간 저지른 일을 남김없이 고해바쳐 장희재가 죽을 수 밖에 없게 궁지로 몰아넣고 자신도 죽었다. 그야말로 아내의 역습. 조강지처에게 잘하자 작은애기의 고변으로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이에 죽은 사람들의 유가족과 종들이 몰려와 그녀의 시체를 참혹하게 난도질하였다고 한다. 숙정은 의금부로 끌려가 압슬형을 당한 끝에 죄상을 자백해 희빈 장씨의 궁녀 숙영, 설향, 무녀 오례 등과 함께 군기시 앞으로 끌려가 거열형을 당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은 범서인세력 내부의 다수당이었던 소론의 몰락을 불러일으켰다. 소론의 조정 영수였던 남구만이 일관되게 장희재에 대한 온건론을 펼치자, 송시열, 김수항, 김익훈 등의 죽음으로 어그로가 팍팍 올라 분노 게이지가 만땅이었던 젊은 소론들은 격노했고, 소론의 재야 영수인 박세채까지도 강경론을 주장하는 노론과 뜻을 같이 하자 박세채 문하를 비롯한 젊은 소론들이 대거 노론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애초에 젊은 새 세력이 많다는 의미로 少론이라 불렸던 소론은 나이많은 대신들이 주축이 되었고 송시열을 추종하는 늙은 구시대 인물이 많다고 老론이라 불렸던 노론은 거꾸로 혈기왕성한 젊은 선비들이 대거 합류하게 되어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3 드라마에서의 장희재

어쩐 일인지 뜬금없이 악역이면서 개그캐릭터화 되어 있다.

- 악역이라기보다는 개그캐릭터에 넘사벽으로 가깝고 시종일관 오두방정을 떨었다. 한성판윤이 됐다고 여기저기 자랑질을 하고 다니는가 하면 유배중에도 관복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며 이를 나무라는 제주목사를 두들겨패거나 한다. 백성들에게 악명이 자자하여 어느 백성에게 오물을 얼굴에 투척당하기도 하여 분노해 손수 칼을 뽑고 쫓아갔으나 놓치기도 했고 죽을 때 백성들에게 야유와 오물세례를 받는 묘사가 나온다. 참수당할 때에는 그 전에 장희빈에게 사약이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옥정아! 중전마마!'라고 울부짖는다. 형장에서 과거 떵떵거리던 시절을 회상하며 장희빈에게 '오라버니가 원하신다면 영상대감이라도 관직을 내릴 수 있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한 것에 기뻐하던 과거를 회상하다가 '세자 저하를 뵙고 싶으니 모셔오라'고 떼를 쓰던 중 망나니의 칼에 쓰러진다. 망나니: Fuck you 작은애기는 그래도 남편이라 정이 있었는지 장희재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울고 휘는 그런 어머니를 좋은 말로 달래 형장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 일가족의 등장은 끝. 위에 나온 조강지처 작은애기 역에는 당대의 섹시스타 홍진희가, 첩 숙정 역에는 역시 섹시스타이던 이미지가 연기하여 좋은 케미를 보여주었다.
- 악역 전문인 정성모가 연기한 본편의 장희재는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여동생의 후광을 무기로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하는 무식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조강지처인 작은애기를 내치고 기생 출신의 숙정을 정실로 들인 다음 작당모의를 하는 걸 보면 천생연분이 따로 없을 정도.. 하지만 이후 숙종의 마음이 희빈 장씨를 떠나면서 자충수에 가까운 음모를 꾸미다 역관광 당한 뒤 제주로 유배를 가는데, 여기서 제주부사를 꼬드겨 유배지를 탈출해서 모반을 일으키려다 제주부사의 밀고로 체포되어 전처인 작은애기와 아들 휘를 제외한 일가족이 모조리 참형을 당하고 만다.
- 이덕화가 연기한 장희재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개그캐릭터의 비중을 줄이고 철저하게 악역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주로 권모술수를 이용해서 동이를 괴롭혔으며, 장희빈의 출세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근데 막판에는 어머니와 더불어 일처리가 엉성해서 오히려 장희빈의 몰락에 일익을 담당하고, 뒷감당이 안될 때마다 여동생에게 달려가 어찌 하면 좋냐(...)고 전전긍긍하는 등 다소 개그캐릭터 쪽으로 회귀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 원래는 푸른거탑에서 싸이코 역할을 소화해 낸 김호창에게 캐스팅 섭외를 했으나 김호창이 거절해서 고영빈으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악역이 아니다. 문무를 겸비한 재원 중의 재원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숙부 장현이 살아있을 때는 장현에게 이만큼 충직한 심복이 없을 정도로 성격도 충직하다. 마음 속 깊이 야욕을 숨기고 있으나 이는 그저 장옥정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오빠의 마음일 뿐이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성격은 넉살이 매우 좋아 붙임성이 있고 역관 집안의 일원답게 중국어에 매우 능통하다.
- 숙원이 된 후 하루가 다르게 위세가 드높아지는 복순을 두려워하는 장옥정을 바라보며, 이를 갈던 그는 결국 해서는 안되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1. 속칭 작은애기. 자근아기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