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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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基元
1899년 3월 16일 ~ 1986년 6월 17일
1899년 황해도(현 황해남도) 은율군 남부면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신학과,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정부의 전시전략정보국 아시아 정보부장을 지냈다.
8.15 광복 이후 귀국하여 경남군정장관 고문, 사단법인 대한군인유족회 회장, 동아대학 학장, 신문학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1년 자유당에 몸담았다.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합동파 후보로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함태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영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1961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