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섭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丁明燮
1910년 2월 12일 ~ 1997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이다. 호는 불휘(不輝)이다.

1910년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 대학 법학부 및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 수료하였다.

8.15 광복미군정기 때부터 전라남도 해남군, 장흥군수, 영광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무소속 서상덕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6년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57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국회에서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자유당 전라남도당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게다가 1961년 초,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분류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64년 원내교섭단체인 삼민회(민주당, 자유민주당, 국민의당) 원내총무로 선출되었다. 1965년 통합야당 민중당이 창당하자 민중당에서 교통체신위원장 및 당무위원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호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인 1981년 민주정의당 지도위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