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준

1 서진 초기의 인물

진서 「왕혼등전(王渾等傳)」
왕혼왕준당빈

王濬
(206년 ~ 285년)

서진의 장군. 는 사치(士治). 왕시치?

홍농 사람으로, 의 말제 손호를 붙잡아 동오를 멸망시킨 주역. 즉 삼국지를 마무리하는 인물인 셈이다.

젊었을 때부터 학식이 뛰어나고 큰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명성을 구하려 하지 않았기에 주변에서 높은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뒤에 주에 초빙되어 하동의 종사로 출사한 뒤, 당시 자사였던 서막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정남장군이던 양호의 참군사가 되어 우대되었는데, 양호의 조카 양기가 '왕준은 비록 품은 뜻은 크지만 이름처럼사치스럽고 절의가 없어 깊이 믿을 인물이 못 됩니다'라고 말했으나, 양호는 '그는 큰 재주를 지녔으며 바라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해 변함없이 신임했다.

파군태수, 광한태수를 지내 임지의 병역을 가볍게 해 군민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며, 272년에 장홍이 반란을 일으켜 익주자사 황보안을 죽인 뒤 조정에 거짓 보고를 올렸다가 탄로나자 익주 전역을 휩쓸며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군을 이끌고 이를 제압해 장홍과 그 삼족을 잡아죽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위장군, 대사농에까지 올랐고, 또 왕준의 기략을 알고 있는 양호가 몰래 표를 올려 거기장군부의 종사중랑이 되었다가 익주자사로 전임하게 되었으며, 자사로 부임한 뒤 촉한의 구신인 하반을 중용하면서 익주 주변의 이민족들을 복속시키고 용양장군이 겸해지면서 양양의 양호와도 연락을 주고받아 훗날 오 토벌의 준비를 진행시켰다.

양호가 병사한 뒤 직접 표문을 올려 정벌을 상주하고 두예사마염에게 결단을 촉구해 마침내 오 토벌을 개시하게 되었다. 279년 용양장군 겸 익주제군사로 파촉에서 당빈과 더불어 장강을 타고 내려가 오의 방어선을 무력화시킨 뒤 연승을 거듭해 건업 석두성으로 육박해 손호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써 동오까지 멸망해 서진의 천하통일이 달성되었다.

그러나 왕준보다 일찍 건업 근교로 나아와 동오의 중군을 섬멸하고 오 승상 장제를 죽이는 전과를 올린 왕혼이 군령을 내려 일단 대기했다가 나아가자고 했는데, 마침 순풍이 불었기에 이를 무시하고 바로 나아가 손호의 항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때부터 왕혼은 왕준과 불화하게 되었다. 왕준은 왕혼을 배려해 손호가 왕혼의 진영을 거쳐 가도록 했지만 왕혼은 사마염에게 따로 표를 올려 '왕준이 군령을 어기고 먼저 나아가 동오의 궁을 불태우고 물자를 약탈했다'라고 모함해 공을 세우고도 왕준을 탄핵하는 의견들이 빗발쳐 사마염에게조차 힐문받을 정도였다.

오 정벌의 공적으로 양양현후로 책봉되어 보국대장군 겸 영보병교위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무군대장군 겸 개부의동삼사,특진 산기상시의 관직을 받았다. 왕혼과의 불편한 사이는 계속 이어져 그가 집에 찾아왔을 때도 신변을 염려해 경비를 삼엄히 갖춘 다음에야 만났다고 한다.

80세로 세상을 떠나 죽은 뒤에는 무후(武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1.1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70~80대의 만능형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초기작인 4나 5의 경우 무력이 80대였으나 9 전후의 최근작에 접어 들어선 70대 초반으로 깎였다. 그래도 위나라에서는 -A급의 장수로써 크게 활용이 가능하며 수명이 매우 길다.

삼국지 4에서는 임관된 상태에서 등장한다. 86/83/79/72/82에 특기는 외고,풍문,화공,보병,기병,해전,화계,내분,연환,호통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5에서는 84/80/64/80에 진형은 학익,안행,수진 특기는 화계,수계,분기,속공,강행,수신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6에서는 81/83/76/64/77에 꿈은 대의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82/73/82/70. 분투, 연사, 투함, 파괴를 가지고 있다. 후반기 장수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능력.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81/71/79/70/78에 특기는 10개이며 장강을 타고 손호를 잡은 일화를 반영하였는지 제독특기를 가지고 있다. 총 능력치합 379는 조예와 동급인 공동 39위[1]. 후기 시나리오에선 손꼽히는 인재이다.

삼국지 11에선 81/73/77/71/75에 여전히 균형잡힌 능력치에 병기, 수군적성이 S, 창,노는 A인데다가 수명까지 길어서 내정이나 전투 어느 쪽에서든 쓸만하다. 다만 보유 특기가 조선이라 고증은 잘 되었어도 그다지 효율성이 없어서 안습. PK라면 육성으로 강화시킬 여지는 충분히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81/73/77/71로 능력치는 여전하고, 병종이 기병에 전법은 총돌격이다.

삼국지 13에서도 12와 능력치는 동일. 전작과는 달리 기병 적성은 낮고 창병과 궁병 적성이 A급이다. 전법은 방원진. 여담으로 수군을 이끈 경력이 있는데도 어째선지 수영 특기가 1레벨도 없다. 고증 오류

삼국전투기에서는 왕준의 수군 양성 경력을 반영하여 실제로 해군에서 복무했던 NBA의 전설 데이비드 로빈슨으로 패러디되었다.

삼국지평화에서는 왕담(王澹)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2 후한 말의 인물

王俊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자문(子文).

여남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허장, 범방과 면식이 있었고 잠질과 친했으며, 조조가 이름 없는 선비일 때 왕준을 경애하자 왕준 또한 조조를 칭찬하면서 치세의 기량을 갖췄다고 평했다.

원소원술이 모친을 여의어 상을 치룰 때 조조와 왕준도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이 장례식에 모인 자가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 이를 보고 조조가 밖으로 나와 왕준에게 말하길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지면 난을 일으킬 우두머리는 필시 이 두 사람일 것이오. 천하를 구하고 백성을 위하고자 하니 먼저 이 두 사람을 주살하지 않으면 지금 난이 시작될 것이오.

라는 말을 하니 왕준은 웃으며

경의 말대로라면 천하를 구할 사람은 경 이외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니 둘이 서로 마주보며 웃기만 했다고 한다.

왕준의 사람됨은 밖으론 정결하고 안으론 현명해 주군이나 삼부의 명에 응하지 않았으며, 공거를 보내 조정에서 부르자 왕준은 공거가 도착하기 전에 몸을 피해 무릉 같은 오지로 피난갔고 이 때 왕준을 따라온 자가 1백 여 가에 이르렀다. 헌제가 허도에 도읍한 후에 다시 불러서 상서로 삼으려 했으나 왕준은 이번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유표는 원소가 강성한 것을 보고 은밀히 원소와 친하게 지냈는데, 왕준이 이 사실을 알고 유표에게

조공(조조)이 천하의 영웅이니 능히 패도를 일으켜 제환공이나 진문공의 공업을 계승할 것입니다. 원소와 가까이 하는 것은 이제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만약 하루 아침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멀리 막북[2]에 구원을 청해야 하는 격이니 또한 곤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했으나 결국 유표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왕준은 나이 64세에 무릉에서 수명을 다하니 조조가 이를 듣고 슬퍼해 형주가 평정된 후에는 친히 장강에 임하면서 상여를 맞이해 강릉에 개장하고, 표를 올려 선현으로 삼았다.

3 서진 말기의 인물

王浚
(252 ~ 314)

서진의 인물. 자는 팽조(彭祖). 왕침의 아들.

어머니는 조씨로 양갓집의 딸이었지만 몰락해 빈천하게 되었으며, 왕침으로부터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266년에 왕침이 죽고 그에게서는 자식이 없어서 왕준이 작위를 계승했고 부마도위가 되었다. 282년에 원외상시로 옮겨졌다가 291년에 월기교위에 임명되었고 이후 우군장군, 하내태수, 동중랑장 등을 역임했으며, 300년에 태자 사마휼이 허창에 유폐되자 가남풍의 밀명에 따라 손려와 함께 사마휼을 살해했다.

영북장군, 지절, 유주제군사도독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영삭장군에 임명되면서 팔왕의 난으로 천하가 혼란하자 딸을 각기 선비족에게 보내어 단무물진, 소서련 등에게 보냈으며, 사마경, 사마예, 사마영, 사마옹 등이 연합해 사마륜을 죽이려 했다. 이에 왕준은 자신이 거느린 병사, 백성들에게 행동을 금지해 그들이 불러모으는 곳에 갈 수 없게 했다.

사마영이 왕준을 토벌하고자 했고 왕준도 사마영을 토벌하려고 했으며, 사마영이 화연을 시켜 왕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화연, 심등 등이 왕준과 함께 계성 남쪽의 청천에 함께 놀러가는 틈에 죽이려 했지만 폭우로 인해 병기에 습기가 차 실패했다. 왕준이 하늘의 도움을 얻은 것이라 여긴 심등이 이 일을 이야기하자 왕준은 심등, 사마등과 함께 화연을 죽이고 유주를 장악해 독립했으며, 사마영이 조서가 내려졌다고 징소하자 단무물진, 갈주, 사마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사마월의 편에 가담해 사마영을 공격했다.

왕준은 업성을 함락하고 계로 돌아와 선비족들이 부녀자들을 약탈하자 함부로 감추어둔 사람의 목을 벨 것이라면서 8천여 명을 역수에 빠뜨려 죽였다. 혜제(사마충)가 복위하자 표기대장군, 도독동이하북제군사, 영유주자사 등에 임명되었으며, 회제가 즉위하자 사공, 오환교위에 임명되었으며, 왕준은 단무물진을 요서군공에 봉할 것을 상소했다.

석륵이 기주를 공격하자 왕준은 단무물진과 연합해 석륵을 격파했으며, 왕준이 기주를 다시 공격해 기주자사 왕빈을 죽이자 왕준이 기주를 소유하게 되었다. 왕준은 대사마, 시중, 대도독, 독유기제군사에 임명되었다. 석륵이 공격하자 선비족인 단부의 단질육권, 단말배 등에게 석륵을 물리치게 했지만 결국 단부가 패하면서 석륵과 강화하면서 단부과 협력하지 않게 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311년 가을 7월에 사마치가 전조의 공격을 받아 포로로 잡히자 제단을 만들어 유제를 지내고 황태자를 세워 천하에 이를 포고하면서 자신을 영상서령으로 칭하고 부하들에게 각기 관직을 임명했다.

왕준은 존호를 칭하려 했고 이를 만류하는 부하들을 함부로 죽였으며, 조세를 마구 거두어들이고 요역을 함부로 동원해 선비족, 오환족들이 왕준을 배반했다. 이에 석륵이 거짓으로 귀부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석륵은 유통이 사사로이 사자를 보내서 귀부하려고 하자 그 사자의 목을 보냈는데, 왕준이 석륵을 충성스럽다고 여겨 의심하지 않았다. 왕준은 석륵에게 사자를 보냈지만 석륵이 일부러 약한 군세를 보여주자 왕준은 이 소식을 듣고 더욱 방비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결국 석륵의 공격을 받아 붙잡혔고 양국에서 죽임을 당했다.
  1. 물론 조예는 본인이 군주로 나올 경우 아이템, 옥새빨을 받아 더 능력치가 올라간다.
  2. 漠北, 사막 북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