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해협. 깊이가 300m, 해협의 최단 폭은 14km이다. 판과 판이 만나는 곳인데다가 몇백만년전 한때 지중해가 마르는 소동이 벌어졌을때(메시나절 염분 위기) 바닷물이 드나들며 깎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이가 깊다. 베링 해협이 최근 빙하기때 닫혔을때도 지브롤터 해협은 닫히지 않았다. (향후 몇십만년 뒤에 없어질 것이라고는 한다. 자세한 건 유라시아 문서 참조) 메시나절 염분 위기가 끝나 지브롤터 해협이 다시 열렸을때 이 해협은 거대한 폭포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중해는 앞서 말했듯이 증발량이 높아서 염분의 농도가 대서양보다 높다. 그래서 증발량을 메우기 위해 대서양의 바닷물이 지중해로 밀려들기 때문에 해류의 방향이 주로 대서양에서 지중해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브롤터 해협 북쪽은 스페인, 남쪽은 모로코이나 다른 나라의 해외 영토가 있다. 북쪽에는 영국의 식민지 지브롤터가, 남쪽에는 스페인의 영토 세우타가 있다.
지브롤터 해협에 다리를 놓겠다는 구상도 있다. 그러나 상기 언급한 이유로 해협이 너무 깊어서 다리는 현재 기술로는 짓기가 힘들고 해저 터널의 구간도 길어져야 하며, 해저 터널이 되면 관광 효과는 버려버리는 문제로 아직까지 진척이 별로 되지 않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과 유사하다.
그리고 여기에 초대형 댐을 건설해 지중해를 싹 말려서(...) 새로운 초대륙을 만든다는 정신나간 계획도 있었다. 아틀란트로파 참조.
2 중요성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기 전까지는 지브롤터 해협이 유일하게 지중해와 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출구였다. 그래서 고대 시절부터 '헤라클레스의 양 기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상당히 중요성이 높았으며, 해협의 양안에는 항상 도시나 요새가 존재했다.
해협의 폭이 바다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좁기 때문에[1]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기기도 좋다. 그래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세력이 북아프리카로 건너가거나 , 반대로 북아프리카를 확보한 세력이 유럽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브롤터 해협을 거처가는 길이 가장 편리하다. 애초에 한니발 장군이 북아프리카에에 있는 카르타고에서 포에니 전쟁(로마 원정)을 시작한 바탕이 바로 식민지 히스파니아(에스파냐)였다. 반달족의 경우에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했으며, 이슬람 제국의 경우에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진출하는 방향으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특히 이슬람 제국의 경우에는 해협의 이름인 지브롤터를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 여왕이 그라나다의 무어 이슬람 왕조를 멸하며 이슬람의 지배 시대는 끝났다.
이후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면서 제해권이 점점 더 중요해지자 지브롤터 해협의 가치는 더 높아졌으며, 각 세력간의 마찰과 전쟁 끝에 결국 대영제국이 지브롤터를 장악하면서 해협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지브롤터에 항상 본국함대와 맞먹거나 적어도 그 다음 순위정도 될 정도의 해군전력을 집중해서 몰타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지중해의 제해권을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물론, 영국의 길목방어를 눈뜨고 볼 정도로 독일이 무력하지는 않았다. 독일은 지중해의 제해권을 위해 U보트를 지중해로 투입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브롤터에 집중한 영국의 해군전력이 너무 막강한데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지브롤터의 해류가 대부분 지중해로 들어오는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잠수함 같은 것을 투입하면 지중해로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하여 지브롤터의 덫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으로 상황이 안 좋았다. 홍콩행 게이바도 아니고
'펠릭스 작전'에 대한 스페인의 신문 기사.
1940년 11월, 히틀러는 '총통 지령 제 18호'로 지브롤터 공격 계획인 펠릭스(Felix) 작전을 수립한다. 루트비히 퀴블러(Ludwig Kübler)를 사령관으로 1개 군단이 스페인을 통과해 스페인 공군의 지원과 함께 지브롤터를 침공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립의 달인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지브롤터를 스페인에게 주겠다는 히틀러의 말에도 작전에 협조하는 것을 거부했고, 독일으로서도 소련 침공을 위한 준비가 필요해 지중해 봉쇄는 이탈리아 해군과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의 수에즈 공격에 맡기기로 한다.둘 다 망했지만 말이다
1941년, 히틀러는 또다시 지브롤터를, 이번에는 스페인 전부를 공격할 이자벨라(Isabella) 작전을 구상한다. 프랑코가 계속 중립을 지키자, 프랑코가 연합군에 가담하거나 연합군이 나폴레옹 전쟁 때처럼 스페인을 통과해 서유럽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 것이지만, 계획에 그친다.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에는 항공력의 발달과 영국의 세력약화등이 합쳐져서 이전처럼 절대적 요충지의 지위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21세기의 시점에서도 지중해나 흑해에 있는 군용함선들이 외양으로 나가려면 수에즈 운하로 나가지 않는 한 반드시 이 해협을 거쳐야 하므로 지정학적 중요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