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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냄비나 뚝배기에 건더기를 넣고 거기에 물과 양념을 쳐서 넣고 끓여내는 요리. 밥, 국, 김치, 장류와 함께 전통 반상에서 첩수에 포함되지 않는 요리 중 하나이다. 궁중요리 중 하나였으며, 궁중용어로는 조치(순 우리말)라고 한다. 된장조치, 김치조치 등등.
1.1 국, 전골, 탕과 다른 점
국과의 차이점이라면 국물이 매우 진하고 건더기가 많으며 물이 적은 건더기를 먹기 위한 요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반상[1]에서는 국은 밥과 합쳐 한몸(...) 취급이지만, 찌개, 찜, 전골, 장류는 반찬으로 카운트하지 않지만 반찬수에 따라 넣냐 마느냐에 제한이 걸려있다. 즉, 찜, 전골, 장류와 함께 조치, 즉 찌개는 준 반찬 취급이다.
이미 국이 있어도 첩수가 5첩을 넘어가면 찌개도 같이 차리는게 원칙이다. 흠좀무. 찌개가 국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 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반찬 수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반상을 보면 첩수가 늘어날 수록 원칙적으로 첩수에 들어가지 않는 찌개나 찜, 장류가 막 늘어나기 시작하며, 반찬도 호화찬란해지는데, 현대 이전의 한국인이 여유만 있으면 얼마나 대식가였는지를 알 수 있다. (...) 수라상은 반찬이 12개가 올라간다. 현대인에게 반찬 12개는 군주의 반찬치고는 좀 적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데, 이건 현대인이 차려먹는 밥상에 원래 들어가는 반찬은 첩수만 늘었지 퀄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에 드는 착각이다. 원래 전통 반상은 첩수가 조금만 올라가도 하나하나가 서양으로 치면 Entree 급으로 돌변하며, 수라상 클라스까지 오면 반찬 하나하나가 흠좀무한 클래스로 바뀌어있어 조선 왕조 최고의 미식/대식가였던 세종대왕도 반도 못먹을 듯한 분량을 자랑한다. 근데 이 반찬 분량과는 별개로 밥의 양은 막걸리 떠먹을 듯한 국그릇 스케일의 그릇에 꽈악 채웠다.
수라상의 경지에 와도 밥상의 주인은 원칙적으로 밥이지만, 수라상 수준은 커녕 7첩 수준만와도 밥상의 주인인 밥이 묻힐 정도다. (...) 이 반상이란게 딱 보면 3첩 조차도 어지간히 부유한 양반이 아니면 못 해먹을 상차림이다. 5첩만 와도 무슨 코스요리 수준이며 7첩을 넘어가면 호화스러움이 안드로메다로 떠나기 시작한다. (...)
당시 고기가 부족해서 3첩, 5첩상이 소박해 보이는 것일 뿐... 만약 당시에 고기가 지금 처럼 흔했다면 5첩상만 와도 스테이크가 날아다니고 있었지도 모른다. (...) 왕은 총 다섯끼를 먹었으며 그중 두끼가 수라였다. 조선의 왕이 지는 업무는 정말 무지막지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정도로 잘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고...
서양식으로 비교하라면 수프와 스튜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말아먹으면 국, 떠먹으면 찌개.
또한 전골과도 구분이 필요한데, 좀 거칠게 나누면 찌개는 재료가 이미 익혀서 미리 끓인 상태로 나오고 전골은 재료가 아직 익지 않은 상태로 즉석에서 조리하면서 먹는 것. 이런 식으로 따지면 부대찌개는 사실 부대전골에 가까운 음식이 된다.[2] 물론 다 끓인 채로 내오는 가게도 있긴 하지만.
탕과도 물론 다르다. 탕이 넓찍한 그릇에 나와서 밥이랑 먹는 반면, 찌개는 일반 냄비에 끓여져 나온다.
2 찌개? 찌게?
찌개는 '찌다'에 접미사 '-개'가 붙은 형태로 찌개가 올바른 표현이다.
식당에도 종종 잘못 표기돼 있으며 한국 사람도 자주 헷갈리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 문서는 찌게로도 들어올 수 있다.헷갈릴땐 단어의 뒤에 '새끼를 붙여보자' 설거지인지 설겆이인지 헷갈릴 때도 뒤에 '새끼를 붙여보자'
3 기타
예전엔 그릇 하나에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찔러대가며 먹는 음식이었고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비단 외국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비위생적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그런 이유로 해서, 요즘 식당에서는 개인용 그릇 따로 주고 각자 그릇에 퍼먹을 수 있게끔 국자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험하게 먹기쉬운 노동판에서도 각자 떠 먹을 그릇을 나눠준다. 일반 가정에선 시대도 바뀌어서 가구별로 케바케인 상황.
그런데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람마다 상을 따로 가져다 주었고, 찌개도 당연히 따로 담아 주었다. 그런데 세 번 연속으로 암흑기를 거치며 더 이상 그런 사치를 부릴 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생긴 게 한 냄비에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대는 문화였다. 즉, 조선말기 세도정치로 인해 국가막장테크를 타고 있던 상태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게 탈탈 털렸고, 그게 끝나자 바로 한국전쟁 발발로 그나마 남아있던 게 다 날아갔기에[3] 부잣집이 아닌 이상 상이나 그릇을 따로 챙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겸상문화로 변화하고, 찌개도 따로 덜어주는 게 아니라 함께 먹는 방향으로 퇴화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鍋(나베)요리', 즉 '냄비 요리'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이로리를 둘러싸고 무언가를 끓여먹던 풍습에서 발전한 식문화. 일반 가정집에서는 그다지 자주 먹지 않는다. 요리의 특성상 한번의 식사로 다 먹어치우지 못할만큼의 양을 만들게되는데, 일본에는 이렇게 먹다 남은걸 며칠씩 두고두고 다시 데워 먹는 경우가 그다지 없기 때문. 결국 한번에 다 먹어치울 수 있는 머릿수가 모이는 기회, 회식이나 파티 등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 요리다.
최근에는 한식풍의 나베요리도 많이 생겼는데 이 경우는 아예 치게(チゲ)라 부르기도 한다.
라이트 노벨 더블브리드에서는 나베 요리를 찌개로 번역해놓기도 했다. 또 반대로 만화 맛의 달인에서는 찌개를 나베요리라고 설명한 적 있다. 이것도 일본 대중문화가 서서히 개방되던 90~2000년대 초 얘기다. 이런지라 나무위키에서는 나베로도 이 항목을 들어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