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Korean Symphony Orchestra
한국의 서울을 거점으로 하는 (민간) 관현악단. 홈페이지
목차
1 연혁
1985년에 국립교향악단 전직 상임 지휘자였던 홍연택이 창단했고, 창단 연주회를 겸한 첫 정기 연주회는 같은 해 3월에 있었다. 이후 연 평균 6~9회 가량의 정기 연주회와 청소년 음악회, 발레나 오페라, 합창곡 반주 등을 소화하면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는데, 시나 도 등 지방자치단체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 등 첫 출발은 꽤 안습이었다.
하지만 1989년에 쌍용그룹이 이 악단에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되었고, 사단법인체로도 승인되었다. 같은 해부터 예술의 전당 기획의 한국 관현악단 연속 연주회 시리즈인 교향악축제에 민간 악단으로는 유일하게 거의 매년 출연하기 시작했다. 1989년 12월에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5000명의 합창단과 함께 안익태의 한국환상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공연해 화제가 되었고, 이 5000명 합창 음악회는 이듬해 10월에도 개최되었다.
1991년에는 매년 여름 강원도 평창의 용평리조트에서 개최하는 용평뮤직캠프의 상주 악단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고, 1993년에는 악단 관악기 주자들이 결성한 목관 5중주단과 금관 5중주단을 필두로 한 실내악 공연도 시작되었다. 이렇게 계속 잘나가나 싶었지만, 1997년에 가장 중요한 스폰서였던 쌍용그룹이 IMF 크리를 맞고 데꿀멍하는 바람에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창단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고, 해단까지 고려할 정도였지만 정명훈을 필두로 한 국내 유명 음악인들이 무상으로 악단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에 출연하는 등의 노력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악단 측도 예술의 전당과 협의해 전당 측 기획 공연에 정규 출연하는 대가로 상주 악단 자격을 따냈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내에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현재는 예술의 전당 내 오페라 하우스 4층에 위치하고 있다.
2001년에는 문화관광부의 인가를 받아 재단법인이 되었고, 초대 이사장과 단장에 각각 작곡가 이영조와 이운환이 부임했다. 같은 해 창단자였던 홍연택이 타계하면서 상임 지휘자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이후 몇 년 동안 객원 지휘에 의존해야 했다. 2006년에는 박태영이 단기 계약의 전임 지휘자로 악단을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박은성이 3대 음악 감독 겸 2대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다. 2010년에는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해외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박은성이 2010년 말 퇴임한 뒤에는 최희준이 이듬해 자리를 이어받아 2014년 1월 28일까지 재임했고, 후임으로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장기 재임했던 임헌정이 부임했다.
2 역대 상임 지휘자
전임 지휘자는 기울임체로 표기했다.
- 홍연택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 재임 기간 1985-2001)
- 박태영 (전임 지휘자. 재임 기간 2006)
- 박은성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 재임 기간 2007-2010)
- 최희준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 재임 기간 2011-2014)
- 임헌정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 재임 기간 2014-)
홍연택과 박은성 재임기 사이에 김민이 제2대 음악 감독으로 활동한 적이 있지만, 김민은 지휘자가 아닌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실제로 지휘 무대에 선 적도 없기 때문에 이 목록에서 제외했다.
3 특징
한국에서 활동하는 민간 관현악단들 중에 가장 존재감이 강한 단체로 유명하지만, 여느 민간 악단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운영 예산의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현시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악단 자체 기획의 정기 연주회 같은 공연보다 오페라나 발레 등 무대 작품의 반주나 국내외 유명 성악가들의 가곡의 밤 혹은 리사이틀 무대 같은 외부 공연을 더 많이 개최하고 있다.
다만 민간 악단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서는 민간 악단으로 보기 어려우며, 사실상 국립 관현악단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의 전당 상주 악단이 된 후 국가 예산으로 운영비를 지급 받고 있는데, 액수도 제법 되어서 2016년 예산에 34억원이다. (다만 아래에 서술된 바와 같이 교향악단의 운영비로는 부족한 수준이며, 다른 국립예술단체에 비해서도 적은편이다.)
사실 해외의 유명 민간 오케스트라도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베를린 필[1], 런던 심포니, 런던 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 따라서 이 역시 보조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건 민간 단체에게 주는 보조금이 아니라 국가 예산에 운영비라고 별도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일반 민간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은 공연 및 전통예술활성화 사업 등의 이름을 통해 공모를 받은 뒤 심사를 통과하면 지원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악단이 지원받는 운영비의 경우 문광부 예산에 "예술의전당 상주 교향악단 운영"이라는 항목으로 "문화예술단체 지원" 항목에 편성되어 있다. 이 항목에 지원되는 단체에는 민간 단체는 하나도 없으며 국립오페라단, 국립극단, 한국공연예술센터 등 국립예술단체들만 들어 있다. 또한 이사진에도 당연직 이사로 문광부 담당과장이 들어가고, 문광부의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등, 운영체제만 보면 국립발레단이나 오페라단 같이 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국립예술단체와 거의 같다.
그 때문인지, 2013년에는 음악분수 윗쪽 부지에 새로 지어진 국립 예술단체 전용 공연연습장으로 거점을 옮겼다.[2]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나 올림픽 폐회식 공연 반주 음악 녹음,[3] 문화 소외지역 공연 등 문광부가 주관하는 각종 국가 행사에도 다른 국립 예술단체와 같이 참가해 연주하고 있다. 실제로 공연 때 판매하는 프로그램 노트나 악단 홈페이지 등에 실려있는 악단 소개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민간 교향악단이라는 말이 슬쩍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2014년 임헌정이 신임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취임할 때도 문광부 장관 명의로 임명한다는 보도자료를 문광부에서 직접 배포하였다. 즉, 실제로는 국립 교향악단이라고 붙여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완전한 국립 관현악단이라고 말하기는 여전히 힘든데, 가장 큰 이유는 국가에서 받는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시향과는 비교도 안되고, 다른 시립 교향악단들과 비교해도 예산이 그다지 많지 않으며, 다른 장르의 국립예술단체와 비교해도 금액이 적은 편이다.[4]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국가의 운영비로만 운영 되지는 않기 때문에 국립도 아니고 민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고, 이 상태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5]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민간이니 국립이니 이런 말 다 빼고 앞에 그냥 재단법인이라는 말만 덩그러니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정도부터는 악단 소개문에 "민·관 문화예술의 거버넌스 모델이 되고 있다"는 뭔 말인지 모르는 설명이 등장중이다.
이렇게 만성적인 예산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1년 내내 엄청나게 빡빡한 연주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다 보니, 단원 충원이나 정기 연주회 스케줄 확대가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다. 그 때문인지, 임헌정도 취임 직후 월간 예술 잡지 '객석' 과 가진 인터뷰에서 단원들의 기본급이 인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다망한 활동을 한 덕택에 한국 관현악단으로서는 꽤 화려한 협연 경력을 자랑하는데, 국립발레단과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3대 국립 예술단의 전속 협연 악단으로 뛰고 있어서 무대 작품 반주와 합창 협연 스킬은 수준급이다. 특히 호두까기 인형은 매년 12월마다 열흘 이상 꼬박꼬박 연주하다보니 외울 정도라 카더라
한 때 세계 3대 테너로 불렸던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모두 협연한 경력이 있는 유일한 한국 관현악단이고, 특히 1995년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도밍고의 내한 공연은 CD와 DVD로도 제작된 바 있다. 이외에도 히사이시 조나 스팅 같은 비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 때도 협연한 바 있다.
IMF 크리를 먹기 전까지는 음반 녹음도 꽤 활발하게 진행했는데, 창단자였던 홍연택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관계로 찬송가를 비롯한 종교음악이나 가곡 반주 음반을 많이 내놓았다. 다만 본격적인 클래식 레퍼토리를 녹음한 사례는 매우 적고, 그 중에 정규 판매용으로 발매된 것은 새발의 피 수준이다. 후새드.
2012년 1월에는 비록 국립발레단 명의의 발레 DVD이기는 하지만, 전임 지휘자를 역임했던 박태영이 지휘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과 글라주노프의 '라이몬다' 의 공연 실황을 블루키노에서 정규 상업 영상물로 내놓았다. 원래 구자범이 지휘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까지 세 종류를 발매하기로 했지만, 백조의 호수는 발매 직후 발레단 사정으로 인해 일시 판매 중지되어 재고가 전량 회수되었다고 한다. 재발매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
그리고 발매된 품목들도 영상 자체는 매우 깨끗하고 편집 상태도 양호한 편이지만, 음성의 경우 무대와 객석의 소음이 지나치게 커서 그 사이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잡아먹는 경우가 허다하고, 관현악단에 마이크를 너무 가까이 갖다대고 녹음한 터라 음질은 완전 시망이다. 코심 지못미.
하지만 2012년 4월에 개설된 예술의 전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2012 교향악축제에서 연주한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과 181회 이래의 정기연주회, 예술의 전당 자체 기획 공연인 11시 콘서트 등의 전체 혹은 일부 실황 동영상들이 무료 제공되고 있어서, 영상물과 음반 발매의 미진함을 보충하고 있다. 또 2014년 3월 무렵에는 악단에서도 자체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이 곳을 통해서도 정기연주회들과 몇몇 기획 공연들의 실황을 감상할 수 있다.- ↑ 베를린 필은 몇해 전 재단을 설립하여 정부 보조금없이 자립을 시도하였다
- ↑ 다만 이 시점에서 다른 국립예술단체(오페라단,발레단,현대무용단,합창단)와 같이 사무국은 서예관으로 입주하였다.
- ↑ 원래 올림픽 폐회식때는 다음 올림픽 개최지를 소개하기 위한 공연 시간을 할애해 준다.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평창 동계올림픽을 소개하려는 공연을 국립현대무용단 등 국립 예술단체가 준비했는데, 이 공연의 반주 음악을 연주/녹음한 것도 이 악단이었다.
- ↑ 2016년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코심은 34억인데, 이는 국립발레단 85억, 국립오페라단 80억에 비해 훨씬 적으며, 단원 규모가 더 적은 국립합창단(38억), 현대무용단(38억)보다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 ↑ 한국에서는 국가가 예술단을 소유/운영하는 것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미온적인 상태다. 물론 일부 보수 성향 음악인들이나 평론가들이 계속 국립 관현악단 창단 여론을 밀고 있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불경기 때문에 예산을 계속 긴축 편성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립 관현악단 창단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비쳐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1980년에 국립교향악단이 KBS 교향악단으로 환원된 이후에 수립된 모든 정권들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국립 관현악단 설립 주장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