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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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Thoma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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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년 2월 7일 ~ 1535년 7월 6일.

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간잡아먹는다.
-〈유토피아〉에서, 인클로저 운동에 비판적인 의미로.
나는 국왕의 충신으로 죽지만, 그 이전에 하느님의 종입니다.(I die the king's faithful servant, but God's first)"
- 처형을 앞두고

1 개요

영국 헨리 8세 시대의 법률가이자 정치가이며, 스콜라 학파 인문주의자. 가톨릭 교회의 성인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에게는 유토피아의 저자로 더 알려져 있다.

인문주의자로 덕이 높고 평판이 높은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으며,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의 가장 친한 영국 친구였다. 헨리 8세가 이혼 건으로 성공회를 만들고 가톨릭을 탄압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기사 작위를 받고 국왕의 비서과 하원의장을 거쳐 대법원장[1]에 올랐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혼 문제에 대해서 각을 세우고 끝내는 앤 불린의 결혼식에 불참한다.[2] 또한 종교적 문제로 교황권을 부정하는 등에 대하여 반대하였으며 그 때문에 대법관에서 사임한다.

결국 교황권 문제로 재판에 회부되나, 왕을 교회의 우두머리가 아니라고 명백하게 부정하지 않는 한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 그는 토머스 크롬웰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결국 반역죄로 처형되기 이른다. 말년의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3]는 자신의 평생의 지기인 모어의 처형에 큰 충격을 받는다. 에라스뮈스는 모어의 소개로 헨리 8세와도 만난 적이 있다.

판결을 받기 전에 그는 “세속인은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며 자신의 신념을 자신있게 말했고, 처형대에서는 군중을 향해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서 죽는다”라고 선언했다. 죽을 때까지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아서, 사형 집행인에게 자기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도끼를 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수염을 잡아 빼고, 최후엔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당부하기도 했다.[4] 그나마 거열형(능지처참)을 헨리 8세에 의해 참수로 낮춘 것이었다.

가톨릭에서는 1886년 시복(복자가 됨)되어, 193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는데, 반(反) 종교적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항거하는 정치 및 법률가의 수호성인으로 인식되었다. 축일은 6월 22일.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례명도 '토마스 모어'이다.[5] 한국 정치계의 대표적 천주교도인 장면 총리가 대부를 서주었다.

하지만 정작 종교적 자유나 이상 등을 〈유토피아〉에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어는 마녀사냥(정확히는 특별재판)으로 개신교도들을 화형시킨 인물이기도 했다.[6][7] 정확히 여섯 명의 개신교도가 그의 재판으로 화형에 처해졌고, 40명이 구금되었다. 하긴 개신교는 30년 전쟁 이전까지는 이단 취급을 받았고, 그는 이단을 "교회와 사회 모두의 평화와 화합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보아 루터교 서적 등, 특히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철저히 막았다.[8]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에는 성공회의 성인록에 올라갔다. 아무리 가톨릭의 성인들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건 좀... 성공회를 목숨걸고 반대한 사람이 성인이 된 꼴이 되었다.

2 튜더스에서의 토머스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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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스 시즌 1, 2에 걸쳐 등장. 헨리의 좋은 친구로 가끔씩 헨리를 '해리'라고 부른다. 신실한 종교인이자 유능한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또한 가족을 사랑하는 남편이자 어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중전개 내내 헨리의 진실된 조언자이자 성실한 신하로서의 최선을 다하며 헨리의 뜻을 존중하고 자신과 뜻이 다른 부분에서도 격한 비판을 가하지않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개신교도를 이단자로 규정하여 탄압, 박해하는 모습도 숨기지 않았다.[9]

그러나 신앙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뜻을 굽히지 않았기에 결국 모어는 시즌2 중반에 참수된다. 모어의 죽음은 역대 명장면 중 손꼽히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사료에 기록된 내용에 매우 충실한 연출. 이때 고뇌하는 헨리 8세의 모습이 교차되며 나온다. 여담으로, 튜더스 시즌 내내 헨리 8세는 자기 아내들과 토머스 크롬웰을 비롯한 수많은 신하들을 처형대로 보내지만, 그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건 토머스 모어의 처형 때가 유일하다.

3 울프 홀에서의 토마스 모어

튜더스를 비롯, <사계절의 사나이> 등 많은 창작물에서는 토마스 모어를 덕망과 지성을 두루 갖춘 성인으로 묘사하는데, 울프 홀에서는 악역이 되었다. 뛰어난 학자이자 행정가지만 한편으로 인간미가 없는 오만한 위선자다. 말 하나 하나가 번드르르하게 들리지만 가시가 돋혀 있고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경멸이 깔려 있다. 자신의 신념은 소중하나 다른 이들의 신념은 틀렸다고 본다. 영특한 딸은 (역사대로) 사랑하지만 자기 생각에 무식한 아내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공공연히 모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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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크롬웰의 낮은 신분과 현실적인 행보를 경멸하는 인물로, 비천한 신분에서 출세한 현실주의자/기회주의자 주인공 토머스 크롬웰의 대척점에 서 있다. 촉망받는 학생이었던 소년 시절, 역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 토머스 크롬웰을 무시하면서 기나긴 악연이 시작되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종교개혁 지지자들을 잡아들여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다. 이후 토마스 모어가 자신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선량하게 살아왔다고 항변하자 토머스 크롬웰은 이 위선을 지적하며 폭발하고 만다.


밉살스러우면서도 지적이고, 지적이면서도 위선적인 인물을 그리는 배우 안톤 레서의 연기가 일품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콰이번 역을 맡기도 했다.
  1. 당시에 대법원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다. 상원의장도 겸직하는 등 지금보다 위상이 더 높았으며 거의 재상급. 독일의 수상을 부르는 Chancellor과 같은 어원인 Lord Chancellor를 쓴다.
  2. 나중에 왕비 신분을 인정하는 편지를 써서 반역죄는 피한다.
  3.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우신 예찬>을 지어 교계를 비판했다는 에라스무스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그 양반이다. 네덜란드 출신이라 이름을 저렇게 읽는다.
  4. 원래는 수염을 짧게 깎는 사람인데 오랜 감옥생활 동안에 수염이 길게 자란 탓이기도 했다.
  5. 본인이 정했다기보다 당시의 관례대로 세례 집전하는 신부님이 붙여준 듯한데, 본인은 '왜 하필 목잘린 사람의 세례명을 내게 주는가'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고 자서전에 회고하고 있다.
  6. 사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말한 종교적 자유는 "종교가 없는 이도 저렇게 사는데 우리는 왜 이 지경이냐"라는 식의 자조에 가깝다는 해석이 있다.
  7. 또 그가 말한 종교의 자유는 이교와 기독교 사이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실제 유토피아에서도 기독교와 이교 사이를 다루었다. 기독교 내부 이단은 다른 문제.
  8. 엄밀히 말하면 가톨릭에서 번역한 영어 성경은 인정했다. 하지만 가톨릭의 영어 성경은 라틴어 중역인데다 지나치게 축자역이라 가독성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9. 시즌1 마지막 10회에서 재상으로 임명된 후 개신교도를 화형하는 모습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