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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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heran Church

1 개요

루터교회는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을 시발로하여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이므로 개신교의 원조[1]라고 볼 수 있으나, 이후 생겨난 장로교, 침례교 등의 칼뱅파 기반 개신교와는 상당히 다르고, 성공회처럼 가톨릭교회와 전례, 교리, 교회의 구조면에서 비슷한점이 많다.[2]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루터교회 또는 루터회로 칭하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나라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독일핀란드에서는 한국처럼 루터교회라고 부르지만 핀란드를 제외한 북유럽에서는 보통 스웨덴 국교회(Church of Sweden)처럼 그냥 국교회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3] 아이슬란드의 경우 '국교회(Þjóðkirkjan)'와 '복음주의 루터회(Hin evangeliska lúterska kirkja)'란 명칭을 혼용하고 있다.

본래는 루터란(Lutheran)이라고 불렸다. 즉 '루터빠' 정도의 뜻이었고, 당연히 이는 가톨릭측에서 부르던 멸칭이다."너네는 루터의 말을 따르니까 기독교도가 아니라 루터빠다!" 이런 느낌. 게다가 루터는 본래 자신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기독교'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가르침은 본래의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자신이 새로운 생각을 해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름을 종파에 붙이는 것도 그리스도에게 매우 불경한 일이라 여겨 반대하였다.

하지만 루터교회 신도들은 계속 루터빠라는 욕을 먹자, 급기야 열받은 나머지 "그래, 우리 루터빠다! 어쩔래?"라는 식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루터교회(Lutheran Church)가 그대로 교파의 이름으로 완전히 굳어지고 말았다.

참고로 위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의 문장으로, 루터교회들은 위 문장을 간략화하거나 약간 바꾸어서 교회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간혹 백조상징으로 쓰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는 얀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 붙잡혀 화형당하기 직전 남긴 유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제 니놈들은 비쩍 마른 거위[4] 한 마리를 구워죽이겠지만 100년 뒤에 나타날 백조는 절대로 구워죽이지 못할 것이다"

2 특징

루터교회는 주로 신성로마제국의 형해화로 사실상 왕과 같은 권력을 지닌 독일의 대영주들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군주들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북유럽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속 군주의 왕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의 영향도 크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루터교는 국교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 영향으로 현재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독일 북부와 동부 전역에서 루터교회는 국교회 (國敎會, state church)로서, 인구의 왕과 왕족들, 그리고 인구의 70~90%가 국교회 루터교인들이다.

2.1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와의 유사점과 차이점

가장 오래된 개신교의 분파이자 장자 교단이라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예배의 전례적 특성이나 교회 제도 등은 가톨릭 쪽에 조금 가까운 편이긴 하다. 물론 성공회가 좀 더 가까울 수 있겠지만, 루터교회의 예배를 처음 본 사람은 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또한 가톨릭 신부들과 같이 목사[5]들이 로만 칼라를 착용하며, 주교의 빵모자[6] 등 가톨릭과 비슷한 제도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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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톨릭적 양식은 북유럽의 루터회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스칸디나비아 루터교회의 경우 모두 국가 정책으로써 종교개혁을 받아들이고 그 교리를 교회에 녹여 교회를 교황청 휘하에서 탈피시킨 뒤 교회를 국가가 장악하는 전형적인 국교회적 특성에서 출발했다. 이런 점은 사실 개교회적 측면이 강조된 원래의 루터교회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성공회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교리적인 내용만 루터교회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며 의식적, 제도적 측면에서는 훨씬 국교회 조직 유지측면에서 유리한 가톨릭적 요소들과 주교제가 유지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도 각 교회는 국교로써의 위상을 가지며 가톨릭교회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교구체계와 주교직들을 그대로 전승받는다. 이렇게 가톨릭과 비슷한 면을 강조하는 루터교회의 경우 성공회의 분류법[7]처럼 고교회 루터파(High Church Lutheranism)라 불리기도 한다. 각 나라간에 미묘한 차이는 있는데, 스웨덴이 가장 가톨릭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며 덴마크, 노르웨이는 평신도 경건주의 영향으로 좀 약한 편이다. 또한 덴마크의 경우 특이하게도 주름진 칼라를 성직자 복장으로 사용한다. 덴마크와 인접한 북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나 함부르크 일부의 성직자들도 (드물지만) 주름진 칼라를 착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성모 마리아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성모 공경도 인정한다. 대한민국의 루터교회도 8월 15일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기념일로 해놓았다.[8][9] 성공회도 영국에서의 '세속 군주의 교회 지배'를 목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가톨릭 구조에 개신교적 교리를 도입하여 만들어졌다는 정치적 위치는 북유럽의 루터교와 비슷하다. 사실상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성공회나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이며 성공회와도 이런 공통점을 서로 감안해 '포르보 공동체'를 결성해 스칸디나비아의 국교회와 성공회 간의 성사교류를 결정함으로써 사실상 하나의 공동체로 합쳐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관계가 되었다.

허나 엄연히 가톨릭 교리에 반발하여 생겨난 교파인만큼 루터교회만의 특징도 분명하게 존재하는데 마르틴 루터가 보편교회론을 부정하고 지역교회(Landeskirche)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관구제를 채택한 성공회와 달리 개교회의 개성과 자치를 존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또한 '준성사'란 이름으로 7성사를 사실상 모두 인정하는 성공회와 달리 루터교는 다른 개신교들처럼 2가지 성례만을 인정한다. 성인이나 순교자에 대한 공경도 어디까지나 축일로 기념하여 그들의 믿음과 순교정신을 기억하고 본받자는 초대교회의 개념과 더 가까웠으면 가깝지 가톨릭처럼 기도를 대신 들어줄 존재로 보는게 아니다. 애초에 루터 본인부터마리아를 포함한 성인들에게 통공기도를 드리는 것과 성유물 개념에 대해 우상숭배라며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가 그가 죽고 나서 멜란히톤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는지 가톨릭 전통을 조금 손봐서 재도입한 것에 가깝다.[10] 결정적으로 루터교 국가들은 마르틴 루터부터가 수도원 무용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수도원, 수녀원을 각 국가별로 모두 개혁 과정에서 없애버려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었고[11] 가톨릭, 정교회 국가에서 지금도 존재하는 길거리 십자고상(Wayside cross)이나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위령비를 세우는 행위, 세례명을 주는 제도등을 모두 개혁 과정에서 없애버렸다. 당장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서부터 루터교회만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가톨릭식 전례복도 마찬가지로 20세기 전반까지는 일반적인 복장이 아니었다. 원래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묘사한 것처럼 까만 목사가운에 하얀색 'ㅅ'자형 칼라를 두른 복장이 일반적이였고[12] 1960년대까지는 국교회 성향이 강한 북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에큐메니컬 운동과 함께 개신교적 정체성보다는 전례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쪽으로 가면서 가톨릭과 비슷한 복장 체계가 도입된 것. 페로 제도는 아예 사복 정장차림으로 예배드리는 것도 가능하다.##

여담으로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왕이 아비뇽 유수 등의 활동으로 교황권을 압박하여 프랑스 내 가톨릭 교회에 한정하여 상당히 배타적인 지배권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이런 상황을 '갈리아 교회주의' 라고 한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미'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왕권이 자국 내의 교회를 지배하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 왕실은 다른 왕실과는 달리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그리 절박하게 느끼지 않았다.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로 유지된 원인을 이런 관점에서 찾기도 한다.

또한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왕실이 가톨릭을 옹호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와 함께 가톨릭 세력의 수장과 같은 지위가 되어 타국에 영향을 미치는 입장이었으므로 가톨릭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이점은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

사실 루터교회에서 "루터교회를 빛낸 10인"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든 사람이 헤겔(...)과 키르케고르다. 사실 키르케고르는 신학자이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이상하게 볼 것은 없긴 하다. 참고로 쇠렌 키르케고르의 형인 페테르는 신학자로서 루터교 주교를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키르케고르는 앞의 헤겔 철학을 비판하는 저작을 발표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라는 것(...).

덧붙여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루터회 수위 주교들은 다음과 같다.북유럽 국교회라는 이름이어야 할 것 같다 [13]

  • 웁살라의 대주교(스웨덴 교회)
  • 니다로스[14]의 의장주교(노르웨이 교회)
  • 코펜하겐의 주교(덴마크 교회)
  • 투르쿠의 대주교(핀란드 복음주의 루터회)
  • 아이슬란드(레이캬비크)의 주교(아이슬란드 교회)
  • 페로 제도의 주교 (페로 제도 교회)

2.2 성상에 대한 관점

유일하고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복음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례전을 올바로 집행하는 성도의 회중이 교회이다. 교회의 참된 통일을 위해서는 복음의 가르침과 성례전의 집행에 관하여 일치하는 것으로 족하다. 인간의 전통, 곧 인간에 의하여 제정된 의식과 예식이 어디서나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7조 - 교회에 관하여)

사실 마르틴 루터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며 성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칼슈타트[15]나 츠비카우파 등 과격파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되도록이면 구습에 물든 연약한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당분간은 성상을 존치시키되, 절차를 밟아서 하나 둘 씩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또한 루터는 '복음적 자유'(Die Evangelische Freiheit)라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는 갑작스럽게 기존의 분위기를 바꾸고 이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가톨릭의 교황적 권위주의와 다를 게 없다는 논리이다.[16]

그리고 마르틴 루터 항목의 후반생애 문단에서 알 수 있듯 성상을 제한적으로(?) 용인한 데는 정치적 타협이 필요했던 이유도 컸다. 이러한 역사적 연유로 인해 루터교회는 가톨릭, 정교회처럼 성화상이 예배 의식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교리적으로 강제하지 않으며, 제대 방향을 제외하면 성상에 직접 기도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17] 따라서 각 국가별, 지역별, 개교회별로 교회 내부의 인테리어는 천차만별이라 웁살라 대성당이나 프라우엔키르헤처럼 장식이 으리으리한 경우에서부터 핀란드 삼십자 교회[18]처럼 성상, 성화, 스테인드글라스조차 없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십자가에다 성만찬 도구, 촛불만을 두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까지 다양한 모양으로 꾸밀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는 이런 경우도 있다. 한국의 루터교회도 교회별로 십자고상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예전적인 교회 치고는 매우 유연하다.[19]

네덜란드와 체코 등 일부 국가들은 'United church'라고 해서 루터교와 칼뱅교가 통합되어 있는 경우가 존재하는데, 이런 교단에 속한 교회들은 건물 인테리어는 칼뱅교쪽과 비슷한데 예배를 루터교식으로 드리는 경우가 간간히 존재한다.

3 위상

발상지인 독일과 루터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북유럽 지역에서 교세가 강성하다. 독일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전파되어 미국에도 적지 않은 신도가 있다.[20] 영국웨일스스코틀랜드에 전래되어 웨일스에서 꽤 세가 큰 편이다.

다만 본진이던 유럽과 북미에서는 성공회처럼 대체로 교세가 위축되어가는 형편이다. 루터교세계연맹은 2014년 발표한 ‘2013년도 루터교회 신자 통계’에서 전 세계 루터교 신자 수는 7226만 8329명으로 집계됐다. 단일교단으로는 스웨덴 교회가 650만여명으로 가장 신도 수가 많았다. 하지만 전체 교인 수로 합치면 1200만여명인 12개 교단연합 독일 연합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최대였다. 1990년 이후 꾸준히 감소 하고있는 유럽의 탈기독교 현상으로 조만간 그 지위를 잃게 될것이다.

전체적으로 유럽 및 아메리카 지역에서 신도수가 줄고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성장세를 보이는 판국이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감소세를 손 놓고 있지는 않으며 어느정도 신앙을 지켜내려는 신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한편으로 국교회가 '자유주의화'되는 것에 반발한 성직자들이 대거 탈퇴한 뒤 보수파 독립 교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3.1 구 동구권의 루터교회

마르틴 루터의 주 활동지가 구 동독지역이고, 프로이센의 건국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옛 독일 영토였던 폴란드 서부지역과 남부 실롱스크, 치에쉰에도 극소수의 신자들이 존재하는데, 역사적으로 독일과 스웨덴이라는 두 신교국가와 대립하던 폴란드였기 때문에 루터교이고 칼뱅교이고 개신교도들은 숲 속에서 몰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 아일랜드에서처럼 폴란드에서도 민족적, 역사적 이유 때문에 개신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긴 하지만 루터교도들 중에는 오히려 나치에 대항해서 폴란드편을 들다가 수용소에서 순교한 목사도 있었다. 체코의 구 주데텐란트 지역에 있는 교회들도 2차대전 이후 체코 개신교단[21]이 그대로 접수해서 현재까지도 잘 남아있다(예시) 슬로바키아의 경우 산악지대라는 특성상 노르웨이처럼 목조 루터교회를 자주 볼 수 있다. 소수 교단으로서 구 동구권 국가의 루터교회는 복음주의 아우크스부르크 고백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라트비아 루터교회는 유럽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역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소련 시절인 1975년부터 민주화 직후인 1992년까지는 여성 목사 안수가 허용되어 있었지만 1993년 교단 주교가 보수성향으로 바뀌면서 이를 모조리 취소 및 금지했다. 또한 동성애 및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라 2005년에 커밍아웃한 목사를 면직처리한 적도 있었다.[22]

3.2 레스타디안주의(Laestadianism)

항목 참조, 루터교에서 파생되었지만 외형적인 예배 형식은 오히려 장로교나 침례교와 비슷하며 근본주의라 부를 만한[23] 특징도 가지고 있다.

3.3 대한민국의 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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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기독교한국루터회에는 5천여 명의 신자가 있는데, 원래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 중에 가장 일찍 들어온 사람이 1860년대 유대계 독일인 목사 칼 귀츨라프였지만 조정의 반대로 감자와 포도재배만 알려주고 순순히(?) 중국으로 돌아가버려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한국에 개신교가 처음들어온것은 1880년대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개화기에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들어온 장로회와 감리교회가 크게 번성했고, 그와 달리 루터교는 1950년대에 제일 늦게 본격적으로 들어왔다.[24] 게다가 개교회중심주의적인 특징을 가진 장로교가 강한 한국의 특성상, 루터교의 세는 약한 편이다.[25] 마이너하다는 소리를 듣는 대한성공회보다도 교세가 더 마이너하다(...). 총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에 있으며, 본부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중앙루터교회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다. 중앙루터교회는 남산 자락에 있는데 밀레니엄 힐튼 호텔 바로 옆에 있는 CJ그룹 본사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는 루터대학교가 있다. 다만 루터대학교는 재정난으로 교과부의 대학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는 안습한 일이 일어나기도. 또한 컨콜디아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선교 및 전도활동은 주로 '루터란 아워'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블록이나 잡지 홍보 등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펼치는 편이지만, 성공회와 비교하면 드물게 사탕이라도 나눠주는 식의 전도를 하긴 한다. 당연하지만 다른 개신교 교파에서 옮겨오는 사례도 존재하는데,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인 성향도 싫은데 가톨릭, 성공회[26]는 또 십자고상이나 마리아상이 없으면 큰일날 것처럼 가르치니 둘 다 싫어서 루터교회로 오는 경우라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자 첫 주자이며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한국의 개신교 교파의 기득권층에서는 마르틴 루터를 개신교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루터교는 성공회처럼 아예 다른 종교 보듯이 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루터의 신앙이 어떤지, 루터가 만든 교파는 어떤 교파인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부족하다.[27] 아니, 한국의 개신교인들 대다수는 루터는 그냥 스타트만 끊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며 실질적인 종교개혁은 다 울리히 츠빙글리장 칼뱅이 해놓았다라고 착각하는 경향까지 있다. 이는 아무래도 루터교가 다른 개신교들에 비해서 지성적인 면과 가톨릭적 성격이 강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걸로 보인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루터교가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처럼 교단 간 화합(이른바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이고 진보적 단체로 알려져 있는 NCCK 소속이다 보니 일부 보수, 근본주의적 성향의 개신교인들은 더더욱 거부감을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 교단의 주류가 장로회와 감리회라서 루터교의 의식은 생소하다. 전술했다시피 해당 지역 가톨릭교회 역사가 루터교 교리만을 받아들여 옷만 바꿔서 그대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당장에 예배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물론 한국 루터교회 신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집전되는 예배보다[28] 훨씬 가톨릭적이라 이질감은 분명히 존재한다.[29] 또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상에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도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굉장히 껄끄러울수밖에 없는데, 이를 의식하는지 한국의 루터교회는 성공회와 달리 성상을 잘 설치하지 않고,[30] 성경도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을 사용하여 개신교적인 정체성을 매우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반 에큐메니컬 근본주의자들, 혹은 극단적인 반개신교인들의 편견과 달리 한국 루터교회는 한기총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모두 가입한 회원이며 모든 개신교 교단에서 개신교의 상징적인 장자교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임동진같은 루터교 신자인 유명인 다른 개신교 교회에서 설교 및 강연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개혁교단의 신학교수나 목사들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독일 유학 케이스도 상당한데 당연히 독일 개신교(EKD)는 루터교회가 중심이라서[31] 그 결과 한국의 개혁교단 신학에서도 루터파 신학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볼수도 없다. 결국엔 성공회나 루터교회나 예식은 구습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교리는 일반적인 개신교의 교리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32] 현재 내년이 예정인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은 당연히 한국 루터교회가 중심이긴 하지만 함께 참여하는 교단이 장로회는 물론이고 개신교 종파 중에서도 [33]가장 보수적이고 한국교회연합 소속인 두 교단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이 루터교회를 도와 거들고 있다. 또한 루터회는 유독 복음주의보다 앵글로-카톨릭의 영향력이 강하며 하드웨어 면에서나 교리면에서나[34] 로마 카톨릭과 상당히 유사한 한국 성공회와 달리 교리나 하드웨어 면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개신교 교파와 차이가 적고 엄연히 개신교 교파로 인정받으며 개신교적인 정체성도 비교적 뚜렷하다.

참고로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기독교한국루터회를 독일이나 유럽의 루터파 교회와 비교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루터교회 시작은 미국의 미주리 시노드(LCMS)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보수적인 교단이다.[35] 가령 북유럽과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와 미국[36] 등지의 루터교단은 동성결혼 집례도 허용하지만 미주리 시노드와 기독교한국루터회는 동성애 자체를 죄라고 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37] 물론 NCCK 소속 교단답게 한국의 타 개신교 교파들보다 유연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38] 기독교장로회나 성공회와 동일한 수준이라 보기는 힘들다.

3.4 기타 국가들

에리트레아에서 기독교를 탄압할 때 예외로 둔 게 바로 루터교회였다.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일 당시 미국과 서구권,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에티오피아를 지원할 때 북유럽 나라들은 중립을 지키면서도 미국과 서구권의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였기에, 이에 대한 작은 감사로 극소수이긴 해도 에리트레아에 있던 루터교회는 탄압하지 않았다.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가 강하므로 루터교를 사실상 북한 봉수교회마냥 어용화시킨 것에 불과하고, 당연히 반정부 성향을 가진 신도들은 타 개신교도들처럼 탄압당하곤 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루터교 비율이 높은 나라는 의외로 인도네시아다. 당연히 주류 민족인 자바인보다는 비교적 소수인 바탁족(Batak)들이 많이 믿고 있긴 하다.(인도네시아 바탁 루터교회). 참고로 인도네시아 기독교인은 중국계 아니면 소수 민족들이며 자바인은 100% 무슬림이다. 이외에도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교세가 꽤 큰 편이며 여타 개신교 교파들처럼 꾸준히 성장 추세에 있다. 특히 구 영국령으로 중국인이 다수인 홍콩싱가포르웨일스에서 전래된 루터교가 흔하다.[39] 인도에서도 루터교회의 성장세가 꽤 괄목할만한 수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신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나미비아인데, 독일이 아닌 핀란드 선교사에 의해 전해졌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참조) 탄자니아 등에서도 루터교 교세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의외로 에티오피아에서도 활기를 띈다. 에티오피아 복음주의 교회 메카네 예수 교단 단일 신도수가 635만여명으로 2위였으며 이 교단이 혼자서 전체 루터교인 증가의 절반을 차지했다. 흠좀무.

중남미의 경우 역사적으로 이탈리아계 못지 않게 독일계나 북유럽계 이민자들이 꾸준히 건너온 덕분인지 브라질 남부의 히우그란지두술과 산타카타리나주 등에서 볼 수 있고[40] 아르헨티나에서도 루터교회를 좀 볼 수 있다.
  1. 사실 개신교를 가리키는 단어들 중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하는 자들)'이란 명칭 자체가 바로 마르틴 루터를 지지하던 제후들이 스스로 그렇게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2. 다만 일부 국가에서는 다른 개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체코나 네덜란드같은 경우 칼뱅교와 루터교 교단이 통합되어 있다.
  3. 아이슬란드를 제외하면 국교회 명칭을 쓰는 나라들은 모두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이유는 후술
  4. 체코어로 거위 혹은 기러기를 'Husa'라고 부른다.
  5. 한국, 독일, 북미 일부 루터교회의 성직자 호칭, 그 외의 유럽에서는 엄격히 삼중성직제도를 지켜서 부제, 사제, 주교가 있고, 사제들은 신부님이라 호칭한다. 다만 스웨덴에서도 비공식적으로는 '목사'라고 부를때가 많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인 '겨울 빛(nattvardsgästerna)'에서도 주변인물들이 주인공을 목사(Pastor)라고 부르지 신부(Präst)라고 부르지 않는다.
  6. 주케토라고 한다.
  7. 성공회도 종교개혁적인 면을 강조할 경우 저교회파(Low Church), 가톨릭적이고 예전적인 면을 강조하는 분파는 고교회파(High Church)로 나뉜다.
  8. 정확히는 루터교회에서 나눠주는 달력이 그러하다.
  9.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에서는 이 날을 성모승천대축일/성모안식축일로 기념한다.
  10. 그나마 이것도 후술하겠지만 교리적인 이유보다는 당대 혼란상 탓이 컸다.
  11. 19세기~20세기에 와서야 수도원, 수녀원 개념이 다시 부활하긴 했다. 바실레아 슐링크(Basilea Schlink)가 설립한 '다름슈타트 마리아 자매회(Evangelische Marienschwesternschaft Darmstadt)'가 그런 경우이다
  12. 지금도 독일 루터교에서는 이렇게 입는다.
  13. 상술했듯이 북유럽 각 국가에서의 루터교는 여러모로 국교회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다.
  14. 현 트론헤임(Trondheim)
  15. Andreas Rudolph Bodenstein von Karlstadt(1486-1541) 그는 츠빙글리와 칼뱅 이전 개혁파 0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모세의 율법이 신약시대 이후에도 그대로 유효하므로 우상숭배 금지도 유대교처럼 철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갖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성상 없는 '말씀만의 교회'를 주장했는데(즉, 츠빙글리와 칼뱅의 선배격이라 볼 수 있다) 루터는 처음에 동의했으나 얼마 안가 1522년에 이루어진 비텐베르크 개혁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격렬한 키배 끝에 그와 등을 돌려버렸다.
  16. 출처: "마틴 루터의 신학", 베른하르트 로제, 정병식 譯, 한국신학연구소 215페이지
  17. 애초에 루터의 주장부터가 교회에서 성화나 성상을 만들거나 그려서 둘 수는 있지만, 그런 것으로 문자적인 율법과 말씀을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위의 책 217페이지)
  18. 핀란디아 홀로 유명한 알바 알토가 설계하여 1958년 핀란드 남부 카리알라에 지어진 교회이다.
  19. 성공회도 이런 면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개교회 혹은 지방자치 성향인 루터교의 유연성은 관구제인 성공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 침례교와 정반대로 냉대기후를 띄는 중서부 오대호 연안과 미국 본토에서 가장 춥다는 노스 다코타에서 일반적인 편이다. 북유럽계 이민자들이 비슷한 환경을 가진 주에 주로 정착했고 루터교도 따라서 들어왔기 때문에 당연할 수밖에 없다.
  21. 1918년 루터교와 칼뱅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연합교단.
  22.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에는 라트비아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동성결혼이 금지되었다.
  23. 물론 미국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므로 근본주의라 부르지 않고 '극보수 정통파 기독교인들'이라 표현한다.
  24. 애초에 한국 루터회의 역사 자체가 6.25 전쟁이 막 끝나고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교단인 미주리 총회(Lutheran Church Missouri Synod)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25. 이는 개교회주의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다. 다른 교파들은 교회 개척 자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지만 루터교는 목사가 마음대로 교회를 개척할 수 없도록 해버렸기 때문. 다만 한번 만든 교회 안에서는 목사가 마음껏 인테리어나 예배 방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26. 사실 일단 교리상으로 성공회도 다른 개신교 교파와 큰 차이가 없는 편이긴 하나, 한국 성공회는 로마 카톨릭과 하드웨어나 교리면에서 유사성이 상당히 큰 앵글로-카톨릭 중심이라 침례교나 장로교, 감리교 출신 개신교 신자라면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강할 수 박에 없는 측면이 있다.
  27. 당장 대한민국에서 칼뱅이나 웨슬리에 관한 전문서적은 아무 개신교 백화점에서나 신학 코너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루터와 그가 만든 교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룬 서적은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영어로 된 서적을 해외직구하던지, 굳이 한글로 된 전문서적을 보고 싶다면 컨콜디아사에다 직접 주문하는 방법밖에 없다.
  28. 사실 한국에서 집전되는 예배도 꽤 예전적이고 이 때문에 루터교회에서는 성경과 찬송가 외에 '예배의식문'이란 소책자를 따로 구비해놓고 있다.
  29. 한국의 경우 미국을 통해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성공회보다는 예배 방식이 간소한 편이다. 그래도 한국의 다른 개신교도 입장에서는 가톨릭미사정교회성찬예배, 성공회감사성찬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것도 사실이다.
  30. 사실 위에 나와있듯이 마르틴 루터 본인도 성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성상을설치하지 않은 루터 교회들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에 딱히 특이한 건 아니다
  31. 2차대전이후 10여개의 루터교회 협회와 2개의 개혁교단이 합쳐졌다. 참고로 2개 중 1개가 바로 동프리슬란트(...)에 있다.
  32. 단, 후술하듯이 루터교회가 성공회에 비해 교리,전례,양식,체계 등에서 다른 개신교와의 차이점이 훨씬 적다. 특히 앵글로-카톨릭의 경우 로마 카톨릭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하고
  33.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88416/20160115/%EB%A3%A8%ED%84%B0%ED%9A%8C%C2%B7%EA%B3%A0%EC%8B%A0%C2%B7%ED%95%A9%EB%8F%99-%EC%A2%85%EA%B5%90%EA%B0%9C%ED%98%81-500%EC%A3%BC%EB%85%84-%EC%96%B4%EB%96%BB%EA%B2%8C-%EC%A4%80%EB%B9%84%ED%95%98%EB%82%98.htm%7C
  34. 물론 앵글로-카톨릭의 경우. 성공회 저교회파는 일반 개신교와 교리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35. 미국에서 이보다 더 보수적인 교단으로는 위스콘신 시노드(WELS)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저명성이 별로 없다. 미주리 시노드는 여성의 목회자 자격만 인정하지 않는 수준인데 비해 위스콘신 시노드는 아예 여성의 집사 직분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36. 메인라인에 속하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회(ELCA)를 말한다.
  37. 링크된 기사에서는 미주리 시노드가 1981년에 생겨났다고 쓰여있지만 실제로는 미주리시노드가 ELCA보다 더 오래된 교단이다.
  38. 그래서 위에서 언급된 유럽의 루터교단들과도 교류가 좀 있다.
  39. 다만 종교를 공식적으로 규제하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 베트남에서는 루터교회가 들어가지 못했다.
  40. 사실 이 지역에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했다. 또한 남반구 특성상 칠레, 아르헨티나만큼은 아니지만 북쪽이 가장 덥고 남쪽이 서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