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호

1 1955년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열차의 한 등급

統一號 / Tong-Il Express

틀:코레일의 열차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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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을 운행했던 통일호. 2003년남포역에서 촬영.

1.1 개요

운행하던 시절에는 새마을호, 무궁화호와 마찬가지로 Express를 뒤에 붙였었다. KTX로 인해 새마을호, 무궁화호도 Express가 빠졌지만. 통일호는 마지막까지 Express를 단 채로 다녔으므로 사선을 긋지 않았다.

철도청(現 코레일)에서 운행했던 열차의 한 등급.

현재 경원선에서 운행하고 있는 통근열차의 전신이기도 하며 첫 글자가 으로 같아서 시각표상의 약칭을 따라 그냥 통근열차를 통일호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2006년도까지 통일호 행선판을 땜질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2 역사

통일호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 부터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급행열차이자 객차(여객열차)에 편의상 붙인 명칭으로, 개통 당시에는 경부선 구간에서 완행·보통급행·급행 등을 압도하는 초특급 열차였으나, 1983년에 열차명 개정으로 통일호라는 명칭으로 전구간에 운행을 시작했다.

1899년(광무 3) 경인선을 시작으로 한국에 철도가 개통된 이래 열차 이름은 여러 번에 걸쳐 변화를 거듭하였다. 1906년부터 융희호(隆熙號)로 불리다가 1936년 일본에서 시속 60㎞의 특급열차인 히카리호[光號]가 도입되어 부산-만주 구간을 운행하였다. 이어 일제에 의해 아카츠키호[曉號]로 고쳐 부르다가, 8·15광복 후 조선해방자로 고치면서 한국어 이름을 되찾았다. 1955년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호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후 1963년 더 빠르고 경량화된 특급객차 115량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60년 시속 95㎞의 무궁화호, 1969년 전기냉방이 갖추어진 관광호(새마을호)가 등장하면서 특급열차의 명성을 잃기 시작하였고, 1984년 열차등급 개정 때 "특급"에서 "급행"으로 낮추어졌다.

초기에는 비둘기호와 같이 창문 개폐식에 선풍기만 달려있는 비냉방 객차였으나 70년대 이전에 제조된 구형객차[1]를 제외한 객차를 80년대 중반에 일괄 에어콘 냉방개조로 바뀌게 되어 한결 쾌적해졌다. 무궁화호에 비해 낮은 운임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정차역(사실 조금 더 많았다.)으로 서민을 대표하는 급행열차였다.

리즈시절인 1980년~1990년대 초반까지는 무궁화호보다 인기가 좋았으나 도로교통의 발달과 차량의 노후화로 인해 1993년부터 이용객수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애초에 통일호를 타던 승객들은 싸서 타고 없으면 그나마 싼거 라는 생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차량 노후화와 큰 관련은 없다. 이는 낮시간대에 운행하는 통일호 열차를 무궁화/새마을호로 승격한 것이 진짜 원인이다. 열차가 줄었는데 이용객수가 유지되는것이 이상하다.

어쨌든 2년간 적자화가 가속되자 철도청에서 칼을 대기 시작했다. 1994년 시간표 개정후 장거리 급행 통일호는 눈에 띄게 감편하였는데 메인 간선인 경부선이나 호남선, 전라선등은 이때 통일호를 편도 기준 하루 2편성 정도만 남기는등 대량 감축하고 무궁화호로 승격시켰다. 이때 부터 장거리 구간의 주도권은 무궁화호에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전산통일호(좌석지정)와 특정통일호(자유석)으로 분리돼 운행됐다. 전산통일호는 경춘선(경춘선은 원래 특정통일호였으나 노선 특성상 대학생 MT시즌만 되면 승하차시에 좌석 쟁탈전으로 인한 계단 낙상사고가 빈번했고 좌석시비로 민원이 발생해 철도청에서도 골머리를 앓다가 전산통일호로 바꿔버렸다.), 장항선, 충북선에서 운행됐다. 그외의 지역은 특정운임구간으로 간주해(비둘기호의 승격으로 봄) 단거리인 경우에 한해 전산통일호보다 저렴한 운임에 각역정차하는 특정통일호가 다녔다(100km 이상의 장거리는 전산통일호의 입석운임을 그대로 적용). 사실 당시는 전산통일호의 최저운임거리가 100km여서 단거리도 그 거리에 의한 운임을 받았다. 제천역봉양역 구간의 경우 충북선의 전산통일호와 중앙선의 특정통일호가 공존하는 유일한 구간이었다.

특정통일호 시발역에서의 좌석 쟁탈전은 경춘선뿐만 아니라, 다른 특정통일호 시발역에서도 있었고, 특히 제천역 착발 EEC 열차에서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통학생은 책상같은 식탁이 있는 식당차, 보통 승객은 추가금 없이 특실을 이용하기 위해 이 두 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개표 즉시 전속력 질주(?)가 일상이었다.

이러다가 1998년 2월 개정으로 정선선을 제외한 비둘기호(2000년 폐지)가 운행중단하면서 통일호는 최하위급 열차로 격하된다.[2] 그렇게 운행하다가 2004년 KTX가 등장하자 통근열차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통일호란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업에서 열외된후로는 광운대역이나 국수역에 유치되어 있다가 폐차직전까지 차장차 또는 군 인력수송으로 사용되었다.

냉방객차로 변경 이후 초창기에는 아이보리색 바탕에 녹색의 도색을 사용했다. 그리고 1994년에 대대적으로 도색을 개정할 때 노란색 + 남색의 도색으로 변경되었으나 통일호의 완행열차화가 시작되어 노란색 + 녹색으로 바뀌어서 폐지때까지 사용했다.

이후의 행적은 통근열차(한국) 항목을 참조.

1.3 종류

통일호는 객차형과 동차형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1.3.1 객차형

  • 원조통일호 : 1963년[3]부터 1981년까지 도입되었으며, 가와사키중공업, 일본차량제조, 제국차량(이 세 회사는 초기 일본 직수입 도입분을 제작. 이후 비둘기호로 격하된다), 대우중공업, 조선공사, 현대정공(세 회사 모두 나중에 철도 차량 부문만 현대로템으로 통합)
  • 무궁화 격하형 통일호 : 탕엥(대만산)

1.3.2 동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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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둘기 격상형 통일호 : 니가타(인천공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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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 격하형 통일호 : 대우중공업(EEC : 우등형 전기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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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근형 통일호 : 대우중공업(CDC : 도시통근형 디젤동차, 현 통근열차)

[1]

  • 통일호 특실

1.4 특이사항

  • 1996년에 경의선 비둘기호를 폐지하고 시범적으로 통일호로 승격해 운행했다.(당시 서울 - 문산간 요금 1,200원) 이때 군산(또는 익산) - 전주 비둘기호도 통일호로 승격후 CDC를 투입했다. 당시 대전 - 군산 비둘기호와 익산 - 광주 비둘기호는 장항선 통일호 승격 때문에 장항선으로 들어가지 않고 운행노선을 합쳐서 대전 - 광주 비둘기호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경춘선 또한 비둘기호도 통일호로 승격됐는데 이 쪽은 통일호가 이미 급행으로 있었으면서 무궁화호도 속달열차 개념으로 있었다. 이 때 통일호로 운행하던게 무궁화호로 승격되었는지, 아니면 통일호로 그대로 남았는지는 수정바람.
  • 1980년대에는 비둘기호였던 니카타 동차를 통일호로 승격해서 경남권(태화강(구 울산) - 부산, 대구 - 마산) 에서 운행한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무궁화호로 승격되면서 NDC가 투입됐다. 그리고 2010년 NDC가 폐차된 이후론 CDC를 개량한 RDC가 다니고 있다.
  • 단일 편성으로 최단거리 통일호 운행 구간은 1위 광주 - 광주송정(14km), 2위는 민둥산 - 정선(22.6km), 3위는 군산 - 익산(24.7km) 순이다.
  • 근성열차청량리부전 구간이 있었다. 하행 약 11시간, 상행 약 12시간, 운행거리 약 500킬로미터. 운행구간 자체도 근성이거니와 교행 때문에 중간에 이십분씩이나 근성으로 정차하기도 했다. 심지어 원래는 비둘기호였다.
  • 1998년 2월 2일까지 객차형 복합열차로 운행하기도 했다. 청량리 - 구절리/철암행 야간열차로 운행했는데, 이 열차는 증산역에서 병결을 실시했다. 호차 구분을 위해 일반적인 편성과 달리 객차 사이에 발전차를 끼워넣었다고.
  • 열차 외 내부의 구조가 구조다보니, 퇴역 이후에도 KBS 2TV아침 드라마(TV소설) 같이 1970년대 이전을 주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절찬리에 이용되고 있다.

2 레드얼럿2의 한국군 특수유닛 보라매의 전 이름

투표로 뽑혔는데 이렇게 발매된다는 소식을 들은 팬들은 웨스트우드에 항의를 했고 다시 투표한 결과 나온 보라매로 이름을 바꿔서서 발매했다. 대체 어디서 설문을 했는지는 미스테리.
  1. 초기 일본에서 수입해온 객차들이었는데 나중에 비둘기호로 격하되었다.
  2. 다만 명절 임시열차나, 수학여행 학단수송용 전세열차일때는 잠깐 부활하여 급행 등급으로 다녔다.
  3. 1961년에 도입된 니가타 동차에 이어서 국내에서 두번째로 경량 세미 모노코크 차체를 사용한 철도차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