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호

비둘기號 / Bidulgi Express[1]

틀:코레일의 열차 등급

1 개요

1967년부터 시작해 1984년 비둘기호로 열차명이 통일되어 2000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 철도계의 최하위 등급 열차.

파일:Attachment/비둘기호/c0026408 4c050d6884e84.jpg
폐지 전 정선선을 운행하던 객차형 비둘기호

파일:Attachment/비둘기호/19903 2.jpg
니가타 동차 비둘기호. 고상홈 대응 개조가 된 열차로, 개조 이후에는 비둘기호가 아닌 수도권 전철의 일부로 용산-성북간을 운행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운행하다가 이 구간에 4량짜리 1000호대 중저항이 도입되면서 퇴출되었다고 한다. 90년대에도 뉴스에서 비둘기호 (니가타 동차) 노후화 문제를 지적하며 서민들만이 타는 열차라고 무시하는 것이냐고 호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근데 철도청 시절 철도청장용 8호 열차도 니가타 디젤동차였다. 철도박물관 구석에 있는 그것. 결국 퇴출. 참고로 니가타You ride 일본의 지역명이다. 니이가타 등으로도 불린다.

1.1 열차 이름 변경

1993년에는 삼천리호로 개명될 뻔한 적이 있었다. 기사

1992년 8월부터 9월까지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열차 이름 공모가 있었다. 오랫동안 쓰여 왔던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 위해서였을 듯. 1993년 상반기에 모두 바뀔 예정이였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모두 무산됐다. 발표된 열차 이름은 다음과 같다.

기존변경비고
새마을새나라
무궁화평화
통일통일당선작 없음
비둘기삼천리

2 편성

소형 디젤기관차 4200호대, 5000호대에 의해 객차를 견인했으며, 때로는 6200호대와 같은 초대형 디젤기관차가 견인하기도 했다. 철도청(로고:터널형) 시절 운행했던 디젤기관차들은 검정바탕에 노란 줄무늬 도색(호랑이 도색)이었으며 해외 디젤기관차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아름다운 도색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었다. 철도공사(로고:역삼각형) 시절에는 녹색과 노란색, 흰색 도색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우편화차/수화물차와 혼용편성하여 운영되며 때로는 다량의 우편화차/수화물차를 견인하기도 하였다. 디젤기관차 견인형은 주로 경부선, 호남선 같은 장거리 수송을 위해 운행되었다.

니가타 디젤동차, 가와사키 디젤동차로도 불리웠으며 경의선, 교외선 같은 주로 로컬선에서 운행하였다. 디젤기관차와 달리 엔진과 객차의 일체형이며 디젤 연료로 움직이고 굴뚝이 있는 디젤동차다.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되었으며 디젤기관차 견인형과 달리 2량에서 많으면 3량 정도의 단량으로 편성되어 있다. 엔진은 일본 니가타 공업소에서 수입했으나 차후 미국 커민스사의 엔진으로 교체하게 된다. 외관은 당시 초저항 관통형 전동차, 수인선 협궤동차와 비슷했으나 깍두기처럼 각진 초저항과 달리 둥글둥글한 곡선모서리로 되어 있다. 당시 일본의 디젤통차의 디자인 영향을 많이 받아 실제로 키하 52-125형, 키하 17형과 외형이 많이 비슷하다. 추후 수도권 전동차 제조기술의 발달과 노후화[2]로 비둘기호 디젤동차형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디젤동차의 생산이 완전히 중단된건 아니고 NDC, CDC가 그 전통을 이어받게 된다.

수인선 협궤열차도 등급상으로는 비둘기호다. 니가타 디젤동차와 외형은 비슷하나 협궤선로에서만 다녔으며 초창기에 혀기 증기 기관차가 협궤 객차를 견인하는 식이었으나 니가타 디젤동차와 동일한 방식으로 디젤동차가 객차 앞뒤로 총괄제어하는 식으로 발전했다.이후 수자타산이 안맞아 수인선 협궤노선이 운영중지, 철거가 되고 표준궤와 전동차가 들어오면서 수인선 비둘기호 등급이 사라진다.

3 특징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1964년에 생겼던 서울-부산진간 특급이었던 비둘기호가 맨 먼저이다. 다만 그 당시 비둘기호는 이름만 같았고 객차는 본 문서의 비둘기호 객차가 아니라 "3등 객차" 라고 하여 구한말, 일제강점기 이래로 써오던 비둘기호 객차보다 더 오래된 객차 편성이었다.[3] 그러다가 1967년 8월 경부특급의 증기기관차에 처음 붙여진 객차(여객열차)의 명칭으로 쓰이면서, 서울-부산 구간부터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당시에는 등급상 완행이 아닌 특급열차였다고 하며 1967년까지 한국 철도 객차들은 통일된 이름이 없이 노선에 따라 통일호, 풍년호, 증산호, 협동호, 부흥호, 약진호, 갈매기호, 비둘기호 등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중구난방 불리어오다가 1984년에 새마을, 우등, 특급, 보급, 보통(=완행)의 열차등급을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로 정리하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되며 등급이 고정되었다.

최하위등급답게 일단 지나가는 길에 역 비슷하게 생긴 게 있으면 모두 다 정차했다. (극소수 비둘기호 선택정차역(예: 호남선의 채운역가수원역)도 있었다.) 운행하던 시절에는 한국에 저런 열차가 있었구나라고 할정도의 열악한 시설을 자랑하는 구형 열차들을 사용했다. 교외선이나 군산선 같은 일부 노선에 디젤동차가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주로 기관차+객차 견인 형태였다. 참고로 이 디젤동차는 한때 내구연한이 끝나기 직전에 고상홈대응 개조(라고해봤자 쇠판대기 덧댄수준)를 거쳐 경원선의 전철화된 구간(용산-옥수-성북)을 운행했던 적도 있었다.[4]

객실형태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지하철 열차마냥 롱 방식(열차 벽과 창문을 등지고 일렬로 시트가 쭉 나여 있는 형태)시트형 객실과 고정식(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거나 객석 방향을 회전시킬 수 없는) 박스시트형(객석 두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있는 형태, 하단 인피니트 뮤직비디오 사진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객실이 있었다. 참고로 가와사키 동차는 두 가지 시트를 혼합하였다. 그러나 설명했듯이 박스시트형 객차는 시트가 직각으로만 되어 있는데다 그렇다고 이걸 허리 편하게 뒤로 젖힐수도 없다.아이고 허리야 객차 하나 당 정원은 108명으로, 18열, 한 열에 6명이 탑승. 물론 좌석 번호도 붙어 있다. 3명 앉게 되어 있는 자리지만 실제론 좁아서인지 2명씩만 앉았다. 이는 좀 오래 된 일본 열차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일본의 일부 노선에선 아직도 이런 시트를 달고 다니는 열차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우리보다 더한 철도 대국인데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래된 열차나 오래되고 수익 나지 않는 폐급 노선이라 해도 왠만하면 냉정하게 버리거나 폐지하기 보다는 가급적 노선이나 열차를 보존하는 분위기, 시스템 이라서 그렇다.

자리표 같은 건 없다. 앉으면 임자. 때문에 개표 때까지 길게 줄을 서 있다가 개표와 동시에 우르르 뛰어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 예매자에게는 지정좌석표가 있기도 했다. 1980년대에 운행되었던 용산-부산진간 비둘기호의 경우, 장거리 여행자가 지정좌석표를 예매한 경우가 있어서, 객실 내에서 비둘기호가 무슨 좌석예약이 있냐며 먼저 앉은 승객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차장이 사정을 설명해서 그 다툼이 겨우 멎은 경우도 간혹 있었다. 좌석은 시트 하나당 3명이 앉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비록 무궁화호나 통일호에 비해 시트의 폭이 넓다 해도 80년대 기준으로도 성인 셋이 앉기에 비좁았다.

또한, 문은 100퍼센트 수동문이고, 객실창문도 수동문이었다.(이건 통일호 객차도 대부분 공통) 게다가 롱 방식 중 가끔 닫히지 않아 그냥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추우면 대략 낭패, 긴 터널에 그렇게 들어가면 정말 큰일이었다. 당연히 냉방장치는 전무했으며 창문을 열고 달렸다. 그나마 회전식 선풍기는 1량당 2개씩 복도 중앙 천장에 달려 있는 경우가 있었다. 비둘기호의 전신격인 3등 객차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

난방장치는 난방차에서 스팀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일부 객차에만 자체 난방장치가 있었다. 화장실은 비산식 화장실이라 화장실 바로 아래가 선로다. 또한 조명마저도 발전차가 아닌 축발전기에 연결된 별도의 전지를 통해서 작동하는 방식으로 어두침침한 알전구에 젖빛 반구 전등갓을 씌운 형태[5]였으니... 그야말로 안습이다. 당시 비둘기호에는 객차마다 행선판을 부착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행선판 귀퉁이에 펭귄종합식품의 음료광고[6](알알이, 아세로라 등)를 하였다.

물론, 비둘기호도 신형 차량은 들어왔다. 바로 오늘날의 통근열차CDC의 원래 목적이 바로 연령이 오래된 열차들을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비둘기호 등급이 아닌 통일호 등급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CDC가 하나하나씩 RDC(무궁화호)로 변신하거나, 관광열차로 개조되고 있다.[7]

4 노선

노선은 서울역-문산역, 서울역-송추역-의정부역, 용산역-성북역-신탄리역, 용산역-온양온천역, 용산역-장항역, 용산역-대전역, 수원역-송도역(협궤), 천안역-장항역, 천안역-안성역, 동대구역-포항역, 부산진역-진주역, 부산진역-광주역, 동대구역-부산진역, 부산진역-순천역, 대전역-광주역, 대전역-목포역, 여수역-목포역, 부산역-부전역-포항역, 익산역-여수역, 대전역-군산역, 조치원역-제천역, 청량리역-원주역, 청량리역-제천역, 영주역-강릉역, 제천역-철암역, 동해역-강릉역, 증산역(현재의 민둥산역)-구절리역헤아릴 수 없다. 참고로, 비둘기호는 부산진역까지만 들어갔다. 단 이것은 경부선 쪽이고 부산역-포항역 비둘기호도 있었다. 이후 부산진역이 화물취급만 하게 되면서 경전선의 여객취급 기능은 부전역으로 넘겨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여객 열차가 들어가지 않는 가은역, 불정역, 삼척역 까지도 다녔고, 심지어 13시간이라는 엽기적인 소요시간을 자랑하던 용산-부산진, 용산-목포, 청량리-부전 비둘기호가[8] 있었다. 경부선에서 일단 낮시간대에 타게 되면 각 역에 정차하고, 역에 정차할때마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등이 보기 좋게 앞질러 가기 때문에 대피 선로로 비켜야 했으며, 재수 없으면 한 역에서 두 번 이상 후속 열차를 비켜줘야 했다. 이 열차를 처음 탄다면 열차가 왜 안 가냐며 답답한 모습을 보였을 정도로 비켜 주는 횟수가 많았을 정도. 정차 시간이 길다 보니 내려서 국수나 우동 등 간단한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여유를 부리다가 열차를 놓치는 경우도... 이걸 비둘기호가 아니라 무궁화호가 정차할때 시도하다 실패한 사건이 1박 2일의 그 유명한 김종민 낙오 사건이다. 아무튼 없어질 당시 용산-부산진 가격이 오천원이 채 안됐을 만큼 싼 가격으로 부담없이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하였다.

5 말로

하지만 너무나도 싼 운임 때문에 사람을 가축수송 수준으로 가득 실어도 적자가 날 판에 그나마 수요까지 줄어들면서 1998년 11월 30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정선선 꼬마열차(기관차+객차1량 편성)만을 남기고 모두 폐지되었고 그 자리는 12월 1일부터 운행되는 구간 통일호로 대체되었다. 일단 살아남은 꼬마열차는 수요가 많은 정선5일장날(매월 2, 7, 12, 17, 22, 27일)에는 객차1량을 추가하여 총 객차2량 편성한다. 동절기에는 난방차가 추가편성된다. 따라서 동절기이면서 정선5일장날에는 기관차1량+객차2량+난방차1량 편성의 총 4량이 편성되었으나 그나마도 2000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니가타 디젤동차의 경우 말년까지 경의선, 교외선 등 일부노선에서 운행했으나 대차 하부구조가 무너지는 등(그땐 열차가 운행이 좋아서 가축수송이 되어 그럴법도하다;;) 노후화가 심해지자 CDC등에 바통을 넘겨주고 조용히 사라진다.

대신 완행의 역할은 통일호를 거쳐 통근열차가 물려받게 되었으나, 통근열차마저 유명무실 해지면서[9] 지금은 완행의 역할을 전철과 일부 무궁화호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비둘기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은 편. 기존 수도권 전철에 한정되어 운행되던 광역전철이 동남권 전철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기존 통일호, 비둘기호의 역할을 계승할 예정이다.

6 여담

철도 동호인들에게는 통일호보다도 더 잘 알려진 존재다. 단, 통일호의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 무렵부터 열차를 즐겨 탄 철도 동호인이라면 통일호 쪽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게임상으로 열차들도 많이 제작이 된편. 심지어는 1990년대의 비둘기호 마지막 운행때 마지막 비둘기호를 타고 종착역에 빨리 내려서 행선판을 떼가서 기념사진도 찍었을 정도. 물론 명판을 떼가는 짓은 하면 절대 안된다. 철싸대 항목을 참조.

파일:XYBeJjMr.jpg

또한 인피니트paradise 뮤직비디오에서 일부장면이 비둘기호 내부에서 촬영되었다. 당연히, 촬영지는 철도박물관.
  1. 지금와서 보면 이 Express가 어색해 보이지만, 특급이었던 적이 있었던 탓인지 운행하던 시절에는 Express를 뒤에 붙였었다.
  2. 차량 하부구조가 너무 무거워 차량이 주저 앉은 사건이 발생.
  3. 자세한 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60년대 철도 관련 기사를 참고하라.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면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wikipedia.or.kr)에서 비둘기호 또는 비둘기호(운행 계통) 검색어로 검색한 다음 문서 하단의 각주 링크를 살펴보면 나와 있다.
  4. 예전엔 국철이라고 해서 1호선과는 별개의 노선으로 분류되던 계통이었다. 당시 철도청 소속 지하철 1호선 차량 내 노선도에도 '용산-청량리간 동차'로 별도 표시되어 있었다. 동차가 폐차된 이후로는 한동안 중저항과 같은 전동차들이 다녔으며, 지금은 중앙선이 물려받으면서 폐지되었다.
  5.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형광등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지어졌던 아파트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에서 볼 수 있는 노란 백열전구에 촉광만 1/4로 줄여놓으면 대충 비슷하다.
  6. 꼭 비둘기에만 붙어있던건 아니고, 새마을이나 무궁화, 통일호에도 붙어있었다.
  7. 바다열차, 평화생명관광열차
  8. 참고로 현재 각 구간에서 최하 등급 열차인 무궁화호는 서울-부산 무궁화호가 약 5시간 20분가량, 용산-목포 무궁화호가 약 5시간, 청량리-부전 무궁화호가 약 6~7시간 가량 소요된다. 청량리-부전 무궁화호는 아직 중앙선 및 동해선 등의 개량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소요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9. 지금은 경원선 동두천역 - 백마고지역 구간에서만 운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