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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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팀 라이스 경
SIR TIM RICE
분야연극
입성날짜2008년 11월 20일
위치6243 Hollywood Blvd.

Sir Timothy Miles Bindon Rice - 1944년 11월 10일생.

영국 출신의 뮤지컬 작사가로, 역시 거장으로 평가받는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영어권 뮤지컬계를 평정하고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작들을 만든 인물이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ALW보다 나이가 많고 업계에서의 짬밥도 더 많았던지라 작업에 있어 ALW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그가 기존의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하고 만든 작품들은 그야말로 혁명적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일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만든 가족 뮤지컬들의 작사가로 유명해졌다.

1 앤드루 로이드 웨버


젊은 시절의 ALW와 라이스

팀 라이스는 영국 남동부의 버킹엄셔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의 명장 에르빈 롬멜을 상대한 제8군에서 복무하여 소령으로 전역했고 어머니도 Women's Auxiliary Air Force[1] 출신인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랜싱 칼리지를 나와 프랑스소르본 대학교 유학을 갔다온 뒤 1966년 EMI 레코드에 입사하여 관리자 양성 수업을 받았고, 당시의 프로듀서 노리 파라머가 자기 회사를 차리려고 그만두자 그의 회사로 들어가 클리프 리처드 등의 뮤지션들과 작업했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만났다. 이 둘은 학예회용 단편 작품인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을 만들어서 좋은 평을 듣자 아예 분량을 늘린 컨셉 앨범을 냈다.[2] 그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냈는데, 그 실상은 본격 예수가 하느님께 삿대질하며 절규하고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를 인간적으로 사랑하며 고뇌하는 내용. 다시말해 70년대 초반의 대표적인 문제작이었다. 이들은 JCS를 컨셉 앨범으로 내서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뒤 브로드웨이 공연은 실패로 끝났지만 웨스트엔드 공연의 성공과 지금까지도 시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평가받는 영화화 작품으로 대박을 터뜨렸고, 라이스와 ALW는 20대의 나이에 뮤지컬계의 신성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ALW와 음악적 견해에서 불일치를 보였고 따로 활동하다가 1976년 에비타를 마지막으로 파트너십을 끝맺게 된다.[3] 에비타는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나 이후 ALW는 엉뚱하게도 고양이 이야기를 담은 연작시를 뮤지컬로 만들면서 리처드 스틸고 등의 다른 작사가들과 작업한다. 좀 더 흥행성에 주안점을 둔 ALW의 의견은 뮤지컬에 계속해서 메시지를 담고 싶어한 팀 라이스의 의견과는 언젠간 불협화음이 생기게 마련이었고, 결국 에비타 이후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2 체스 패배

팀 라이스는 1979년 무렵 냉전 시대를 담은 내용의 각본을 구상하고 ALW에게 제안을 했지만, ALW는 캣츠를 작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졌다. 그래도 캣츠에서 라이스는 초기 ALW의 요청을 거절한 것을 번복하고 Memory의 가사를 썼지만 ALW가 라이스의 가사를 거절하며 안그래도 벌어지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었던 터라 다른 작곡가들을 알아보던 팀 라이스는 ABBA의 베니 안데르손, 비에른 울베우스를 만나고, 이들과 함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뮤지컬을 만들게 된다. 팀 라이스는 막 그룹이 해체된 ABBA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들과 자신이 생각한 가사로 뮤지컬을 완성하고 JCS와 에비타의 컨셉 앨범에서 활동한 배우들을 주축으로 컨셉 앨범을 냈다. 그리고는 ALW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까지 감수하며 프린스 에드워드 시어터에서 에비타를 내리고 자신의 작품을 올렸다. 그 작품은 바로 체스.

하지만 이 작품은 막장 드라마 같은 얘기는 아니어도 러시아인과 미국인의 대결구도에서 미국인이 악역이라는 설정부터가 대중에게 거부감을 자아냈고 에비타까지 내려버리는등 체스를 위해 쏟아부은 투자의 규모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무엇보다 같은 해에 올라온 작품이 하필이면 오페라의 유령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받을 수가 없었다. 추가로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기존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의 스토리와 설정을 무리하게 변경하여 줄거리를 짠 것이 독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결국 그렇게 동시대 뮤지컬의 왕으로 떠오른 ALW와의 대결에서 무참히 패하고 수백만불이 넘는 적자를 보며 망했어요를 외치게 된 팀 라이스는 뮤지컬 공연계에 환멸을 느낄 정도로 무너졌고, 한동안 뮤지컬 창작과는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였다.

3 월트 디즈니 컴퍼니

그러다가 미녀와 야수의 뮤지컬 번안 작업에 작사가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비롯한 미국 애니메이션 또는 애니메이션의 뮤지컬 번안 작업에 참여하였다. 중간에 프랑스 뮤지컬 스타마니아를 영어로 번안하기도 했고 폭풍의 언덕을 뮤지컬로 만든 히스클리프의 작사도 해보는등 디즈니에서의 일과 별개로 뮤지컬계에 다시 발을 붙여보려 했으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렇게 알라딘, 라이온 킹, 엘도라도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가족 뮤지컬을 남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만들었고 엘튼 존[4]과 만든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이나 아이다, 앨런 멘켄과 만든 미녀와 야수등 적잖은 작품들이 흥행하긴 했지만 팀 라이스가 바라던 작품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참고로 팀 라이스가 참여한 미녀와 야수는 전적으로 무대 뮤지컬에 국한 되는 작업이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작사가는 디즈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사가이자 천재 프로듀서였던 하워드 애시먼이었으며 그가 알라딘 작업 도중 사망하자 팀 라이스가 긴급 투입되면서 이때부터 디즈니의 앨런 멘켄-팀 라이스 공조체제가 시작된 것).

1990년대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고(1994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할리우드 업계에서도 공연계에서의 위업을 인정하여 갖가지 공로상 특별상을 주곤 했지만, 뮤지컬 공연계에서 혁명가와 같은 위상을 누리던 리즈 시절과는 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안습이 따로없다. 이후 ALW와 작업했던 초기작 The Likes of Us가 뒤늦게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ALW의 부탁으로 에비타의 영화화 작업이나 ALW의 신규 작품에서 몇 곡 정도 작사를 맡기도 했지만, 팀 라이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제 ALW와는 파트너로서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다.

2013년에는 오랜만에 웨스트엔드에서 본인이 거금을 들여 추진한 스튜어트 브레이슨 작곡 뮤지컬 지상에서 영원까지(From Here to Eternity the Musical)을 무대에 올렸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장기 공연이 아니라 7개월 조금 넘는 기간이 정해진 단기 공연이긴 하지만 1950년대 나온 원작소설의 영화판보다도 더 거친 욕설이나 선정적인 장면[5],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력, 연출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1981년에 릭 웨이크먼과 함께 낸 컨셉 앨범 1984의 작사와 "Proles"라는 곡의 보컬(!)을 맡은 전력이 있고 2013년 무대에 올린 '지상에서 영원까지'도 미군에서의 동성애, 매춘, 집단괴롭힘, 전쟁의 참혹함 같은 범상치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을 보면 (물론 체스가 웬만큼 성과를 낸다는 전제 하에) 이후 작품들의 방향도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ALW와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오페라의 유령은 없었거나 지금과 사뭇 달랐을지 몰라도 체스의 시퀄 형식으로 만들 수 있는 동구권 공산국가들의 몰락, 혹은 9.11 테러(!) 같은 굵직한 시대적 이슈를 중심으로 서사적인 시대극 뮤지컬이 여럿 나왔을지 모르는 일이나 현실은 시궁창. 결국 현재까지의 결과를 보면 역사는 팀 라이스라는 인물을 ALW의 초창기 동료로만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체스로 대표되는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개고생'의 음악계에서의 사례로 거론될지도. 그나마 체스에 대해서는 21세기에 뒤늦게나마 재평가의 움직임이 있다고는 하지만...[6]

4 기타

  • 성경에서 소재를 따온 굵직한 흥행작들이 많지만, 팀 라이스의 종교관은 무신론에 가깝다.
  • Tim Rice라고 구글에서 이미지를 검색하면 백발의 팀 라이스 뿐만 아니라 웬놈의 젊은이(...)가 섞여 나온다. 록밴드 의 키보디스트 팀 라이스-옥슬리(Tim Rice-Oxley)인데, TRO 역시 킨에서 작곡을 담당하는지라 팀 라이스 경이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작업하면 좋을 것 같다? 그쪽이 더 긴 이름인지라 검색어에 Sir를 붙이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섞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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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비타의 초연배우였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디바 일레인 페이지와 팀 라이스는 에비타 초연 이후로 11년간 불륜관계였다(!) 1980년대 일레인 페이지의 캣츠 이후의 여러 행보는 팀 라이스와 겹치는데, 결국 일레인 페이지가 초연배우로 참여한 체스의 실패로 우울한 분위기에 터진 불륜 보도로 인해 라이스는 오랫동안 아내와 이혼 직전의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고 일레인 페이지와도 헤어지고 말았다.[7] 한편 자식 중에는 에바 페론에게서 이름을 따온 에바라는 딸도 있다. 에바는 소설가로 활동 중.
  1.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활동했던 영국의 여성 의용군 공군. 비록 공군 조종사로는 투입되지 못했지만 활주로 정비, 관제, 기체 정비 등의 궂은 일들에 투입되어 영국군의 승리에 공헌한 숨은 공신들이다.
  2. 파라오 역으로 컨셉 앨범에 목소리를 넣기도 했다.
  3.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환갑을 기념으로 살짝 크리켓을 만들긴 했으나 장기 공연으로 기획되진 않았다.
  4. 팀 라이스는 엘튼 존의 16집 Jump Up!의 4번 트랙 'Legal Boys'의 가사를 쓴걸로 이전부터 협업이 생겼다.
  5. 기존에는 원작 소설에서 이런 장면들이 전부 검열삭제되었지만 원작자가 사망하고도 한참 지난 2011년에 삭제된 부분을 전부 포함한 버전이 출판되었고 이 뮤지컬은 그 2011년 출판된 버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6. 사실 굳이 한번의 실수라는 조건에다 끼워맞춘다면 체스의 선악구도보다는 7년을 넘게 이어오던 에비타 초연을 끝내버린게 더 큰 실수일지도...
  7. 사진은 2012년 로렌스 올리비에 시상식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함께 공로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