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英布
(?~BC 195)
1.1 개요
1.2 생애 초기와 이름의 유래
원래 평민이었는데 소년 시절에 누군가가 그의 관상을 보고 "자네는 형벌을 받은 후에 왕이 될 상이로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금 커서 법을 위반하여 칼로 죄인의 얼굴에 글씨를 새긴 후 그 위에 먹물을 칠하는 벌인 경형(黥刑)을 받았는데 이 벌을 받은 영포는 "옛날에 내 얼굴을 보고 누군가가 형벌을 받은 후 왕이 될 관상이라고 했는데 이거구나!"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 말을 주위 사람들은 이뭐병 취급. 어쨌든 경형을 받은 전력 때문에 '경포(黥布)'라고 불리게 되었다.[2]
1.3 진나라에 반기를 들다
형벌을 받고 진시황의 능을 짓던 여산으로 보내졌는데, 이 당시 여산에는 형을 받고 끌려 온 무리가 수십만 명이나 있었고[3] 영포는 이들과 어울리며 무리를 형성하다가 조금 후 그 무리를 이끌고 양자강으로 가서 도적떼의 수령이 되었고, 진시황 사후 진승의 난이 일어나자 진나라에 반기를 든 현령 오예와 만나서 군사를 모아 거병하여 동진했다. 이 무렵 초나라의 항량이 세력이 커져 서진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영포는 자기 무리를 이끌고 항량의 휘하로 들어가 항량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다.
1.4 항우의 휘하에서
항량이 정도에서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패사한 후에도 항우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용맹을 떨쳐 진군을 각지에서 격파하고 서진하여 관중으로 들어간 항우를 따라서 함양에 입성하기에 이르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가 서초패왕을 칭하고 제후들에게 논공행상을 할 때 영포는 구강왕에 임명되었고 고향인 육현에 도읍을 삼게 하였다. 또한 항우는 예전에 항량이 명분용으로 옹립한 초회왕 미심(의제)을 쫓아내고 영포와 오예 등으로 하여금 회왕을 살해하게 하여 영포는 침현에서 의제를 죽였다.[4]
이후 제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항우가 영포에게 출병을 요구했지만 영포는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고, 이 틈을 탄 한고제가 항우의 수도 팽성을 빈집털이할 때도 이를 구원하지 않았다. 빡친 항우는 사자를 보내 영포를 질책했지만 이 때문에 더 쫄아버린 영포는 끝끝내 항우에게 가지 않았다. 항우 입장에서는 영포가 못마땅한 입장이었지만 제나라와 조나라, 한나라 유방의 세력에 둘러싸여 있어서 영포라도 다독여야 했기 때문에 끝끝내 영포를 치지 않았다.
1.5 유방과의 협력
이 무렵 팽성을 빈집털이했지만 수수에서 항우에게 개발살나고 도망친 유방은 항우와 영포의 반목 소식을 접하자 영포와 같은 고향 출신인 유학자 수하를 시켜서 영포를 설득하게 했고 영포는 여기에 마음이 움직여 항우의 사자를 죽이고 초를 탈출, 한나라로 갔다. 수하가 영포를 낚는설득하는 장면도 초한지의 백미.
영포가 한나라로 가자 유방은 평상에 걸터앉아 여자 시종들에게 발을 씻기고 있는 상태로[5] 건성건성 일관하자 성격이 불같고 자존심이 강했던 영포는 제대로 빡쳐서 "아 x발. 내가 저딴 놈에게 숙여야 되는 거야?" 라는 생각에 심지어 자살까지 하려고 했지만 숙소 상태가 유방의 거처와 같자 마음을 풀었다. 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포악한 영포를 구슬리기 위한 유방의 계책으로, 영포를 극진히 환영하되, 첫 만남에서는 '내가 너보다는 아득히 위다.' 라는 서열정리를 확실하게 하고 들어간 것이다. 즉, 유방은 영포를 그야말로 강아지 다루듯(...) 능숙하게 처리한 것.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영지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상태를 알아보자 이미 초군에 의해 목이 달아난 뒤였다. 가족은 데려오지 못했지만 흩어진 부하들을 수습하여 한나라로 들어오게 했다.
그 후 유방의 휘하에서 초군을 상대로 초군 공격에 힘썼고 마침내 해하에서 항우가 패하고 오강에서 패사하여 천하가 통일되자 회남왕에 봉해지고 구강, 여강, 형산, 예장 등을 영지로 거느리는 제후국의 왕이 되었다. 소시적 관상가의 말대로 된 셈. 그러나 여기서부터 영포의 몰락이 시작된다.
1.6 반란과 최후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과 팽월을 죽여 토사구팽 작업에 착수했는데 영포는 한신과 팽월의 운명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여 은밀히 군사를 모아 다른 땅의 정보 수집에 힘썼다. 이러던 중 영포가 가신 분혁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애첩과 간통을 했다는 오해를 하자 분혁은 장안으로 가서 유방에게 영포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했다. 마침내 영포는 모반하면서 "황제의 여러 장수 중 한신과 팽월만이 걱정이었는데 모두 죽었고, 황제도 늙어서 싸움을 싫어하니 오지 못한다. 내가 두려워할 건 없ㅋ음ㅋ"이라고 호언장담.
모반한 영포는 동진하여 형나라를 쳐서 형왕 유가[6]를 쳐서 죽였고 초나라까지 쳐서 초원왕 유교[7]마저 도주하게 만들었다. 유방 역시 영포를 토벌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고 회추라는 곳에서 맞닥뜨렸는데 유방은 영포의 군대가 항우와 비슷한 포스를 뿜어내서 싫어했다고 한다. 유방이 영포에게 "야 이 반란군 놈의 새퀴야! 무엇이 아쉬워서 모반했냐?"라고 묻자 영포는 "나도 황제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전투가 벌어졌고 영포의 군사는 황제군에게 패하여 백여 명만 이끌고 강남으로 도망쳤으나 파양 사람이 자항의 농가에서 영포를 죽여 버렸다. 왕이 될 관상으로 황제를 꿈꾼 대가 회남국은 영포 대신 유방의 아들 유장이 왕이 되었고, 영포의 모반을 알린 비혁은 기사 땅의 제후가 되었다. 그러나 영포 토벌전에서 유방 또한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으로 인해 얼마 못가 죽음을 맞았다. 비혁 역시 영포에게 일가족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후손이 없어 기사후도 1대로 끝나고 만다. 나름대로 동귀어진?
1.7 평가
사마천은 영포에 대해 '언제나 포악한 일의 우두머리였고 공도 제후 중 으뜸이어서 왕이 되었지만 화의 원인은 사랑하는 여자[8]로부터 나고 질투에서 환란을 불러서 결국 시망했다.'는 사론을 덧붙이고 있다.
1.8 기타
반란 당시 유방에게 일갈했던 "나도 황제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는 은하영웅전설에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듣고서 감탄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로이엔탈은 이 말을 두고 "이보다 더 확실한 모반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도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중국은 오랜 역사 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명분이라는 것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전통적 관점에서는 명분 없이 반란을 일으킨 경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반란의 수괴들이 격문 같은 걸 쓰는 게 아니다. 피지배층이 갑작스레 지배층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했던 초한쟁패기에서나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라 할 만하다. 영포가 반란일으킨 건 위에 서술하듯이 토사구팽당하고 가만히 있어도 죽을 팔자이기에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사건이 터진 직접적인 원인은 분혁과의 갈등이였고 확실한 증거 없이는 유방도 손쓰기 어려웠을 텐데[9] 반란을 일으킨 시점에서 오히려 빌미만 제공한 셈이다.
1.9 창작물에서
초한지 소설에서는 거의 항우 다음가는 용력을 가진 무장으로 등장한다. 초한지의 무장들 중 '항우 다음가는 맹장이 누구인가'라는 최강 논쟁 같은 것이 벌어지면 번쾌, 용저 등과 함께 자주 꼽히는 무장. 항우가 워낙 넘사벽이라서인지. 실제로 작중에서는 항우와 직접 일대일로 싸워서 승부가 나지 않은 몇 안 되는 무장이다.
(항유기의 영포)
코에이의 항유기에서는 전투가 91인 맹장인데, 용저나 종리말 등을 가뿐히 능가한다. 일러스트의 수염과 문신 때문인지 더욱 매서워 보인다.
적룡왕에서 영포의 모습은 항유기의 영포 모습과 완전 판박이다. 특히 대머리라는 것과 얼굴의 문신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똑같다. 작품 속 한신 역시 항유기의 한신 일러스트와 비슷한 것을 보면 코에이가 모토미야 히로시의 만화를 많이 참고한 듯한 인상을 준다.[10] 작품 속의 영포는 전체적인 행적과 비슷하다. 물론 비중이 적은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 중 한 명으로 등장. 무력이 90대 중반을 찍는 맹장 타입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11에서의 특기는 위풍.삼12의 전법은 강용 그러나 지력이 매우 낮아서 조루포스을 자랑한다. 그가 무명이었을 적 경형을 받았다는 일화를 참조해 일러스트에서는 오른쪽 뺨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삼국지 13에서도 당연히 등장했으나. 제대로 써먹기에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적지않게 눈에 띄는 성향이 있다. 능력치는 82/91/53/33으로 중신특성은 호단맹진으로. 돌격형 무장이다. 문제는 중신으로 임명되자마자. 뒤쳐진다는 안습함이 존재한다. 통솔이 90대가 안되기 때문에. 임무장을 2개 받지 못한다. 후반부 가서. 더 뛰어난 인재가 등장하면. 구석으로 쳐박히는 경우가 태반인지라. 여러모로 안습. 전법은 투장용약이지만. 자신한정이기 떄문에. 전쟁시 연대보다는 단독적으로 움직이는 행동으로 급습및 교란 특화형이다. 더군다나 특기조차 훈련6 / 순찰5 / 위풍3 / 분전5 / 연전4 / 공성6 / 수영8 / 일기7 / 호걸7 의 특기와 더불어 A/A/B로 궁을 제외한 나머지 병종은 준특화에 해당된다.
2 MBC 주몽의 등장인물
금와왕의 둘째아들이자 대소왕의 동생. 배역은 원기준이 맡았다.
극 중에서는 형인 대소와 동생 주몽 사이에 껴서 찌질대다가 발리는 역으로 자주 등장했다. 뺀질뺀질함과 캐릭터의 코믹 요소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형인 대소가 "한심한 놈." 이라고 내뱉는 말은 나름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후에 코멘터리에서 원기준이 밝히길 제작진 내에서 가장 심한 욕은 "영포보다 한심한 놈" 이라고(...).
캐릭터의 모티브는 대소왕의 동생으로 대소왕 사후 동부여에서 남하아여 갈사국을 세워 왕이 된 갈사국왕이 모티브로 추정된다. 극 중반엔 주몽 대신 한나라에 볼모로 다녀왔는데, 이 때 한나라 물이 잔뜩 들어 친한나라파 측 중심인물로 자리를 잡나 했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여전했다. 극 후반엔 왕위에서 물러나 국경지대를 돌며 유랑을 하고 있는 아버지 금와왕과 함께 다니면서, 어렸을 적에 받지 못했던 부자간의 정을 좀 느끼나 했는데, 갑작스럽게 쳐들어 온 한나라 자객들에게 금와왕이 큰 부상을 입고 얼마 뒤 절명하는 와중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고, 이후 대소, 주몽과 함께 한나라군과 싸워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묘하게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
3 냉포의 다른 이름
항목 참조.
- ↑ 이곳에는 주나라 시절에 육(六)과 요(蓼)라는 작은 제후가 있던 곳인데, 요의 별명이 영(英)이었다.
- ↑ 사기열전에서도 영포 열전의 제목은 <경포열전>이다.
- ↑ 후일 진승과 오광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병력이 없자 장한이 이곳의 죄수들을 모아 부대를 편성해서 진압에 나선다.
- ↑ 영포가 여기서 항우를 미심적게 생각했다는 의견도 있다. 의제를 죽이는 더러운 일만 자기한테 맡겨데니 자기를 키워주려는게 아니라 더러운일만 처리하게 하다가 필요 없어지면 버리려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었다는 것.
- ↑ 역이기와 처음 만났을 때도 유방은 이러고 있었다.
- ↑ 유방의 사촌 형. 영포와는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기도 했었다.
- ↑ 유방의 동생.
- ↑ 애첩 때문에 비혁을 오해한 것을 말한다.
- ↑ 그래서 한신에 대해서도 단순히 작위 강등에 그쳤다. 그후 한신의 죽음이야 스스로 자초한 면이 많으니 뭐.
- ↑ 적룡왕은 1986년부터 연재한 작품. 항유기는 1993년에 나온 작품. 적룡왕이 먼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