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

왕위를 계승받는 중입니다, 아버지


1 개요

왕자가 일으킨 반란. 대부분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난 왕자가 형제(주로 이복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인 임금은 폐위시키는 전개가 많다.

왕자의 반란으로 유명한 사례는 후백제신검이 이복동생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폐위시킨 신검의 난, 당태종이 형 이건성을 죽이고 아버지 당고조를 폐위시킨 이세민의 난 등이 있지만 한국에서 주로 왕자의 난이라고 하면 아래의 조선 초기의 반란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목록

2.1 당나라

당나라 초에 발생한 이세민의 현무문의 변으로 형제들을 죽인 사건.


2.2 조선

조선 초기에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아울러 가리키는 명칭.


2.2.1 1차 왕자의 난 (1398)

1398년 발생. 문서 참조


2.2.2 2차 왕자의 난 (1400)

1400년 발생. 문서 참조


2.3 북한

북한은 수시로 국민, 북한식으로 말한다면 인민들을 감시하기 때문에 여기서 권력자가 되면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다. 이것 때문에 형제들 간에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다만 유의할 점은 다 알다시피 북한 왕국이 극도로 폐쇄적인지라, 이 왕자의 난들이 실상 어떤식으로 진행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것. 보면 알겠지만 각 항목에도 명확한 진행 과정은 안 나와 있다(...) 생각보다 별로 재미없게 끝났을 가능성도 있다


2.3.1 제 1차 북한 왕자의 난(1970년대)

김정일김평일의 권력다툼. 항목참조


2.3.2 제 2차 북한 왕자의 난(2000년대 ~ 진행 중?)

김정남김정은의 권력다툼. 항목참조


3 재벌가 경영권 다툼을 비유하는 말

재벌 2세들이 아버지의 재산 상속이나 경영권 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을 때 마치 왕자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이런 별칭이 붙기도 한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의 왕자의 난은 이 드라마에도 나온다. 본격 20세기판 사극

서양에서는 잘 안 일어날 것 같은데 당연히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 잘 일어난다. 대표적인게 미국 비상장 기업중에 2번째로 큰 코크 산업의 경영권을 두고 형제 4명이 두 파벌로 갈라져서 캐삭빵을 했었다. 그리고 패배한 두명이 이긴 두명에게 자신의 지분을 거의 헐값에 넘겨주는 수준으로 마무리된 적이 있었다. 참고로 이긴 두 형제가 바로 미국 공화당의 물주중 하나이자 미국의 중요한 선거때마다 입으로 똥을 싸대는 능력을 가진 코크 형제다.


3.1 현대그룹에서 일어난 경영권 다툼 (2000 ~ 2010)

현대그룹의 경영권 계승을 둘러싸고 정주영의 아들들이 벌인 싸움을 가리킨다. 정주영의 별명이 왕회장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재벌가의 왕자의 난을 언급한다면, 대개의 경우 현대그룹의 것을 뜻한다. 그만큼 최근들어 엄청난 다크호스가 떠오르고 있지만 가장 유명한 케이스. 한때 재계 1위에 등극한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경영권을 둘러싸고 왕자들이 격돌하게 되었고 그 결과 거대한 제국이었던 현대가 해체되어 여러 개로 나눠진 것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듯.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5남인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3월 14일 밤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시킨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신그룹 일원이자 정몽헌 회장의 측근이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자동차 부문을, 정몽헌 회장은 건설·전자 부문을 가져갈 예정이었다. 그때 현대차의 위상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반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국내 최고 기업들로 정주영 명예회장은 처음부터 경영 능력이 두드러졌던 정몽헌 씨를 특히 아꼈다고 한다. 이에 자동차만으로는 향후 성장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던 정몽구 회장 측은 현대증권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금융 부문을 노리고 동생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다.

3월 24일 귀국한 정몽헌 회장은 자신의 측근이자 아버지의 가신그룹인 이익치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아 이익치 회장의 인사 발령을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의 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한다. 정몽구 회장은 26일 아버지를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내지만 몇 시간 뒤 정몽헌 회장과 가신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다시 그 명령을 무효화시켰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월 27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를 공식 승인하면서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정몽구 회장은 9월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가지고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실시해 현대차그룹을 만든다. 당시에는 누구나 정몽헌이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자 상징인 현대건설이 2000년 10월 1차 부도를 맞고 휘청거리다 결국 2001년 8월 채권단으로 넘어간다. 현대전자도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무리하게 인수했다 2000~2001년 반도체시장이 불황을 맞자 빚 10조 원을 지고 결국 채권단으로 넘어가 버렸다. 심지어 정몽헌 회장 본인도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과 관련해 4억5000만 달러(약 5000억 원)를 북한에 은밀히 송금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반면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쾌속 순항을 계속하며 재계 서열 2위 지위를 굳힌다. 이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며 한국 최대 재벌이었던 현대그룹은 현재의 현대그룹(현정은-5남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대자동차그룹(2남 정몽구), 현대중공업(6남 정몽준), 현대백화점(3남 정몽근), 현대BNG스틸(4남 정몽우), 현대해상화재보험(7남 정몽윤), 현대기술투자(8남 정몽일)등 몇 덩어리로 갈라져 버렸다.

이 쪼개진 그룹과 쪼개진 집안은 2010년까지 유지되다가 그해 발생한 현대건설[1] 인수전이라는 개판 집안싸움의 원인이 된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현대그룹이 훨씬 높은 입찰가를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으나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다소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박탈된다. 결국 승자는 차남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이 되었다.[2] 고우영 화백이 수레바퀴에서 살짝 패러디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기준으로 현대자동차는 재계 2위, 현대중공업은 8위, 그냥 현대그룹은 핵심 계열사 현대상선이 채권단으로 넘어가면서 재계 30위에서 중견기업으로 전락 했다. 현대그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자산총액으로 볼때 삼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3위 이하와는 확실하게 격차를 벌릴 수 있었을 것이다.


3.2 삼성그룹에서 일어난 경영권 다툼 (1969 ~ 2014)

1969년 말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버지를 회장 자리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투서를 날리면서 삼성가가 뒤집어졌던 사건.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패륜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이병철이 이 사실을 알고 이창희를 완전히 내쫓아버리면서 삼성가의 왕자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 후폭풍인데, 장남인 이맹희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진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병철은 장남과 차남 두 아들을 사실상 호적에서 파버리고(...) 삼남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이병철이 세상을 뜬 이후에도 이 사건은 이맹희와 이건희의 오랜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2012년 상속 관련 소송 과정에서 이맹희와 이건희 사이에 오간 발언 내용.

이맹희 : 요즘 건희가 어린애 같은 말을 해서 몹시 당황했습니다. 건희는 항상 자기 욕심만 챙겨왔습니다. 한 푼도 안 주겠다는 탐욕이 이번 소송을 초래했습니다.
이건희 : 이맹희 씨가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여.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 하던 양반이라고.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이에요.

2014년 이맹희는 형제 간의 우애가 유산보다 중요하다며 상고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 해 이건희가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이맹희마저 이듬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3.3 롯데그룹에서 일어난 경영권 다툼 (2015 ~ 진행중)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 사이의 경영권 다툼.
롯데그룹 항목 참고.


  1. 현대그룹의 모체로서 현대그룹의 정식 계승자라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는 이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다.
  2. "감개무량하다. 11년 만이다." 정몽구 회장이 2011년 4월 1일 계동 현대 사옥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