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사회주의

現實社會主意
Real Socialism

1 개요

현실사회주의는 과거 브레즈네프 시절에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동유럽공산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것이다.

사실 현실사회주의가 한국어로 번역하면 "현재 실재하는, 그렇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원리에 가장 적합하고 실제로 기능할것으로 보여지는 사회주의"를 뜻하는 것처럼 오역될 소지가 있으나, 이 단어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2 발단

발단은 아주 간단했다. 1950년대가 끝나고, 스탈린 격하운동이 끝난 소련에는 스탈린시대에 있었던 방식으로 혼란해진 사회와 둔화된 경제력을 다시 한 번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던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에게도 적용되려 하고 있었다.[1]

그러나 중국은 이미 1930년대부터 게릴라전과 자기 학식이 풍부한 마오쩌둥만의 방식이 있었고, 이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마오이즘은 소련의 사회주의와는 확연히 달랐다.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도가유교의 방식에 가까웠던 것. 이로 인해 두 국가들 사이는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1950년대 후반, 중국은 "우리도 몇년 바짝 열 올리면 소련 못지않은 공업국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선진 사회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 대약진운동을 전개한다. 물론 그 결과는... 결국 중국은 자존심 구겨지는 상황이지만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소련은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1960년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의에서 소련흐루쇼프 시대의 평화공존을 계승하는 입장을 발표했고, 중국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위협이 아직 상존함을 이야기 하며, 소련의 노선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이러던 중 서로를 수정주의자라고 욕하기 시작하면서 "쟤네보다 우리가 진짜 사회주의다"라고 자처하다가 생겨난 것.[2]

3 실제 사례

일단 "현실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국가들 중, 비동맹 노선이나 자체노선을 걷는 나라는 제외된다. 쉽게 말하자면 유고슬라비아처럼 티토의 노선(티토주의)을 따라 스탈린과 애저녁에 결별한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 것.

현실사회주의는 간단히 말해 소련식 사회주의, 그러니까 소련식 소비에트가 국가 운영원리로 자리잡은 사회주의를 이야기 한다. 일단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나라들은 빼고, 동독, 폴란드[3] 체코슬로바키아[4] 루마니아[5], 불가리아 등을 현실사회주의 국가들로 볼 수 있다.

알바니아가 빠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알바니아는 분명 스탈린주의를 기반으로 친소노선을 걷긴 했지만, 엔베르 호자는 철저한 교조주의자였고, 스탈린 사망 후 소련이 평화공존 정책을 택하자 이를 수정주의라고 비난하며 소련과의 관계를 끊었다(...) 그 후 중국의 마오쩌둥과 친하게 지냈지만 1978년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중국과도 관계가 심히 껄그러워졌다. 본토보다 더 빡센 스탈린주의를 원하는 청출어람 공산주의자의 위엄

요약하자면 현실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를 손 좀 봐서 고친 뒤, 소련식 집단 지도체제를 구축한 동유럽식 사회주의인 것. 이는 동구권 붕괴 시점까지 세계 사회주의의 한 축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냉전 당시 공산주의 국가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된,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들이기도 했다.

4 첨언

종종 북한, 중국,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쿠바등을 현실사회주의 국가로 혼동하는데, 이는 위의 개요에서 설명했 듯 용어상의 사용에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은 절대 흐루쇼프식 수정을 거치지 않은 국가들이다.

북한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체사상(영어로는 Juche Idea)을 국교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중국은 마오이즘의 국가로 신좌파들에게 새바람을 일으켰다. 베트남은 사실상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이라기 보다는 국민국가 형성 과정으로 보는것이 옳고(베트남전쟁 참조), 몽골쿠바 또한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는 있었지만 좀 다른 방식의 비교적 자주적인 국가였다고 보는게 옳다. 캄보디아에 관해서는...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6]
  1. 사실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웠고 생각보다 열려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공산당 집권 이전에 자유선거를 실시해 본 경험이 있었고, 윗 동네 처럼 함부로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둬놓고 잡아 죽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야당이 존재했다. 그만큼 반대 세력들도 어느정도 공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한국의 반공서적들로 알려진 '감옥같은' 국가는 아니었던 것.
  2. 지금보면 거의 키배에 가까운 논쟁이지만, 사실 그 때 당시로는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논쟁이었다. 이제 세계대전을 마치고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던 소련은 더 이상 미국과의 물리적인 대결은 원하지 않았고, 아직 타이완을 남겨두고 한국-일본-타이완이라는 친미국가와 얼굴을 맞대고 있던 중국으로서는 아직 전쟁의 위험을 간과할 수 없던 것. 쉽게 말해 소련은 변화된 시대에 적응할 만한 단계에 있었고, 중국은 그러기엔 아직 너무도 힘이 약했다.
  3. 사실 1956년과 1970년 당시 정권이 막장으로 흘러갔을 때 인민의 뜻에 따라 정권이 교체되었고, 야당세력도 존재했다. 다만 이들이 제대로 활동하게 되는건 1970년대 이후다. 바로 그 유명한 폴란드 자유노조바웬사가 활동하는 시대.
  4. 1967~68년에 개혁정치가 이루워지기는 했지만 소련의 침공으로 망했어요.
  5. 1960년대 후반에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지만 스탈린주의보다 더 강도높은 개인숭배에 철권통치로 유명했다 창출어람
  6. 실제로 폴 포트 평전을 읽어보면, 캄보디아크메르루주 반군은 이름만 공산당이었지 공산주의와는 그닥 상관없는 집단이었다고 한다. 폴 포트 자신부터가 공산주의에 관한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오히려 캄보디아의 전통적 소승불교적 마인드로 무장한 반란군 수장에 가까웠다고 한다. 실제로 민주 캄보디아 당시 마오이즘을 표방하였지만 별 다른 이론적 노선이랄게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베트남에게 개겼다가 3년만에 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