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해 운동

(저 새는 해로운 새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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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화 창천항로 1권의 설명.

모두 참새를 때려잡으러 나오라!

1 개요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 마오쩌둥이 지시한 유례 없는 대규모 해충, 해조 박멸 운동. 제사

한자로는 除四害运动/除四害運動(4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사실 이쪽이 정식 명칭이지만, 특별히 참새만을 때려잡는 걸 따로 타마작운동(打麻雀运动/打麻雀運動)이라고도 한다.

독재자의 아마추어리즘이 해당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확실한 예시. 국민들의 여론수렴과 사회적 공론화, 격렬한 의견충돌, 상호교차검증, 투표와 법률화를 거쳐서 정책을 수립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비해서, 1인 혹은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철저하게 상명하달으로 운영하는 독재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주의가 때때로 중우정치라는 비판을 듣지만 장기적으론 어떤 독재정권보다도 효율적인 체제이다.[1]정확히 말해서 대약진 운동의 마무리를 장식한 병크이다. 오죽하면 마오쩌둥 본인조차도 실수했다고 인정한 몇 안 되는 사안 중 하나.

2 전개

1955년. 농촌에 현지지도를 나선 중국의 위대한 령도자 마오쩌둥은, 지도 중에 참새를 보고는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교시했다. 신화통신의 기사

저 새는 해로운 새다(麻雀是害鸟. 마작시해조).

그리고 며칠 후, 마오와 14개 성의 당서기들은 《전국농업발전강요(全國農業發展綱要)》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농업발전을 위한 정강을 포고하게 되는데, 전체 40개로 이루어진 전문에서 제27항이 바로 제사해(除四害)였다. 여기서 사해는 중국 인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즉 4가지 해로운 것으로 이는 각각 모기(蚊子), 파리(苍蝇), (老鼠) 그리고 참새(麻雀)였다.

제27항: 사해를 제거한다. 1956년부터 개시하여 각각 5년, 7년, 혹은 12년 내에 모든 지방에서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소멸시킨다.
(二十七) 除四害。从1956年开始、分别在5年、7年或者12年内、在一切可能的地方、基本上消灭老鼠、麻雀、苍蝇、蚊子。

Mao vs. Wild
이 사해를 박멸하겠다는 마오의 의지는 1958년 10월에 전국적인 '제사해 운동'으로 이어졌다. 마오는 연설을 통해 중국 인민에게 해를 끼치는 사해를 박멸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마오가 참새를 박멸해준 덕에, 참새의 먹이였던 해충과 모기 그리고 파리들은 더욱 번성해 도저히 박멸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국어 위키백과 관련 항목.

이런 참새 사냥을 포함한 제사해 운동은 사실 전반적인 위생개선운동과 같이 실시된 것이며, 의도는 좋은 것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위생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만 되면 쉽게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마오는 이를 근절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각급 학교에서 위생 검사, 양치질하기 운동, 집이나 거리 청소하기 운동, 여러 방역구제가 실시되었고, 화장실이 따로 없던 농촌 지역에서는 재래식이지만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도 저런 데가 있었으며, 쥐약을 배급해서 쥐잡기 운동을 하기도 했고 파리, 모기를 없애기 위해 DDT 등의 소독약을 뿌리는 방역 조치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저런 최소한의 위생 조치를 취하면 평균수명이 제법 올라가긴 한다. 장기간 경제난에도 평균수명이 69세를 기록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가 좋은 예.

문제는 이런 운동에, 위생과는 별로 상관없는 애꿎은 참새를 끼워넣은 것이었다. 물론 마오쩌둥도 참새가 곡식을 훔쳐먹는다고 굳게 믿었기에 이런 정책을 추진한 것이지만[2], 참새는 곡식만 훔쳐먹고 사는 새가 아니며 사실 곡식 낟알보다는 농사에 해를 끼치는 각종 곤충벌레들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고 사는 이로운 새였다. 농부가 농사에 이익을 주는 동물을 죽이는 팀킬

당시 상황을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 #

마오쩌둥의 한 마디에 힘입어 중국의 모든 인민들은 다른 3가지 해악을 비롯한 '그 새'를 잡는 데 동원되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그 새가 농작물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새를 잡는 데 힘썼다.

인민공사의 동지들이여, 그 새를 박멸하는 것은 마오 주석과 당 중앙이 우리에게 하달하신 정치적 임무입니다. 우리 대대는 집집마다 총동원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오를 지어 모두 새총을 쥐어야 합니다. 새총을 쓸 수 없다면 을 울립시다. 징이 없다면 세숫대야라도 울립시다. 세숫대야가 없다면 모두 목청껏 함성을 질러봅시다.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그 새가 박멸되지 않겠습니까?

뭘 하냐구요? 저 X같은 새 놈들을 놀래키기 위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새들이 땅이나 가지 위나 지붕 처마에 앉지 못하게 하여 저 양식이나 축내는 교활한 새끼들을 지쳐 죽게 해야 하는 겁니다!


- 당시의 중국 공산당 연설문 중

위엄 넘치게도, 사람들은 넘쳐나는 인력으로 참새가 앉아서 쉬지 못하게 해 참새가 탈진하여 떨어지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 참새가 가장 덩치도 크고, 임팩트도 강해서인지 나머지 셋은 아무래도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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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참새를 달구지에 매달고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중국 인민들. 일일전과(一日战果)란 글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 많은 참새를 단 하루 만에 잡았다. 이런 짓을 전 대륙에서 1958년 한 해 동안 계속했다.

일반적으로 참새를 잡는 방법은, 이나 새총과 같은 물리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늘을 날도록 하여 탈진시켜 잡는 것이었다. 잠자리채, 올가미, 새총 등은 참새를 잡기엔 너무 비효율적이였고, 그렇다고 인민들에게 을 풀었다가는 내전 우려 및 치안 불안 등의 문제가 생기는 탓에 총도 지급되지 않았다. 고로, 특정한 날을 정해 참새가 앉을 만한 곳에 사람을 풀어놓고 계속 시끄럽게 하거나 뭔가 휘둘렀다. 참새들은 착륙을 못하고 탈진할 때까지 날다가 추락했다. 물론 이런 방법 말고도 여러 다른 방법이 이용되었으나 이렇게 탈진시켜 사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농사를 지으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저게 뭔 짓거리야

이러한 항쟁의 결과는 59년에 나타났다. 1958년 한 해 동안만 참새 2억 1,000마리학살당해 거의 멸종의 위기에 이르자, 참새가 잡아먹고 살았던 메뚜기 등 각종 해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대흉년이 발생해 공식발표 1,000만 명, 평균 2,000만 명, 최대 4,000만 명의 기록적인 아사자가 발생했다.

이래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감이 안 잡힌다면 60년대의 우리나라의 인구 수가 대략 3천만이었다는 점을 보자. 한마디로 참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들이 개죽음을 당했다는 것. 굳이 당시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옛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면 한때 유럽을 시궁창으로 밀어넣었던 흑사병이 있으며, 과거 흑사병 때문에 죽은 중국의 인구 수가 대략 2~3,000만 정도였다! 인재(人災)가 자연재해급

결국 당 지도부는 소련 서기장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빌어 연해주에서 20만 마리의 참새를 공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참모들이 마오 주석에게 이 '참새 전쟁'을 계속할지 물으니, 이 모든 사태를 시작한 장본인인 마오 주석은 다시 다음과 같이 교시했다.

算了(쑤안러/됐어)

그리하여 이 무의미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었던 도살극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구사할 수 있는 이 단순한 두 글자가 마오 주석의 입을 통해 발표됨으로서 그렇게 종료되었다. 그리고 제사해운동은 끝났다.

물론 1960~61년의 대기근은 이러한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때마침 태풍과 홍수가 세트로 몰려왔으며 마오가 저지른 또 하나의 병크대약진 운동으로 이미 농업 생산량은 바닥을 드러나고 있었다.

참새 잡기 이외의 이 기간 중 중국 정부의 농업 관련 병크는 다음과 같다.

  • 철 생산을 위해 모든 자원을 쇠 모으기에 집중했다. 비료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모조리 제철 공장[3]에 퍼붓는가 하면, 곡식 운반용 화차까지 고철 화물용으로 넘겨서, 안 그래도 모자란 수확량이 현지에서 썩어나고 말았다. 또한 인민들은 농사보다는 고철 모으기에 진착했고, 성과를 내기 위해 농기구를 부숴서 고철로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그렇게 고철을 긁어모아 제련한 철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는 폐급이었다는 점이 문제. 멀쩡한 쇠를 폐급으로 만드는 마술
  • 사실 이 때의 수많은 사상자를 낸 홍수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위에서 설명한 철 생산 운동을 하기 위해 토법고로라고 하는 원시적인 용광로를 이용했는데, 이 용광로에서 사용될 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산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이러니 이전에는 별일 없었을 강수량에도 홍수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병크는 1990년대 산을 모조리 개간해서 식량난을 극복하겠다던 북한이 비슷하게 따라하다 식량난이 더욱 악화된다.
  • 이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무기와 기술 원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데, 외화가 부족한 중국은 식량으로 계속 상환했다. 이러면서 "우리는 풍년이 들었다" 며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실상은 그동안 고위 관리조차도 배급이 줄어 쫄쫄 굶고 있었다.

게다가 서류상으로는 농업 생산량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구제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이를 악화시켰다. 농업 생산량이 약화된 농촌에 자연 재해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격을 입혔고, 거기에 대약진 운동이나 참새 운운하는 등의 마오쩌둥의 삽질로 확인사살을 하는 바람에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근이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그 결과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신 같은 존재였던 천하의 마오쩌둥도 1959년 주석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이 실패의 영향은 막대했다. 이 무렵에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부상한 것이 정부의 류사오치 주석과 당의 덩샤오핑 총서기였고, 이들은 실용적인 개방 개혁 정책을 펴면서 마오쩌둥이 벌인 일의 뒷수습을 한다.

당시 상징적인 지위밖에 남지 않았던 마오쩌둥은 이들이 자신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의 정책을 모조리 뒤집자 직접 나서지 않고 홍위병의 손을 빌어 이들을 몰아내게 하는 음모를 꾸민다. 이것이 바로 문화대혁명.

결과적으로 이런 양극단을 오가는 정책은 중국을 한국보다 20년 뒤떨어지게 했다. 그리고 이 당시 어른들이 시켜서 새총을 들고 들판을 누비며 참새 헌터 짓을 했던 아이들은 10년 후 어른들을 사냥하는 홍위병이 되었다.

이후 제사해 운동은 참새가 슬그머니 바퀴벌레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른 90년대 즈음에도 여전히 중국의 참새 개체수는 충분하게 복구되지 않았다. 덕분에 중국에서는 결국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풀어 해충을 잡아먹게 하는 정책까지 실시하게 된다. 병아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종종 쓰이는 일반적인 구제법이다. 다만 보통은 참새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중국만큼 많이, 자주 쓰지는 않을 뿐.

3 기타

여담으로 장제스가 중국의 지배자였던 시절에 장제스도 비슷한 운동인 신생활운동이란 것을 지시한 바가 있었는데 장제스가 때려잡으라고 명령한 생물들은 파리, 모기를 비롯한 곤충류라서, 마오의 제사해운동과는 달리 중국의 위생 증진에 도움이 되었다. 중국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한국에서는 쥐잡기 운동이 있었다.

2013년 1월 20일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도 소개되었다. 실제 역사와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면 참새 박멸 운동이 어디까지나 참새가 쪼아먹는 곡물의 양을 아껴서 식량 생산량을 늘려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는 것 하나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곡물 절감 효과도 노리긴 했지만 상기한 대로 위생 문제도 어느 정도 고려하여(물론 완전히 착각한 것이였지만) 참새를 박멸 대상으로 잡은 것이다. 당장 참새 퇴치 운동 당시 같이 퇴치 대상으로 지정되었던 것이 곡물 생산량에 전혀 영향이 없었던 파리와 모기였다.

마오쩌둥의 갓 핑거로 멸종된 동물이라고 한국에서 잘못 알려진 남중국 호랑이는 마오쩌둥이 싫어해서 보호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 인명피해 방지를 위한 사냥과 대약진운동으로 비롯된 삼림남벌로 인한 서식지파괴로 줄어든 것이다. 인명을 해치는 맹수에 대한 해수구제사업을 단순히 권력자가 싫어해서라고 해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마오쩌둥이 호랑이를 싫어했다는 주장은 그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결과적으로는 마오 탓이 맞긴 하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밟은 격이지만

강력한 중국의 중앙 정부의 명령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로는 천안문 사태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유치 때 택시에서 환경오염물질이 나온다고 하자 정부 명령으로 모든 택시를 없애버린 것. 그렇지만 정부 명령으로도 택시기사들이 영어를 구사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일성은 참새 70만 마리의 턱 부분 털로 만든 이불을 덮고 잤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4] 이 이야기는 당시 김일성의 측근이자 후에 탈북한 황장엽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한 바 있다.

나무위키에서는 조류와 관련된 부분이나 무언가 정말 해로운 것, 내지 무언가가 멸종할 위기에 처한 부분에서 이 드립을 치는 것이 보편화되어있다. 아래의 패러디들이 대표적.

3.1 여담: 麻雀? 마작?

중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참새와 마작 모두 한자로는 麻雀이라고 쓰기 때문에 마오가 말한 마작이 참새가 아니라 유희 마작을 지적한 게 아닌가 하는 개드립을 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보드게임인 마작을 마작이 아니라 마장(麻將, májiàng)이라고 발음하며 참새는 마췌(麻雀, máquè)로 쓰기 때문에 때문에 중국인들이 저 둘을 혼동할 수가 없다. 물론 보드게임 마작을 마장이 아닌 마작으로 표기하는 나라/지역에서는 말장난이 가능하다.

다만 실제로 마오쩌둥이 마작에 아주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서 진짜로 중국인들이 마작을 못하게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 천하의 마오쩌둥도 마작만큼은 없애지 못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마작 사랑은 그만큼 대단했단 얘기다. 마오쩌둥의 최대의 적이었던 장제스도 마작을 좋아했다고 하니. 풍문에는 죽기 전에 구련보등 한번 내보지 못한게 한이다는 말을 남겼다고까지 한다.

덤으로 온갖 법적 규제로 깨끗한 도시를 만들어낸 싱가포르리콴유조차 "중국인에게 마작을 포기하게 하는 것만은 불가능했다"고 알려진다.

4 유사 사례

중국의 예는 그 규모와 참혹성 때문에 한국의 디씨 같은 곳에서 지나치게 희화화된 면도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역사상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

4.1 현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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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웨딩사진 촬영을 끝내고 방생한 비둘기를 한 마오쩌둥의 후예 관광객이 손으로 가리키며 이 비둘기는 식용이 가능하다고 외쳤더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백마리의 비둘기를 잡아갔다고. 저 새는 이로운 새다

문화대혁명 때는 애꿎은 개인 차우차우가 해로운 개라고 마구 죽였다.

4.2 역사적 사례

프리드리히 대왕이 마오쩌둥과 비슷한 병크를 터뜨린 적이 있는데 이 병크를 터뜨린 동기가 자기가 좋아하는 체리를 참새들이 막 먹어대서였다. 자기가 기르는 벚나무에 한정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 그리고 그 뒤에 벌레가 생겨서 나무가 병들자 자신의 잘못을 금세 뉘우치고 역으로 참새들을 보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에 의한 동물종 멸종사태는 사실 인류사에서 굉장히 많았다. 이에 대한 사례는 멸종항목 참조.

인위적인 특정 종의 소멸이 생태계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가의 예시로 흔히 제시되는 사례가 미국의 카이바브 고원 사건이다. 항목 참조.

4.3 한국의 사례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연산군. 어느 날 연산군은 말을 타고 환궁하다가 앞의 풀숲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것을 보고 자신을 노리는 자객으로 의심하여 말을 급히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사람에게 그 풀숲에 있던 게 무엇인지 살피게 했는데 다름아닌 황새였다. 그래서 연산군은 각 도에 명해 황새를 잡아 씨를 말리라는 전교를 내렸다. 다행히 3달뒤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시행되지는 않았다.

전교하기를, "각 도로 하여금 황새를 잡아 올려 남은 종자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왕이 일찍이 금표(禁標) 안을 미행(微行)할 때 풀숲에 사람이 숨었다가 자신을 해칠까 늘 두려워하였는데 하루는 저녁 때 말을 몰아 환궁하다가 밭두둑에서 황새가 무엇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사람인가 의심하여 채찍을 쳐 급급히 지나와 사람을 시켜 살펴보니 바로 황새였다. 이로부터 황새를 매우 싫어하여 위와 같은 하교를 내린 것이다. - <연산군일기> 연산군 12년(1506년) 5월 23일

현대에도 몇 가지 사례가 있다.

1970년대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대기점도에는 쥐로 인해 병충해가 극심했는데 마을에서는 합의한 것은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사와서 쥐를 소탕하자는 것. 그래서 목포와 무안군 등지에서 고양이를 사와서 집집마다 키웠는데 고양이와 사이가 나쁜 개들이 골칫거리가 되자 주민들은 개를 전부 육지로 퇴출했다. 저 개는 해로운 개다 결국 섬의 쥐들은 고양이들에 의해 전부 몰아내졌지만, 할 역할을 다 한 고양이들이 새끼에 새끼를 쳐 통제가 불가능해졌고 이에 따른 피해가 늘어났다. 하지만 섬 주민들은 쥐를 몰아내준 고양이의 노고를 치하하여 고양이를 대부분 방임했다. 고양이의 행패를 참다못한 마을 주민들 몇몇은 개를 6마리 다시 들여왔는데 마을에서는 개 주인들에게 조건을 붙였다. "개를 키우되 반드시 묶어서 키우고 고양이들에게 해를 끼치면 다시 퇴출한다" 는 것. # 집사들의 섬이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집비둘기[5]해로운 새로 규정하고 저 비둘기는 해로운 새다 2010년 3월 10일 집비둘기 관리대책을 마련, 비둘기 모이를 판매하거나 제공할 경우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다만 닭둘기는 참새와는 달리 위생적, 환경적으로 확실히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마오쩌둥의 행위에 비교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상기한 대로 비둘기 중에는 닭둘기 말고 천연기념물인 토종 비둘기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주의할 것. 애초 비둘기는 각종 행사로 마구 풀어든 것이 멋대로 번식한거다. 참새하고는 비교가 안되고 황소개구리의 입장에 알맞다.

한국전력공사에서도 유사한 일을 하고 있다. 전신주에 둥지를 지어 정전을 일으키는 까치를 공식적으로 해조로 지정하였고 까치를 잡으면 보상금을 주고 있다. 물론 까치가 정전을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이건은 이것대로 병크인 것이 보상금 지급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보상금을 노리는 일이 아예 하나의 직업으로 변질됨으로써 이 역시도 자본주의식 병크가 아닌가 생각된다. 관련기사, 돈 많은 한전.

2009년 전남 여수시 거문도에서도 를 퇴치하기 위해 고양이를 들여왔다가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대기점도와는 달리 고양이를 쥐약으로 독살하거나 잡아 죽이거나 해서 동물보호단체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 저 고양이는 해로운 고양이다 그 후로 사라졌던 쥐가 다시 등장했다. #

다만 이런 섬등지에 고양이를 풀고, 천적이 없으면 그 섬의 생태계는 그냥 박살난다. 쥐 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과 조류(참새포함…)가 전멸하고, 오히려 고양이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철저히 기형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황소개구리 정도의 피해는 우스울 정도.

2016년 5월 환경부가 고등어를 구울 때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한다는 식의 발표를 하기도 했다. 정작 황사나 배기가스는 모른 척 그 이후 경유 자동차가 미세먼지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경유 값을 올리게 되었다. 고등어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5 패러디

여성부 曰 : 해로운 게임이다
그런데 대륙에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최훈의 돌직구 33회에서 이 말이 패러디 된 적도 있다. # 사자: 이 새는 이로운 새다
이 후 클로저 이상용 128화에서 한번 더 패러디 되었다.# 심장에 해로운 놈이다[6]

마사토끼의 단편실화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 1화에서도 패러디 되었다.해로운 토끼다

SCP로도 패러디되었다.SCP-850-KO

미니어처 게임 DUST의 SSU 진영에 '마오쪄둥'이란 대공전차가 있는데… 그야말로 '저 비행기는 해로운 비행기다!'를 시전한다.
85mm 대공포 4문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적의 공중 유닛은 물론 적 지상군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저 공군은 해로운 공군이다!!

대공 전차의 위용과 전차 이름이 절묘하게 조합이 되면서 많이들 웃게 되는 부분… 누가 지었는지 네이밍 센스가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1. 민주주의는 잘못된 정책으로 크게 피해를 입었다 해도 공동의 책임이므로 상대적으로 덜 억울하지만 독재체제는 독재자 하나가 잘못하면 다른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피해를 입는다.
  2. 실상을 안 건 1960년대 이후.
  3. 공장이라기보단 각 가정에서 어설프게 만든 재래 풀무가 더 많았다!
  4. 80년대 정부에서 발간한 반공교육서적에 실려있을 정도로 세간에 퍼져 있었다.
  5. 토종 멧비둘기 등은 제외.
  6. 그런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이상용이 받는 평가를 생각해보면 아주 적절한 패러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