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뉴질랜드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이후 28년만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다시 출전해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준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항목이다.

1 이젠 내가 명실상부한 오세아니아 1인자

축구안습오세아니아에서 뉴질랜드호주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뉴질랜드는 언제나 호주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세아니아 네이션스컵에선 호주나 뉴질랜드나 막상막하였는데, 월드컵 예선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뉴질랜드가 힘을 잘 쓰지를 못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예선전에서 단 한번 호주를 제치고 그 여세를 몰아 본선까지 간 경험이 있지만 그 후로는 호주에 밀려 대륙간 플옵조차 나가지 못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서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편입된 뒤로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오세아니아에서 콩라인2인자 신세를 지던 뉴질랜드가 1인자로 부상한 것. 과연 모두의 예상대로 호주가 아시아 연맹으로 편입된 후 처음으로 열린 2008년 OFC 네이션스컵 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뉴질랜드가 2007년 태평양 게임 축구 종목 메달국의 자격으로 참가한 누벨칼레도니, 피지, 바누아투[1]를 모두 제치고 우승하여 2009년 남아공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 진출 자격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vs 아시아) 자격을 동시에 얻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동안 호주에게 막혀 번번이 좌절해오던 뉴질랜드가 28년만에 다시 본선의 꿈이 현실이 되려고 하는 순간이다. 2002년과 2006년엔 대륙간 PO에서 남미 팀을 상대해야 했지만 2010년엔 그나마 쉬운 아시아 팀을 상대하게 되어 그 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2 2009년 컨페드컵에서 첫 승점을 챙기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예비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2009년 남아공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뉴질랜드는 2008년 OFC 네이션스컵 우승팀의 자격으로 출전했다. 뉴질랜드의 컨페드컵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고, 1999년과 2003년에도 같은 자격으로 출전했다가 모두 3전 전패로 광탈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뉴질랜드가 승점자판기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스페인에게 0-5로, 남아공에게 0-2로 패하며 8개국 중 가장 먼저 광탈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상대는 이라크. 이 경기에서 뉴질랜드는 비록 컨페드컵 첫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0-0 무승부를 거두며 3번째 출전만에 처음으로 컨페드컵 승점을 챙김으로써 나름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010년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 상대 대륙이 아시아라는 점을 볼 때, 아시아 대표로 나온 이라크(2007년 아시안컵 우승)를 상대로 유일하게 승점을 챙겼다는 것에서 뉴질랜드가 대륙간 PO에 진출한 아시아 팀을 이기고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보였다.

그리고...

3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2009년 컨페드컵도 끝나고, 이제 뉴질랜드에게 남은 것은 아시아 팀과의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월드컵 출전권을 얻는 것이었다. 아시아 예선 최종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은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 두 팀 모두 뉴질랜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막상 대륙간 PO를 치러보니 달랐다. 일단 아시아에서 대륙간 PO에 나갈 팀을 결정하는 PO를 치른 결과 바레인이 사우디를 상대로 2무를 거두었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바레인 홈 0-0, 사우디 홈 2-2)에서 앞서서 올라갔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사실상 쉬어 가는 코너일 뿐 바레인이 본선에 진출한 거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바레인을 상대로 뉴질랜드가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둔 후 홈경기에서 전반 44분 로리 팔론이 헤딩 골을 터뜨렸고, 후반 5분 사예드 모하메드 아드난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히도 니가 가라 남아공 슛이 작렬하며 골키퍼인 마크 패스턴에게 그대로 안겼다. 그리고 남은 40분 동안에도 로리 팔론의 골을 잘 지키며 1-0 승리를 거둬 많은 이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리하여 28년만에 본선무대를 밟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와 동시에 이건 오일머니와 침대축구로 무장한 중동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바레인마저 격침시켰으니 중동으로서는 보기 좋게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모드.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서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넘어간 후 본의 아니게 오세아니아 지역의 1인자로 등극, 이렇게 기어코 본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축구변방국이며 게다가 축구가 비인기종목인 나라였다.

일단 조 추첨 전까지는 유럽과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팀들이 뉴질랜드를 1승 제물이라 여기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 추첨에 들어갔는데, 뉴질랜드는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가 최상위 시드로 있는 F조에 배정받았으며, 파라과이와 슬로바키아도 뉴질랜드의 조에 들어갔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F조 3팀은 승점 자판기로 삼을 수 있는 쉬운 상대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기에도 뉴질랜드는 아마도 중국(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꼴 날 것 같다고 생각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2010년 5월 29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세르비아를 1-0으로 꺾으면서 조짐이 심상치 않더니....[2]
월드컵 때 이변을 보여주었다.

4 저도 쫌 하거든요?

아래 표는 경기 결과를 간략히 적어 놓은 것이다. 경기일시는 우리나라 시간대(UTC+09:00)로 표기하였다.

경기일시경기장소라운드상대국점수승패
6.15 (화) 20:30로얄 바포켕조별리그 1슬로바키아1-1 (0-0)
6.20 (일) 23:00음봄벨라조별리그 2이탈리아1-1 (1-1)
6.24 (목) 23:00피터 모카바조별리그 3파라과이0-0

야호!!! 신난닼ㅋㅋ 무열라많음
위 표에서 괄호 안은 전반전의 점수이며, 경기가 완전 무득점으로 종료된 경우는 편의상 전반 점수를 별도로 기록하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대로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첫 경기인 슬로바키아전에서 슬로바키아의 공세를 잘 막아 내다가 후반 5분 로베르트 비텍에게 골을 허용했지만 끈기를 가지고 버티다 종료 직전 윈스턴 레이드의 기적적인 동점골에 힘입어 패배를 면했다. 뉴질랜드는 그나마 만만한 슬로바키아를 첫 승 제물로 삼고자 했던 터라 아쉬움을 남겼다. [3]

그리고, 2차전은 이탈리아전.
야 아주리!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포풍축구 올화이트[4]가 간다!
뉴질랜드의 폭풍은 저희 로마에선 그저 콧바람임돠...

여기서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의 낙승을 예상했다. 설마 전 대회 챔피언이 축구변방국 하나 이기지 못하겠냐며.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전반 7분 터진 셰인 스멜츠의 골로 뉴질랜드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며 이탈리아를 압도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전반 29분 다니엘레 데 로시가 페널티 존에서 태클에 걸려 헐리우드 액션 넘어지면서 빈첸초 이아퀸타의 페널티킥 골로 겨우 비겼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경기 종료 4분을 남겨놓고 은행원 앤디 바론(Andy Barron)[5]을 투입시켜 진정한 관광을 선사할 뻔 했다. (...) 뉴질랜드로서는 또 아쉬움이 남았다.
만약 이 경기에서 뉴질랜드가 이탈리아를 이겼더라면, '이탈리아판 세네갈 쇼크'를 뉴질랜드가 일으킬 뻔도 했다.

아마 이 쯤 되면 바레인이 왜 대륙간 PO에서 뉴질랜드를 이기지 못했는지 이해가 갈 만하다.

마지막 3차전은 파라과이전. 여기서 뉴질랜드가 승리했더라면 16강에 직행했을 것이있지만, 안타깝게도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또 다시 비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3전 전무... 무패탈락으로 파라과이와 슬로바키아에 밀리며 꿈에 그리던 첫 16강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5 광속탈락했지만 괜찮아. 잘 싸웠어!

뉴질랜드는 애초에 최약체로 꼽히던 팀이었기 때문에 3전 전패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선전을 하며 3패가 아닌 3무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로 여겨진다.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보다 순위가 높다. 실제로 뉴질랜드 국민들도 비록 광탈했지만 3개의 강팀들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쳐 패하지 않은 게 어디냐며 선수단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결국 뉴질랜드의 16강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강팀들을 상대로 선전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점타이틀 하나를 가져갔다는 점에서 가히 성공적인 실패라고 할만하다.

아래는 뉴질랜드의 조별 라운드 성적을 1982년 월드컵 때와 비교한 것.

연도경기득점실점득실승점
19823003212-100
201030302203

조개(패...) 3개를 모두 팔아서 그 돈으로 무를 재배했다. 그리고, 실점을 12점에서 2점으로 확 줄였다. 원래 월드컵 본선에서 꼴지할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그 예상을 완전히 깨고 종합 22위로 급상승하고 대회를 마감하였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탈락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월드컵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한편 6전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온 네덜란드가 스위스한테 져서 1패 찍고 올라온 스페인한테 덜미를 잡히고 전승준을 거두면서 3무로 그룹 라운드에서 탈락한 뉴질랜드는 졸지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유일한 팀이 되었다.[6] 지역예선까지 포함해도 피지한테 0-2로 패배한게 유일한 패배이지만, 그 패배마저도 이미 대륙간 플옵 진출이 확정난 뒤에 당한 패배인지라 별 의미는 없다.

월드컵 직후에 뉴질랜드축협, 감독, 선수들 한목소리로 뉴질랜드가 아시아 축구 연맹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오세아니아에서 쉽게 1위한다음 아시아 5위하고 플레이오프하는게 사실 더 본선진출에는 유리하지만[7] 한국이나 일본같은 아시아 축구강국하고 예선에서 맞붙는게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며, 이러한 빅매치가 뉴질랜드내 축구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아무튼 뉴질랜드내에서는 아시아 축구 연맹에 가입하자는 의견은 압도적이지만 뉴질랜드 혼자 원한다고 마음대로 될수 있는것은 아니기에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듯 하다. 머지않은 장래에 상암동 경기장에서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 때 마오리 하카로 경기 전 기선을 제압하는 뉴질랜드 국대를 보겠습니다. 한편 오세아니아는 동네 골목대장 리그가 벌어지게 되는데..

  1. 위 세 나라들은 모두 제대로 된 축구 경기장이 없어서 무조건 뉴질랜드에 있는 축구 경기장에서 뉴질랜드 홈 경기를 치러야한다고 한다. 흠좀무
  2. 경기 평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라는 평가가 대세. 오히려 럭비를 통해 다져놓은 파워가 얼만데 탄탄한 수비축구를 보여주었다. 한편 이 경기 결과로 인해 세르비아 관중들이 경기장에 난입하고 쓰레기를 경기장에 투척하는 '난동'을 보여주었다. 보다못한 네마냐 비디치가 경기장 마이크를 이용해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자제를 요청할 정도였으면... 뉴질랜드 사람들과 세계 축구팬들은 "병신들"이라고 깠다. 이게 뉴질랜드 홈경기였으면 바로 럭비를 통해 다져놓은 탄탄한 힘으로 진압당했다.
  3. 뉴질랜드에서는 스포츠 도박이 합법인데, 뉴질랜드의 패배를 예상한 한 남자가 베팅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 후반 42분 즈음에 뉴질랜드의 패배에 무려 $40,000 (=약, 3400만원) 을 걸었다. 이때의 배당률은 $1.02. 즉 $1을 베팅하면 2센트(...)를 받는 배율이었다. $40,000을 걸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800. 문제는 알다시피 후반 로스타임 93분에 뉴질랜드의 골이 터지면서 1-1 무승부... 푼돈좀 벌려다가 $40,000이 10분내에 날아갔다...
  4. 뉴질랜드 축구 국대의 별칭, 럭비 국대의 별명은 올블랙(All Blacks)인데 이쪽은 축구와 달리 전세계 럭비계에서 공포의 상징이다.
  5. 201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한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 단순한 은행원이 아니라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는 투자분석가다. (카카처럼 취미로 주식을 하는 게 아니라 직업으로 투자를 한다는 소리다.) 호주 2위 은행인 웨스트팩 은행의 투자은행 부문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실제 1년간 굴리는 돈이 우리 돈으로 7000억원(쉽게 설명하자면 약물왕알렉스 로드리게스 연봉의 약 30배, 붕가왕호날두 연봉의 약 37배 정도 수치)에 육박한다. 투자왕? 그러므로 굴리는 돈과 직업의 안정성 면에선 이미 프로 스포츠 선수들을 관광시켰다고 봐도 된다. 덕업일치는 아니지만 절대 꿀릴 일 없다. 이미 월드컵이라는 남자의 로망을 정ㅋ벅ㅋ 했으니. 월급쟁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엄친아'다.
  6. 게다가 승부차기를 무승부로 치나 안 치나 똑같다. 승부차기에서 패배한 가나와 일본 모두 그룹 라운드에서 1패씩은 했기 때문이다.
  7. 그러나 이것도 추첨을 잘 뽑았을 때 이야기지 남미 5위 팀이나 북중미 4위 팀하고 격돌하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시아에 편입되어 4위 안에 드는 쪽이 더 유리하다. 당장 2014년 예선만 해도 북중미 4위 팀인 멕시코와 붙어버려서 탈락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