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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 | 네마냐 비디치 (Nemanja Vidić)[1] |
생년월일 | 1981년 10월 21일 |
국적 | 세르비아 |
출생지 | 티토보 우지체 |
신체 조건 | 190cm, 88kg |
포지션 | 센터백 |
유소년 클럽 | FK 예딘스토프 우지체 (1989-1993) FK 슬로보다 우지체 (1993-1996)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6-2000) |
소속 클럽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0-2004) 스파르타크 수보티차 (2000-2001) (임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4-200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6-201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4-2016) |
국가 대표 | 56경기 2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 |||||||||||
개리 네빌 (2005~2011) | → | 네마냐 비디치 (2011~2014) | → | 웨인 루니 (2014~ ) |
2009 FIFPro World XI | |||||||||||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FW 페르난도 토레스 | FW 리오넬 메시 | |||||||||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 MF 사비 에르난데스 | MF 스티븐 제라드 | |||||||||
DF 파트리스 에브라 | DF 네마냐 비디치 | DF 존 테리 | DF 다니에우 아우베스 | ||||||||
GK 이케르 카시야스 | |||||||||||
2011 FIFPro World XI | |||||||||||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FW 웨인 루니 | FW 리오넬 메시 | |||||||||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 MF 사비 에르난데스 | MF 사비 알론소 | |||||||||
DF 세르히오 라모스 | DF 헤라르드 피케 | DF 네마냐 비디치 | DF 다니에우 아우베스 | ||||||||
GK 이케르 카시야스 |
벽디치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수비의 중심
"내 마음은 언제나 맨유에 있다." - 네마냐 비디치
1 개요
은퇴한 세르비아 출신의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2 선수 경력
2000년부터 세르비아의 구단인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서 뛰었고, 뛴지 1년만에 주장자리를 꿰어찼다. 2004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적, 러시아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빅클럽들의 레이더에 뜨게 된다. 사실 제일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6년 세르비아 대표팀의 수비진이 독일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보여준 짠물 축구(10경기 동안 오직 스페인의 라울에게 1실점)로 조 1위로 본선에 직행하게 되면서 부터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 스페인은 2위로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그 세르비아의 수비의 핵에 네마냐 비디치가 있다고 했지만 클럽내에서는 임팩트가 아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 주목받는 선수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실제 맨유이적시에도 뜬금포라는 얘기도 나왔고. 실제 이적료도 고작 7백만 파운드였다.
2.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6년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7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내고, 비디치를 모스크바에서 데려왔다. 이 당시에는 파트리스 에브라 역시 맨유에 합류했다. 이때 둘의 이적료를 합쳐봤자 1250만 파운드였다. 2015년 맨유가 다르미안 한명을 영입했을 당시의 이적료이다. 비록 10년 전이기 하지만 이때도 이적료가 아주 적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첼시에서 에시엔이 2500만 파운드에 영입하면서 거품이란 소리를 들었던게 바로 6개월 전이긴했으나 에시엔의 잠재된 포텐셜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고 나중에 슈퍼스타가 될꺼라는 기대감을 품게해줬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비디치나 에브라는 데려오면서 즉전감이나 포텐셜을 크게 기대하고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미카엘 실베스트레의 부진, 웨스 브라운과 가브리엘 에인세의 부상으로 긴급 수혈하는 차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6년 1월 겨울 이적시장은 맨유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영입을 했던 시기가 되었다. 역사상 제일 꿀영입. 퍼기경의 신기가 제대로 빛을 발했었는데.. 그리고 노숙자한명을 사기 시작하는데..
2006-07 시즌부터 주전 중앙 수비수 자리를 꿰어찬 비디치는,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중앙 수비진을 이루며, 몇 년동안 퍼디난드 외에는 불안불안했던 맨유의 중앙 수비진을 잡아줬다.[2] 물론 이건 적응이 이루어진 후의 이야기. 처음 맨유에서 뛰었던 05/06 시즌 후반기에 별로 못했다.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못하고 어리버리 하는경우가 있었기에 (게다가 그는 커맨더형이 아닌 파이터형이다 추가로 준족도 아니다) 퍼디가 비디치 이적 초창기에는 두 배로 고생해야만 했다. 거기에 러시아 리그는 이미 끝난 후였기에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된 상태였고. 그래서 06년도에는 최악의 영입 리스트에 오르기도 하는 굴욕을 맛봤다. (이건 마찬가지로 06년 겨울에 영입된 에브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06/07시즌에는 적응 마치고 이후 맨유 수비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센터백으로 불리게 된다. 06-07 시즌당시 퍼디와 같이 리그 최정상급 중앙수비 듀오로 꼽혔지만 흑역사로는 카카에게 챔스 4강전 2차전에서 우주관광을 당한 경험이 있다.[3]
08-09시즌에 맨유가 14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때 그 중앙에 있던 건 비디치였다.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출장이 들쭉날쭉할 때, 웨스 브라운이나 조니 에반스 등의 수비수들을 이끌며 에브라와 함께 굳건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이런 활약에 더불어 맨유는 3년 연속 리그를 제패할 수 있었고,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후보 명단에도 올랐으며 (수상은 동료 라이언 긱스가 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독점해온 "맨유 팬들이 꼽은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했다.
다만, 유독히 리버풀 FC 전에는 약하다는 평이 있었다. 06/07시즌, 07/08시즌에는 리버풀 상대로도 잘했으나 08-09 시즌 막바지에, 2위로 맨유를 추격하는 리버풀과의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결전. 호날두가 PK를 성공시켜 1-0으로 앞서갈 때, 간단한 롱패스를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동점골을 어이없게 허용했고, 이게 기폭제가 되어 맨유는 4-1로 무너졌다. 더군다나 퇴장까지 당했으니.......[4]
09-10시즌 초반 안필드에서의 원정 경기에서도 결국 퇴장당하며, BBC의 축구 전문가 앨런 핸슨에게 "토레스를 겁내는 거 아니냐"라는 평까지 들었다. 하지만 09-10시즌 후반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리버풀전 (박지성이 결승골을 넣은 경기)에서는 굳건한 수비를 보이며 선전하고, 10-11시즌 초반 리버풀 경기에서도 꾸준히 수비를 해주며 징크스를 어느 정도 극복한 듯 보인다.
10-11 시즌부터,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출전이 거의 없어지다시피한 개리 네빌을 대신해, 맨유의 주장이 되었다. 한때 파트너인 퍼디난드가 주장이었던 걸 생각하면 약간 아이러니. 또한 비디치의 주장 임명에 노장들에게 주장을 왜 안 주냐는 소리가 나오긴 하는데, 폴 스콜스는 본인 스스로 주장 자리는 싫다고 밝힌 바가 있고, 라이언 긱스는 나이 때문에 매 경기 출장이 불가능하다. 리오 퍼디난드도 잔부상 때문에 비디치만큼 나오기가 힘들다. 웨인 루니의 경우 맨유에서 적지 않은 기간 활약했지만 워낙 어린 나이부터 뛰었다 보니 이 당시에도 나이가 만 25세로, 주장직을 맡기에는 다소 어린 편이었다.[5]
10-11시즌 초반에는 유독 위급할 때 헤딩골을 넣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건 08-09 시즌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에버튼 FC전, 토트넘 핫스퍼전 (선취골), 아스톤 빌라전 (동점골) 등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서 더욱 자신감이 더해진 것 같다.
첼시 FC와의 우승팀 결정전에서도 긱스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 을성공시켜 팀의 두번째 득점을 올렸다
11-12 시즌에서는 1라운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전에서 부상을 끊어 쉬게 되었다. 그동안 맨유는 맨체스터 시티에게 6-1 굴욕의 대패를 당하는 등 비디치의 부재를 실감했다. 복귀한 뒤에 서서히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며 6-1대패 이후의 맨유 수비진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으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FC 바젤원정에서 전,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엄청난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맨유는 결국 바젤전에서 2-1로 패배하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셨다. 게다가 수비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비디치의 시즌 아웃은 맨유에게 있어서 큰 압박이였었다.[6] 부상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서 축구를 그만두게될정도로 심하다고 한다.[7]는 건 흥분해 날뛰던 언론들이 만들어낸 루머였고 비디치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다행히 5~6개월 정도 아웃될 것이라고 한다. 5~6개월이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재활과 훈련을 잘 마치고 다음 시즌을 비디치와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 맨유팬들은 기대했다.
비디치가 제대로 경기에 복귀하기 시작한 건 12/13 시즌 중순쯤. 시즌 초반에 정줄놓은 수비로 속썩었던 맨유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구세주였다. 그리고 복귀한 후로 파트너가 누구건 잘 이끌어나가며 부상의 여파를 많이 떨쳐낸듯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13~14시즌에는 노쇠화로 인해 폼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5라운드 맨체스터더비에서는 탈탈 털리며 4대1 대패의 원흉이 되었다.. 패스미스도 잦아서 걷어내는 볼마다 본의 아니게 어시스트가 된다(...) 샤흐타르와의 챔스경기와 선더랜드전에서 걷어낸 볼이 상대공격수에게 가서 실점의 원인이됐다. 25라운드 풀럼과의 홈경기에서도 공중볼을 걷어내려한게 상대팀 선수에게 갖다주는 안이한 헤딩패스가 되면서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 헌납의 빌미가 됐다. 이 경기는 맨유에게 있어서 반드시 잡아야하는 최하위팀과의 홈경기였기에 충격이 크다.퍼기영감 피꺼솟 13/14 시즌을 끝으로 맨유를 떠난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이적팀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EPL이 아닌 타리그로 떠난다고 했으며, 인테르와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3월 5일 인테르행이 공식발표되었다.
2.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프리시즌에서의 준수한 활약으로 인테르의 귀환을 알리는 핵심으로 활약하리라는 기대되었다...만 세리에 A 데뷔전을 포함해 허구한 날 퇴장당하고 눈이 썩는 플레이를 보이며 인테르 부진의 1등 공신이자 패배의 주 원인으로 뽑히고 있다.(...) 하지만 맨유팬들이 이걸 모르고 한동안 비디치 왜 보냈냐고 성토했던 건 함정
14-15시즌에서는 네이버 중계방에서 비디치 찾는 응원글이나, 비디치가 인테르를 캐리하는데 왜 안나왔냐는 미친 댓글들이 달리는 경우가 자주 보여서 인테르 팬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드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더 심각한건 다른 수비수들도 동급의 절망적인 활약이었다는 점. 심지어 인테르 주장까지 준 라노키아는 그냥 잉여가 되었다.
14-15 시즌의 비디치를 말하자면 전반기에는 캄파냐로와 함께 똥을 쌌고 후반기에는 라노키아와 함께 똥을 쌌다. 정말 줄기차게 쌌다. 덕분에 한다노비치만 죽어라 고생했다. 조합을 가리지 않고 똥을 싸는지라 수비로 정평이 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조차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
인테르 팬들의 의견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현재 단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맨유에서는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수비를 펼친 비디치였지만, 현재는 나이가 들고 전성기가 지나가면서 오는 피지컬 저하로 통수를 맞고 있다는것. 더군다나 EPL의 관대한 파울콜에 익숙해서 인지 굉장히 위험한 태클이나 피지컬을 200% 활용한 바디체킹을 자주 선보였는데 이게 세리에A에서는 죄다 옐로 카드 혹은 파울이라서 팬들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특히나 세리에A의 경우에는 경기의 템포가 느린 만큼이나 셋트피스가 정교한 경우가 많아서 나올때마다 한다노비치를 더욱 힘들게 만들어준다.[8]
15/16 시즌을 앞두고 등 수술을 받게 되었다. 최장 6개월 결장이 예상되었으나 일단 훈련장에는 복귀해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경기에 뛰지 못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훈련장에서 보여주는 너무나도 밝은 미소덕에 팬들은 복지디치, 복지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2016년 1월 19일. 인테르과 계약해지를 했다. 그리고 1월 2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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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016-17 시즌 전 맨유의 프리시즌 중국 투어에 참가하며 클럽 앰배서더로 활약할 것이라고 보도되었으나 공식 발표는 없었다. 다만 향후 지도자 연수를 위한 참가로 알려졌으며 현재 코치 라이센스 자격은 현역 시절에 모두 획득한 비디치는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한 준비라고 말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거칠고 투박한 수비 스타일. 겁이 없고, 강인한 스타일로, 맨유 팬들에게 "세르비아의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위의 응원가를 참조) 국내 팬들에게는 벽디치라는 별명이 익숙하다.
파트너인 퍼디난드가 공을 더 매끄럽게 다루는 부드러운 수비수라면, 비디치는 강인함과 투지, 그리고 위압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 덕분에 서로의 장단점을 커버해주는 조합이라 뚫기가 엄청 어려웠다. 시간이 갈수록 퍼디난드의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면서 예전만큼의 포스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런 스타일의 플레이는 맨유의 전직 수비수이자, 선더랜드 AFC의 전 감독인 스티브 브루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맨유의 골수 팬들은 말한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수비수를 꼽으라고 하면 절대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수비수.
다만, 발은 그렇게 빠르지 않은 편이라 속도가 빠른 공격수에게는 당하는 경우가 있고, 순간 동작이 빠른 공격수에게도 제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회복 속도가 은근 빠르고 태클이 매우 정확하기 때문에, 제꼈다고 마음놓고 슈팅을 했다가는 슛이 태클에 막히는 경우가 나온다.
따라서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매우 약했다. 실제로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토레스가 넣은 골중에 상당수가 비디치가 센터백일때 넣은 골이다.[9]
플레이 스타일이 스타일인만큼, 은근 심판의 눈을 피해 반칙을 하는 경우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09-10시즌 3라운드 위건전에서 로다예가에게 한방을 먹인 경우.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 능력 때문인지, 피지컬이 좋은 공격수들에게는 천적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디디에 드록바는 비디치를 만나면 유난히 맥을 못 추는 편이고, 마리오 발로텔리와 같은 선수들에게도 강한 편이다. [10]
5 그 외
축구선수들이 다 그렇지만, 비디치의 경우 특히 심판이 파울을 선언하면 어이없다는 듯 웃는 표정이 많이 나온다. 평소의 근엄한 표정과는 뭔가 다른 모습.
한국 팬들 중에서는 다비치와 헷갈리는 경우도 있나보다 (...)
부인과는 2006년 결혼했는데, 비디치의 이적 루머가 터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게 바로 이 부인이다. 맨체스터의 날씨가 싫다고 징징 한다는 기사가 대표적. 익뚜의 웹툰에서도 여러 번 나온 바가 있다.
동유럽 출신과 거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맨유 팬들이 만든 티셔츠 중에는 록키 4에 나오는 이반 드라고의 명대사 "If he dies, he dies"에 비디치의 얼굴을 옮겨놓은 티셔츠가 있다. 적절하다
- ↑ 세르비아어로는 Немања Видић.
- ↑ 당시 퍼디의 파트너는 미카엘 실베스트르였는데 실베스트르는 영국은 물론 해외팬들에게도 최악의 구멍이라며 신나게 까였고, 그렇게 까일만한 실수를 계속 저질렀다. 비디치가 맨유 입단을 확정지은 후 인터뷰에서 "맨유 경기를 보니 맨유의 약점은 수비진이었다. 내가 그 약점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
그리고 퍼거슨 감독은 실베스트르를 아스날 FC로 팔아버리는데 성공했다. 이것이야말로 소포테러 - ↑ 챔스 4강전에서 퍼디난드는 부상으로 1,2차전 모두 결장했으며, 비디치 역시 부상으로 1차전은 결장, 2차전에만 출장했다. 1차전에서 센터백 스쿼드가 존 오셔, 브라운, 에인세, 에브라. 2차전에서는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출전했지만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터라. 참고로 당시 카카는 최전성기의 상태였고 그 해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메시조차도 달리기로 따라잡지 못하고 놓쳤다. 아무리 카카가 교체투입하였고 메시는 선발 출장이였다 해도 치달을 하는 쪽은 카카였고 따라붙는 쪽이 메시였는데 드리블 하는 카카를 못따라잡은 것이다(...).
괜히 무리뉴가 당시 카카가 마라도나 이상이라 하는게 아니다 - ↑ 발이 느리고 좀 투박하기 때문에 좋던 시절의 토레스와 리버풀한테 털리기 좋은 스타일.
- ↑ 그리하여 루니는 비디치가 팀을 떠난 후에 그 다음으로 주장직을 이어받는다.
- ↑ 퍼디난드는 이미 노쇠화가 진행중이고 남은 것은 젊은 3인방인 조니 에반스와 크리스 스몰링, 필 존스이다. 에반스야 정신 줄 놓은 수비로 유명하고 스몰링과 존스 역시 경험 부족이 큰 약점이다.
- ↑ 오른쪽 무릎의 모든 십자인대가 파열되었고 그 심각성은 걷게되는데만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 후 재활활동에다 훈련을 플러스하고 비디치의 나이도 고려하면 선수생명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한다.-세계적 월드클래스 센터벡이 한순간에--
- ↑ 유튜브에 vidic만 치면 그가 하는 수비 형태가 파울에 걸릴것 같은 느낌이 드는 위험한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세리에에서 엄청 퇴장 당한 이유가 바로 이 이유.
- ↑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08-09 시즌에 딱 한번 털린 임팩트가 워낙 강했고 리버풀전에서 퇴장당한 횟수가 상당히 많아서 그런 인식이 생겼을 뿐 딱히 토레스에게 약하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 ↑ 그런데 은퇴 후 비디치가 EPL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공격수를 드록바로 꼽았다는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