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B-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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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느니라 콩코드??


XB-70 Valkyrie.

1 개요

1964년 미국 노스 아메리칸 항공이 만든 미합중국 공군의 차기 핵 폭격기의 실험, 시제기. Tu-160과 함께 '가장 우아한 폭격기'로 유명하다.

전폭 32m, 전장 60m, 엔진 추력만 14,000Kg의 추진력을 발생하는 강력한 General Electric YJ93 엔진을 6기나 가지고 2만 5천m의 고도를 마하 3의 초고속으로 날아 무려 22톤의 통상 폭탄핵무기를 투하할 목적으로 만든 폭격기다.크기 빼고 딱 SR-71

1960년대 천조국의 미칠듯한 기술력을 보여주는 예 중 하나. 이 때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자신의 폭격기와 관련된 경험에 비추어서 아주 적극적으로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실패한 연구가 되었으며, 환상의 외관과 성능을 가진 기억속의 존재가 되고 말았다.

2 기술적인 모험

'적국(소련)의 영토를 마하 3으로 논스톱 횡단할 수 있는 폭격기 내놔라!'미쳤냐? 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가 1960년대에 나왔는데, 어디서 어떤 외계인을 잡아왔는지, 혹은 몇명의 공돌이를 갈아넣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흠좀무.미쳤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기술적인 시도가 있었다. 두께 0.3mm의 스테인리스 스틸 강재를 벌집 구조로 동체에 사용했는데 이게 대히트하여, 생각보다 굳건히 버텨주었다. 로스웰 외계인 지못미 항공기는 초음속 비행시 기수가 아래로 크게 처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XB-70은 기수부분에 카나드[1]를 달았다(최신 전투기처럼 기동성 향상 등의 목적으로 단 것이 아니다.). 한편 고속비행중에는 위의 사진처럼 주날개 바깥쪽이 아래로 접힌다. 이것은 수직꼬리날개 역할을 일부 담당, 초음속 비행시 부족해지는 방향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 기능은 주날개쪽에서 만드는 양력 발생량을 줄이고(날개가 아래로 접히면 그만큼 주날개 크기가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 카나드에서 만드는 양력 발생량을 늘려서 기수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

3 프로젝트의 취소

XB-70은 고고도에서 초음속으로 침투하여 소련의 방공망을 돌파하여 원하는 목표를 타격하고 빠르게 폭격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2]계획한 것이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대공 방공망 체계를 위한 미사일들이 빠르게 발달하고, ICBM에 비해 가격에 성능비마저 떨어지자 점점 그 효용성이 의심되다가 기체 구조의 한계상 그 최대속도가 떨어지더니[3] 폭장량이 B-52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잦은 사고등으로 인해 의심되는 신뢰성, 높은 가격 등으로 인해 점점 쓸모없는 폭격기가 되면서 일단 만들던 시제기 2대만 완성하고 프로젝트 자체는 취소되었다. 무엇보다 레이더나 지대공 미사일 등의 기술 발달로 B-70이 추구한 고속 고고도 침투보다는 초저공 침투가 폭격에 더 효과적이라는 폭격기 전술의 변화가 일어나며 프로젝트가 취소된다.

완성된 시제기는 미 공군뿐만 아니라 NASA등 여러 기관에서 테스트 목적으로 쓰였는데 그중 중요한 테스트는 바로 미국산 초음속 여객기를 위한 데이터 수집이었다. 당시 영국-프랑스 합작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계획이 발표되자 미국은 "흐...흥! 너네보다 더 빠르고 더 큰 여객기 만들테니까....!" 라고 하면서 초음속 여객기 설계를 위한 데이터 수집에 XB-70 발키리를 이용했다.

그러나 .....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졌습니다.

4 추락사고와 비화

1966년 6월 8일. GE사가 자사의 엔진을 단 군용기들을 모아 비행사진을 찍던 중, 다트 또는 과부제조기F-104와 충돌하면서 시제기 2호가 추락해 더 이상의 개발도 중단되었고, 1969년을 끝으로 더 이상 날 수 없는 비행기가 되었다. (시제기 1호는 지금 미 공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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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유명한 '역사상 다시는 찍을 수 없는 GE사 엔진 군용기 사진.' 밀집편대 비행 후 편대를 풀다 오른쪽 날개 쪽에 있는 F-104가 XB-70 발키리 수직미익의 후류에 휘말려 충돌했다. 역시 저건 사람이 모는 미사일이다 사진 파일 이름(xb_70_death.jpg) ㄷㄷ F-104[4]가 먼저 발키리의 주익과 수직미익 두 개를 차례로 쓸고 지나간 뒤 공중 폭발했고, 발키리는 잠시동안은 비교적 안정상태를 유지했지만 곧 양력을 잃고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스타파이터와 발키리 양 조종사는 모두 사망.[5]

물론 결정적으론 이런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전부터 겨우 핵투발용 폭격기가 이런 저기술 고비용으로 낭비되며 개발된다고 로비한 스컹크 웍스가 흑막으로 있었음이 스컹크 웍스 2대 치프인 벤 리치의 회고록에 나온다. "무려 엔진 6개로 마하 2를 내는 비행기를 쓴다구요!? 우리 SR-71은 엔진 2개에 마하 3입니다. 더 효율적이라구요" 라는 식으로... 이때 이미 SR-71이 대히트를 친지라 스컹크 웍스는 SR-71의 공격기, 폭격기 모델을 만들어서 팔려고 하였다. 스컹크 웍스는 돈만 주면 바로 폭격버전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로비로 화망을 구성하였고, 결국 추락 사건과 맞물려 XB-70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정작 그 SR-71의 전투기, 폭격기, 공격기버전(YF-12)도 모두 취소됐다

5 여파

이 이후 노스 아메리칸은 1967년에 록웰(Rockwell)에 합병되어 노스 아메리칸-록웰이 되었으나, 이후 록웰은 다시 보잉에 합병되고 말았다.[6][7]

참고로 노스 아메리칸은 XB-70의 호위전투기 및 초음속 요격기로 XF-108 레이피어라는 전투기도 개발중이었다. 이 전투기는 기본적으로 XB-70의 크기를 줄여 놓은 듯한 형상으로, 일부 부품은 공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XB-70 사업이 죽어버리고, 더불어 당시 국방예산도 급격히 줄어버리는 바람에 취소되었다.

한편 소련은 A-12(SR-71의 전신)에다가 XB-70까지 나타나자 부랴부랴 마하 3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는 요격기, MiG-25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XB-70은 취소되어버리고 A-12는 소련 영토내로 진입하는 일이 없었다. 어찌보면 XB-70에 낚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일단 MiG-25가 방공전투기로는 유효하다는 판단하에 그냥 썼다. 거기다가 미국 역시 MiG-25가 단순한 요격기가 아닌 사상최강의 전투기인줄 알고 F-15의 개발방향을 크게 바꾸었으니...결과적으로는 상당한 수작이 나왔지만, 아무튼 서로 낚고 낚인 셈이다.무슨 지거리야!!

6 기타

세가의 게임 스카이 타겟 및 남코의 에이스 컴뱃 제로에도 등장했다.

기동전사 Z 건담에서 하야토 코바야시가 타고 등장한다. 오리지널은 아닌 레플리카라는 설정이 있다.

  1. 베인(Vane)이라 부른다
  2. 핵 투발시에 기체가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전투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3. 본래 마하 3으로 초음속 순항하여 타격하는 것이었지만 비행시험 도중 날개 앞전(Leading Edge)구조물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 2.5로 제한되었다.
  4. 여담이지만 F-104는 록히드 그것도 스컹크 웍스에서 만든 전투기다. 그 자체는 특이할 것도 없는데 이게 묘한 이유는 후술.
  5. 이 중 F-104 파일럿 조셉 워커는 사상 최초로 고정익기를 몰고 고도 100km를 넘어 우주에까지 진출했던 테스트 파일럿이자 아폴로 계획 달 착륙 연습을 위해 개발된 LLRV(Lunar Landing Research Vehicle)의 첫 조종사였다. 척 예거테스트 파일럿으로서는 일류였지만 편대비행에는 익숙치 않았던 사람을 이딴 임무에 집어넣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고.
  6. 참고로 XB-70 발키리에서 물먹은 노스 아메리칸이 록웰과 합병되고 난 후 개발된 폭격기가 마하 2로 고공침투하는 B-1A인데 이걸 물먹인게 스컹크 웍스F-117...이었다. 물론 U-2나 SR-71처럼 다른 기체가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고공도 아니고 XB-70 발키리로도 힘든 고속침투를 B-1A 랜서로 하는 것은 애초 무리가 있었고 카터행정부 입장에선 그런 상황에서 스텔스 기술을 실용화했는데 당연히 B-1A를 생산할 이유가 없기는 했지만... 노스 아메리칸 입장에선 두번이나 물먹이고 경영난에 빠지게 한 원수나 다름 없는 셈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스텔스 기술 때문인 것도 몰랐다. 물론 스컹크 웍스가 물먹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7. 얼마 후 스컹크 웍스는 그래놓곤 뻔뻔하게 록웰에게 B-2 개발계획때 손을 내밀었다... 당시 B-1A 계획이 취소된 록웰은 그 타격으로 경영난에 빠져 있어서 프로젝트가 필요한 상황이라 스컹크 웍스에 고맙다며 낼름 손을 잡았는데 간발의 차이로 늦게 노스롭이 록웰에게 파트너 제안... 이미 록웰은 록히드와 파트너를 맺은 뒤였고 그 때문에 노스롭은 보잉과 팀을 짰다... 결과는 알다시피 노스롭의 설계안이 채택됐고 록웰은 이후 B-1B로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재추진되기는 했지만 누적된 타격에 결국 망하고 보잉에 흡수되었다. 이 정도로 스컹크 웍스에 악연이 있는 기업도 드물다...그래서 록히드 마틴의 이 되었다 카더라... 근데 JSF에서 또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