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예거

Charles Elwood "Chuck" Yeager
찰스 엘우드 "" 예거

1 개요


사진은 2차대전 후 공군 중령일 당시

1923년 2월 13일 ~

20세기의 척준경 하늘의 척 노리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이스이자 세계 최초로 수평 비행으로 음속을 넘은 남자.[1] 전설적인 테스트 파일럿.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대 파일럿으로 11.5대를 격추시켰고, 1945년 2월 전장에서 미 본토로 돌아와 종전 이후에는 미 공군 소속 테스트 파일럿이 되어 1947년 10월 14일 벨 X-1 실험기[2]로 세계 최초로 고도 13,700m에서 수평비행으로 마하 1을 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니, 비행 이틀 전 을 타다 넘어져 갈비뼈가 2개나 부러졌는데 비행을 못할까 봐 수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고[3] 부인과 친구에게만 이야기 했다고. 흠좀무.[4]

2 생애

2.1 유년기

마이라라는 작은 마을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너무 가난해서 대공황이 일어나도 수입규모에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였고, 이런 이유로 예거는 시간만 나면 총들고 사냥을 나가 짐승들을 사냥해 껍질을 벗겨 물통에 담궈놓는게 일이었다.
당시엔 먹고 살기 바빠 장래희망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고, 어린 예거는 유전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다쳐서 팔에 붕대를 감고 돌아오자 아버지의 고생을 실감했다고 한다.

2.2 청년기

청년이 되자, 그는 읍내의 당구장에서 일하면서 내기 당구로 소일하고 밤마다 동네 아가씨들하고 데이트나 하는 양아치가 되어있었다.(초 보수파였던 그의 부친은 굉장히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고 어느날 항공대 모병관이 마을에 찾아오자 집안에 박아둔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입대 전까지 본 비행기는 15살때 마을에 불시착한 비치크래프트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왜 육군 항공대에 입대했는지는 미지수.[5]

2.3 파일럿이 되기까지

어릴때부터 안해본 일이 없었던데다, 부친이 있던 유전에서 일도 해봤기 때문에 정비병으로 입대했다.

42년에 조종사 교육단에 들어간 그는 애리조나 루크 필드로부터 조종장교가 되어 졸업하고 43년 3월에 363 전투단에 들어가 P-39s를 조종한다. 조종사관에 지원한 이유도 가관인데 사관이 되면 보초근무가 열외라 보초서기 귀찮아서라고(...)

첫 근무지가 고향 근처라서 고향마을 시가지 상공에서 "ㅋㅋㅋ 이것좀 보셈 서비스임" 하고 에어쇼를 하곤 했다는데 그동네서 전투기 조종사가 된건 예거 하나뿐이라 "예거씨네 둘째때문에 우리집 돼지들이 유산했다"등의 불평이 쇄도 했다는데 곧 동네 주민들도 즐기게 됐다나.

아무튼 이 당시 부인인 글레니스를 만나 나중에 결혼했다.

그리고 43년 11월에 그의 부대는 영국으로 보내져 P-51 머스탱을 몰게 된다.

2.4 2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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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후 탈출해 복귀한 직후 찍은 사진.

2차대전 당시 통산 1킬 후 프랑스 보르도 상공에서 격추당했는데,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탈출해서 복귀했다[6]. 원래 이런 귀환자들은 작전중 다시 격추 당해 나치 독일의 포로가 되면, 독일의 우월한 고문기술에 의해 레지스탕스에 대해 이것 저것 다 불어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으므로 전투 임무에서 배제되었는데,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잡힐 것 같으면 자결하겠다'고 직접 청원하여 다시 전장으로 복귀, 나머지 10.5킬을 달성했다. 개중에는 제트 전투기인 Me262도 한 대 포함.

모든 비행기에 Glamorous Glennis라고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부인 글레니스 페이 딕하우스(Glennis Faye Dickhouse)의 이름이라고...[7]

2.5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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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 공군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각종 시험기를 조종하였다. 특히 캘리포니아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당시 동료들도 디크 슬레이튼, 거스 그리섬, 고든 쿠퍼[8]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다. 이 동료들이 우주 비행사로 선발돼서 엄청난 인기와 부를 거머쥘때도 그는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걸림돌 때문에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했다.[9] 이 당시 척 예거와 초창기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다룬게 1983년작 영화 《필사의 도전(The Right Stuff)》.

1969년 준장으로 진급, 1975년 퇴역했다. 고졸의 사병 출신으로 준장까지 진급한 흔치 않은 케이스. 2차대전 중 파일럿의 부족으로 사병 중에서 파일럿을 모집해서 훈련시킨 후 부사관(Flying Sergeant)으로 임관시켰는데, 전투기 정비병이다가 여기 선발되었다고. 2차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대위까지 진급했다. 뉴타입이냐...[10] 본인의 자서전에 의하면 이런 경력 때문에 알게 모르게 차별을 좀 받은 모양이다. 미합중국 공군이 아무래도 늦게 생기고 기술군이다보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모양인 듯. 결정적으로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 선발시 대학졸업장이 없어서 애시당초 의지에 상관없이 원서도 못 썼다.[11][12] 그리고 비행사 자질 평가에 대해선 나름대로 확고해서 흑인 비행사 뽑으라는 지시에 비행사 지원 인원 중에서는 우수한 흑인 비행사는 없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인종 차별이 아니라 그 때 흑인 교육생 실력이 모자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 근무시 함께 근무했던 흑인 조종사들보다 실력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고.[13] 1986년에는 STS-51-L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사고가 터지자 진상조사를 위해 꾸려진 로저스 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같이 활동한 인물들 중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닐 암스트롱, 샐리 라이드, 리처드 파인만과 함께 얼굴마담 노릇을 했다.[14]

3 뉴타입

이 양반의 조종사, 특히 테스트 파일럿으로서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 무식한 시력
쌍안경을 능가한다고 하며, 전투기에 레이더가 없던 2차대전 당시 지평선에 아른거리는 적기를 맨눈으로 포착하여 공격한 적이 여러번 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많이 다녔는데, 그 덕에 시력부터 사격 감각 등 여러가지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고...노인이 된 지금에도 조준경 없이 저격 수준의 사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 정밀한 조종능력
비행학교 시절, 비행기의 고도와 속도를 자동으로 모눈종이에 기록하는 장치를 한 채 비행을 한 적이 있는데, 자로 대고 그은 것 같은 선이 나왔다고...
  • 악운에 강한 점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격추되든, 사고가 나든 반드시 살아남아서 돌아왔다. 특히 과거에는 원격감시장치나 블랙박스가 부실했기 때문에 조종사가 살아남아야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F-100 슈퍼 세이버 전투기의 경우, 초기 모델에서 원인 불명의 추락 사고가 많았는데, 이 양반이 살아 돌아오는 덕에 조립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알아냈다고.


척 예거의 F-15기념비행.[15][16]

4 근황

가끔 에어쇼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1997년에는 음속 돌파 50주년 기념으로 F-15D를 타고 플라이바이를 펼치기도. 취미로 낚시를 즐기면서 잘 지내는 모양이다. 2000년에 등산하다 36세 연하의 여성을 만나 재혼;;;

2002년 10월 14일,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폭기를 타고 날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 주소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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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1일에는 F-16으로 비행했다. 이 날은 아폴로 15호 사령관 데이브 스콧, X-15 테스트 파일럿 조 엥글도 동참했다. 흠좀무...

그리고 2012년 10월 14일에도 음속돌파 65주년 기념으로 또 한번 비행했다고
링크 그날 모 드링크 회사 후원으로 맨몸으로의 음속의 벽이 깨졌다

2005년에는 국회 청원에 의해 예비역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강연이나 책 등으로 번 돈도 있고, 결정적으로 특정 전투기[17] 제작사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적도 있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인생의 승리자.

지금은 자기 사인 들어가있는 물품을 프리미엄 붙여서 팔고 있다. 우표나 사인 새긴 자기 동상, 여러 물품을 파는데, 동상 가격이 무려 1만 달러…. 흠좀무.#이 정도면 샬롯 피규어 팔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해외배송도 된다.

1990년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비행 시뮬레이션도 나왔다. 한국 출시 제목은 '척 예거의 공중전'. 적들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 뛰어난 AI를 가지고 있는데 놀랍게도 학습 기능이 있어서 플레이어가 자주 쓰는 공중기동에 대응까지 한다고 한다. 고전게임중 흔치 않은 비행 시뮬레이션 계열에선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정발은 동서게임채널이 맡았는데 동봉된 매뉴얼이 매우 개념넘치는 수작이었다.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으레 그렇듯 게임 매뉴얼이라기보다 간단한 비행 매뉴얼 수준으로 두꺼웠는데, 대부분의 전문용어 번역이 거의 완벽한 수준. 특히 중간중간 들어 있는 척 예거의 충고나 짤막한 경험담을 읽는 재미가 깨알같다. 다만 아래아 한글로 작성한 게 눈에 보이는 레이아웃과, 다소 조악한 편집[18]이 옥의 티. 뒤에는 본인의 인터뷰 내용도 들어 있다.

5 똘끼

당연히 의외로 똘끼가 충만한 인물이다.

상병때 후임들 모아놓고 사격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사막에 기관총을 쏴갈겼는데 그게 목장에 날아가 남의 말이 맞아죽는 바람에(...) 군법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

파일럿 교육 도중에 장난이랍시고 난로에다 마치 석탄을 집어넣듯 기관총 탄약을 아주 자연스럽게 던져 넣고는 자기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이에 불안을 느낀 동기들이 대피하려는 순간 탄약이 격발되었고,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19]

부대인근 후보생들이 애용하는 단골 아가씨집이 있었다는데 그집 마담이 이웃마을에 있는 경쟁업소로 후보생들이 몰려갈까봐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넘어가버렸고, 빡친 예거는 술마시고 패싸움을 벌였다. 출동한 마을 보안관들이 권총을 겨누자 두 손 들고 도망쳤다고, 그리고 다음날 전투기를 몰고와 그 가게의 물탱크에 기총소사를 하고 튀었다고 한다.(...)

6 기타

따지고 보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다.
빈곤층에서 태어나서, 아무런 배경도 없이 노력만으로 사병에서 장군이 된 괴물이다.
그러니까 짝대기 하나부터 시작해서 투스타가 된 인물이라는 거다.[20] 게다가 미국에선 대표적인 전쟁영웅 대접에 공군/항공업계의 대중적 스타/얼굴마담/우상/아이돌로 위인전에 등장할 정도의 세계적으로 유명인사에 부자가 되었으니 투스타 따윈 아무 것도 아니다.

1923년 출생이니 2016년 현재 93세의 노장으로 2차대전의 영웅들 중에서는 2015년에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나신 독일의 전차에이스 오토 카리우스옹을 뛰어넘는 장수를 기록하고 계신다.

가장 좋아하는 항공기는 2차대전기에서는 P-51 머스탱, 한국전쟁기에서는 F-86이라고 한다.

굇수 뉴타입 양반도 결국은 모에선 맞아서 아직 생존해있는데도 불구하고[21] 스트라이크 위치스의 주역급이자 스피드를 사랑하는 샬롯 E. 예거(퍼스트 네임 Charles의 여성형이 Charlotte이다.)가 되었다. 그것도 엄청난 흉부지방량에 나이스바디로!!!!!!!!!!

심심하면 이 다큐멘터리를 봐보자. 당대의 생존한 에이스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볼 수 있다. #

또한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다. 링크
  1. 모든 속도 기록은 수평 상태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100m 경주 기록이 내리막길을 인정하지 않듯.
  2. 폭격기에서 투하되어 미사일처럼 로켓 엔진으로 비행하는 비행기였다.
  3. 뼈가 대상이라 난이도는 비교적 높지 않은 수술이다.(외국에서는 시험에 합격한 소수의 간호사가 간단한 처방이나 수술을 대행하는데, 그 수술 목록에 들어가는 정도. 다만 흉막공간은 그래도 다리 쪽보단 위험성이 있다. 꼼꼼하지 않으면 복막부터 어딜 절개할 지를 모르니.) 절개하고 붙이고 고정하고 써쳐하면 끝. 오히려 사람(당시엔 아마 수의사라 해도 영장류를 진료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진료경험이 적은 마취나 쇼크가 문제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저혈압성 쇼크나 effusion이나 특히 마취제의 용량이 문제가 되었을 뻔 했는데 다행히 잘 넘긴 편. 어쩌면 영장류에 관한 기록을 갖고 있었거나, 인간의 마취 책을 하나 구매해서 당 용량을 봤을 수도 있다.
  4. 항간엔 지인이었다고 하지만 증명된 바는 없다.
  5. 아마 하늘을 난다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폼나잖아
  6. 이렇게 된 건 헤드온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Fw190와 헤드온 패스를 했는데 기체는 날개가 부러지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었다. 이 때 머스탱의 윈드쉴드는 MG 151/20의 탄환을 막아냈다고 한다.
  7. 사모님 성만 봐도 얼마나 글래머러스(한국에서의 뉘앙스와는 다르게 영어에서는 '매력적인'이란 뜻.)하실지 짐작이 안 간다.dickhouse 흠좀무
  8. 머큐리 세븐 중 공군 출신인 세 명이다. 나머지 넷은 해군 출신인 앨런 셰퍼드, 월리 시라, 스캇 카펜터와 해병대 출신인 존 글렌.
  9. 다만 예거를 비롯해 일부 테스트 파일럿들은 모름지기 파일럿이라면 우주에 갈 때 조종을 해서 가야지 머큐리처럼 짐짝처럼 얹혀서 올라갔다 짐짝처럼 떨어지는 것은 간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렸다. 대중에게 엄청 유명한 점은 아니지만 조종을 해서 우주에 진출한 최초의 기록은 미국의 X-15 테스트 파일럿 로버트 화이트조셉 워커, 조 엥글 등이 가지고 있다.
  10. 아무로 레이조차도 1년전쟁 종전시 소위였는데...
  11. 머큐리 우주비행사의 자격 요건에는 대졸인 미군 파일럿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12. 일단 대학 졸업장을 (예비역) 병으로 입대한 뒤 장학금을 받던지 해서 대학에 갔다가 장교로 임관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실제로 오늘날 미군에서는 그렇게 해서 장교가 되는 경우도 흔하고, 그런 사례 중에 우주 비행사 선발 사례도 있다.(STS-51-L 사령관이었던 딕 스코비의 사례) 하지만 입대 당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예거에게는 그런 여유가 보장되지 않했다.
  13. 그렇다면 터스키기 에어맨들과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대는 호위하는 폭격기 손실 0에다 프롭기로 제트기를 잡은 전적도 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붉은 꼬리날개의 천사들'.
  14. 그러나 이들 중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은 암 투병 중 서부에서 추운 워싱턴 DC까지 끌려와서 골골대던 파인만이었다. 사실 척 예거와 두 우주인과 파인만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높으신 분들이 억지로 끌어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15. 참고로 이자리에서 척 예거는 F-15에 대하여 예찬하였으며, 심지어 F-22나 여타 스텔스 전투기들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간 항공)
  16. 다만 이는 립서비스에 가깝다. 또한 월간항공이 좀 과하게 사일런트 이글을 밀어준 것도 무관하지 않고.
  17. 이때 밀었던 전투기가 F-20, 우리나라에 팔아먹으려다 시범 비행 중 추락한 그놈;;;
  18. 스플릿 S 등 항공 기동 방법 설명 일부가 중복되어 있다
  19. 사실 이런경우 탄두가 아니라 탄피가 날아가고, 가스가 다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치명적이지도 않다. 다만 눈에 맞는다면...(이하생략)
  20. 사실 미군 계급장엔 이병 계급장이 없다.알게 뭐야 적당히 비유하면 그정도지 뭐 일일이 신경 쓰면 지는 거다
  21. 뭐, 귄터 랄도 2009년 까지 생존했는데 그전에 모에선 맞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