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S-3

제2차 세계대전기의 소련군 화포
곡사포122mm M1910/30, 122mm M1909/37, 122mm M-30, 152mm M-10, 152mm ML-20, 203mm B-4, 280mm Br-5
평사포107mm M-1910 시리즈, 152mm Br-2
대전차포45mm 53K, 57mm ZiS-2, ZiS-3, 76mm F-22, 107mm M-60, 107mm M-75, BS-3, 122mm D-25T
대공포85mm M1939 52-K
주요 화포 구경100mm, 107mm, 122mm, 15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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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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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미국 소련

파일:Attachment/ZiS-3 76mm ATGun M1942 0001.png

1 제원

  • 구경 : 76.2mm
  • 전장 : 3931.9mm
  • 중량 : 1,200kg
  • 발사각도 : +37도
  • 선회각도 : 좌우 54도
  • 발사속도 : 분당 25발
  • 최대사거리 : 13,290m
  • 운용인원 : 7명

2 개요

정식명칭은 ZiS-3 M194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주력 대전차포 겸 경야포.

원래 개발목적은 경야포였으나 사실상 대전차포로 많이 쓰였다. ZiS-3외에도 많은 소련제 야포들은 기본적으로 대전차전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ZiS-3의 경우에는 발사각도가 최대 37도일 정도라서 일부러 흙을 쌓아서 둔덕을 만들고, 둔덕의 경사면 위에 대포를 끌어놓는 등의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간접사격이 불가능하다는 것등 사실상 야포로서의 지원능력은 크게 떨어져서 대전차포가 야포 노릇까지 하는 것에 가깝다.

2.1 개발

1940년 소련군은 당시 보유중이던 F-22 야포와 F-22 USV 야포보다도 경량에 제작단가가 싼 76mm 야포의 개발에 들어갔는데, 1941년에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함으로 독소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독일군의 주력전차이던 3호 전차4호 전차는 장갑이 얇아 F-22 및 F-22 USV의 철갑탄으로 대항이 가능했지만 갑자기 습격당한 초기의 전장에서 스탈린의 사수명령 남발, 대숙청으로 인한 지휘관의 부족 등으로 대다수의 F-22와 F-22 USV가 파괴되거나 독일군에게 포획되면서 상실했다.

소련군은 부대 재편성을 위해 보충용 야포를 긴급히 도입할 필요가 생겼는데, T-34KV-1 전차에 버금가는 장갑을 가진 독일의 중전차가 전선에 투입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ZiS-3는 1941년에 완성했지만 T-34의 양산을 방해한 그레고리 쿨리크 원수의 방해 및, 소련군의 F-22 USV의 증산을 우선시한 정책 덕분에 ZiS-3는 경쟁심사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공식적으로 제조가 중지되었다.

그러나 F-22 USV는 제작단가가 비싸고 포가구조가 복잡해 공정이 오래 걸려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에 스탈린은 독일전차에 대항가능한 화포생산을 허가하는 지령을 내렸으며, 그 때까지 몰래 1,000문 정도를 생산하던 ZiS-3는 그제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1942년 2월에 5일간에 걸쳐 실시된 재심사결과, 모든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한 ZiS-3는 1942년형 76mm 사단포로 공식채용되었다. 그리고 대전중에는 45,000여문이 양산되었으며, 총 생산량은 103,000문 이상으로 파악될 정도로 대량 양산되었다.

2.2 특징

ZiS-3는 ZiS-2 57mm 대전차포의 포가에 F-22 USV 야포의 포신과 주퇴복좌기를 탑재한 형으로 개발되었다. 포가의 경량에 의해 주퇴기와 복좌기가 견디지 못하며, 발포시 전복될 위험성이 있었기에 포구에는 76mm급 사단용 야포로는 처음으로 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주퇴기와 복좌기는 유압식으로 만들고, 덤으로 폐쇄기도 반자동으로 만들어서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되도록 하였다. 또 ZiS-2 대전차포의 포가는 각도조절 핸들이 포 좌측에 집중되어 있어 조준조정은 1명으로도 충분했다.

발사각은 F-22 및 F-22 USV와 비교시 약간 떨어졌지만 야포 및 대전차포로의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또 제작단가도 포가의 간략화로 인해 F-22 USV의 3분의 2 정도 비용이면 충분했다. 당시의 소련군 유탄포 및 야포는 각도조절장치가 모두 우측에 있었기에 조준에는 두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독일군이 포획한 F-22 야포는 7.62cm Pak 36(r)로 개조시 각도조절 핸들을 좌측으로 옮겼다.

ZiS-3는 1개 사단에서 1개 대대당 12문으로 배치되거나 6개 중대 24문으로 편성된 독립전차연대에서 사용했다. ZiS-3는 주로 직접화력 지원용으로 투입되었지만 대전차 전투에도 사용되었다. 또 차량탑재형의 ZiS-3Sh는 SU-76대전차 자주포의 주포로도 이용되었다. 포탄의 발사속도가 매우 고속이라 착탄 후 발사음이 날 지경이었기 독일군에게 이 포는 Ratsch-Bumm(찍-쾅)[1]으로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2.3 여생

전후 ZiS-3는 예비화포로 퇴역했지만 대다수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과 중동, 아프리카,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의 친소국가에게 제공되어 현재도 일부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역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북한군은 해안경비부대와 보병연대 직할 포병대에서 해안포, 대전차포등 다목적으로 사용된다. 또 현재 러시아에선 대조국전쟁의 승전재현 이벤트를 위해 소수의 ZiS-3를 보관중이다.

윗동네에선 인천상륙작전북 해군의 월미도 수비대가 이 포 4문으로 미국 해군 구축함 수 척을 격침시키며 3일을 버텨냈다 한다.[2]

그런데, 이것이 2015년 들어 밀덕들의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슨, 2015년 8월20일에 발생한 서부전선 포격 사건에서 북한군이 고사총 사격후 2차도발로 이 포를 사격하였는데, 탄 궤적이 직사에 가깝고 구경이 작은 탓에 탐지와 발사원점 추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3] 포탄의 탄착은 장병들의 육안으로 확인이 되었다. 위력과 명중률은 형편없지만 뛰어난 신뢰성, 무지막지한 운용수량, 추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극소수의 밀덕을 중심으로 적 포병전력에서 그동안 쓸모없으리라 판단한 것이 경솔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2.4 평가

전문적인 대전차포로 개발된 것이 아닌 사단용 경야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련군 최고의 대전차포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저렴한 생산비용을 가지고 빠르게 양산이 가능하며, 운용하기 편하고, 발사속도도 빠르며, 보병을 지원하는데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소련군이 여러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원래 야포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관통력은 500m 에서 90도 각도의 장갑판에 명중했을 때 75mm 정도만 관통이 가능하므로 3호 전차 및 4호 전차조차 장갑이 개량되면서 정면에서는 격파하기 힘들어졌고 판터티거를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판터를 상대로 할 땐 장갑이 얇은 측면을 노리거나, 주포 방패를 근거리에서 노리면 도탄효과로 인해 포탄이 얇은 상부장갑을 관통하므로 파괴가 가능했지만 티거에겐 이빨이 먹히지 않았다. 일단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티거 1대를 상대로 최대 12문의 ZiS-3이 일제사격하기도 했지만 잘 해봐야 일시적인 전투불능 상태에 몰아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때문에 소련군은 1944년에 보다 대구경인 D-44 85mm 야포와 BS-3 100mm 야포를 개발하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2차 세계대전 내내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전 모델인 57mm ZiS-2보다도 대전차 관통력이 부족하여 1943년에 ZiS-2가 판터와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 재투입되었다.[4]

이후 6.25 전쟁때도 등장하여 한국군을 괴롭혔다. 이미 구식인 소형화포지만 근성으로 도수운반을 하여 산악지대에서 굴리는 이른바 산악포로 운영했는데 대전차포로 사용가능한 명중률을 가진 만큼 아군의 방어진지에 명중률 높은 직사공격을 해서 무척 괴로웠다는 참전용사들의 증언이 있다. 위력이야 야포나 박격포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들은 솔직히 로또성이고 산비탈을 파서 만든 방어진지에는 큰 데미지를 주기 힘들었는데 이 ZiS-3이나 가벼운 SU-76같은게 기어올라와서 직사포격을 가하는건 초기 한국군에게 공포였다고 한다.
  1. 찢어지고(착탄 후의 상황) 폭발하는 소리(포성)의 독일어 의성어
  2. 물론 개뻥. 북 해군이 상륙 작전 당일에 월미도에 수비대를 배치해 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한미 해병대의 공격에 두 시간도 못 버티고 반수가 불도저에 의해 진지에 생매장당하는 등으로 죽고 나머지가 항복하면서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전멸했다. 이 때 북 해군측 전과는 달랑 아군 사살 1명(...). 북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영화도 만들었는데, 속지 말자. 영화 보러가기 체제 찬양할 목적이 아닌 단순 시청이라면 위법이 아니니 안심하고 보자. 근데 왜 유튜브가 나오지 크롬이라 그런가
  3.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직접적인 피격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위의 원인도 무시할 수 없다.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