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전차 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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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당시의 색채사진. 좌측은 후기형이고 우측은 전차 에이스 요하네스 뵐터 대위가 탑승한 초기형 티거이다.
오토 카리우스의 217호차 티거. 중기형이다. 1번 전륜의 외측 한장이 빠져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기동륜과 로드휠 사이에 진흙등의 이물질이 끼어 기동에 방해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것이다. 그 뒤의 완충 고무가 빠져 나간 로드휠도 사진으로는 잘 남아 있지 않은 보기 드문 모습.
소뮤아 박물관의 후기형 티거. 이 차량은 수송용 궤도를 장착했다.
6호 전차 티거 제원표
전체길이8.24m
차체길이6.20m
전체너비3.73m
전체높이2.86m
주포높이2.19m
전비중량56.9t
탑승인원5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무전수)
엔진초기형 : 마이바흐-HL21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중, 후기형 : 마이바흐-HL23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엔진출력 - 회전수700HP - 3000rpm
600HP - 2500rpm
배기량HL210 : 21,000cc
HL230 : 23,000cc
연료적재량534L
연료소비량535L / 100Km (도로)
최고속력45km/h(도로)
20km/h(야지)
항속거리100km(도로)
60km(야지)
중량당 마력12.3Ps/t
현가장치토션 바
변속기Olvar 401216
(전진8단 후진4단)
조향장치 / 구동륜 위치메리트 마이바흐 / 전방
선회반경3.44m
무한궤도 폭 / 매수72.5cm / 좌,우 각 96매
접지길이 / 접지압력3.51m / 1.04Kg/㎠
초호능력2.30m
초월능력79cm
등판능력35도
도하능력1.20m
주포조준장치TZF 9b(2.5배율) / TZF 9c (2.5 / 5배율 선택식)
포탑회전방식수동 및 유압겸용
무장36식 56구경장 8,8cm 전차포 ×1 (92발)
7.92mm 기관총 MG34 ×2 (4,200발)[1]
9mm 기관단총 MP40 ×1 (전차병 휴대용)
장갑차체 전면 상부 102mm / 9도
차체 정면 중부 62mm / 80도
차체 정면 하부 102mm / 24도
차체 측면 상부 82mm
차체 측면 하부 62mm
차체 후면 82mm / 8도
차체 상면 26mm
차체 바닥 26mm
포방패 90~150mm
포탑 전면 100mm / 8도
포탑 측면 82mm
포탑 후면 82mm
포탑 상면 26mm / 81도 ~ 90도[2]
큐폴라 50~80mm

1 개요

히틀러의 기갑부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전차가 있다. 독일 6호 전차, 일명 타이거라는 무기다. 전장에 나간 타이거는 마치 맹수처럼 상대를 잔인하게 학살하는 사냥꾼이었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독일 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우리 전차병들은 티거 전차의 성능에 완벽히 만족했으며 우리 보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전차를 가지고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의 힘겨운 방어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평화를 누리는 티거 전차병 출신이라면 마땅히 이 명품 전차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 오토 카리우스, '진흙 속의 호랑이' 中

제2차 세계대전독일군이 개발/운용한 중전차. 정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 (6호 전차 H형)이었다가 1943년 3월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 (6호 전차 E형)으로 재명명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역시 Tiger I[3] 그러니까 '티거' 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어원은 당연히 호랑이. 무기 역사상 별칭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녀석도 드물다.

공돌이를 마구 갈아넣고 외계인을 고문해 만든 것이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만큼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던 전차. 워낙 강력한 포스를 보여준 덕분에 티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지상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관련분야에서 유명하고 인기도 많다. 물론 전차 자체만 놓고 본다면 티거 2가 더 우수하지만 활약상이라던가 인지도에서 밀리는편.

잡설이지만 한국 매체에서는 이 전차 이름의 한글 표기를 놓고 좀 혼동이 있다. 일단 원어 발음은 티이거에 근접하지만 한글외래어 표기법장음 표기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티거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긴 하다. 1980년대까지는 영어식 발음인 타이거로 많이 불리다가 1991년 등장한 호비스트에서는 '오리지널 독일어식 발음'이라면서 티이거라고 불렀다. 일본 위키에 따르면 일본은 1970년대 후반까지 알파벳을 일본식대로 읽어 티게르「ティーゲル」 혹은 타이가「タイガー」라고 부르다가 이후에 독일 식발음인 티이가「ティーガ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호비스트는 이 일본의 표현을 따라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는 일본잡지가 최신정보를 입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이걸 배끼는게 국내 잡지계의 관행이었기 때문(당시에 일본어 능력자들이 취업하기 가장 쉬운 곳이 잡지사였다). '티이거' 표기는 호비스트에서 싸우고 뛰쳐나와 만든 사람들이 만든 책인 모델러2000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6년 호비스트에서는 표기법을 티거로 바꾸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형 메이커인 아카데미과학에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자사의 해당 전차 모형 상품명에 타이거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타이거', '티이거', '티거' 3가지 표기가 난무하고 있다(사실 취미가 내부에서도 표기가 오락가락했다).

형식번호상 6호 전차라고는 하지만 5호 전차 판터보다도 앞서 개발되고 배치되었기에 대전 후기에 대세를 탄 경사장갑이 아니라 전통적인 대전 초기 독일군 전차의 특징인 수직방향 장갑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티거를 보면 상자곽 혹은 꼭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4]

1942년 초반에 생산을 개시하여 1942년 9월 23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데뷔하게 된다. 총 4대가 투입되었으나 초기불량 문제에 소련군의 화망에 걸려 전부 주저앉아 버리는[5] 굴욕을 겪는다. 투입된 전장도 소련군이 이미 정조준하고 노리고 있는 좁은 곳인데다가 티거에게는 걸맞지 않은 늪지대나 연약지반이 많아서 이렇게 영 안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티거는 몇가지 결함이 수정되며 운용교리가 정립된다.

1943년 1월 온전하게 노획된 티거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

하지만 티거의 진가가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2년 12월 20일, 튀니즈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 항구에 도착하여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된 티거를 장비한 1942년 5월에 창설된 501 중전차대대는 이미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이 신나게 밀리는 상황에서 부대 자체도 티거를 완편 장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6] 11월 8일에 알제리로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이후 3월 13일에 추가로 지원온 504중전차대대 1중대가 합류되면서 5월 17일까지 150여대의 미군 전차를 날려버리더니 카세린 전투에서 미1기갑사단을 격파하며 10대의 피해만 입는 대활약을 펼쳤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항복할때까지 티거는 총 7대의 전투손실을 입었으며 그동안 300대가 넘는 영연방군과 미군의 전차를 격파했다.[7] 티거의 볼쌍 사나운 데뷔전을 기록했던 502중전차대대는 1942년 말부터 계속된 레닌그라드를 해방시키려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 중전차 대대 중에서도 특출난 활약으로 수백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리며 이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거기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선 중대 단위로 투입된 티거가 하르코프 북방에서 펼쳐진 소련군 기갑부대의 반격을 분쇄해내며 티거의 위력을 톡톡히 보였고,[8] 여기서 티거는 설원에서의 기동전까지 수행해 내는 능력을 보였다. 한 예로 이 무렵 티거 2대가 T-34 수십여대와 교전하여 16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소련 전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을 추격하여 18대를 추가로 격파했다.

그리고 전쟁 중반기 이후 각 전선의 독일군이 끝없이 패퇴하던 무렵에도 노련한 전차병의 경험과 맞물려 다대한 전과를 기록했다.

티거는 대전기간 내내 우수한 방호력으로 승무원들을 지켜주며 무수히 많은 전차 에이스들을 배출하였다. 요하네스 뵐터 139대 이상[9], 오토 카리우스[10] 150대 이상, 쿠르트 크니스펠 168대 이상[11], 미하엘 비트만 138대 이상[12], 마르틴 슈로이프 161대 이상[13], 알베르트 케르셔[14] 100대 이상 등, 티거는 100킬이 넘는 격파수를 찍은 괴수를 10명 이상 배출하였다.[15]

단, 티거가 막강한 전차인 것은 맞지만 무적은 절대 아니다. 서부전선에서는 M4셔먼의 76mm HVAP탄은 논외로 치더라도[16], 76mm M62 피모철갑탄이나 M79 경심철갑탄에는 9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면 관통될 위험이 있었고, 측면이 노출될 경우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뚫릴 위험이 높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90mm 대전차포 혹은 그것을 장비한 M36 잭슨은 원거리에서도 17파운더보다 더 정확하고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영국의 경우 17 파운더 대전차포나 그것을 장비한 셔먼 파이어플라이 경우는 명중률로 까이는 APDS 말고도 그럭저럭 쓸만한 명중률을 보인 APCBC탄으로도 멀리서 티거를 거꾸러트릴 능력이 있었다. 동부전선으로 가면 SU-152, ISU-152 의 주포이며 일반 견인포로도 사용된 152mm ML-20 곡사포의 무지막지한 고폭탄의 위력 때문에 차체 자체가 뭉개진다. 더불어 운용하는 지휘관이나 승무원이 미숙한 판단을 내릴 경우 502 중전차 대대의 볼썽 사나운 데뷔전만 되풀이 될수 있음은 덤이다. [17]

1.1 개발

티거 개발의 시초는 193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5년 7월 쿠머스도르프 기갑훈련 종료 후 결과분석에서 15톤급 주력전차, 20톤급 지원용 중형전차, 30톤급 적 전선 돌파용 중전차의 개발요구가 제시되었는데 이중 15톤급 주력전차 계획안은 3호 전차, 20톤급 중형전차 계획안은 4호 전차, 그리고 마지막 30톤급 중전차 계획안이 바로 티거의 개발 프로젝트가 된다.

처음 제시된 30톤급 중전차 개발 계획은 DW(Durchbruchswagen, 두어히부룩스바겐 : 전선 돌파차량)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3호와 4호로는 접근 자체가 어려운 요새화된 방어선에 두터운 방어 장갑으로 둘러친 견고한 방어력을 기반으로 적의 십자 포화를 맞으면서 밀고 들어가 진격로를 개척하는, 중전차로서의 개념이 처음으로 제시된 프로젝트였으며1939년 초 VK 30.01라는 이름을 받았으나, 화력과 장갑의 부족으로 같은해 새로이 VK 65.01 설계와 80톤급 '포전차'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940년 프랑스 전역의 전훈을 받아들여 두 프로젝트가 모두 폐기되고 대신 '포전차'의 10,5cm용 포탑을 경량화하여 장갑을 증강한 VK 30.01 차체에 올리는 VK 36.01 계획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0,5cm 주포는 본디 곡사포로 대전차화력은 의심스러웠으며 이에 게라트 725 7.5cm 구경 감소포[18]의 탑재를 고려하였다.

동시기, 독자적으로 VK 30.01 설계에 참여한 포르쉐사는 1941년 8,8cm 주포를 탑재한 VK 30.01 (P)를 완성시키고 성공적으로 시험운행하였다. 두 차량은 차기 중전차후보를 놓고 실질적으로 경합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1941년 5월 히틀러가 구경감소포 탑재에 딱지를 놓으면서 일단 포르쉐사의 손을 들어주는 한편 양사에 현 설계의 장갑을 늘리도록 주문하면서 45톤급 중전차 VK 45.01의 설계를 놓고 양사의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바르바로사 작전과 모스크바 공방전의 전훈에 따라 VK 45.01의 최종 설계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이 반영되었다.
1. 요새화 된 소련군의 전선 돌파를 위하여 ZiS-3 대전차포에 대하여 전방위 지근거리에서 생존가능한 방어력을 확보할 것.[19]
2. KV-1, T-34전차는 물론이고 콘트리트 벙커도 일격에 격파할 수 있도록 88mm 대공포를 올릴 것.[20]
3. 모스크바의 눈밭과 열악한 소련의 도로 사정을 고려하여 접지압 분산에 충분히 신경 쓸 것.
4. 45톤의 중량은 독일 공병의 표준 부교 가설능력이나 유럽의 일반적인 교량 제한 하중을 까마득히 넘어버리므로 수심 4m의 도하 능력을 갖출 것.

결국 1942년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날을 최종 기한으로 양사의 시제품의 경합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때의 시제품 개발 일정은 매우 가혹했던지라 헨셸사는 도저히 무리라고 징징댔고 그 결과 포탑은 포르셰사에서 설계한 것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으로 차체만 경합 테스트 하게 된다. 포르셰사 역시 기차역에서 최종 조립을 할정도로 준비는 촉박하게 진행되었다. 경합이 시작되고 헨셸사의 VK 45.01 (H)는 주행중 엔진에 화제가 일어났다. 반면 포르셰의 VK 45.01(P)의 경우도 널리 알려진 문제였던 야지 기동은 성공했지만 오히려 도로 주행에서 퍼져버렸다고 한다. 어찌됐던 최종적으로 군부는 헨셸사의 VK 45.01 (H)에 손을 들어주었다. 독일어 위키피디아의 최신 갱신내용에 따르면 포르셰 박사는 히틀러에게 양사의 테스트가 박빙이었고 하이브리드 기관의 완성을 장담하여 양사의 프로젝트를 모두 양산하자고 히틀러에게 건의하고 히틀러는 하이브리드 기관의 완성까지 3개월을 주고 동시에 여름 안으로 헨셸사에 45대, 포르셰사에 90대의 양산을 명령했다고 한다.(이에 맞춰 각각 45대 완편으로 헨셸 티거 기반의 502중전차대대, 포르셰 티거 기반의 501 및 503중전차대대가 편성 및 훈련이 진행된다.) 이와는 다르게 워게이밍의 문서에 따르면 히틀러는 전차가 급히 필요했으므로 양사 모두 양산하라 명령했다고 서술된다. 어찌됐든 헨셸의 티거는 양산에 차질이 있어 3호전차 N형과 혼성편성 하게 되고 포르셰사의 티거는 양산납기였던 9월까지도 하이브리드 기관 완성에 실패하여 10월 중 알베르트 슈페어가 재심사 후 발주를 취소한다.

사실 VK 45.01의 개발도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주포 탑재 문제가 이유였다. 대공포를 전차포로 전용한 8.8cm 주포는 당시로서는 독일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 중에서도 손꼽히는 관통력을 자랑했지만 독일군이 원하는 수준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라인메탈 사에서는 7.5cm 장포신 전차포를 개발하는 중이었고 독일군 상층부는 이 주포에 눈을 돌려 티거에 탑재할 계획을 세운다. 7.5cm 주포에 맞춘 새로운 포탑도 설계했다.

이러한 선택엔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개발 당시 8.8cm 56구경장 포와 7.5cm 70구경장 포는 관통력 차이가 거의 없었던데다[21] 7.5cm은 구경이 작기 때문에 더 많은 탄약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행양산분에만 8.8cm 주포를 탑재하고 이후 본격적인 양산형에는 새로이 설계한 라인메탈 포탑과 7.5cm 주포를 탑재하여 출고하기로 계획하기에 이르나 8.8cm 주포용의 신형 철갑탄이 개발되어 상기한 관통력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포/포탑 교체안은 없었던 것이 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VK45.01은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저 70구경장 7.5cm주포는 후에 판터의 주포가 된다.

2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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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의 내부 구조도.

2.1 방어력

차체전면은 100mm, 포탑전면 최대 120mm, 측면과 후면 80mm, 차체 측면 하부 60mm, 상하 장갑은 25mm(후기형 40mm)의 장갑을 골고루 둘렀으며 마레이징 강판을 교차로 끼워 용접하여 장갑이 쉽게 깨지는 일이 없었다. 영국군은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티거의 차대로 실험한 결과 티거의 장갑은 동급의 영국 장갑보다 1~7% 가량 우수하다고 판단하였다. 티거의 설계 당시에도 경사장갑의 이점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나[22], 중량과 휴행탄수에 대한 설계상의 고려로 직선으로 이루어진 상자같은 모양으로 설계됐으며 포탑 측면만이 곡면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사각형의 구조는 소련이 경사장갑을 채용하여 좁아진 전차 내부에 승무원들을 사실상 구겨 넣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쾌적한 내부 환경을 만드는 장점을 가져왔다. 이는 필연적으로 방어력 대비 중량의 증가라는 단점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내적공간이 넉넉해져서 휴행탄수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었다. 보통 88mm포탄을 92발에서 100발까지 실었고 일선 병사들이 토션바 사이의 공간에 포탄을 끼워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110발까지 싣고 다녔다. 많은 휴행탄수는 티거 전차의 지속적인 전투능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3]

1942년의 시점에서, 각국의 주력 대전차포로는 티거를 격파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소련의 ZiS-3의 경우 영거리 사격으로도 어림없었고 영국의 6파운더의 경우 측 후면을 30도 각도 이내에서 300m 거리까지 공략이 가능했지만 탄자붕괴현상이 극심하였다(그러니까 포탄이 깨진다). 영국군은 6파운더로는 앞으로 등장할 독일 중전차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당장 이거 말곤 쓸 것도 없고 마땅히 대체할 물건도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써야 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에서 최소 한 대 이상의 티거를 6파운더로 격파[24]하였고 마켓가든 작전 당시 아르헴 철교 돌파를 시도한 '둥키르헨 구원 임무 중전차 중대'도 결사적으로 항전한 영국 공수부대의 PIAT와 6파운더 대전차포의 십자 포화에 1량의 티거를 상실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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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S-3 대전차포와 6파운더에 대한 티거 터렛의 클로버 시뮬레이터(노랑색은 탄자붕괴 영역, 주황색은 거의 관통되지 않은 영역)[26]

소련은 처음에는 티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티거의 맹활약을 보고는 1943년부터 급박하게 대응책을 모색한다. 붉은군대는 스탈린의 명령으로 25일이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SU-152를 개발하여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 티거 12대, 엘레판트 7대를 격파하였다고 "즈베라포이"(맹수사냥꾼)라는 별명을 붙여가며 전과를 선전했으나 최신 연구자료에 따르면 SU-152가 격파한 독일군 차량의 차종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쿠르스크 전역에서 입은 티거의 전투손실은 단지 10대에 불과했고 이들은 대부분 대전차지뢰에 당했다. (궤도 폭이 굉장히 넓었던 티거는 대전차 지뢰를 밟는 일이 자주 있었다.) 소련은 쿠르스크의 페르디난트/엘레판트잔해들을 조사한 결과 152mm 주포의 피탄흔적을 단 한 곳도 찾지 못했으며, 독일측은 152mm주포에 의해 완파된 중전차는 5호 전차 판터 1대뿐이라고 주장했다.[27] 당시 엘레판트를 장비했던 654중구축전차대대의 전투 일지에는 SU-152의 고폭탄에 다수의 엘레판트가 격파되기는 하였으나 완파된 차량은 1대이며 나머지는 모두 그날 밤 복구되어 전투에 투입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28]

각국은 대 티거를 위한 대전차포 개발에 열을 올려 43~44년경 영국군은 17파운더를, 미군은 M7 대전차포, 소련군은 85mm 대전차포를 개발한다. 이들이 주력으로 배치된 44년부터 티거는 더이상 옆구리를 까고 돌진하며 활극을 펼치는 무쌍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1~2년이라는 기간동안 전차병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신병으로 채워진 미국과 소련의 승무원들과는 달리 계속해서 살아남으며 경험을 쌓아온 티거전차의 베테랑 승무원들은 압도적인 전투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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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7파운더, 미국의 76mm, 소련의 85mm대전차포에 대한 티거의 방호력 클로버, 티타임을 잡은 티거는 아직 격파가 불가능하다. 이들은 측면에서 티거를 충분히 잡을 수 있었지만 17파운더을 제외하면 티거와 정면에서 포화를 주고받는건 현명한 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노르망디 상륙당시 미군 지휘부는 이 점을 놓치고 있었다.

하지만 두터운 장갑을 활용한 티타임을 걸고 버티는 티거는 여전히 막강한 위용을 과시하였고 이에 각국은 한번 더 강력한 주포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 76mm M1A1로도 별 성과를 못낸 미군은 90mm 대공포를 전차포로 개량하고, 소련도 100mm대전차포를 배치한다. 이로써 연합군은 드디어(?) 티타임을 잡은 티거도 원거리에서 쉽게 격파할 수 있었고 이 때 독일군도 티거의 생산라인을 티거 2로 변경, 생산을 종료했다.

장갑의 방호력뿐 아니라 전차의 내부 구조도 탁월해서 영국 제2작전연구과가 1944년까지의 통계를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티거는 전투불능이 되기까지 평균 2.6발의 관통탄을 맞아야했다. 이는 판터의 1.9발, 4호전차 1.2발, 셔먼 전차 1.55발과 비교해 괴랄하게 높은 수치였다. 다시 말해 관통탄을 맞고도 전투에 필요한 핵심 장비들이 망가지거나 승무원들이 사망하는 확률이 매우 낮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티거 전차 내부가 사각형 구조여서 매우 넓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장비들과 승무원들이 전차 내부에 넓게 분포해 있어 일격에 다같이 날아갈 확률이 적었던 것.

2.2 공격력

파일:PpmX7qh.gif
관통력에 대한 정보는 8,8cm FlaK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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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ZF9b 조준기의 거리 측정망. 전차와 삼각형의 크기 비교로 목표거리를 계산,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티거의 주포는 고성능 머즐 브레이크, 안정된 중량의 차체와 서스펜션 덕에 기존 8.8cm 대공포보다 훨씬 정교한 사격이 가능했고 8.8cm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구경으로 장전 속도도 빠르며 적 전차를 격파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추가로 장치된 칼 자이스 TZF9b 광학 조준기의 품질도 우수했는데 2.5배(후기형5배)까지 줌이 가능했고 독특하고도 쉬운 거리 측정 방법으로 장거리에서도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할 수 있었다. 덕분에 1~2km 밖의 적 전차를 저격한 사례도 제법 있는 편이다. [29]

1943년 4월 21일에 영국군은 제펠자파에서 거의 손상되지 않은 501 중전차대대의 3소대 소속의 131호[30] 티거를 노획한다. [31] 영국군이 이 차량을 분석한 결과 티거의 명중률과 기동간 사격 등에서 극찬을 내렸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오토 카리우스가 사망하기 얼마전(2014년 말) 했던 인터뷰에서 "기동간 사격은 명중률이 너무 떨어지기도 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거든요."라며 티거의 기동간 사격 능력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부무장으로 포탑 정면에 MG34 중기관총, 그리고 무전수 위치에도 동축 기관총으로 MG34를 장비했다. 장탄수는 각 4,500발. 차내에는 비상상황을 대비하여 M24 StielhandgranateMP40 기관단총이 상시 비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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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에 장비된 연막탄 발사기겸 지뢰 발사기, 포탑에 장비된 연막탄 발사기는 현지 개수로 떼어내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S마인이라는 도약식 대보병지뢰를 발사할 수 있었는데 대보병 효과는 만점이었으나 적의 소화기 집중사격 등으로 오작동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중기형부터는 폐지되었다. 이 장치가 오작동 될때 옆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폐지한 이유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2.3 기동력

티거에 채용된 마이바흐-HL210 P45엔진은 최대 650마력으로 당시에는 세계최고 출력의 가솔린 엔진이었지만 전투중량 57톤의 거구를 움직이기엔 충분치 않았다. 중기부터 HL230 P45엔진으로 교체 최대 출력은 700마력으로 증가한다. 최초 투입되었던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엔진의 화재결함이 발견 되었고 티거는 최대속력을 내지 말고 다른 차량을 견인하지 못하는 조치가 취해진다. 또한 최초로 온도 센서에 전압으로 접점 동작을 시켜 소화분말을 분사하는 자동소화장치를 장착하였다. 유압식 조향장치, 전진8단 후진4단의 반자동변속기도 최초로 탑재되었다. 이 변속기는 운전이 쉽고 선회반경도 놀라울정도로 작았지만[32] 신뢰도가 낮았고 경사면 주행시 고장이 심해 운전자에게 세심하고 부드러운 조작이 요구되었다.[33]

티거의 중량문제로 교량통과가 어려워 도하를 위해 차체는 전부 방수처리되었다. 슈노켈을 장착하면 도하는 4m까지 가능했다. 이 방수처리와 수압 테스트 과정에서 티거 개발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고 알려졌으며 잠수능력을 포기한 중기형부터 제작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어차피 야지에서 도하를 한다는 것이 이런저런 준비시간도 많이 걸리고[34] 위험했기[35]에 잘 쓰이지 않았다. 방수처리를 포기한 티거도 1.6m의 수심까지는 그럭저럭 도하가 가능했다고 한다.

토션 바 구조와 3중 로드휠. 티거의 구동계는 특히 충격에 강해서 야지에서 고속주행시에도 차체는 안정을 유지했으며 주포를 발사해도 차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3호 전차에서 완성하고 티거에 채용된 토션 바 서스펜션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선진적 구조였으며 특히 충격 흡수가 뛰어났고. 무거운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로드휠은 3개를 교차하는 식으로 배치하고 광폭의 궤도를 장착하였다. 이 때문에 티거는 우수한 접지압과함께 하부 방어력이 증대 효과를 보았다.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4호 전차(28톤)보다 오히려 더 기동성이 좋은 면도 많았고 처음 T-34와 동계전투에서 교전한 전차병들은 심지어 T-34보다도 기동성이 좋다고 느꼈을 정도다.

교차식 로드휠은 하중 분산에는 좋은 설계지만 정비 시 고장난 한 개 이상의 로드휠 때문에 나머지 수십개의 로드휠들이 모두 정상이라도 몽땅 떼야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정비 비용 + 난이도 + 시간이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버렸다. (다르게 생각하면 로드휠이 자그마치 수십개다. 무슨 말인가하면 로드휠 몇개 나가도 무리없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또 전면 변속기를 수리할려면 포탑에다가 차체 상부를 모두 들어올려야 해서 그야말로 T-34, 셔먼 잡는 것에 비례해 유지 및 정비성이 아주 안좋았다. 후대 전차들도 독일 전차의 설계개념은 받아들여도 이런 바퀴 겹치는 방식인 오버랩 설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따라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정비 방식이다. 결국 유지보수 문제로 후기형에선 로드휠의 재질을 강철로 바꾸고 최 외측 로드휠은 제거해버린다.

열차에 적제된 티거, 열차밖으로 나온 티거의 궤도를 확인할 수 있다. 티거는 열차칸에 연속 배차할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지켜지는 사진이 많지 않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구동계통의 수명은 매우 좋지 않아서 티거는 모든 전략기동을 열차수송에 의존했고 절대로 자력주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두꺼운 궤도때문에 독일의 열차 설계 폭을 넘어버려 마주오는 열차나 철로위의 다른 구조물과 충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열차 수송용 궤도를 별도로 두고 이송시마다 궤도를 환장해야했다. 전술기동을 위해 전략기동력을 희생한 것이다. 이 문제는 티거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전투단 규모의 부대가 포위망을 탈출하거나 먼거리를 후퇴할 상황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티거는 자폭하거나 뒤에 남겨져 추격을 막는 역할을 수행하며 산화되었다. (이는 티거2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티거의 최고속도는 이론상 45km/h로 사실 T-34에 별로 안 꿀린다. 야지 기동성에서도 무리해서 굴리면 비슷한 속도를 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야지 기동성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수준, 즉 20km/h 정도였다. 다만 트랜스미션 및 종감속기에 가해지는 부하의 강도는 전차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큰 편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T-34보다 티거의 야지 기동시 부담이 더 큰 게 정상이었다. KV라면 티거보다 더 사정이 나쁘기 십상이고... 그런데 현실은 부품의 품질유지 및 설계상 배려 문제,그리고 승무원들의 숙련도 때문에라도 티거가 T-34보다도 나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전차전은 카 레이싱이 아닌지라 단순히 최고속도나 중량대비 출력이 전부가 아니다. 광폭의 궤도로 회전반경이 적었고 당시의 자동차도 일부만 적용된 유압식 파워핸들을 갖추는 등 조향장치가 훨씬 고급이었으며 전/후진 기어도 더 다양했다. T-34의 조향능력이 어찌나 한심했는지 독일군 사이에선 "오리 궁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 하지만 흔히들 속도=기동성으로 오해하다 보니 많은 매체에서는 중장보병같은 전차라고 소개하곤 한다.

반면에 연비가 매우 나빴다.이는 티거의 작전능력을 크게 제한하였는데 대전 중반부터 소련군은 주공 포인트를 여러 방향으로 돌려가면서 티거의 재배치를 강요했고 서부전선에서는 안그래도 연료부족에 시달리는데다 제공권을 상실해버리면서 전투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노르망디 상륙당시 공습으로 파괴된 철도망때문에 티거들은 전부 자력주행으로 전장에 가야했으며 상당수가 주행 중 전력에서 이탈했다. 노르망디 전역에서 상실한 티거중 약 10%만이 공습에 의하여 격파되었으나[36] 항공기를 피하기 위해 연료를 낭비하거나 기동로의 제약, 매복 포인트의 상실 등 전투우위를 점할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간접 피해가 야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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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로부터 피격당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찰기로부터 발각되지 않도록 기동흔적을 지우고 매복한 모습

3 운용

티거는 거의 대부분이 집단군, 군단, 전투단 직할 독립 중전차대대로 편성되었으며 거의 항상, 가장 격렬한 전장으로의 투입을 강요받았다. 티거는 무리한 중량과 상기된 단점들 때문에 별도의 정비팀, 보급팀, 수송팀이 붙어야 했으며 보급순위도 최우선적이었다. 각 중전차 대대는 4개 차량이 1개 소대로 편성되며, 3개 소대에 중대장 직속으로 2개 차량이 모여 14대가 1개 중대, 여기에 3개중대+대대장직속 차량3대로 45량이 완편 규모가 된다. 정비팀을 위해 별도의 중전차 시제차량들이 개조 후 지급되기도 했다. 더딘 생산속도 때문에 45대를 완편하고 있던 상황은 흔치 않았다. 동시에 최대로 배치된 티거의 수는 1944년 7월 기준로 671량에 불과했다. 그리고 단 두달동안 300대이상을 손실하면서 1944년 말에는 중전차 전력의 핵심은 티거 2로 변경된다.

티거를 운용했던 각 중전차대대의 목록과 참전한 전장은 중전차대대항목 참고.
티거는 중요 장비였던 탓에 한대 한대의 손실이 대부분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겨졌고 각 중전차 대대의 전투일지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 등등으로 출판되어있다. 상세한 손실과 충원 요약은 다음 링크에 정리되어 있다. [1]

각 중전차 대대의 kda 기록
UnitLossesKillsKill/Loss Ratio
schwere Panzer-Abteilung 501 (424)1204503.75
schwere Panzer-Abteilung 502 (511)1071,40013.08
schwere Panzer-Abteilung 503 (Feldherrnhalle)2521,7006.75
schwere Panzer-Abteilung 5041092502.29
schwere Panzer-Abteilung 5051269007.14
schwere Panzer-Abteilung 5061794002.23
schwere Panzer-Abteilung 5071046005.77
schwere Panzer-Abteilung 508781001.28
schwere Panzer-Abteilung 5091205004.17
schwere Panzer-Abteilung 510652003.08
13./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610016.67
Ⅲ./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985005.10
13./SS-Panzerregiment 1424009.52
8./SS-Panzerregiment 2312508.06
9./SS-Panzerregiment 3565008.93
schwere SS-Panzer-Abteilung 101 (501)1075004.67
schwere SS-Panzer-Abteilung 102 (502)766007.89
schwere SS-Panzer-Abteilung 103 (503)3950012.82
Total1,7159,8505.74

이 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티거의 손실(Losses)은 연합군 전차 뿐만 아니라 항공기 폭격, 야포 등에 의한 다른 전투손실을 비롯해 유기, 승무원에 의한 자폭, 부품수급을 위한 해체[37]까지 포함한 티거 총손실이다. 전차 대 전차의 순수한 교환비는 앞서 말했듯 1:10을 넘는다.[38] 그러나 티거는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단점을 감수했고, 그결과 일어난 손실이 전투 손실이건 비전투 손실이건 병기로써 가치를 평가하는데 차별을 둘 이유가 없다는 비판도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티거는 주로 공세의 선봉에서서 적의 화력을 받아내며 방어선을 뭉게는 임무를 담당했으며 소련의 공세에 시달리던 시점부터는 기동방어의 핵심전력으로 활용되었다. 전선을 뚫고 밀려들어온 소련의 전차군단이 통신이나 보급 한계선에 도달했을때 티거 전투단들이 이들을 섬멸했다. 대전 후반에는 강력한 주포와 넉넉한 휴행탄수의 장점을 활용 방어전의 화신이 되어 영국과 소련군은 전선의 주요 교두보마다 티거의 매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유명한 전과들은 다음과 같다.

1943년 2월 11일, 로스토프 전선에서 503 중전차대대의 사벨 소위가 탄 티거는 76.2mm 포탄 11발, 45~57mm 대전차포14발, 14.5mm 대전차총탄 227발, 대전차지뢰 3발...을 다 맞고도 적을 유린한 후 60km 떨어진 아군 부대로 무사히 자기 힘으로 돌아갔다(…). 즉 "괜찮아! 튕겨냈다!" 전설의 원조인 셈.
1944년 7월 미하엘 비트만의 중대는 빌레르 보카쥬에서 27대의 영국군 전차를 격파했고 영국군의 캉 조기 점령을 저지시켰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1944년 동부전선에서 오토 카리우스알베르트 케르셔는 말리나파 전투를 벌여 단 2대의 티거로 소련군 전차여단을 한대의 생존차량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그밖에도 티거가 찍은 전차 무쌍의 기록은 셀 수 없이 많다.

더구나 생존성 역시 상당해서 전투불능이 되어도 일단 회수만 된다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도 허다했다.[39]
오토 카리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만일 작동 불능 및 회수 불가 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면 포탑을 간단하게 박살낼 수 있도록 포탑 주변의 수납 공간에 폭발물들을 설치해놨다고 밝혔다.회수작전은 주로 야간에 이루어졌으며 실패할 경우에는 회수에 나선 티거가 주포로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밀 유지를 위해 노력했어도 티거가 전장에 투입된지 얼마 안되서 소련군들 사이에서는 꽤 정밀한 티거 그림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

가격 대 성능비로 보자면 티거는 대당 3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4호 전차(12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하면 대략 세 배, 판터(15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해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이다. 그러나 티거가 1943년 한 해동안 때려잡은 적 전차 및 자주포는 약 5천여 대 같은 기간 소련군이 잃은 전차 및 자주포는 총 2만 2천 대로 티거가 독일군 전차에서 차지하는 비율(5% 이하)을 생각하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가격 대비 성능 또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유의할 것은 이 티거의 가격은 평균가라는 점이다. 티거 극초기형은 80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달했는데 소량생산[40]과 노동자 숙련도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 이후 생산량이 늘고 노동자들이 숙련공이 될 때 생산된 중/후기형까지 합쳐지면서 평균가가 하락하였다. 당대 독일의 야금 기술과 차량 기술의 정점인 티거나 판터가 싼 이유는 당시 독일은 전쟁 준비로 1930년대 후반부터 철저한 배급제를 시행했고 본국이나 동맹국 국민에게 강제적인 노동을 시킨 덕분에 인건비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4 형식적 분류

티거는 크게 극초기형, 초기형, 중기형, 후기형으로 나뉜다.

극초기형은 사이드 스커트와 에어필터가 없었고 전면 스커트 역시 각이 있고 미끄럼 방지가 되어있었다. 전차장 큐폴라는 초기형처럼 원통형이었으며 포탑 후방의 게펙카스텐은 3호 전차의 것을 공유했으며[41] 초기에는 궤도는 좌우 구분이 되어 있었다. DAK(독일 아프리카 군단) 사양의 경우 초기형과 다소 유사한 모양이다. DAK사양부터 에어필터가 장착되었고 초기형까지 이어지다 중기형부터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레닌그라드에 투입된 티거는 극초기형 중에서도 가장 처음 생산된 녀석들로 이 때의 기본색은 당시 다른 독일전차들처럼 짙은 회색이였다. 단 아프리카 군단은 환경에 맞추어 사막색을 사용하였다. 유명한 차량은 501 중전차 대대의 142, 112호차, 502 중전차 대대 100호차가 있다. 이 중 100호차는 주코프가 보고 있는 그 티거이기도 하다.


초기형부터 우리가 아는 티거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으며 상당수의 특징을 DAK 사양과 공유한다. 초기형부터는 다크 옐로우를 기본으로 3색 위장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DAK 사양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있는데 전면 라이트가 차체 상판에 2개가 다시 올라갔다. 전면에 장착하니 파손이 잦았기 때문이다. 포방패는 극초기형과 유사한 형식에서 중•후기형의 포수 관측부가 강화된 것으로 교체가 되어간다. 유명한 차량은 미하엘 비트만의 1331호와 S04(지휘전차), 쿠르트 크니스펠의 101호, 504 중전차대대 소속의 131호, SS 102 대대의 S11, S13, S33 [42] 등이 있다. 이외에도 중기형, 후기형에는 없는 차체 엔진실 상판에 파이프가 있으며, 이 파이프는 배기구 옆에 붙어있는 양쪽에 각각 2개 씩 있는 에어필터에 연결되어 있다.


중기형에서는 피격위험이 있던 기존의 원통형 큐폴라가 판터, 티거 2와 유사한 방식으로 바뀌었고 전면 라이트가 전면장갑 중앙으로 옮겨졌으며 연막탄 발사기(S마인 발사기 겸용)와 에어필터가 제거되고 요철이 들어간 궤도가 적용되어 후기형까지 이어진다. 이때부터 그 뻘짓인 치메리트가 적용되었고 차체 후방에는 주포 고정부가 추가되었다가 후기형에서 사라진다. 또한 포탑의 밴딜레이터가 포탑 중앙으로 옮겨졌다. 유명한 차량은 오토 카리우스의 217호차, SS 101 3중대 소속 차량들이 있다. 오토 카리우스가 탄 중기형 티거는 정확히는 중기형에서도 끝자락 생산품이다. 초기형과 중기형 이상의 차체와의 차이점


후기형은 상당수의 부품이 티거 2와 호환이 되도록 바뀌었다. 주포 머즐 브레이크와 로드휠, 장전수측 관측구 등이 호환되며 포방패의 포수 관측구는 하나로 줄어든다. 가장 큰 특징은 최외측의 로드휠이 사라져 정비성이 향상되었고 엔진도 티거 2의 HL230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야보의 공격을 버티기 위해 최후에 생산된 차량들은 포탑 상부 장갑이 강화된다. 유명한 차량은 비트만이 빌레르 보카쥬 전투 당시 탑승한 것으로 추측되는 212호와 비트만이 전사할 당시 탑승한 대대 지휘전차 007호,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의 A12 등이 있다.

5 호랑이를 잡아라!

위에서도 언급한 사벨 소위의 티거, 등장초기의 티거는 사실상 격파수단이 없었던 소련군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격파 후 표적시험으로 사용된 모습
소련군의 대 티거 전투교육 자료.

ZiS-3대전차소총에 의존하던 초기의 소련군은 티거를 격파할 방법이 전무했다. 따라서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저격수들은 전차장을 노렸고 대전차포는 전차장 해치, 차체 측면하단과 스프로킷을, 그리고 대전차소총은 관측창과 기관총구를 노렸다. 하지만 ZiS-3은 그렇게 정밀한 사격이 가능한 무기는 아니었고 대전차소총도 티거에겐 통하지 않았다. 야포나 항공기의 고폭탄으로도 티거를 상처입히기 어려웠지만 충격이나 파편으로 운좋게 라디에이터가 손상되면 화재위험 때문에 사실상 주행은 불가능했다. 몇몇 용감한 병사들은 대전차수류탄을 들고 돌격하였고 성공한 사례들도 있다. 연료탱크와 엔진이 위치한 뒷부분에는 핀란드에서 배워온 화염병이 동원됐다. 그래도 이 모든 방법은 비효율적이었고 대전차지뢰만이 티거를 저지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스탈린은 SU-152처럼 대구경주포를 전차에 올려보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재대로 된 85mm주포가 완성되기전 소련군 전차부대는 티거와 마주치면 막대한 손실을 강요받았다. 이에 악이 받힌 몇몇 T-34전차병들은 자신의 전차가 피탄되고 불이 붙으면 폭발하기전 그대로 티거를 향해 전속돌진(ramming)을 감행했고 이렇게 티거를 격파한 사례가 상당수 있다.

고통받던 소련군은 1944년 2월부터 T-34/85이 배치되면서 티거와 어느정도 펀치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43] IS-2 전차는 종종 티거를 격파하긴 했지만 대전차전보다는 적 방어선 돌파에 우선순위를 두고 개발된 전차인만큼 대전차전을 중시한 티거에게 우세를 잡기가 어려웠다. 100mm대전차포를 확보하면서부터 드디어 소련은 티거를 확실히 보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포를 장비한 SU-100은 1945년 1월부터 배치된다.

1944년 7월 12일, 미1군은 노획한 티거와 판터를 놓고 어떤 무기로 관통되는지 확인해 보았다. 판터는 정면에서 모두 관통되지 않았고, 측면과 후면은 제한된 거리에서 몇몇 무기가 성공했다. 이 사실을 아이젠하워에게 보고하자 그는 비통하게 대답했다. "76mm로 판터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오? 난 이게 훌륭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병기국은 이걸로 모든 독일 전차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소. 이제는 그게 안된다는걸 알게 됐구만."

- M26/M46 Pershing Tank 1943-53 - Steven J Zaloga - 자세한 이야기

미군의 경우 영국군의 6파운더를 라이센스한 57mm M1대전차포가 표준장비였는데 이 물건으로는 약점을 노린 사격으로만 상대할 수 있었다. 미군 사령부는 M9 바주카10야드에서 독일 중전차들도 전부 때려잡을 수 있다고 교육했다. 많은 병사들이 티거를 잡았다고 보고했으나 확인결과 진짜로 티거를 잡은 사례는 전혀 없었다.[44] 미군은 대전 말기까지도 장갑강도와 탄착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관계로(병기국이 제대로 알았더라도 아이젠하워를 위시한 사령부나 말단 병사에게까지 재대로 교육되지 못했다) 카달로그 스팩상의 관통력을 가지고 교리를 짜는 등의 실수를 범한 것이다. 82공수사단의 제임스 개빈 James Gavin 사단장은 부하들이 독일 중전차를 잡을 수 있게 된 시점은 판처슈렉을 노획하고 나서부터라며 후일 바주카로 독일 중전차를 잡으라고 교육한 것에 대하여 맹렬히 비난했다. 이는 M4 셔먼 전차병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사실 75mm/L40 주포로 측 후면에서 15도 이내의 탄착각이하면[45] 500미터까지도 공략이 가능했으나 제대로 된 교리를 만들지 못하여 전차병들은 헛되이 죽어 나갔다.아이젠하워에게 올라간 보고서 결국 76mm주포의 셔먼이 도착하고 나서부터 티거와 어느정도 싸울 수 있었지만......이 시점에서 티거 전투단들은 티거 2야크트티거로 무장한 상태였다.(...)[46]

덤으로 미군은 성능이 향상된 M26 퍼싱 전차를 들고 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 탓에 전쟁이 거의 끝난 뒤에 투입했기에 실전을 많이는 치르지 못했다. 그래서 동급의 90mm 전차포를 탑재한 M36 잭슨이 독일 전차를 전담해야 했으나 그나마 독일군의 괴수 전차에 먹히는 전차포를 가진 탓에 판터등 다른 독일군 전차도 상대해야 하는데다가 대전차 자주포의 한계상, 정면에서 티거와 격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제공격당해서 박살나거나 서로 동시에 쏘고 양패구상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도 퍼싱의 경우 엘스도르프 근교에서 티거와 정면으로 격돌해 2차례 교전한바 있으며, 첫 교전에선 퍼싱이 티거의 선제 공격에 연달아 3발을 얻어맞고 전투불능에 빠졌지만 두번째 교전에선 티거가 격파 당했다. 유럽전선이 끝나가던 시점에 2기갑사단은 90mm 전차포에 대해 800야드 이내에서는 88mm와 대등하며 그 이상에서는 불리하다는 병사들의 일관된 증언을 모아 아이젠하워에게 보고했다.

반면에 영국군은 북아프리카에서부터 티거의 위험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2,100~2,200대 정도의 셔먼III가 셔먼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고. 1945년 5월 경에 남아있는 파이어플라이는 1,350대 정도였다. 실제로 서부전선의 티거들을 때려눕힌 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공격력으로 등장해준 이 전차들이었다. 또한 미군은 바주카로 단 한 대의 티거도 잡지 못했지만 영국군의 그 거지같은 PIAT은 전차의 상면을 때릴 수도 있었고 관통력도 바주카보다 미묘하게 높았던 관계로 종종 티거를 격파하기도 했다

6 생산량에 대한 이야기


단 한 가지 형식만 사소한 개량을 거쳐가며 생산된 티거의 총 생산대수는 약 1,350대로서 중(重)전차임을 감안해도 연합군의 동급 차량 생산에 비해 부족한 편이었다. 모든 차종의 전차 생산량을 합계할 경우 독일이 5만, 소련이 7~8만이다. 그런데 중전차만은 독일이 2천뿐인데 비해 소련은 1만을 넘는다. 소련이 중전차를 독일보다 2년 정도 먼저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확실히 생산량 격차가 특히 큰 편이다. 하지만 티거가 배치되던 당시에는 적이라곤 소련밖에 없는데다 당시 소련군은 전차고 뭐고 공장도 못돌릴 정도로 패색이 짙었다. 그리고 양 군 편제를 고려해 보면 독일군은 GD사단이나 무장SS의 극소수 정예를 제외하면 중전차를 독립 전차대대에 집중 배치한 반면 소련군은 1941년도 편제상 KV중전차를 전차사단 당 63대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해체되고 전차부대가 여단 단위로 재편되는 와중에도 편제상 중전차의 비중이 상당했다. 따라서 애초에 요구하는 수요가 다른 만큼 단순히 생산 대수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전쟁에 쓸 장비의 대량생산은 그 장비의 생산성 자체뿐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중공업규모와 자원, 생산 설비 및 노동력의 수급과 배분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이다. 80만 라이히스마르크의 생산가는 그렇다 치더라도(판터는 15만 라이히스마르크, 4호 전차는 12만 라이히스마르크), 티거는 30만 인시(人時)에 달하는 노동력과 엄청난 양의 고급 자원을 소모했고 작전 중에도 많은 연료를 지속적으로 소모했으며 이는 나치 독일이 쉽게 감당할 것이 못 됐다.

독일의 산업능력은 미국에 비해서는 열세했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비슷한 수준이었다.[47] 그러나 미국은 '원정'이었지만 독일은 '홈그라운드'에서 흠씬 두들겨 맞으며 전쟁중이였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열세해졌으면 열세해졌지 상황이 우세해질리는 만무했다.[48] 그러나 이런 독일의 열세는 소련이 초반에 독일에게 엄청난 공업지대를 날려먹었다는 점으로 상쇄되는 페널티이다.

동맹국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상호간의 협력이 비교적 원활했고 다들 한가락 하는 강대국들이 뭉친 연합국과는 달리 독일의 동맹국들은 대부분 군사력이 약해서 나름 열심히 싸워도 세력에 한계가 있는 중소국가라 군사적으로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네 사정도 안습이라 역으로 지원을 해줘야 했다. 대표적인것이 독일이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건 원래 괜히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가 엉덩이에 불이 난 이탈리아를 도와주려던 것이다.[49] 그러나 군사 부분이 아닌 그외 부분에서는 독일이 동맹국에게 엄청난 지원을 받았었다. 독일이 사용하는 원유의 최대 70%를 루마니아가 지원해줬으며, 독일이 사용한 대부분의 철들은 노르웨이가 지원해줬다. 또한, 전차의 자잘한 부품들은 헝가리가 상당수 지원해줬다. 결국 티거의 생산량이 적은 원인은 그저 비싸고 복잡한 사치품이어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소모전을 자초한데다 그나마 있는 여력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 나치 독일의 정치력 문제도 고려해야하는건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티거는 오히려 정치인들에게 수혜를 받은 입장이며 미국은 정치적인 문제로 M26 퍼싱의 양산이 늦어지고 M4 셔먼의 개량도 늦어졌으며 소련은 T-34의 양산이 쿨리크 원수에게 심각하게 방해를 받았다. 그런데도 티거의 생산량이 심각하게 적다는건 티거의 생산성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미국이 티거의 설계도를 가지고 티거를 뽑아냈다면 티거가 셔먼 찍혀나오듯이 찍혀나오는 광경을 볼 수도 있었다는 말이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인데 미국이 대전 초기에 개발한 티거와 거의 같은 체급의 M6 전차의 경우 월 250대씩 1943년 말까지 5천 대를 뽑아낼 계획도 있었다. 다만 제작이 가능했다고 해도 40톤 초반의 퍼싱도 무겁고 느리며 수송이 귀찮다고 실컷 다 개발해놓고 양산하지 않은 미국이, 그 퍼싱보다도 40%나 더 무거운 티거를 셔먼처럼 뽑아낼 생각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국이 운용한 보병전차인 처칠도 40톤이 안된다. 당장 미국과 소련이 셔먼과 T-34생산을 위해서 십여 곳이 넘는 거대한 공장을 가동한 것과는 달리 독일은 6천량 남짓한 판터 생산을 위해 3개 공장을 가동했고 티거에 이르면 단 1개 공장이다.[50] 만약 티거 생산공장이 3개였다면 티거의 총생산수는 최소한 4천대에 이를 것이다.[51][52][53] 거기에다 독일은 전쟁 초기에 많이 노획된 적 전차(주로 T-34),의 유지보수에 매달리느라 군수지원이 복잡해지고 낭비도 심해졌다.[54]

독소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나치 수뇌부가 아무리 암덩어리라고는 해도 의도치 못한 소모전에 누적되는 인명손실 통계를 보며 '이대로가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적자원이 고갈되어가던 독일이 똑같이 "양이 곧 질이다"라며 양산병기를 찍어내서 전선에 축차투입 하는 일은 전 세계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55] 바꿔말하면, 소련처럼 전차 마구 찍어낼수도 없었지만, 공업력이 있다고 해도 만들 자원도 없었고, 만들었다 치더라도 미국처럼 그 승무원들을 보충하는것도 어려웠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치 수뇌부가 다소 비싸고 숫자가 부족하더라도 고성능의 병기를 운용한 것은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56] 공업생산력, 지원문제뿐 아니라 인적자원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의 티거전차 선택은 불가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티거가 생산성이 부족한 병기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병기의 생산성이 해당 국가의 산업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병기 자체의 생산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생산량을 논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위에서 예를 든 T-34의 경우에는 랜드리스도 없고, 병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평시 상황에서, 개발된지 얼마 안 되어 공장이 2개밖에 없을 때도 1년 동안 생산한 댓수가 1500대에 가깝다.

해당 국가의 중공업 규모, 자원 상황,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병기의 생산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이 점을 지나치게 간과한 판단이다. 당장 세계 최강국인 미국조차도 비싸서 많이 운용하지 못하는 병기가 있음을 살피면 병기의 생산성은 해당 국가의 경제적 역량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경제적 역량이 부족해서 많이 생산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 장비 자체의 생산성까지 나쁠 경우에 티거와 같이 타국과 생산댓수에서 몇 배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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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2차 대전 당시의 국내 총생산을 비교해보아도 독일의 경제적 역량이 소련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열세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이 모든 경제적 지표를 망라하여 판단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오히려 소련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이 우위에 있기까지 하다면 독일의 경제적 역량이 소련에 비해 절대적 열세에 처해있다고만은 단언한 수 없다. 이는 만약 소련이 티거를 생산하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소련제 전차만큼 많이 생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티거와 이 소련제 전차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생산성'이다.[57] 소련제 전차가 티거보다 생산성이 나았기 때문에 많이 생산된 것.

나치의 정치력이 티거의 생산량을 깎아먹었다는 사항은, 소련의 대숙청을 고려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미국조차도 정치적 문제로 퍼싱의 양산과 셔먼의 개량이 늦어진 바 있다. 오히려 티거는 나치 수뇌부에 의해 주력으로 지원받고 가장 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당받았기에 정치인들의 수혜를 본 것에 가깝다.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문제는 쿨리크 원수와 멕네어 중장의 직접적인 훼방을 지속적으로 받은 T-34퍼싱이 더 크게 겪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정치적 문제를 겪어도 티거만 생산량이 처지게 된다면 생산성의 문제를 논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독일이 연합국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웠다는 말도 소련 또한 핵심 영토와 중공업 파트를 모두 잃고 시작했음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큰 디메리트가 아니다. 미국의 랜드리스가 병기 생산에 도움을 준 것은 맞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랜드리스가 존재하기 전부터 소련은 T-34를 붕어빵처럼 찍어내고 있었다. 결국 이건 티거의 생산성이 문제인 것이다.

티거가 특수병기이기 때문에 많이 생산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 독일의 전차 가동률에서 판터, 4호보다도 오히려 티거의 가동률이 높을 때도 있었음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그 가동률을 위해서 다른 전차들과는 달리 대대단위까지 정비부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위에서도 줄줄이 적혀있듯이 티거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활약한 전차이며 또한 가장 많이 가동된 전차이다. 다시 말해 결코 수요가 적은 특수병기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7 운용상의 문제에 대한 말들

티거의 경우 운용상 난점에 대한 말이 많고 가동률 자체가 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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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를 살펴보면 총 차량 숫자 대비 운용가능 차량 숫자를 따져보면 무난한 수준이며 오히려 티거의 가동률이 높은 경우도 종종 보인다. 가령 1945년 1월의 서유럽에서 독일 전차의 가동률은 티거가 58%, 판터가 45%로 오히려 티거가 더 높은 가동률을 보인다. 또한 티거의 가동율이 낮게 나오는 시기를 보면 다른 전차들의 가동률은 훨씬 낮고 이중 대부분은 애초에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상태인 탓이 크다. 아예 대파돼서 회수, 공장에 들어간 장기수리 차량도 대대/연대 보유 차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독일은 티거 생산과정에서 철저한 품질관리를 한것도 이런 가동률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도표에서 나타자니 않은 요소가 있는데 정비받으려면 연대까지 가야했던 다른 전차들과는 달리 티거는 중전차 대대 정비부대에서 충분한 정비를 받을 수 있었으며 독일은 이들 정비부대에게 최대한의 지원까지 쏟아부었다. 즉, 티거 부대는 다른 전차를 운용하는 부대보다 더 먼저 정비를 받고 더 빨리 물자를 보급받은 것이다.

티거는 56톤이라는 현대의 주력 전차급 무게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랭식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210(650)마력을 장착하면서 톤당 마력 비율은 4호전차보다 더 나은 수준이었고 배기량을 늘린 수랭식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230(700마력)으로 바꿔 장착하면서 톤당 마력은 4호전차를 완전히 상회할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티거는 무거웠으나 오히려 접지압 면에선 M4셔먼보다도 수치가 낮았다.[58] 즉 무게는 무거우나 엔진과 차체에 걸리는 하중은 충분히 커버 가능하고 남는 수준이었던 것. 거기다 티거는 제작 당시 트랜스미션부터 엔진까지 여러모로 품질 면에서 공을 들여서 만들어졌고 이는 험한 운용 상황에서도 티거가 견뎌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티거가 운용하기 쉬운 전차인 건 결코 아니었다. 티거의 경우 필수 정비과정이 복잡하고 힘들었다.

오버랩되어 있는 전륜의 경우에는 하나의 교체를 위해 최대 9장까지 제거해야되는 경우도 빈번했으며 50톤이라는 무게를 받칠 잭과 크레인이 흔치 않은 관계로(동부전선에서는 땅이 진흙탕이 되기 일쑤니 잭과 크레인이 있더라도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차체 밑으로 땅을 파고 내려가서(…) 정비해야 하며 트랜스미션만 점검하려고 해도 포탑을 들어내고 트랜스미션을 통째로 꺼내야 하는 등 중장비 없이는 정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정비병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게다가 티거는 점점 악화되어가는 전황 속에서 소방대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불끄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다른 전차들에 비해서 소수가 혹사당하는 와중에 유지/보수/점검에 할애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한쪽으로 불끄러가면 다른 쪽에서도 T-34나 M4 셔먼들이 꾸역꾸역 몰려오는 상황.

거기다 엔진이나 현가장치에 문제가 생겨서 노상에서 퍼지면 급박한 상황에서 50톤이나 되는 물체를 견인할만한 수단이 마땅찮았기 때문에 보통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같은 티거로 견인하려고 들었다가는 견인하던 티거도 같이 퍼질(…) 확률이 높았기에 티거로 티거를 견인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운용 교범상에는 정비대 표준장비인 18톤 트럭 3대를 이어서 견인토록 했으며 후기에는 베르게판터 등의 중전차 회수차량으로 견인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18톤 트럭 숫자도 적은데다 방어력의 문제로 전선 가까이까지 끌고 오기는 좀 곤란했고 베르게판터는 수가 적은지라 그냥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사진이 많다. 빌레르 보카쥬 전투 직후 231호차를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유명한 사진도 있고... 동부전선 한정으로 전투시 파손된 티거의 포탑을 떼어 견인차량으로 사용한 베르게 티거도 있었으나 페르디난트/엘레판트 운용대대의 포르셰 타입 티거를 개조한 베르게 티거 외에는 전부 현지 개조품으로 육군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전쟁 말기가 되면 마땅히 견인할 수단과 시간이 없어 고장난 티거는 바로 방치/유기되기 일쑤였다.[59]

또한 큰 포를 탑재하고 공간성을 위해서 포탑을 크게 만들다보니 포탑 정면과 자체 사이의 틈이 크고 외부로 포탑링이 상당히 노출되어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은 승무원들이 탑승한 셔먼의 경우에는 티거의 포탑링에 포탄을 날려서 포탑 선회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험지주파를 위해 넓게 설계한 무한궤도에 포탄을 날려서 기동불능에 빠지게 만들어서 티거를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일을 해내기도 하였다. 당연히 이건 티거의 정확한 포격을 숙련된 조종기술로 개나리 스텝으로 피하면서 근거리까지 접근해서 정확한 사격을 날려야 가능한 일이지만, 숫적 열세 때문에 장거리전을 치루더라도 곧 근거리 접전이 벌어지는 독일의 전차전 특성상 티거가 100%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8 전쟁이 끝나고

위에서 언급된 131호차 티거. 현재는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중이다.[60]

전후에는 5호 전차 판터4호 전차처럼 주변국/신생국에 보상 공여되지도 못했는데 1945년 4월 이전에 가동 가능한 차량 자체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계속 소모에 소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베를린 전투에 참가한 차량도 있는 등 최후의 한 대까지 전투가 가능한 상태라면 어떻게든 전투에 투입하고 봤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나마 노획 후 전시된 차량들이 미국과 영국, 러시아에 각 1대씩 있다. 미국과 영국은 티거는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이후 추가 노획하지 못했을 뿐더러 작동불능의 티거들이 발견되면 독일군에 의해 다시 운송되어 수리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소련은 1942년부터 운좋으면 노획했다가 1944년부터 줄줄이 노획, 보존 중인 것은 단 1대 뿐이고 나머지는 노획할 때마다 실험 및 자잘한 패전 때문에 선전용으로서 각종 화포의 표적판으로 써먹은 탓에(…) 원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 지금까지 살아남아 박물관에 남아있는 티거들은 7대로 이 티거를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은 아래와 같다.

영국보빙턴 전차 박물관131호차
프랑스Musée des Blindés224호차
노르망디 Vimoutiers311호차
러시아쿠빈카 전차 박물관불명
Military-historical Museum of Lenino-Snegiri불명
독일Deutsches Panzermuseum231호차
미국Army Armor & Cavalry Museum712호차

특히나 영국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오리지널 부품을 긁어모으는 근성과 눈물의 복구 작업으로 노획한 초기 생산형 131호 티거(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측이 최초로 노획한 바로 그놈!)를 가동 상태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131호 티거는 노획 이후 바로 영국으로 보내져 다른 티거들의 잔해들에서 찾아낸 부품으로 수리하여 여러 테스트를 받았고, 1942년 6월 6일에는 조지 6세가 직접 시찰까지 할 정도로 영국은 티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각지역마다 전시되었다가 9월에 대대적인 조사 이후 방치되었고 1959년 9월에 박물관에 인도된다. 이후 박물관에 방치되었던 것을 보빙턴 박물관에서 1990년부터 약 13년동안 우리돈 1억 3천만원에 해당하는 8만파운드를 들여서 위와 같은 근성과 눈물의 작업으로 2003년부터 매년 전시회 등에서 공개[61], 거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그 쪽 바닥을 잘 아는 인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단, 원래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했던 상태를 완벽하게 재현한 건 아니다. 일단 엔진이 다르다. 노획 당시엔 HL210이었지만 당장 가동 가능한 엔진은 전부 티거II용 HL230이었어서 부득이하게 아르덴 대공세 당시에 라 글레즈외각에서 노획된 무장친위대 제 501 독립중전차대대 1중대 소속 제프 프란츠 하사의 104호 티거II의 HL230 엔진을 빼서 탑재했고 원래 탑재돼 있던 HL210 엔진은 컷오프 전시물로 전용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가동 가능한 티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2014년 개봉하는 2차 대전 영화 퓨리에 등장하게 되면서 많은 밀덕들의 눈길을 끌었다. 다만 워낙 오래된 물건인지라 출연료도 출연료거니와, 제작진은 이 녀석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무슨 일이 안생길까 조마조마했다나... 물론 운전한 사람들은 박물관 직원들. 그래서 적당히 개조한 촬영용 스턴트(?) 차량도 준비됐다. 여담으로 같은 박물관이 보유한 M4A2E8 셔먼도 '퓨리'역으로 출연했다.

러시아산 티거

9 티거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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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fiebel

도덕과 철학은 그 자체가 때때로 부도덕하다! 딱딱한 표정을 짓는 것은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티거 운용병들은 유머감각을 익힐 것.

-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쓴 서문.

티거에 탑승할 전차병들을 위해 만들어진 매뉴얼로 티거에 모에선을 쬐면 나오는 엘비라 티거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여성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서 티거 전차를 다루는 법에 숙달되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자의 목적이다. 탈것(배, 자동차 등)을 여성화시켜 부르는 서양 문화에서는 모에화(?) 자체는 특별할 것 없지만 이런 매뉴얼이 군에서 정식 채용된 매뉴얼이란 것이 놀라운 점이다.

모에! 전차학교 3권에는 티거피벨의 현대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티거피벨을 공식적으로 채용하인츠 구데리안의 위업을 찬양하고 있다.

2012년 번역되어 나온 오토 카리우스의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 별책부록으로 완전번역되어 제공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출간이 늦어진 이유가 티거 피벨을 부록으로 주기 위해서라고.

여담이지만 판터의 매뉴얼인 판터 피벨도 모에화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군용 메뉴얼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걸즈 앤 판처 3화에서는 레이제이 마코4호 전차의 조종을 위해 한번 훑어본 PzIV fibel이란 명칭으로 패러디되어 등장한다.

10 추축국 진영 군대의 티거

티거는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티거 중전차대대가 군단 직할 부대로 운영될 만큼 전략적 예비대로서 중요한 전력이었기에 다른 독일제 무기들과 달리 추축국 군대에 공여된 예가 매우 희귀하다.

10.1 헝가리군 티거


독일군 이외의 군대에서 티거를 운용한 대표적 혹은 유일한 예로 1944년 4월, 북우크라이나 집단군 사령관에 새로이 임명된 발터 모델 원수가 헝가리 1군을 시찰한 뒤 이들 전차부대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1944년 5월 4일, 헝가리 왕립 제2전차사단에 4호 전차 H형 12대, 3호 돌격포 10대, 티거 10대를 배치시켰다.

헝가리 전차병들이 티거를 운용하기 위한 훈련을 마무리 짓고 실전 투입을 앞둔 7월 말, 3대의 티거가 추가로 헝가리군 왕립 제2전차사단에 배치되었는데 무려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체코에서 출판된 <Obrněná technika. 6. Střední Evropa 1919-1945 II část.>에서는 이를 라즐로 홀로시-쿠티 소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이었다고 적어놓았는데 이는 당시 2전차사단장이었던 졸탄 제디니 소장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홀로시-쿠티 소장의 직책은 보병사단장이었고 그의 생일은 8월 23일인 반면, 제디니 소장의 생일은 7월 22일이며 모델 원수가 제디니 소장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왔던 것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HTML <img src="http://www.ww2incolor.com/d/518272-4/7+Tarczay__s+Tiger_+Galicia_+1944?width=450">
(1944년 7월, 갈리치아 전투에서 티거에 탑승한 에르빈 타르차이. 이후에는 독일군으로부터 판터를 수령하여 주로 판터에 탑승한다.)

사단장의 생일 다음 날인 7월 23일, 헝가리군 왕립 제2전차사단은 스타니슬라프와 사르투니야 방면 전투에 기존의 티거 10대에 생일 선물을 더하여 12대의 티거를 투입하였고 이를 2개 중대로 나누어 에르빈 타르차이 중위와 야노슈 베드레슈 중위가 지휘를 맡았으며 특히 타르차이는 단 두 대의 티거로 30분 동안 소련군 T-34전차 14대를 격파하여 언덕 고지를 사수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연료와 정비 부품 부족으로 인한 손실은 어찌할 수 없어서 1944년 12월에 헝가리군이 보유한 잔존 티거는 4대 뿐이었다.

10.2 일본군에 소속될 뻔한 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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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를 타보는 일본군 장교들. 전차장석에 있는 사람은 주독 일본대사였던 오오시마 히로시이다.

놀랍게도 일본군(…) 역시도 티거를 도입하려 했던 전적이 있다. 독일에 사절차 방문한 일본 장교단이 티거의 위용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서(…) 즉석에서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2대분의 대금까지 완납했으나... 때는 독소전이 한창이던 때라 육로로는 일본으로 수송할 수단이 없었으며(…) 티거같이 무거운 물건을 수송할 수 있는 잠수함도 없던지라 독일에서는 무슨 방법을 써도 일본으로 운송할 수 없었다.(…)[62] 일본에서도 이미 대금을 양도한 물건을 차마 환불해달라고는 말을 하기는 뭐했던지(…) 구입한 2대분을 독일에게 양도해서 독일군에 의해 사용된다. 추가로 일본에 자료와 부품을 전해줄 비용이 독일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2배 더 비싸다 한다.
자세한 내막은 #. 이것에 따르면 서부전선에서 끝났다고 한다.

다만 어찌저찌 일본이 티거를 자국까지 수송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전황에 별 영향은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원산지인 독일이 충실하게 증명했지만 전쟁은 결전병기의 원맨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의 수준은 티거와 같은 중전차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술력은 종전까지 겨우 M4하고 동등한 치토 같은 전차를 그것도 2대만 완성하는데 그친 수준에다가, 중전차 운용 경험은 오로지 91식, 95식 중전차 뿐에 실전도 거치질 못했고, 중전차 설계를 포함한 전체적인 전술교리는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개념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원까지 모자랐기에 보급 역시 처참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줘도 못 써먹는 한심한 수준.

탄약 보급 문제도 그렇다. 만약 초기에 전차와 같이 구입한 8.8cm 탄을 다 소모하고 나면 독일에서 추가로 도입하던가 일본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탄을 조달해야 했을텐데 독일에서 보급해온 포탄이 아니라 일본에서 제작한 포탄을 사용했더라면 일본이 자국 전차에서 여러 차례 선을 보였던(…) 저질 철갑탄 문제에서 보여지듯 셔먼을 뚫지 못하는 8.8cm 탄이라는 괴랄한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원판이 워낙 좋은 물건이라 진짜로 그런 괴랄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수리 및 유지보수 문제도 발목을 잡는데, 일본보다는 사정이 나았던 독일도 연료 부족에 골골거리면서 전장에서 기관계에 문제가 일어난 티거를 견인해 수리할 여력이 되지 못해 폐기하는 일이 잦았는데 일본의 사정은 그보다 훨씬 더 안습했다. 일본의 여력으로는 독일에서는 간단한 수리로 해결되었을 사소한 문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시 제대로 수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손상을 수복할 수가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1회용 병기가 돼버리는 꼴. 좋은 무기를 쥐여 줘도 그걸 지속적으로 보수해가며 운용할 환경이 안되면 말짱 도로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겠다.

또한 일본이 티거를 도입하는데 성공한들 치헤, 치누. 치토 같이 본토결전을 위해 본토에 썩혀두었다가 그대로 종전을 맞고 고철처분 혹은 미국이 득템 했다며 가져갔을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자국 입장에선 최첨단 전차이니 기술 뽕을 뽑아야 하므로 1선에 세운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기행이다.

11 파생형

11.1 포르셰 티거 (Tiger(P))

계열상으로는 전혀 다른 차량이지만, 티거라는 이름을 받을 수도 있었던, VK.45.01 프로젝트의 탈락한 시제 전차이다.

11.2 슈투름티거 (Sturmtiger)

해당 항목 참조

11.3 베르게티거(Bergetiger)

왼쪽은 508 중전차대대에서 운용했던 베르게티거. 오른쪽이 베르게티거(P).

포탑이 파괴된 티거에서 포탑을 들어내고 구난전차로 전용한 물건으로 군 상부에서는 피를 토할 정도로 아까운 티거 섀시를 고작 회수차량으로 쓰는짓을 감당할 수가 없어 엄격하게 금지했으나 보통 현지부대에서 임기응변으로 만들어 쓴 경우가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티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수하려고 노력하던 중요 전력이었으나 전장에서 50톤 가까이 되는 전차를 끌어낼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서 머리를 굴린 결과물. 포탑을 들어내면 전체 중량이 감소하여 구동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차량을 견인할 여력이 생기며 아울러 섀시는 당연히 티거니까 적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도 회수차량의 생존성이 크게 높아진다.
임기응변인 만큼 포탑만 제거하고 차체 내부는 휑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차량부터 최소한 나무로라도 뚜껑은 덮어준 전차 아예 크레인 등 상부구조물까지 올린 본격파 등등 다종다양하다. 다만 치타델레 작전시 페르디난트를 운용한 제653 중구축전차연대에 티거(P)섀시 3대와 파손된 페르디난트 섀시 2대를 이용하여 정식으로 베르게티거(P) 5대를 제작해 배치한 예가 있다.

이 베르게 티거 중 가장 유명한 차량은 왼쪽사진의 차량으로 508 중전차대대 소속의 311호 차량이다. 508대대는 종전까지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을 막는 동안 각정 비전투손실로 78대를 잃은 전과(...)로 중전차대대 중 졸전한 부대로도 유명한데 아마 이러한 비전투손실로 잃은 티거들을 견인하기위해 제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11.4 잡종 티거(Hybrid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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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최후의 티거였던 323호 티거. 후기형 차체에 초기형 포탑이 달린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티거이다. 잘보면 후기형에서는 폐지된 외측 로드휠이 남아있고 로드휠도 완충고무가 붙어있는 초기형이고, 포탑은 원통형 큐폴라가 달린 초기형인데 포방패는 보강용 리브가 추가된 후기형 포방패다.


전황이 급박해지자 교육 및 훈련부대에 있던 티거도 결국 전선으로 내몰렸는데 후방에만 있다가 전쟁 말기에 이르러 실전 투입을 준비하다 보니 초기형 차체에 후기형 부품이나 장비가 섞인 '잡종' 차량들이 많았다. 이를 하이브리드 티거라 부른다.

야전에서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티거를 독일의 공장으로 가져가서 재생한 차량들도 비슷한 이유로 다양한 형식의 장비가 이것저것 뒤섞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1944년에 티거 생산라인이 폐쇄될 때 만들어진 54대의 티거가 대표적이다.

이 하이브리드 티거를 운용한 부대 중 가장 유명한 부대로는 페르만 전차학교 소속 교관 프란슨 중위가 지휘한 페르만 전투단이며 1945년 에셀 지방에서 영•미 연합군과 교전하였다. 페르만 전투단 소속 티거의 다른 특징은 넘버링 맨 앞부분에 F자가 들어가 있었다.

11.5 그 외

  • 티거 H2형(VK 45.01(H) 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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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h2wood1.png
티거에 5호 전차 판터에 달린 75mm 70구경장주포를 장착한 형태.

  • VK 45.02(H)

티거 2 개발 경합에 헨셸이 처음 제시했던 설계안으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의 전차가 아니라 티거의 설계안을 약간 개선해 8,8cm 71구경장 포를 대충 얹어놓은 것에 불과한 티거의 개량형 격 전차였다. 내부적으로는 판터의 엔진과 냉각 시스템을 비롯해 판터의 부품을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너무 성의없는 설계안이었기 때문에 기갑총감부에서 기각을 먹여 시제 차량도 제작되지 않은 채 프로젝트가 폐기되었다.

  • 보르크바르트 4호를 원격 조종하는 무선조종장치를 추가한 티거가 있다. 그중 안치오 전선에서 유기된 티거 한대의 사진이 베르게 티거의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으나 실은 바로 이 보르크바르트 4호 조종용 티거. 베르게티거와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은 베르게티거는 포탑을 들어낸 반면 보르크바르트 조종용 티거는 포탑을 그대로 얹어놓은 상태에서 크레인 등의 상부구조물을 추가한 점이 다르다. 보르크바르트 4호는 무선조종이긴 해도 근처에서 조종을 해야 했기 때문에 튼튼한 전차에서 조종해야 안전했으므로 독일군 전차중 그나마 장갑과 기동성이 다른 중전차보다 훌륭한 티거가 담당했다.
  • Tiger 1 mit. 7.5cm A18 KwK

파일:DFwtAff.jpg
T-25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스코다 사의 7.5 cm A18주포를 티거에 장착하고 자동장전장치를 다는 프로젝트. 루머에 의하면 한 대의 전차가 실제로 A18 주포를 끼운 채 테스트되었다 하나, 밝혀지지는 않았다.

  • T-VI-100

파일:A1ctXcs.jpg
소련은 2차대전 중 소수의 티거 전차들을 노획해 굴려먹었는데, 1944년 말 OKB-43이 티거 한 대에 100mm D-10T 주포를 달아 개조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개발 중 전쟁이 끝나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12 총평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지금 독일군이 쓰는 5호전차나 6호전차를 타고 미군의 중형전차나 90mm포 구축전차를 상대로 싸울 것 입니다.

- 윌슨 M. 호킨스Wilson M. Hawkins 중령, 제67전차연대 제3대대장

많은 정비소요와 낮은 생산성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전투력만큼은 대단히 우수한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주로 교전하던 T-34나 M4 셔먼 등보다 높은 중전차라는 체급차이와 개전초기부터 티거전차와 함께 산전수전 다 겪으며 모든 상황에 숙련된 승무원 그리고 방어자의 이점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연합군의 전차부대에게 막대한 손실을 강요한것은 그만큼 전투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임은 확실하다. 게다가 57톤에 달하는 거대한 중전차의 기동성이 30톤급 중형 전차와 비슷한 수준이다. 즉, 전투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매우 우수한 전차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전투외적인 부분에서는 문제가 상당한 편이었는데 생산성이 형편없어서 항상 필요한 숫자에 비해서 턱없이 적은 수만이 존재했고 정비가 복잡하고 힘들며 정비소요가 많았는데 이는 병기로서는 심각한 결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장에 투입되는 병사들에게는 특히나 크게 다가오는 문제인데 일례로 당시 동부전선의 오토 카리우스는 전투중 전차에 손실이 생기거나 기동불능에 빠지면 밤중에 돌아가 견인해왔다. 그나마 정비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티거정비반이 대대마다 배치가 되어있고 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다른 전차들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떨어지는 생산성은 해결되지 못했고 항상 숫자는 부족했다. 하지만 이런 전차가 있었기에 독일의 패망이 늦추어진 것은 확실하다.

물론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독일의 쾨니히스티거나 미국의 퍼싱, 소련의 IS-2같은 티거를 능가하는 중전차[63]M36 잭슨 같은 대전차 자주포ISU-152같은 티거를 한방에 격파 가능한 다목적 중 자주포도 나왔지만 국지전 상황에서는 티거처럼 가장 필요할 때 힘을 써준 전차는 별로 없을 것이다.

1990년대에 생존한 2차 대전 참전 전차병 100명을 무작위로 고른 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때 어떤 전차를 골라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100명 모두 티거, 티거 2를 골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티거 전차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도 자서전 서문에서 티거전차를 명품이라며 극찬하며 티거전차를 타며 살아남은 모든 이들은 티거전차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2차대전 당시의 무기를 비교하는 프로그램에서도 티거와 셔먼이 비교된 적이 있었고 방송 막바지에 이들의 승무원들에게 다시 전차를 타면 어느 것을 타겠냐고 질문을 했었는데 티거 승무원은 물론 셔먼 승무원도 티거를 골랐다. 러시아인은 물어볼 것도 없다는 투로 미국인은 당연한 걸 물어본다고 째려봤다고. 애초에 티거 전차를 상대로 셔먼 10대 이상이 달라붙어도 못잡고 오히려 전멸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격파당한 전차를 몰던 승무원에게는 불편한 질문인 셈이다.

13 매체 속의 티거

티거가 등장하는 매체들.

  • 제로의 사역마에서는 간달브의 창으로 소환된 것으로 등장. 스퀘어급 골렘조차 상대가 안되는 초강력 골렘 요르문간드를 1 대 10 무쌍을 찍어버리면서 간단히 떡실신 시켜버렸다.[64][65] 나름 대포도 들고있고 전함[66]도 격침시킬수있는 위력이라고 해도 50m도 안되는 지근거리에서 발포된 75mm철갑탄을 튕겨내버리는 티거의 장갑에 중세시대의 대포탄 따위가 먹힐리 만무한데다 아무리 마법사들도 어쩔줄 모르는 아이언 골렘이라지만 티거의 주포는 100m 이내의 근거리에서 30°의 경사면의 장갑판에 120mm, 2km에서도 84mm의 관통력을[67] 자랑하는 88mm 56구경장 포다.
  • 바케모노가타리 14화 9분 51초 쯤에 센죠가하라가 문화제 준비 이야기를 할 때 잠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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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 5에서 독일 특수 유닛인 팬저의 기본 모델로 등장한다. 4에서는 5호 전차 판터가 팬저모델이었다.


1대는 양말 폭탄을 맞고 무한궤도가 끊어진다. 다른 1대는 다리를 건너는가 싶다가 P-51의 폭격을 맞고 폭파된다.

  • 소련의 영화 'One-Two, Soldiers Were Going...'에서 T-54를 개조해 만든 티거가 나온다.

  • 소련의 영화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러시아 전차들을 개조해 만든 티거가 등장한다.

  • 소련의 영화 'Liberation' 시리즈에서 T-44를 개조해 만든 티거가 등장한다.

  • 켈리의 영웅들에서는 작은 마을에 주둔하면서 금괴 호송을 엄호중이던 티거 3대가 등장한다.

이 3대의 티거 중 첫 번째 티거는 승무원들이 사살당하고 오드볼의 셔먼 전차에게 후미를 기습공격당하여 격파당한다. 두 번째 티거는 길을 잘 못 들어 막다른 골목에서 갇혀버린 상태에서 오드볼의 셔먼이 티거의 후방을 잡는데 성공하여 사격하지만 페인트탄이였다. 재장전하는 사이 티거는 포탑을 돌리려고 하지만 주포가 한쪽은 돌담에 반대쪽은 나무에 걸려서 반격도 하지 못한채 허무하게 터져버렸다.[68] 나머지 1대는 켈리와 협상하여 은행 문을 전차포로 때려부수고 미군들과 사이좋게 금괴를 나눠가진 뒤 전차장과 승무원들은 다른 차량을 이용해 떠나고 전차는 오드볼에게 팔려나간다.

오리지널에 비해서 포탑이 더 크고 약간 전방에 달려 있어서 포르셰 티거와 비슷한 점이 포인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등장하는 티거 전차는 개조를 맡았던 군용 차량 동호회의 회원이었던 스티브 라몬비의 취향에 의하여 티거 전기형으로 등장하였다.


영화 내의 티거

-이게 직접 만든 레플리카다.

  • 노르웨이의 좀비 영화, 데드 스노우의 후속작 데드 스노우2 에서 레플리카가 등장하였다. 치메리트 코팅이 되어있는 것과 전차 넘버를 보아 미하엘 비트만이 탑승하였던 221호 티거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포신에 킬수도 표시되어 있다. 나치 좀비들의 우두머리인 헤르조그가 생전에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받은 학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가던 중 이스네스토픈의 조그미한 2차대전 박물관을 습격하여 노획하였고 전차병들이 남성 관광객의 내장을 꺼내 관광버스의 연료를 빼와 연료를 넣어 가동시킨다.(...) 이후 헤르조그가 함께 탑승하여 탑승하여 이동하면서 근처의 마을을 초토화 시키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였고(...), 최후의 전투에서는 출동한 경찰차 2대를 덮쳐 양쪽에 각각 울타리와 동료 경찰차에 막혀 빠져나오지 못한 경찰 4명을 차째로 뭉개버린다. 이후 마지막에 주인공 일행의 활약으로 헤르조그의 머리를 향해 포탄을 쏴서 먼 산으로 날려버리며 가동을 멈춘다.


헨셸-아들러 트리의 티거는 후기 양산형 티거[69]]이며, 같은 티어의 포르쉐 트리는 당연하게도 VK 45.01(P) "포르셰 티거"로, 차체 전면에 100mm 두께의 장갑판을 추가로 붙인 지휘전차 사양으로 등장. 현실과는 달리, 경사진 곳을 오른다고 엔진이 고장나거나 불타버리는 일도 없고 속도도 의외로 잘 나온다. 헨셸이나 포르셰나 같은 주포를 최종포로 가져가나, 헨셸은 살짝 뒤로 물러나 정신나간 DPM으로 승부를 보고 포르셰는 DPM은 떨어지지만 두툼한 전면장갑으로 앞에서 방어하는 식으로 플레이 방식이 갈린다.

9.9 버전 업데이트에서는 일본 중전차 트리의 선행 체험 격으로 초기 양산형 티거가 6티어 프리미엄 전차로 등장한다. 본디 일본에서 구입하여 잠수함을 통해 본국으로 옮기려고 했다가 실패한 차량으로, 고증 세팅을 장비한 대신에 6티어로 내려왔다. 원판이 가지고 있던 100/80/80과 티어 대비 높은 체력이란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6티어로 내려왔지만, 게임 내에서 하위권 성능에 속하는 56구경장 8,8cm 주포와 장갑이 얇고 커다란 전차장 탑승구가 발목을 잡는다. 인게임에서 6호 전차가 독일처럼 Tiger I으로 등장하는 대신 No.VI로 나오는지라 어떤 전차작명가에게 노비라고 읽혔고 이후 노비탱크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일본 티거를 의미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게임 밖에서는 독일 티거까지 노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 걸즈 앤 판처의 스핀오프 만화인 리틀 아미2 에서 역시 주인공 나카스카 에미가 속한 벨워르 고교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전차가 이거였다. 이후 대장차로 운용
  • 아카마츠 켄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육상방위대 마오의 주인공 오니가와라 마오의 서포트 메카로 등장한다. 개발 당시에는 "백호"라는 이름이었으나 마오가 마음대로 "미 군(みーくん)"이라는 이름을 붙여 버린다. 주인공과 의사 소통까지 가능하다.
  • RTS 게임인 Men of War 시리즈에서도 단골로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균형잡힌 성능을 가진 중전차로서 고수가 잡으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까다로운 전차다.
  •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해피 타이거에서 진주인공급. 마지막엔 일본군을 돕기 위해 인도차이나로 간다! 후에 전투가 끝나자 강물로 직행.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국방군 전격전 트리에서 800 맨파워로 호출할 수 있다. 퍼싱의 추축군 버전 같은 느낌. 하지만 옆 트리의 킹 타이거와 비교가 돼서 많이 까이기도 한다. 티거 에이스 캠페인을 클리어했다면 해당 캠페인의 주인공인 막시밀리안 포스 대위가 지휘하는 티거 전차로 교체할 수 있다. 교체시 스킨과 대사가 바뀌며, 숨겨진 근소한 명중률 보너스가 붙는다.
  • 속편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는 독일 동부군의 소환 유닛으로 등장한다. 맨파워 800만 있으면 됐던 전작과는 달리 200이 넘는 연료도 요구하기 때문에 부르기가 다소 까다롭다. 대신에 맷집과 화력 하나는 끝내주며 보급 제한과 자원에 여유만 있다면 숫자 상관 없이 마음 껏 불러낼 수 있다. 이외에도 "엘리트 독트린" 지휘관은 "티거 에이스"라는 유닛을 불러낼 수 있는데 한 번 불러내면 몇 분간 자원 수급이 바닥을 치게 된다. 대신에 더욱 더 강화된 성능을 자랑하며 약점 사격 스킬을 통해 상대 기갑 유닛을 정신 못차리게 할 수도 있다. 등장 형식은 전부 초기형이나, 대공용 MG42를 장착할 수 있다는 작은 고증 오류가 있다.
  • 콜 오브 듀티에서는 독일군의 적군 전차로 등장하는데, 꽤 비중이 높다. 세 번째 미션부터 등장하지만 판저파우스트에 3대가 날아간다(...).[70] 다음 미션부터는 무디 하사, 엘더 일병과 마틴 일병을 위협하는 포스를 보인다. 러시아군 전차 편에서도 다만 이 작품의 확장팩인 콜 오브 듀티: 유나이티드 오펜시브에서 비중이 줄고 등장하면 꼭 바주카에 터져버리는 안습의 시작이 되었다.[71] 무엇보다 러시아군 편에서도 엘리펀트 탱크의 위상에 묻힌 감이.
  • 2014년 10월 15일에 미국에서 개봉되었고 동년 11월 14일 우리나라에 개봉된 전쟁 영화 퓨리에 출연하여 관객들에게 엄청난 존재감과 포스를 과시하였다. 셔먼 전차들의 공격을 전면 장갑으로 모조리 튕겨내는 반면 첫 탄에 셔먼 전차장을 헤드샷(...)해 버리고 둘째 탄에 일격에 셔먼의 정면장갑을 관통하는 등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준다


작중에서는 슈츠슈타펠 소속으로 초기형 한대가 나왔는데 매복하고있다가 셔먼 전차 한대를 날려버리며 첫등장하며 3대1 전투에서도 2대의 셔먼을 격파하고, 마지막에는 주인공 일행의 퓨리와 일기토를 벌이나, 근접전을 벌이던 도중 티거의 후방을 잡은 퓨리의 영거리 사격 2연타에 전차는 격파된다. 티거의 승무원 2명은 즉사하고 2명이 탈출하다가 컬리어 하사의 돌격소총에 의해 그 자리에서 사살된다. 전차장이 권총으로 최후의 발악을 해보지만 나치에 대한 증오심에 차 있던 노먼이 사격하는 브라우닝 M1919 기관총에 사살당하는 걸로 상황종료.

그런데 이 영화에는 세계 최초로 레플리카가 아닌 진짜 대전 당시 제작된 티거 전차가 나왔다. 그것도 바로 문서 상단에 나온 보빙턴 박물관의 131호 티거가! #BBC의 관련보도(영문)


사실 진짜 대전 당시 제작된 티거 전차가 세계 최초로 나온 건 퓨리가 아니다. 아른험 전투를 다룬 1946년 영국 영화 'Theirs is the Glory'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HTML <img src="http://postfiles3.naver.net/20160508_178/garfield510_1462640247525ApT5m_JPEG/pdvd_333_716.jpg?type=w2"?width=400>

  • 영화 프라하의 독립에 레플리카 티거가 등장한다.

사진 중앙에 나온 전차는 4호전차고 오른쪽 구석에 있는 전차가 티거다.

  • 워스토리 코믹스에 실려있는 단편, 요한의 타이거에서 주인공 요한의 전차로 나온다. 작중에서는 '막스'라고 불리우며 마지막 전투에서 요한을 제외한 승무원 모두가 전사하고 막스는 마지막으로 소련군의 IS-2를 잡고 격파된다.

  •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에서는 독일군의 첫 번째 중전차로 등장한다. 첫 번째라곤 해도 현질을 제외하면 전차병을 상당히 숙련해야 입수할 수 있는 전차인데, 아쉽게도 명성에 비해서 평가는 좋지않다. 상대하는 미군과 소련군의 중전차가 티거 잡자고 만들어진 M26 퍼싱IS-2 인지라 공격력이나 방어력 면에서 열세이기 때문. 거기다 기동성은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차량을 통틀어서 가장 느려터져서(보병보다 훨씬 느리다!) 대전차 보병의 기습에 심각할 정도로 취약하다. 이런저런 문제로 현질이 가능한 유저는 티거를 거르고 바로 티거 2로 넘어가지만 현질이 가능하지 않은 유저는 티거로 발암(...)을 만끽하며 대전차전의 정수를 익혀서 티거 2로 넘어가 굇수가 된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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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 썬더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월드 오브 탱크와는 달리 티거가 엄청나게 흉악한 놈이다. 이 녀석 떴다하면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장갑이 숭숭 뚫리며 죽어나가는게 정상이지만, 워 썬더에서는 단 한 발로 IS-2나 T-34/85등을 격파할 수 있다.[72] 하지만 1.55 기준으로 영국 전차를 만나면 유폭하는게 일상이다.. 물론 이건 티거가 약한게 아니라 영국 전차가 심하게 OP인 것이다
  • 홈프론트에서는 로딩화면중 김정은댐으로 개명된 후버댐이 나오는데 거기에 깨알같이(...) 있다.

14 모형화

2차 세계대전의 아이콘과 다름없는 전차답게 어지간한 프라모델 회사라면 안 건드린 곳이 없다. 아카데미과학, 타미야, 드래곤 모델, 이탈레리 등 쟁쟁한 프라모델 메이커에서 티거를 만들어왔으며 각 회사마다 특징이 있다.

  • 아카데미- 처음에는 타미야 카피본을 만들다가 이후 내부를 재현한 초기형으로 호평받았으나 이 때의 티거의 포탑이 비대칭이라는 것이 알려져 결정판에서 사장되었다. 그래도 내부재현은 준수한 편인데다 연결식 궤도, 에칭 그릴 등 가성비는 매우 좋은 편. 포탑 등을 개수한 중기형과 후기형이 나온 상태다. 그리고 초기형 부품과 후기형 부품을 혼합한 하이브리드형을 모형화해서 출시하였다.[73] 특징은 세계최초로 개발된 치메리트 코팅용 데칼이 포함되어있다.
  • 타미야-대칭 포탑 건이 터지자 기존 생산품에 은근슬쩍 비대칭 포탑으로 개수하여 한동안 결정판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드래곤의 난입으로 결정판의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 그래도 기본 품질은 보장되고 조립성도 뛰어나다. 에칭이 없는 것이 흠.
  • 드래곤-티거에 환장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74] 수많은 티거 바리에이션을 뽑아냈으며 그 중에는 치메리트를 몰드화 시킨 중•후기형이 있으며 비트만 탑승 티거는 초기형 티거의 결정판으로 인정받는다. 이 킷에는 남는 부품도 많아서 다른 회사 티거의 디테일 업용 재료도 된다.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나 에칭, 남는 부품이 가격을 커버한다. 비트만 탑승차량 이후에는 보빙턴의 131호 키트를, 이후 아프리카 군단 사양을 계획하였다. 단 나날이 가격은 비싸지기만 한다.
  • 이탈레리-가격 자체는 저렴하나 대칭 포탑 및 비교적 낮은 퀄리티로 사실 상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편. 최근에는 에칭과 반연결식 윈터테켄(동계용 궤도)를 추가하고 치메리트 가 기본으로 붙어져있는 고급형도 나왔다
  • AFV CLUB-금속제 포신과 가동식 서스펜션을 재현하였으나 치메리트를 해주어야 하고 부품을 잘게 나눠놓은 탓에 조립성은 그렇게 좋지는 못한 편이다. 하지만 타미야보다 저렴하고 퀄리티는 미세하게 높은 편. 연질궤도는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나 붙이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다른 티거 키트에 비해 포탑 높이가 너무 높고 용접선 묘사는 부족하다. 단, 1/48 스케일의 티거는 결정판[75]에다 후기형의 경우, 치메리트가 몰드 처리다.
  • Rye Field Model -2015년 여름,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메이커로 첫 제품으로 다름아닌 아프리카 군단 501 중전차 대대 사양의 극초기형 티거를 발매했다. 발매 이후, 사이드 스커트 장착 볼트 위치 오류, 두꺼운 베기구 커버 기둥, 과장된 용접선을 빼면 뛰어난 프로모션을 보여주었고 이 때문에 2005년에 딱 한번 아프리카 군단 티거를 한정판으로 발매하고 그 이후, 생산하지않는다던 드래곤에서 부랴부라 아프리카 군단 티거를 계획했을 정도. 무엇보다 최근 DS 연질궤도만 넣어주던 드래곤과 달리, 가동식 궤도를 넣어주면서 드래곤보다도 저렴하여 화제가 되었다. 또한 2015년 11월에는 내부재현형 티거 초기형, 정확히는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 503 중전차대대 3중대 소속 차량을 발매하였는데 그 퀄리티가 극강이다. 가장 정밀한 내부재현 티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메리트가 있을듯.[76] 이후 아카데미처럼 페르만 전투단 소속의 하이브리드 사양의 티거도 발매하였다. 근데 엄청 비싼게 문제다...
  • 옥스포드(회사)-드디어 쉽게 접할 수 있는 블록으로 만든 티거가 나왔다! MILITARY WW2라인업으로 나왔으며, T-34, 5호 전차 판터, 윌리스 MB랑 같이 발매되었다.[77] 옥스포드답게 후한 악세사리는 물론이다. 다만, WW2 초기라인업인지라 해치가 탈부착식이고 들어있는 피규어는 전원 장교다. 이는 아직 슈탈헬름 같은 부품이 개발단계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일군 일반병사는 P-38[78],P-51[79]에서나 얻을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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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기의 나치 독일군 기갑장비
장갑차반궤도 장갑차Sd.Kfz. 251, 마울티어, Sd.Kfz. 250
장륜 장갑차M35 Mittlere Panzerwagen (ADGZ) Sd.Kfz. 221, Sd.Kfz. 231, Sd.Kfz. 234
전차경전차Pz.Kpfw. I, Pz.Kpfw. II
중형전차Pz.Kpfw III, Pz.Kpfw IV, Pz.Kpfw V Panther I
중전차Pz.Kpfw VI Ausf.E Tiger I, Pz.Kpfw VI Ausf.B Tiger II
구축전차Jg.Pz. 38(t) Hetzer, Jg.Pz. IV, 야크트판터, 엘레판트, 야크트티거
대전차 자주포1호 대전차 자주포, 마르더, 나스호른
돌격포StuG.III, 4호 돌격포, 4호 돌격전차, 슈투름티거, 돌격보병전차 33B
자주포1호 자주포, 베스페, 2호 자주포, Grille, Hummel, Karl, 105mm leFH18(Sf) LrS, 150mm sFH13/1(Sf) LrS, 판처베르퍼, 부르프라멘 40
자주대공포4호 대공전차(뫼벨바겐, 비르벨빈트, 오스트빈트, 쿠겔블리츠), 38(t) 대공전차
노획차량 및 개조품Pz.Kpfw. 35(t) Pz.Kpfw. 38(t) Pz.Kpfw. 7TP 731(p) T-15 경전차 르노 UE 샤니예트 르노 AMR-33/35 르노 R35 Pz.Kpfw. 35H 734(f) Pz.Kpfw. 38H 735(f) Pz.Kpfw. 737 FCM(f) 소뮤아 S-35 샤르 B1 bis Pz.Kpfw. T-34 747(r) T-28 T-35 KV-1 KV-2 마틸다 전차 발렌타인 전차 M3 리 M4 셔먼 P26/40 M15/42 Semovente M43
프로토타입T-25 경 트랙터, 대형 트랙터, 노이바우파초이크, 호이슈레케 10, D.W. 1 / 2, Pz.Kpfw V/IV, VK 시리즈, 기갑 자주포, VK 30.01 / 02, VK 36.01, VK 45.01(P), VK 45.02(P), VK 65.01, Panther II, Pz,Kpfw Maus, E-100, 게쉬츠바겐 티거, Räumer S, 8,8cm 바펜트레거
페이퍼 플랜Pz.Kpfw.III/IV,Pz.Kpfw.IV Schmalturm ver. ,VK 16.02 레오파르트, Pz.Kpfw VII Löwe, Pz.Kpfw IX /X, E 시리즈, 돌격전차 Bär, 슈투름판터, Landkreuzer P-1000 Ratte/라테, P-1500(몬스터)
차량퀴벨바겐, 슈빔바겐, 오펠 블리츠, 메르세데스 벤츠 G5, 메르세데스 벤츠 LG3000, 규격승용차(Einheits-PKW)
모터사이클R-75, Sd.Kfz. 2 (케텐크라프라트, 케텐크라트)
그 외동부용 궤도식 트랙터, 골리아트, 보르크바르트 4호, VsKfz 617, 독일 기갑 병기/기타
제2차 세계대전기의 헝가리군 기갑장비
전차경전차CV-35, 35(t), 1호 전차, 38M 톨디, 42M 톨디 II, 42M 톨디 IIa, 43M 톨디 III, 38(t)
중형전차40M 투란,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중전차44M 타스, 6호 전차 티거
노획전차M3 스튜어트, T-27, T-34/76
장갑차39M 차바
자주포AHD, 마르더 II
돌격포43M 즈리니, 3호 돌격포
구축전차헤처
자주대공포40M 님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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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 (1914~1945)냉전기 (1945~1991)현대전 (1991~)
  1. 지휘 전차는 동축기관총을 제거하고 추가 무전기를 장착했으며 탄약수가 조작한다.
  2. 1944년 이후에 제작된 후기형은 연합군 공군의 기관포 사격과 박격포 때문에 40mm로 강화되었다. 전차장용 큐폴라(탑승및 관측용 해치) 역시 이때 개선되었다.
  3. 독일어로 티거 아인스라고 읽으면 된다. 참고로 티거라는 별칭을 붙여준 사람은 페르디난트 포르셰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포르셰사의 그 분 맞다.
  4. 이런 외형 탓에 노르망디 전투 등에서 연합군이 티거와 조우했다는 보고중 상당수는 비슷한 실루엣을 가진 4호 전차였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5. 3대는 회수 1대는 폭파 처리했지만 완파되지 않았고 그 한대를 소련군이 확보하면서 귀중한 연구 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6. 2개 중대만이 티거를 배치받았고 나머지는 3호전차 N형으로 편성되었다.
  7. 출처 : Christopher W. Wilbeck, Sledgehammers: Strengths and Flaws of Tiger Tank Battalions in World War II
  8. 미하엘 비트만이 티거 에이스로서의 능력을 처음 보인 게 이 때.
  9. 44년 전투 도중 부상으로 훈련소 교관으로 활동하다 종전을 맞이한다.
  10. 전후에는 티거약국을 운영하면서 노년기를 보내다가 2015년 1월 24일 별세.
  11. 단, 44년에는 킹타이거를 지급받고 최후까지 킹타이거를 타고 전투를 치루었다.
  12. SS소속인 관계로 전적은 말소되었다
  13. 같은 이유로 말소. 102대대 소속이다.
  14. 오토 카리우스의 중대 소속으로 카리우스가 가장 신뢰한 전차장이다.
  15. 보다 많은 티거 전차장들의 기록은 이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
  16. 76mm T4/M93 HVAP 탄은 1944년 말에야 시험적으로 전차당 1~2발 씩만 지급되었고 제식 채용되어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건 1945년 2월이 되어서다. 티거의 전장 데뷔는 1942년, 생산 종료는 1944년 8월(45년 4월까지 생산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건 신규생산 종료 후 파손된채로 회수된 티거의 부품을 조합해 만든 재생 차량이다. 일명 좀비 티거. 얼마전까지 하이브리드 티거와 혼동되었으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산된 차량.), 그리고 독일이 항복한 유럽 승전 기념일이 1945년 5월 8일이다.
  17. 독일군은 중전차 대대를 구성해 독립적으로 운용하며 여기 배속된 전차병들은 탑승한 전차를 손실하거나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후송을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닌한 보직이 변경되는 일이 드물어 상대적으로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승무원들이 많았다. 물론 신규 편성되는 중전차 중대의 경우 3호나 4호를 타다 옮겨오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돌격포를 타다 전입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티거는 중전차 대대로 독립적으로 운용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후에 506 중전차 대대 4중대로 배속된 둥키르헨 구원 임무 중전차 중대도 첫 실전에서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1량의 티거를 완전 손실 당했다.
  18. 약실의 구경과 포신의 구경이 다른 포로 포탄도 텅스텐 탄심을 연철제 라이너가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발사되면 연철제 라이너가 포신 내에서 우그러들면서 포신을 통과하기 때문에 포신 내 압력이 올라가고 이는 탄심에 더 많은 운동에너지를 줄 수 있게 된다. 포탄은 거의 현용 120mm 활강포에 맞먹는 수준의 포구초속을 지니게 되어 7.5cm임에도 불구하고 8.8cm와 거의 동등한 관통력을 갖는다.
  19. 사람들이 많이 혼동하는데 티거는 모스크바 점령을 위해 개발된 공세용 병기이다. 80mm의 무지막지 한 후방장갑이 그 증거이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방어전에 더 많이 쓰이게 됐고 방어전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며 소방수로 유명해졌을 뿐이다.
  20. 갑론을박 중이던 주포가 이때 갑작스럽게 88mm로 결정되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히틀러가 새로 계획하던 1942년의 하계공세 청색작전(case blue)때까지 양산을 들어가려면 신형 주포 개발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가 큰 이유이다. 실제 티거는 VK 45.01 설계가 확정된 4월부터 불과 4개월만인 8월에 첫 양산품이 롤아웃된다.
  21. 중거리 이하에서는 오히려 7.5cm/70의 관통력이 더 좋으며 거리가 멀어지면 둘의 관통력이 역전된다.
  22. 전후 티거의 설계자에게 미국의 전차설계자가 왜 경사장갑을 채택하지 않았냐고 질문하자, 46톤 중량에 88mm탄 80발을 우겨 넣으려면 다른 선택이 있겠냐는 답변을 했다.
  23. 독일의 전차 설계는 실전경험의 영향으로 휴행탄수를 매우 중시했으며 티거의 설계 또한 연장선상에 있다. 다소의 방어력 약화가 있어도 휴행탄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일선 병사들의 요청이기도 했다. 이미 설계상에도 80발 이상이 탑재 가능한데도 무리해서라도 100발 넘게 탑재하고 다닌 것은 일선 전차병들이다.
  24. 현재 세계 유일의 가동가능한 티거로 유명한 보빙턴의 131호차. 사실 장갑이 관통당한 것은 아니고 6파운더 포탄이 포방패와 차체 상판 사이에 끼어버려 포탑 좌우 회전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연이은 사격에 가동축이 손상당해 포신 상하 가동까지 막힌 상태에서 궤도 손상으로 기동 불능 상태에 빠지자 전차병들이 전차를 방기하고 도주했다. 운이 상당히 좋았던 경우긴 하지만 어쨋든 6파운더로도 티거를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 자체는 가능했던 셈.
  25. 2량이라는 설도 있지만 독일측의 기록에 둥키르헨 구원 임무 중전차 중대의 최초 편성이 14대, 아른헴 철교 돌파후에도 13대의 티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대는 손상을 입고 멈춘것을 격파로 착각한것으로 보인다.
  26. 시뮬레이터의 거리부분은 오차가 좀 있는편이다. 정면과 측면 피탄각에 따른 관통거리 변화량을 주로 참고하자. 보다 많은 정보는 이곳을 참고.
  27. 출처 일본어 위키피디아 SU-152항목
  28.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SU-152항목
  29. 물론 티거의 평균 교전거리는 1km 전후로서 2km 이상 떨어진 전차를 격파한 사례를 일반화할 수 있는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는 1~2km 이상의 장거리에서도 우수한 명중율이 나왔다는 식의 과장된 주장들이 여럿 보이지만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컴퓨터 사격통제장치가 달린 3세대 전차인 T-80이 1,500m에서 66% 명중율 뽑는 판인데 단순 목측식 조준경 달린 티거로는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카를로스 헤스콕이 M2 중기관총에 스코프를 올려서 2km 저격했다는 건 헤스콕이 대단한 사람이란 뜻이지 M2가 저격총이란 뜻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당시 기준으로는 저정도면 대단한건 맞지만 그런 특수한 일부 사례가 과도하게 일반화 되는 경향이 있다.
  30. 카셀의 헨셀 공장에서 생산된 초기형 티거로 3소대의 1호차가 되면서 131호가 되었다.
  31. 당시 영국군 제 48 전차연대 소속 처칠 전차 1개 소대가 선제 공격을 하여 6파운더 포 3발을 명중시켰다. 물론 티거에는 먹히지 않았다. 문제는 맞은 부위가 영... 첫번째 탄은 포신에 맞고 도탄되었는데 하필 이게 튕겨나오면서 포방패 아래를 강타했는데, 포탑링이 파손되어 포탑의 회전이 불가능해진다. 이때 생긴 파편도 차 안으로 튀어서 조종수와 통신병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두번째 탄은 포탑측면의 기중기용 돌출부에 명중, 이 역시 도탄되었으나 이 포탄은 포신 아래의 주포 상하작동기구를 파손시켰다. 그리고 세번째는 문제가 많았던 해치에 명중했다. 결국 131호차 승무원들은 조종수와 통신수와 함께 탈출, 영국군이 131호를 노획하게 된다.
  32. 티거 3.44m / 셔먼 18.6m / T-34 7.7m / 4호 전차 5.92m, 거기다 제자리 선회인 피봇턴도 가능했지만 궤도가 나갈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전차장은 신중히 판단해야 했다.
  33. 산악지형이 많은 이탈리아에선 기동중에 대부분의 차량을 잃었다. 고딕라인에서의 방어전동안 64대를 손실했지만 적에 의한 격파는 5대에 불과. 반면에 이쪽에서 나스호른이 맹활약을 펼쳤다.
  34. 헤치, 잠망경, 주포 및 기관총좌에 전부 고무로 밀폐를 해야되는데 여러대의 티거에 이짓을 하느니 부교를 놓는게 빠른데다 잠수중 침수로 전차와 승무원이 훅 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K-21참고
  35. 출고시 방수 테스트가 됐다고 해서 포격을 주고받은 실전차량이 방수 능력을 믿을 수 있을리가...
  36. 총 126대 투입 105대 손실, 38대 전투손실, 13대 항공기에 의한 격파. 출처:Tigers in Combat, Vol. 1: Wolfgang Schneider
  37. 비교적 상태가 나쁜 차량을 해체해서 부품으로 유용한 것이다. 대대에 따라서는 차량의 20%까지도 이런식으로 소모되었다.
  38. 티거의 교환비 도표의 1차 출처는 Tigers in Combat, Vol I&II., Wolfgang Schneider, 2차 출처는 Tiger I infomation center이다. ##
  39. 물론 이건 티거만의 특징은 아니고 대부분의 전차가 회수만 되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40. 티거 초기형은 1942년 8월부터 1943년 6월까지 347대가 생산, 중기형은 1943년 7월~1944년 1월 동안 478대 생산, 후기형은 1944년 2월~1944년 8월 동안 530대 생산.
  41. 단 사진의 100호차는 포탑 측면 양 쪽에 보다 단순한 형태의 게펙카스텐을 달았다.
  42. 전면 장갑에 한자 복자를 거꾸로 쓴 차량
  43. SU-85는 좀더 일찍 배치되었다.
  44. 심지어 M8 그레이 하운드 정찰 장갑차의 승무원들이 '타이거를 잡았다.'고 보고를 올렸는데, 확인한 결과 실제로 격파된 차량은 4호 구축전차였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45. 실전에서 15도는(...) 사실상 수직이다.
  46. 공식적인 기록상으로는 티거와 미군이 서부 전선에서 교전을 한 것 자체가 세번밖에 되지 않는다. 기갑계의 본좌라고 할수 있는 스티븐 잘로가(Steven J. Zaloga)에 의하면 노르망디에 배치된 티거 I은 몇 대 없었고 그나마도 거의 전부가 영국군 담당 구역에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영국군은 티거 I과 자주 만났지만 미군은 그렇지 못했다는 소리. 게다가 미군 전차병들은 그게 실제 티거였든 판터였든 4호 전차였든 아니면 돌격포였든 상관없이 모든것을 티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록상 티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47. 보통 독일이 떨어지는 공업력으로 공업대국인 소련을 상대로 선전한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전성기 추축국은 전 유럽의 공업력과 자원을 다 차지했고 이때 공업력 자체는 주요 공업지역 대부분을 잃은 소련에 비해 훨신 유리했다. 단지 늦은 총력전 개시와 독일 특유의 소수 장인 위주의 공업문화, 너무 잦게 개량되는 병기들과 이런 저런 이유로 임무 영역이 중복되는 병기들을 뽑아대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삽질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낭비가 매우 비효율적인 공업효율을 불러와서 결과적인 생산량이 한심했기 때문에 산업능력이 열세한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즉 독일은 그들의 전통적인 공업문화를 따라 양보다 다양성과 질을 택한것이다. 반면 소련은 빠르게 총력전에 돌입했으며 주요 공업지대도 다 잃고 유보트의 견제로 랜드리스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베리아로 옮긴 공장에서 소수의 모델에 완전히 집중하여 규모의 경제를 완벽하게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질보다는 양을 택한 효율적인 공업방식을 취했고 독일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하여 결과적으로 이 방식이 매우 효과적임을 증명했다. 이후 독소전이 진행되어 소련이 완전히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는 43년쯤 되면 이젠 인도양을 통해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도 재대로 받기 시작하는데다 처음에 질 대신 선택한 양이 이제는 양이 곧 질이되어 때때로 막 총력전에 돌입하여 동원된 비숙련공이 만든 독일병기보다 소련병기가 질이 더 좋은 경우도 생겨난다.
  48. 본래는 원정이 홈그라운드보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이고 모든면에서 철저하게 불리하지만 보급을 지속적으로 원할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고 공업력에 장기적으로 타격을 줄 만큼 장기화할 능력이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적으론 원정이 모든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49. 영국은 이탈리아를 단숨에 몰아냈으나, 이것이 히틀러의 주의를 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에르빈 롬멜은 이탈리아를 도와서 '적당히' 영국을 쫓아내라는 상급자의 의향을 무시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북아프리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이때 겨우 한숨을 돌린 영국도 원래는 '2선'급으로 취급하던 북이탈리아 전선에 위기감을 느끼고 정면대결을 벌이게 된다.
  50. 이것 역시 위에 설명된 독일 특유의 공업문화와 일치한다. 반대로 소련의 경우 T-34를 저렇게 많이 찍어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더 쓸만한 성능의 전차를 만들어놓고도 양산하지 않는 일을 벌이기도 하며 실제로 양산하는 전차 대부분을 그냥 T-34로 통일시켰다. 중전차는 아예 생산라인에서 퇴출시키려 한 적도 있으며 SU-152나 ISU-152 같은 자주포들도 만능을 지향하면서 생산하여 가급적 생산모델을 줄이려고 하였다.
  51. 그러나 애초에 나치독일의 공업생산 방식상 애초부터 한 모델의 생산라인과 생산량이 많을 수가 없다. 나치독일의 전차를 사랑하는 그쪽 밀덕들이 다 알다시피 독일은 매우 다양한 병기를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뽑아댔는데 밀덕들이야 이걸보며 '얘는 이렇게 달라졌네~ 얘는 이게 다른점이야~' 하면서 보고 좋다고 하지만 이건 사실 스스로의 공업력을 엄청나게 까먹는 일이다. 이런 다양한 형식 변경은 정도가 적다 하더라도 생산라인의 변경시간이 필요하며 노동자의 노동숙련도를 낮추게 되는 악영향을 준다. 나치독일은 대전 초중반에는 한 라인 안에서 형식에 따른 생산라인 변경이 너무 세세하게 잦아 생산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대전 후반부에는 전선에 병기가 부족하다면서 생산라인을 통일할 시간이 없다며 기존에 생산하던 다양한 병기를 통합시키는 노력을 하는 대신 되는대로 당장 나오는 대로 뽑으면서 비슷한 성능의 병기 여러가지를 동시에 뽑는 일 까지 있었다.
  52. 경제학의 기초만 배워도 알 수 있겠지만 전시의 전차 생산은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가장 잘 먹히는 분야라고 평가받는 자동차 생산을 훨신 뛰어넘는(뽑고 모은 뒤 바로 전선 배송이다. 심지어는 도요타식 JIT의 부작용도 없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규모의 경제가 그대로 먹히는 분야로서 당연히 T-34와 셔먼을 주력으로 나머지 병기들이 이들을 받쳐주는 방식을 택한 소련과 미국의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은 나치가 택한 다품종 소량생산에 비해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련이 독일마냥 수시로 여기저기 바꿔가면서 여러가지를 혼합하여 뽑아댔다면 T-34는 그 높은 생산성을 고려해도 절대로 2차대전에 양산된 물량만큼 못나왔을 것이다. 여담으로 독소전에서 양측의 산업시스템을 학문적으로 본다면 양측의 장단점을 포함하여 경제/경영학/산업공학 중심의 소련vs기계공학 중심의 나치라고 보면 거의 맞아 떨어진다.
  53. 물론 당장 소련의 강력한 전차들에 대항하여 조금이라도 개량할 수 있으면 바로 바로 개량한 독소전 초기와 당장 전선에 병기 수요가 엄청난데 생산량은 떨어지니 중복 병기들이라 할지라도 일단 뽑아서 보내고 봐야 한다는 대전 후기에 대해 그냥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학적, 산업학적 입장에서 나치의 다양한 형식의 다양한 기갑병기 라인업은 가지고 있던 공업력을 스스로 까먹는 한심한 시스템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54. 그나마 믿을만한 3호는 앞날이 불투명하고, 4호는 물장갑이고, 1,2호는 그냥 장갑차보다 쪼금 더 강한 수준이었다. 체코에서 38(t)를 반강제로 도입했듯이, 독소전 초기의 독일군은 노획한 T-34에게 형식번호까지 매길 정도로 애용했다. 그외에도 좀 쓸만해보이는 적군 전차는 가능한 노획해서 2선급이나 후방 치안 유지용으로 사용했다. 전차만 이런 것이 아니라 적군의 대포까지도. 마르더2의 주포가 소련제인 건 다 이유가 있다.
  55. 이 인력 어쩌고 하는 부분이 바로 나치의 병맛을 더더욱 맛 볼 수 있는 부분으로서 이렇게 인력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점령지의 유대인과 슬라브인들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인력으로 사용하는 대신 안그래도 그 부족하다는 자원을 퍼부어서 저런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끝까지 몰두한다. 즉, 위에서 보았듯 나치는 그 부족하다는 공업력을 스스로 망치는 한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 부족하다는 가용 인력도 스스로 자진해서 까먹어 주는 집단이었다. 스스로 실드거리를 없애는 한심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56. 그 결정판이 바로 페이퍼 플랜과 황당한 시제품, 나치의 비밀무기로 알려진 병기들이다. 나치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무기가 아니라 적을 효과적으로 놀래킬 수 있는 무기를 필사적으로 찾아서 헤맨 집단이라는 평가가 나온 건 이 때문이다.
  57. 앞에서도 언급했듯 여러가지 이유로 스스로의 공업력을 까먹는 나치와 가능한 병기 생산 모델을 줄여서 소규모 모델로 통일하여 애초부터 닥치는대로 뽑기 좋게 만들었던 소련의 산업시스템 차이도 있다.
  58. VVSS를 장착한 셔먼의 경우 야지에서의 접지압이 꽤 커서 나중에 HVSS로 교체한다.
  59. 이 고증을 따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테일즈 오브 밸러의 캠페인중 하나인 '티거 에이스' 첫 미션에서 엔진이 고장나서 가만히 앉아서 수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툭하면 발생한다. 오죽하면 미션 도중에 "슬슬 엔진 나갈 때가 됐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행히도 승무원이 나가거나 하진 않고 차내에서 수리하는데다가 이 캠페인에서 티거는 전차 무쌍을 찍으니...
  60. 잘 보면 궤도가 떨고 있는데, 아무래도 기동 중인듯 하다.
  61. 보존과정에서 수리 될 당시에도 남아있던 노획 당시의 도탄 흔적을 보존하여 전쟁의 참혹성을 관람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62. 비단 잠수함 뿐만이 아니라 수송선에서도 전차만한 무거운 물건을 운송하기는 쉽지 않은지라 영국은 만들어둔 전차를 운송할 수단이 없어서 본토에 쌓아두고 있었다.
  63. IS-2가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성능으로 중형 전차로 분류되었을 것이란 이야기는 틀린 말이다. 당장 타국의 중전차급 무게와 덩치의 판터도 중형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유는 중전차와 중형 전차가 단순히 무게와 크기뿐만이 아닌 용도에 따라 분류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중전차가 흔히 대기갑전울 중시해서 만들어진것 사실이지만 초기 설계에서는 IS-2와 비슷한 용도를 상정하고 있었다. 다만 소련을 침공한 이후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우수한 스펙을 갖춘 소련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 대기갑전을 대단히 중시하는 설계로 진행하게된다. 독일이 IS-2 같은 전차를 만들어냈었다면 판터와 비슷한 덩치와 무게와는 별개로 그 용도에 따라 중전차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64. 13권 일러스트에서는 후기형 크룹 포탑의 티거 2가 그려져 있지만 14권 일러스트에서는 티거가 그려져 있다. 어느것이 진짜?
  65. 파이퍼 전투단으로 유명한 SS501 중전차 대대에서 304, 314, 324, 334 네 대의 티거 2가 탑승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일러스트의 324호차가 어쩌면 혹시나...
  66. 장갑함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중세시대의 목제 전열함이다.
  67. PzGr.39탄 기준. PzGr.40탄의 경우 100m에서의 관통력은 170mm다.
  68. 이 장면은 Girls und Panzer에서 그대로 재현되는데 희생양이었던 엘레판트는 돌릴 포탑조차도 없었다.
  69. 다만 스톡(75/70장착)의 경우에는 H2형을 모델로 하고 있다. 105mm 버전은 가상이다.
  70. 물론 마지막 전차는 두 명의 미군이 전차 뚜껑을 열고 안에 수류탄을 까 던져서 폭파시키기 때문에 쏠 필요는 없다. 쏘다가 미군 2명이 죽는다(...).
  71. 그나마 첫 미션 초반부에서 무디 하사와 엔더, 라일리 일병을 위협하는 포스를 보였지만...(그 때는 라일리 일병의 무기가 M1 개런드만 있었던 데다 탄약이 적었다.)
  72. 이는 월탱과 다른 워 썬더의 DM 때문이다. 포탄이 장갑을 관통할 시 발생하는 내부 파편에 의한 데미지가 중시되는데, IS-2나 T-34/85같은 전차들은 승무원이 옹기종기 모여있기 때문에, 탄 무게가 10kg에 달하는 88정도면 제대로 쐈을 시 T-34는 물론이고 IS-2는 약점인 하단에 연료통이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 끼어있는 조종수는 물론 승무원을 몽땅 다 태워버리거나 파편으로 몰살시킬 수 있게 된다.
  73. 외형만 재현하였다.
  74. 아닌게 아니라 모델러들에게는 드래곤 사장이 티거는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것이라고 공언을 했다고...
  75. SKYBOW사가 도산하자 그 금형을 인수하여 뽑아낸 것이다.
  76. 재미있는 것은 아카데미에서 발매한 내부재현 티거가 나온 지 20년 만에 이 회사에서 내부재현 티거 키트가 나왔으며 또한 아카데미 내부재현 티거는 당시에 호평을 받아 해외 모향행사에서 상을 수상받았는데 이 Rye field 내부재현 티거 키트도 그 행사에서 상을 수여받았다.
  77. M4 셔먼은 이지에잇, 즉 한국전장 사양으로 따로 발매
  78. 퀴벨바겐, 8.8cm Flak 동봉
  79. 3cm 대공포가 달린슈빔바겐 동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