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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동명의 경전차 - 소련군 경전차/기타#s-1.11
- 미국의 동명의 프로토타입 중(重)전차 - T34
- 미국의 중(中)전차 M4 셔먼 전차의 포탑 위에 탑재한 동명의 다연장로켓 - 칼리오페
목차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T-34-85 중(中)전차, 서울시청 앞의 조선인민군 215번 전차 |
1 개요
급하게 대량생산을 했기 때문에 연결부위 등이 무척 조잡하다. 멋보다는 강인함에 초점을 둔 것이다. 물론 T-34가 2차 대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차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임무는 확실하게 수행해냈고, 그 엄청난 생산량은 전쟁의 균형을 뒤집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 대전사'
"어떤 얼간이들은 소련의 T-34가 2차 대전 최고의 전차라고 합니다. 소련은 이걸 9만대나 생산해냈죠. 그래서, 당시에 그들이 우리 편이었던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군요."
소련과 러시아의 1세대 전차[1]를 대표하는 전차이자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운용된 중형전차다. 소련이 만든 걸작 전차로 알려졌으며, 성능도 준수하지만 트랙터 공장이나 기관차 공장에서 찍어낼 정도로 생산하기 쉬운 구조 덕분에 많은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질적으로 월등한 독일 기갑 전력에 비해서 열세였던 소련의 상황을 물량으로 반전시키고, 전쟁을 이기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생산된 수나 전쟁에서의 중요성, 실전 검증 등을 기초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 전차 중 하나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이후 한국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의 전차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유명한 전차다.
소련군이 붙인 별명은 로지나(Родина:조국, 모국)이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쓰인 말이 아니었으므로 현지에서 찾을 때는 그냥 T-34[2]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1.1 개발
T-34는 BT-7M 쾌속전차의 후속 전차로 개발되었다. 1939년 8월 76mm 전차포를 주포로 장착한 A-32가 신형 중형전차로 선정되었지만 1939년 12월 발발한 핀란드와의 겨울전쟁 결과 A-32의 성능부족이 드러나면서 생산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 A-32와 경쟁에서 탈락하였던 A-20 설계팀이 A-20의 장갑 두께를 1.5배 강화한 개선안을 제출하고, 1939년 12월 이 개선안이 T-34로 제식 채용되었다.
하지만, T-34가 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940년, T-34 전차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제183호 공장에서 500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100대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차에 독일로부터 3호 전차 2대가 수입되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당시 소음에 있어서는 97식 전차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요란하기 그지없었던 T-34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소음이 적은 3호 전차는 소련 기술진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서스펜션과 넓은 포탑 내부 공간, 그리고 전차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차내 인터폰 및 우수한 성능의 무전기 등 T-34가 3호 전차에 비해 유리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 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T-34가 못 쓸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병사령관 육군원수 그리고리 쿨리크(Григо́рий Кули́к, Grigory Kulik) 장군은 이걸 빌미로 계속 시비를 걸면서 T-34의 설계 및 생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그리고리 쿨리크 장군
쿨리크 장군은 1890년생으로,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데다가 보수적인 육군 장성이었다. 게다가 코시킨 기사의 상관인 리하초프가 자신의 라이벌이라는 이유까지 있었으니 어떻게든 T-34의 채용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T-34에 탑재될 76.2mm 주포가 너무 약하니 107mm 주포를 탑재하라',이런 전차보다는 BT 계열의 쾌속전차를 생산하는 것이 낫다!'는 식의 태클을 시시건건 걸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레닌그라드 전차공장 지대에서 수석 설계자로 근무하다가 쾌속전차를 개발하던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으로 전속된 후 이 곳에서 설계 중이던 신형 쾌속전차 A-20을 기초로 보다 강력한 76.2mm 주포를 탑재하고, 장갑을 강화하는 한편 광폭 궤도를 적용시켜 유명한 T-34를 만들어서 T-34의 설계자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킨 기사는 과로와 쿨리크 장군의 방해로 인해 결국 1940년 9월 26일,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었다.
그 이후 모로조프가 수석 기술자가 되어 설계는 재수정되었지만 쿨리크 장군은 이 때까지도 계속 딴지를 걸어 T-34M(A-43)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 T-34의 생산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는 판국이었다.[3]
결국 쿨리크 장군의 딴지 및 몇몇 악재로 인해 1940년 제183 공장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될 약 600대의 T-34/76은 겨우 117대만이 생산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쿨리크 장군은 T-34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인 것이 실탄을 낭비한다고 보병의 기관단총 도입을 막았고, 지뢰도 쓸모없다고 하다가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 때 소련군의 대패를 초래했다. 후에 육군 소장으로 강등된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다가 전후에 전화로 스탈린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도청에 걸려서 반역죄로 총살당했으니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무덤을 판 대가를 치루었으나, 그가 저지른 만행은 바르바로사 작전뿐 아니라 독소전 초반과 중반기에 소련군의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큰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쿨리크 장군이 그렇게 밀던 A-43의 개발은 독소전쟁이 발발된 뒤 T-34의 생산라인에 차질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폐기된다.
1.2 표기법
흔히 T-34/76, T-34/85 등의 주포별 분류법은 독일에서 사용한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 대신 - 하이픈을 사용하여 T-34-85와 같이 표기했다. 독일은 T-34-76을 세분화해서 분류하였으나, T-34-85 1943년형(D-5T 장착형)과 1944년형(ZiS-S-53 장착형)은 동일하다고 여겼는지 분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본국 소련에서는 형태에 따라서 특별히 분류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도 독일 자료를 의존했으나, 1960년대부터 동구권 국가에서 발행된 책자를 입수한 서방에서는 T-34에 대해서 비교적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2 생산 공장
비교적 타국 전차에 비해 생산라인이 간단해 트랙터 공장부터 기관차 공장까지 나름 인지도 있는 곳에서 생산되었다. KhPZ와 UTZ의 공장번호는 183으로 공유했다.
2.1 부품
- 제9호 야포 공장
- 당대 소련의 모든 화포의 생산을 책임지는 공장으로 생산된 화포를 필요에 따라각 지역 공장에 조달했다.
- 야로슬라블 타이어 공장
- 충격 흡수를 위해 보기륜에 필요한 고무 타이어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1942년 겨울부터 43년 초봄까지 야로슬라블 강이 얼면서 조달에 차질을 빚자 철제 보기륜을 사용했어야 했다.
- 무전기 생산 공장
- 초기 항공기용 무전기를 개수한 무전기를 생산하여 T-34 생산 공장에 납품하였으나, 공장이 소개되면서 한 동안 무전기도 없이 생산되었다. 전쟁 중반기에 공장이 다시 재가동 되면서 영국에 랜드리스 받은 부품으로 신형 무전기를 생산해 조달했다.
2.2 전차
- 제183호 스탈린 전차 공장
- 니즈니 타길에 위치한 UTZ와 1941년 말 이곳으로 피난 온 KhPZ가 병합되어 1941년 말부터 1944년 초까지 1만 5천 여 대의 T-34-76을 생산하고, 1944년 중반부터 1951년 초까지 3만 여 대의 T-34-85를 생산했다.
-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 나름 T-34 프로젝트를 진행한 본 설계국과 T-34를 최초로 생산한 공장이었으나, 하리고프 공방전의 여파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1941년 9월 12일부터 니즈니 타길의 우랄열차공장으로 장비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 우랄열차공장(UTZ)
- KhPZ가 이전하기 전인 1941년까지만 해도 기관차를 생산하던 공장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T-34 계열 전차를 가장 많이 생산한 곳으로 종전 후에도 T-34-85가 소수 생산되었고 이곳이 바로 러시아의 최대 기업 우랄바곤자보드의 전신이 된다. 아직도 전차와 열차, 트랙터 등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 우랄공장(UZTM)
- 우랄마쉬의 전신으로 1942~43년 동안 6천여 대의 T-34-76을 생산했다.
-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 스탈린그라드에 위치한 트랙터 공장으로 1941~42년 사이 3천 8백 여 대의 T-34-76을 생산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여파로 1942년 10월 말 공장 노동자들에게 최종 탈출 명령이 내려지면서 전차 생산은 중지되었다. 공장 설비 대다수는 폭격으로 공장 건물 잔해에 매몰되어 설비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종전 후 복구되었으나, 더 이상의 전차 생산은 없었다. 볼고그라드 트랙터 공장으로 유지되다가 부도가 나서 2004년 파산했다.
-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ChTZ)
- 1941~43년 사이 T-34-76을 생산했다. 1943년부터는 이전해 온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LKZ)와 병합되어 중전차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경되었다.
- 제112호 전차 공장
정식 명칭은 니즈니 노브고로드 기계 공장으로 흔히 레드 소르모포 작업장으로 알려져 있다. T-34-76을 1941~44년 사이 6천 3백 여 대를 생산했으며, T-34-85의 포탑을 설계하고 2만 여 대를 생산하는 등 주요 공장 역할을 전담하다가 종전 후 공장의 주력이던 조선소와 열차 설비 재가동으로 설계국과 공장은 문을 닫았다.
- 제174 전차 공장
- 옴스크트란스마쉬의 전신으로 우랄열차공장과 함께 니즈니 타길에 위치한 기계 공장이었다.
3 양산형
크게 주포에 구경에 따라 분류한다.
76mm L-11 또는 F-34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76, 57mm ZiS-2 또는 ZiS-4M 대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57, 85mm D-5T 또는 ZiS-S-53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85로 분류된다.
이 분류법은 독일식 분류법으로 정작 소련에서는 특별히 형태를 구분하지 않았다.
3.1 T-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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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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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57 Obr 1942 이거나 1943 |
'소련 T-34/57 중전차 | ||
<1941년형 제원> | ||
전장 | 6.68m | |
전폭 | 3.00m | |
전고 | 2.45m | |
전비 중량 | 26.5t | |
탑승 인원 | 4명 (전차장[4], 조종수, 장전수[5], 무전수[6]) | |
엔진 |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 |
최고 출력 | 500hp | |
현가 장치 | 크리스티 현가장치 | |
최고 속도 | 55km/h | |
항속 거리 | 400km | |
주무장 | 73구경장 57mm ZiS-4 강선포[7] 1문 (77발) | |
부무장 | 7.62mm DT-29[8] 동축기관총 2정[9] (2,898발)[10] | |
생산 댓수 | 51대"[11] |
T-34-57은 T-34-76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으나, 양자의 차이는 주포의 차이뿐,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이는 개발계획의 통합에 따른 것이다.
주포인 57mm 대전차포는 73구경장의 장포신으로 관통력에서는 76mm 전차포 보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12] 하지만 당시 소련의 기술력으로는 해당 주포의 포신을 대량으로 조달할 능력이 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대전차전만 감안한 나머지 고폭탄의 개발이 지지부진했고[13], 양산된 양도 적었으며, 57mm 고폭탄의 성능도 거의 수류탄 수준이라서 의외로 대보병전이나 대참호전같은 곳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대한 약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수가 양산된 T-34/57은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T-34/76과 함께 제대로 된 부품 및 탄약지원없이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안그래도 신형전차라서 부품과 탄약이 기본적으로 모자란데다가, 특수하게 제조된 신형포탄까지 필요한 관계로 T-34/76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투입된 다수의 전차가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격파당했으며, 살아남은 소수는 간헐적으로 보급되는 약간의 탄약과 물자에만 의지해서 주로 대전차전 전용으로 쓰이다가 소모돼서 사라진다. 추가적인 양산이 몇 번 고려된 적은 있었지만, 앞서 말한 주포와 탄약의 조달 문제 등으로 인해 50대만 생산되고 T-34/76 와 85에게 자리를 넘겨준다.
3.2 T-3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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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76 1940년형[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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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76 1941년형[15] |
280px | ||
280px | ||
300px | ||
T-34-76 1942년형[16] |
화염방사 전차로 개조된 T-34-76(OT-34) |
탱크 바이애슬론 대회 시작 전 나온 러시아 육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76. |
T-34-76은 생산 공장마다 제각각 전차의 모습이 달랐다. 엔진 배기구의 문, 차체 동축기관총대 모양, 보기륜, 포 방패, 궤도, 보기륜 등이 그러하다.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에서 1948년까지 약 8만4천여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의 크리스티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당시 소련의 공업 능력은 독일이나 다른 국가에 비하면 한참 뒤쳐져 있었고, 비숙련공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초기형 T-34의 장갑 두께는 다 제각각이었다. 카탈로그 상으로는 준수한 스펙을 보이나 후에 미국에게 양질의 강재를 받고 비숙련공들이 숙련공이 되어 쓸만한 품질의 제품을 뽑기전까지는 카탈로그 방호력 스펙에 훨씬 모자라는 성능도 보였다.
독소전 극초기에는 주력 대전차포의 구경이 대부분 37mm에 그쳤기에 전면에서 T-34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고, 이는 방심하던 독일군의 입장에서 큰 충격을 불러왔다. 기존에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 Pak 36은 T-34의 장갑앞에서 무력했기 때문이며 결국 PaK 36이 "도어 노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물론 105mm 야포나 8,8cm FlaK를 사용하면 격파할 수 있었으나 그 이외에는 대응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후 독일군은 5cm PaK 38과 이를 선회포탑에 장착한 3호 전차 J형을 투입해서 T-34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1943년형처럼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게 옳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 고속전차로부터 물려받은 경사장갑 설계로 당시 3/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꽤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5호 전차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이미 서서히 수세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의 국력은 소련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 독일은 2차대전 중기에 유럽 대부분의 자원과 공업력을 장악했고 잘만 운용했다면 풍족한 자원과 함께 엄청난 공업생산력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전통적인 장인 위주의 공업 시스템 때문에 품질은 매우 우수한 반면 생산성은 극도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거기에다 독일에 점령된 지역의 엔지니어들과 공장근로자들은 조국을 점령하고 자신들을 압제하는 독일에 저항해 생산성 향상은 커녕 마지못해 만드는 물량의 기본적인 품질도 저하시켰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독일은 1941년 즈음엔 이미 총력전 체제에 들어섰으나, 기업들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전시경제체제의 운영으로 인해 공업 효율이 극도로 나빴다. 프리츠 토트 - 알베르트 슈페어 등의 생산개선을 거쳐 독일의 생산력은 1944년 즈음에는 소련과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전세의 주도권이 뒤집힌 상태였다.
- 반면 소련은 독소전 초기에 주요 공업 지대를 죄다 빼앗겼고 대전 중기까지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음에도[17] 빠른 총력전 돌입과 저품질 대량 생산에 의해 여전히 독일에 뒤지지 않는 생산력을 발휘했다. 초기에 소련군 병기의 품질은 독일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만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생산 속도는 더 빨라지고 품질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고로 전쟁 초반에는 품질이 높고 하나 하나가 강한 병기를 가진 독일군이 매우 우세했으나 숙련공의 느린 양성 속도 때문에 생산량도 답보 상태였고, 전쟁에서 밀리면서 갈수록 연합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공업력과 자원줄도 떨어져 가니 뒤늦게 총력전에 돌입해서 비숙련공을 돌리기 시작해도 이들이 쓸 여유 자원도 공업력도 부족해진 독일에 비해 경험과 규모에 의해 갈수록 더 많이, 쓸만한 품질의 병기가 튀어나오는대다 랜드리스에 의한 추가적인 자원과 영토 해방에 의한 공업력과 인력까지 추가적으로 더 받게된 소련의 생산시스템은 대전후기 생산력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버렸다.
독소전쟁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대 중에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수량이 약 2천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18]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19] 심지어 한 소련 육군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라며 폭풍디스를 시전했다.[20]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투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소련제 전차는 본질적으로 장갑이 얇은 경전차인데다가, 호위 보병없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대 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삽질이 겹쳐져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 육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소련 육군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사단에 딸린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이나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아 그때 그렇게 한게 맞았구나" 라며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일한테 그 틈을 찔리면서 독소전쟁을 맞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된다. 이렇게 갓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 육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모스크바 방어전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고, 소련 육군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어느정도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는 독일군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하지만 아래에서 언급하듯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1944년부터는 본격적인 개량형인 T-34/85에게 바통을 넘기고, 남은 T-34/76은 새로 보충되지 않고 전장에서 격파될 때까지 사용하다가 박살나면 T-34/85가 보충되고, 박살난 전차는 쓸만한 부품은 다 뜯긴 후 방치되거나 고철로 변했다. 그래서 의외로 생산량에 비해 21세기 시점까지 남아있는 전차수량이 매우 적고,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다. 그러나, 더 아래에도 있지만 북한 육군이 현역으로 굴리고 있다는 추측이 있다.
소련 육군의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라브리넨코(Дмитрий Фёдорович Лавриненко, Dmitry Fyodorovich Lavrinenko) 근위상위는 T-34/76을 타고 두달 반동안 56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했다(1941년 모스크바 전투 중 전사). 연합국 최고의 탱크 에이스임에도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소련에서도 묻혀있다가 소련이 망하기 직전인 1990년에야 소련 영웅훈장을 받았다.
(맨왼쪽에 있는 사람)
3.2.1 1940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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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76 Obr. 1940 |
소련 육군 | |
T-34/76 1940년형 (L-11 장착형) | |
개발 및 생산 | |
개발 설계국 | 하리코프 설계국 |
생산공장 |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
개발연도 | 1939~40년 |
생산연도 | 1940년 |
운용연도 | 1940~41년 |
생산댓수 | 117대[21] |
운용국가 | 소련 |
제원 | |
전장 | 5.92 / 5.98m (차체 / 포신 포함) |
전폭 | 3m |
전고 | 2.41m |
전투 중량 | 25.6t |
탑승 인원 | 4명 (전차장 겸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22]) |
공격력 | |
주무장 | 30.5구경장 76.2mm L-11 강선포 1문 (77발) |
주포조준장치 | |
상하 부각 | −~+° |
좌우 회전각 | 360° |
부무장 | 7.62mm DT-29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
승무원 무장 | |
기동력 | |
변속기 | 수동 5단 변속기 |
엔진 | V-2 12행정 4기통 액랭식 디젤 엔진 |
최고 출력 | 500ps |
출력비 | ps/t |
현가 장치 | 크리스티 현가장치 |
최고 속도 | 45 / 15km/h (평지 / 야지 주행) |
항속 거리 | 300 / 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
접지길이, 접지압력 | m, kg/cm² |
초호능력 | m |
초월능력 | m |
등판능력 | ° |
잠수도하능력 |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
방어력 | |
장갑 | 압연 균질 강철 장갑 및 주조 압연 장갑 |
장갑 두께 / 경사각도 | 차체 전면 상단 : 45mm / 60° |
차체 전면 하단 : 45mm / 53° | |
차체 측면 상단 : 45mm / 40° | |
차체 측면 하단 : 45mm / 0° | |
차체 후면 상단 : 40mm / 47° | |
차체 후면 하단 : 42mm / 45° | |
차체 상부 : 16 ~ 20mm | |
차체 하부 : 13 ~ 20mm | |
포방패 : 45mm | |
포탑 전면 : 45mm / 30° | |
포탑 측면 : 45mm / 30° | |
포탑 후면 : 45mm / 30° | |
포탑 상부 : 16 ~ 20mm |
우리가 흔히 아는 T-34/76과 같은 분류법은 소련이 아닌, 독일에서 표기한 것으로 서방권에서는 / 대신 -로 표기하여 T-34-76으로 표기했다. 1960년대 이후 동구권에서 발행한 T-34 관련 서적이나 잡지를 서방에서 입수한 이후부터는 더 세분화 된 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A-32가 1939년 정식 채택된 이후 1939년부터 40년까지 대략 소수만 생산되어 붉은 군대에 납품된 T-34 1940년형은 독소전쟁 발발 이전까지 기밀전차로 분류하여 전차병들은 훈련소에서만 볼 수 있었고, 방수포 등으로 씌어진 채 전국 각지의 훈련소로 배치되었다가 독소전쟁 초반에 급히 투입되었다. 또한, 대다수의 차량에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협동 작전이 힘들었다고 한다.주포 구경장이 짧아서 포 관통력도 낮았다.
3.2.2 1941년형
width=100% | 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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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76 Obr. 1941 |
소련 육군 | |
T-34/76 1941년형 (F-34 장착형) | |
개발 및 생산 | |
개발 설계국 | 하리코프 설계국 |
생산공장 |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우랄열차공장(UVZ), 니즈니 고브고로드 기계 공장(제112호),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
개발연도 | 1941년 |
생산연도 | 1941~42년 |
운용연도 | 1940~42년[23] |
생산댓수 | 약 3,014 여 대 |
운용국가 | 소련 |
제원 | |
전장 | 5.92 / 6.62m (차체 / 포신 포함) |
전폭 | 3m |
전고 | 2.41m |
전투 중량 | 25.6t |
탑승 인원 | 4명 (전차장 겸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 겸 무전수) |
공격력 | |
주무장 | 42구경장 76.2mm F-34 강선포 1문 (77발) |
주포조준장치 | |
상하 부각 | −~+° |
좌우 회전각 | 360° |
부무장 | 7.62mm DT-29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
승무원 무장 | |
기동력 | |
변속기 | 수동 5단 변속기 |
엔진 | V-2 12행정 4기통 액랭식 디젤 엔진 |
최고 출력 | 500ps |
출력비 | ps/t |
현가 장치 | 크리스티 현가장치 |
최고 속도 | 45 / 15km/h (평지 / 야지 주행) |
항속 거리 | 300 / 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
접지길이, 접지압력 | m, kg/cm² |
초호능력 | m |
초월능력 | m |
등판능력 | ° |
잠수도하능력 |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
방어력 | |
장갑 | 압연 균질 강철 장갑 및 주조 압연 장갑 |
장갑 두께 / 경사각도 | 차체 전면 상단 : 45mm / 60° |
차체 전면 하단 : 45mm / 53° | |
차체 측면 상단 : 45mm / 40° | |
차체 측면 하단 : 45mm / 0° | |
차체 후면 상단 : 40mm / 47° | |
차체 후면 하단 : 42mm / 45° | |
차체 상부 : 16 ~ 20mm | |
차체 하부 : 13 ~ 20mm | |
포방패 : 45mm | |
포탑 전면 : 45mm / 30° | |
포탑 측면 : 45mm / 30° | |
포탑 후면 : 45mm / 30° | |
포탑 상부 : 16 ~ 20mm |
붉은 군대는 1940년형과 1941년형을 전차병용과 지휘용으로 병행 생산할 예정이였으나, 독소전쟁 발발 이후 1941년형이 양산형으로 채택된다. 장포신의 42구경장 76.2mm F-34 강선포를 탑재하였으며, 1942년형과 43년형 역시 무장은 동일하다.
2,800 여 대 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3,014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하르코프에서 1,560대 이상, 니즈니 타길에서는 25대, 112번 공장에서는 173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1,256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또한, 생산 공장마다 약간 씩 형태가 달랐다. 이는 당시 각 공장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여 생산했기 때문이다. 레드 소르모프 작업장은 76.2mm 포탄의 탄피를 이용해서 엔진시동에 필요한 압축공기탱크를 제작했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은 포탑이나 차체를 주조방식으로 제조하여 번거로운 압연방식과 오랜 시간이 드는 용접방식을 대체했다. 공장의 주력인 주물 시설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보기륜을 감싸는 고무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산된 보기륜은 후에 T-34-85의 신형 경량화 보기륜으로 이어진다.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 생산된 전차는 생긴 직사각형의 엔진룸 덮게와 특유의 육각형 포탑으로 단박에 구분할 수 있다. 독일군들이 스탈린그라드 코 앞까지 와도 밤낮으로 트랙터 공장 노동자들은 쉬거나 대피하지 않고 전차를 생산했다. 생산하는 즉시 도색도 안 한 상태로 바로 투입되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불필요한 부분의 공정을 최소화시켜 생산력을 올렸다.
3.2.3 1942년형
1942년형은 공장마다 형태의 차이가 컸다. 그 이유는 UTZ와 우랄마쉬, ChTZ의 경우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매우 안전하였기에 6각형 포탑 등 개량형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선 코 앞의 STZ의 경우는 개량형은 무슨.. 공장도 언제 폭격 당할 지 모르는 상태였다.
생산성을 간단히 하기 위해 포탑이 주조형에서 용접형으로 제작되었으며, 보기륜은 통짜 철제로 제작되었고, 불필요한 부품은 생략되어 도색도 못 한 상태로 전선에 바로 투입되었다.
3.2.3.1 STZ제 용접 포탑
3.2.3.2 주조 포탑
기존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무겁고 열기도 힘들었던 대형 해치가 2인승 해치로 재설계되어 가볍고 탈출 시에는 전차병이 더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포탑 또한 약간 대형화되었다. 문제는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된 전차인데... 당시 고무 부족으로 통짜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여 달았다. 이는 정말로 끔찍한 소음을 유발했으며, 내부 전차병들은 이 소리를 참고 다녔다. 포탑 역시 주조형으로 1941년형보다도 오히려 비좁았다.
3.2.3.3 육각형 포탑
3.2.4 1943년형
기존의 1942년형 육각형 포탑에서 전차장 큐폴라가 추가된 형태로 1943년 후반부터 1944년 초반까지 생산되었다. 흔히 1942년형과 혼동된다.
-항목 작성 중-
3.3 T-34-85
탱크 바이애슬론에 참가 중인 러시아군 소속 퍼레이드용 |
소련 T-34/85 중(中)전차 | ||
<1944년형 제원> | ||
개발연도 | 1943년 | |
생산연도 | 1943 ~ 1951년[24], 1952 ~ 1958년[25], 1953 ~ 1955년[26] | |
생산 댓수 | 약 65,800여 대[27] | |
운용 연도 | 1944 ~ 1958년[28] | |
운용 국가 |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북한[29], 그 외 여러 국가들... | |
전장 | 6.10m / 8.10m (차체 전장 / 포신 포함 시) | |
전폭 | 3.00m | |
전고 | 2.70m / 0.40m (차체 전고 / 포탑 전고) | |
전비 중량 | 32.2t | |
차체 전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 45mm / 60° | |
차체 전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 45mm / 60° | |
차체 측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 45mm / 45° | |
차체 측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 45mm / 0° | |
차체 후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 45mm[30] / 45° | |
차체 후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 45mm / 45° | |
차체 바닥 장갑 | 20mm | |
차체 상면 장갑 | 20mm | |
포방패 장갑 | 90mm | |
포탑 전면 장갑 | 90mm / | |
포탑 측면 장갑 / 경사 각도 | 75mm / 75° | |
포탑 후면 장갑 / 경사 각도 | 52mm / 52° | |
포탑 상면 장갑 | 25mm | |
탑승 인원 | 5명 (전차장[31], 조종수, 포수, 장전수[32], 무전수[33]) | |
엔진 | V-2 12기통 4행정 액랭식 디젤엔진 | |
최고 출력 | 500hp | |
출력비 | 15.6hp/t | |
현가 장치 | 크리스티 현가장치 | |
최고 속도 | 55km/h / 25km/h (평지 주행 시 / 야지 주행 시) | |
항속 거리 | 250km / 220km (내장 연료 탱크 적재 시 평지 / 야지), 340km / 310km (외장 연료 탱크 추가 적재 시 평지 / 야지) | |
주무장 | 52구경장 85mm D-5T 강선포 1문[34] 54.6구경장 85mm ZIS-S-53 강선포 1문[35] (58 ~ 60발) | |
부무장 | 7.62mm DT-29[36] 동축기관총 2정[37] (2,898발)[38] |
비록 초기의 T-34들이 불리한 조건에서 분전했으나 한계도 분명했다. 특히 단순 스펙상으로는 우세했으나 관측 및 통신장비가 부실하고 포탑이 너무 작아 전차장이 포수를 겸해야 하는등, 종합적인 전투 효율에서는 단점도 많았다. 이 문제는 꾸준한 개량으로 포탑을 대형화 시키고 전차장석을 독립시키며 큐폴라를 장비하는 등의 성능 향상으로 부분적으로 해결했으나, 본질적으로 2인용 포탑이라는 것을 개선하지 않은데다가 1942년 이후 독일군이 4호 전차의 주포를 개량(단포신 7.5cm에서 장포신 7.5cm로 재장착.)하면서 관통력에서 약간 밀리고 티거, 판터 등의 신형 전차들을 개발하기 시작하자 근본적인 공격력이 답보 상태라 질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대적으로 화력을 개선한 것이 T-34/85. 외관상으로도 3인용 대형포탑과 장포신 주포로 인해 T-34/76과 비교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차체 전면은 여전히 30도 정도의 45mm 경사장갑이지만, 신형포탑의 전면은 90mm로 강화되어 76mm 탑재형보다 전체적으로 방어력이 약간 향상되었다.
주포로 채택한 54구경장 85mm 포는 티거의 주포보다 파괴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APCR을 사용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1km 이내의 표준교전거리에서도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기존의 76mm 주포는 본래 ZiS-3 계열의 경야포를 개수한 것이라 고폭탄의 위력은 그렇다해도 구경에 비해 실질적인 장갑 관통능력이 약하여 독일의 50mm급 대전차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직 장갑이 50mm 수준에 머물렀던 초기형 3호, 4호 전차를 상대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티거 상대로는 사실상 측후면조차 거의 관통이 불가능했다. 티거야 일종의 중장갑 기병 개념으로 운용될만큼 괴물이니 그렇다 쳐도, 1943년부터는 그동안 만만했던 4호 전차조차 전면장갑을 80밀리로 강화하며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그래도 4호 전차는 76mm 주포로 어느정도 상대가 가능했지만 티거나 판터에게는 답이 없었다.
즉, 85mm포로 교체한 결과 기존의 76mm 주포탑재형에 비해 독일 전차와 충분한 교전 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결과이고, 일단 이론상 관통력과 실전에서 발휘되는 관통력은 상당히 달랐다. 한 때 독일군은 실제로 85mm를 자군의 88mm와 동급으로 분류했으나, 1944년 겨울의 독일 병기국 보고서는 소련군의 85mm 철갑탄은 티거의 전면 장갑을 상대로 500~600m 정도에서나 효과를 볼수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물론, 1000m이상의 거리에서 명중이 불가능한것은 아니며 실제 관통이 가능한 거리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독일에 비해 러시아의 포탄 제조기술이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후의 기록을 연구한 후대의 연구자들도 85mm를 88mm가 아닌 75mm PaK 40과 거의 동급으로 보고 있을 정도.[39] 결론은 제한적이지만 개별적으로는 85mm포로 4호부터 판터를 상대할수 있게 되었다고 보면된다. 물론 위의 수치가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독일군도 예전처럼 T-34를 만만하게 볼 입장은 못 되었다. 그 사실은 야전 지휘관들과 전차병들이 실전을 겪으면서 금방 알게 되었다.
다만 85mm 전차포의 제한적인 성능은 어디까지나 티거, 판터를 상대할 때였고, 다른 독일 전차 상대라면 85mm의 화력은 충분함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의 T-34는 독일의 4호 전차를 상대할 때조차도 화력이 충분치 않았지만, 이제는 나름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표적획득 및 정밀조준능력, 그리고 조직적인 전투에 필요한 각종 부가적 요소들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4호 전차가 더 우세한 부분이 있었으나, 슬슬 전차전에 대한 숙련도가 향상되고 점차적으로 그런 문제가 개선되어가는 소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 되었으며 티거나 판터에게도 숫적 우세가 확보되면 충분히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T-34/85전차가 대량 투입되는 사실은 독일군에게도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76mm 탑재형 T-34 상대로는 정면에서는 중단거리에서도 견딜 수 있는 티거나 판터전차였지만 T-34/85가 출현하면서 티거는 500m ~ 600m정도의 중단거리에서는 정면장갑이 관통당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고 판터는 정면은 80mm 경사장갑이라 실제는 140mm의 수직장갑 수준의 방어력을 가져서 정면은 안전하다 해도 약점인 측면은 더 쉽게 관통당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야 훨씬 우세한 티거와 판터였지만 생산물량이 독일보다 크게 우세한 소련 군대의 입장에서는 예전의 76mm 탑재형의 숫자만큼 85mm 탑재형 T-34/85를 엄청난 물량으로 밀고올 것인데 중단거리에서 위험에 노출이 절대 안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실제 독일측 장군들과 독일군 전차장들도 금방 알아챘다. 거기다 티거와 판터는 단가나 자원과 제작시간이 T-34/85보다 많이 드는 전차라 손실이 생기면 부대의 전력 손실이나 보충에서 불리했다. 이런 문제들이 IS-2스탈린 전차의 존재와 같이 티거2를 개발하게 된 원인중 하나였다. 그리고 실질적인 주력 전차였던 4호 전차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사형선고 였는데. 이미 T-34/76과 싸움에서도 숫자를 T-34보다 압도적인 주포와 기계 설계의 우월성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75mm 48구경장과 동급인 85mm를 가진 전차가 오로지 숫자로 밀고 나오니, 물량에 지쳐서 우세를 점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44년 이후부터는 4호 전차도 3호 전차 마냥 끝없는 소모전에 휘말려 들어가서, 나중에서는 포탑 회전 모터 제거를 비롯한 염가형 버전인 4호 전차 J형이 나오게 된다.
포(탄종) | 100m | 500m | 1000m |
76mm M1A1 (APCBC M62) | 125mm | 116mm | 106mm |
76mm M1A1 (HVAP M93) | 239mm | 208mm | 175mm |
7.5cm KwK 40 L/48 (APCBC Pzgr.39) | 135mm | 123mm | 109mm |
7.5cm KwK 40 L/48 (APCR Pzgr.40) | 176mm | 154mm | 130mm |
85mm D-5T (APBC) | 139mm | 123mm | 105mm |
85mm D-5T (APCR) | 175mm | 136mm | 100mm |
다만, 이 소련제 85mm 주포는 동 시기 미국의 3인치 포인 76mm M1 계열이나 독일의 7.5cm KwK 40 L/48과 비교했을 때 구경이 커졌기에 고폭탄 성능도 뛰어났고 주력탄 관통력도 비교적 뛰어난 편이다. 단 APCR의 경우 비교적 떨어지는 성능을 보이는데 76mm M1A1과 비교하면, 고속철갑탄의 관통력은 약 "70mm" 가량 뒤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5cm KwK 40 L/48과의 비교에서도 500m까지는 비슷하지만 그 후부터는 관통력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소련의 금속가공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경심철갑탄을 제대로 만들어내기가 힘들었기 때문.
또한 이 전차의 기동력과 생산 용이성이 높이 평가되어 T-34의 하부 차체를 그대로 이용하여 SU-85, SU-100, SU-122같은 자주포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알렉산드르 오스킨[40] |
여담으로 티거 2는 첫 실전 투입에서 T-34/85 한 대에게 3대가 격파되는 굴욕적인 데뷔전을 치뤘다. 당시 해당 전차병들간의 숙련도 차이를 생각해도 전설로 남을 업적이다. 참고로 이때 해당 T-34/85의 전차장이 알렉산더 오스킨 중위였다. 이 일화는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도로 위의 괴물의 이야기들 중에도 들어있다. 다만 T-26부터 몰았던 오스킨 중위의 경력에서 보듯이 1944년경이 되면 소련군 기갑부대도 세계최강 독일기갑부대를 3-4년간 상대하느라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야전 기동에 있어서는 독일군에 딱히 뒤쳐지지 않았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쯤 되면 소련군도 나름대로 독일군 못지 않은 기갑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41][42]
제2차 세계대전 중 후반에는 독일군의 기갑전력이 상당히 감소하고 반대급부로 판처파우스트 등의 보병용 대전차화기의 위협이 증가해서 사진처럼 철망을 가져다가 4호 전차의 쉬르첸처럼 증가장갑을 부착하고 운용한 사례도 많았다.[43] 원시적인 슬랫아머의 시초이다. 사진은 1945년 4월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소련군 T-34/85.[44]
3.3.1 1943년형 (D-5T 장착형)
거의 T-34-85의 프로토타입 차량의 생산형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85mm KS-12 대공포를 전차포로 개수한 53구경장 85mm D-5T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하였다. 아직 승무원은 기존 T-34와 같이 4인이 탑승했으며, 포탑 형태가 1944년형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3.3.2 1944년형
T-34-76 1943년형이 1944년 초반에 생산 중지된 이후 그 해 중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형이다. 주포가 54.6구경장 ZiS-S-53 전차포로 변경되었으며, 승무원은 대형화 된 3인승 포탑으로 5명이 탑승하였다.
니즈니타길의 제183호,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제112호, 옴스크의 제174호 공장에서 생산되으며, 각 공장마다 포탑의 용접선이나 벤달레이터, 큐폴라에 배치나 형태에 약간씩 형태가 존재한다.
당시에는 초기형이 였기에 사격 후 포탑 내부에 가스가 잔존했는데, 초기형이었기에 가스 역류를 방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로지 벤달레이터(환풍기)에 의지해야 됬다. 종전 후 생산형에서부터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3.3.3 T-34-85 1945년형
3.3.4 T-34-85 1946년형
4 파생형
4.1 T-34-100
1946~47년 사이에 등장된 프로토타입으로 100mm LB-1 전차포를 장착하였으나, 차체 신뢰성 부족으로 T-44를 기반으로 T-44-100이 대신 설계되어 이후 T-54로 넘어간다.
5 개량형
생산량이 많은 만큼 동구권 국가에서 현대화 개량형으로 개수되거나,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포탑에 곡사포를 장착한 고정포로 개수마개조되었다.
5.1 T-34-85M
T-34-85의 보기륜을 T-55/62의 보기륜으로 교체한 현대화 개수형으로 기존의 포탑 권총구와 차체 동축기관총이 폐지되었고, 포탑과 차대에 짐걸이나 손잡이 새로 설치하였으며, 엔진 역시 T-54의 엔진으로 교체된 형태도 존재한다.
소련 말고도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비슷하게 개조가 시행되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개조한 형태로 퍼레이드에 등장한다.
5.2 T-34-100
5.3 T-34-122
6 엄청난 생산량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 승전직후 모스크바에서.[45] 뒤에 저 점들도 다 T-34이다. |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1941년 당시 소련의 전투/전투근무 지원능력은 매우 열악해서 많은 T-34들이 퍼진 채로 줄줄이 노획되거나 자폭했다. 원수같은 쿨리크 원수의 방해 때문에 예비 부품과 구난전차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1942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실 독일군의 진격을 피해서 원래 있던 공장부지에서 생산시설만 간신히 빼돌렸다가 황무지에 대충 건물 세워서 총력전명목으로 비숙련공까지 동원하여 가동시킨 공장에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터져나가는 수보다 훨씬 많은 전차를 만들어내서 버틴거나 다름없다.[47] 이 찍어낸 전차에 탑승할 승무원들은 바로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로 만들어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집단농장에 수용한 농민들에게 집단기계화 영농을 위해 대대적으로 트랙터, 콤바인의 운전교육을 시켰는데, 이때 교육받은 트랙터 및 콤바인 운전사들을 바로 전차운전병으로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단농장화가 농업의 생산성은 극도로 떨어뜨렸지만 전차병 양산에는 도움을 주었다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숫자로 메꾸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던 위기상황이 닥친 적도 있는데, 폭증하는 손실에 비해 생산된 전차의 전선 배치 속도, 승무원 훈련의 적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76mm형의 구식화와 85mm형의 개발로 인한 차종 변경 문제 및 재고 차량 처리 때문에 1943년 12월 시점에는 1만 8천 대가 넘는 재고 전차를 후방에 안은 상태에서, 독일군과의 가용 전차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1.7:1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48]
물론 소련군이 그냥 구식 전차에 승무원이 바보라고 해도 닥치는 대로 그냥 밀어넣었으면 이제 독일군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형벌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이르면 나치 독일의 슬라브인 민간인 학살 정책[49]과 전사자들로 소련에서 병사가 될 남자가 바닥나기 시작한 때였다. 따라서 위의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잘나가는 전선에만 전차를 몰아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장 T-34의 생산량을 감안한다면 단순계산만으로도 전차병이 336,000명이 필요하게 되는데,[50] 아무리 격파된 전차에서 승무원이 살아남아서 다른 전차를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100% 승무원이 생존하는 경우보다는 보통 1명 이상이 죽고, 1명 이상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전투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차가 폭발해서 승무원이 몰살당하는 것도 많이 있다. 따라서 전차를 몰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은 인원을 함부로 소모하는 것은 당시의 소련의 인적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기상황은 1944년 중반쯤 되면 완전히 극복되는데 총력전에 동원된 비숙련공들이 숙련공이 되어 품질도 생산성도 모두 증가했고 미국의 원조로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보강도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전기 등 부품의 신뢰성이 좋아진 덕분에 물량과 품질 양면에서 독일군에게 본격적인 지옥을 보여주게 된다. 당장 위의 위기상황도 한 달 남짓한 사이에 4:1 수준으로 전력격차를 늘렸다.
7 냉전시기
1950년 자금성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의 T-34/85.
전후에도 대량 생산 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소련 영향 하에 들어간 동유럽 공산 위성국들이나 세계 각국의 친소 국가들에 대량으로 공여되었다. 56년 형가리 혁명에 투입되었다가 박살난 소련 T-34/85도 있고 베트남 전쟁때도 T-54/55/59식에 비하면 구식이긴 하지만 소수의 SU-76, SU-100과 함께 T-34들이 투입되었으며 그리스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킬때 사용하기도 했고 이 T-34들은 74년 키프로스 전쟁에도 참가했다. 중동전쟁에서도 역시 SU-100 같은 구형 소련 차량들과 함께 T-34가 사용되었다. 중동권에서는 현지 개수를 가해 1980~1990년대까지도 굴러다녔고 아프리카 일부 빈국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셔먼 전차와 T-34 중 어느 쪽이 먼저 현역에서 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
7.1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육군의 운용
공산권 대량 공여의 결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육군이 운용했던 전차이기도 해서 한국과 악연이 있는 전차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관련 기록 필름이나 사진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군에게 격파된 북한 육군 소속 T-34/85.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진주한 북한 육군의 모터사이클 부대와 T-34/85.
파일:Attachment/IMG 20140711 151914.jpg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T-34-85. 공간 문제로 포탑을 후방으로 돌린 상태다. 내부 청소를 제대로 안하는지 먼지가 지독하게 많이 쌓여있다. 전쟁기념관엔 이 차량 말고도 야외에 한 대가 더 전시되어 있다.
[[파일:20160803_131757[1].jpg ]]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T-34-85 옆에 셔먼도 보인다
T-34/85는 북한군에게 개전 전까지 242대가 공여되었고, 이후 북진 직전까지 150대 가량이 추가로 공여되었음이 소련 문서로 확인되고 있다. 21세기인 현대에도 250여 대 정도를 예비용으로 보관중이라고 한다.
당시 한국 육군이 가지고 있던 보병용의 무반동총과 2.36인치(66mm) 바주카, 그리고 6파운더의 미국 라이센스판인 57mm 대전차포 정도의 대전차화기라면 숙련된 병력에 의해 전차의 취약부위를 공격할 경우 충분히 상대해 볼 수도 있어 실전사례에서 대전차화기를 이용하여 T-34/76이나 85를 격파한 전과는 있다. 하지만 보병이 조작하는 대전차화기를 그런 방법으로 사용하려면 앞서 언급한대로 제대로 훈련된 병력이 필요한데다가 매복한 후 근거리에서 전차의 측면이나 후면을 노려야 하는 등 전차를 잡는 입장에서는 전차를 1번 공격할 때마다 전차를 잡을 확률은 낮은데 자기 목숨이 날아갈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까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대전차화기들은 이미 독일군의 전차를 전면에서 사격할 경우 간혹 6호 전차 티거도 정면에서 격파할 수는 있긴 했으나 대부분은 66밀리 로켓탄의 저질 위력 때문에 파괴력 부족이라는 점이 입증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성능을 따지자면 2선급 대전차화기였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당시 주일미군의 무기 보관 상태가 엉망이라 불량 탄약 때문에 명중해도 불발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나중에 밝혀졌다. 따라서 당시의 한국 육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이미 능력부족인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를 너무 일찍 날려버린 탓에 전선에서 후퇴하던 대부분의 57mm 대전차포는 한강을 건너지 못했고 이 대전차포들이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육군 대전차병들은 공이를 분해하고 포신과 기관부는 수류탄이나 폭약을 이용하여 파괴해야 했다.
그리고 개전 당시 국군의 유일한 기갑차량이었던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 포로 T-34를 저지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를 몇 대 파괴할 수 있었으나 37mm 포도 통상사격으로는 전차의 무한궤도나 파괴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위력부족이며, 그나마 철갑탄까지 부족한데다가, 매복 후에 1대가 무한궤도를 사격한 후 전차의 조종수가 전차 전면에 있는 조종수 해치를 여는 순간 그 곳에 핀포인트 사격을 가하는 특이한 사항이 아니면 격파가 불가능하므로 결국 적 전차의 반격으로 엄청난 손해만 입고 말았다.[52]
문제는 당시 한반도에 초기에 투입된 미 육군도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한국군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 육군 중 최초로 전투에 돌입한 스미스 특임대대가 대혼란에 빠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가장 먼저 투입될 수 있었던 일본 주둔 미군의 경우 훈련부족에 편제병력도 모자라고, 전차의 경우도 일본의 좁은 도로와 빈약한 교량을 감안해서 M24 채피 같은 경전차로만 구성된 상태였으므로 T-34를 대적할 수 없었다.
또한 개전 초기의 한국 육군은 대대급 훈련을 받은 부대가 최정예였던 시절이었을 만큼 훈련도가 부족했고, 전차에 대한 무지도 겹쳐 일방적으로 박살났다. 갓 태어난지 얼마 안된 한국 육군은 사기도 낮고 준비도 부족한 만큼 많은 걸 바랄 수 없었다. 당장 전차를 격파했다고 알려진 사례의 상당수가 SU-76 같은 상부개방형 대전차자주포였을 정도로 당시의 한국 육군은 전차와 대전차자주포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국군은 몰려 오는 T-34에 맨몸으로 화염병이나 수류탄을 들고 뛰어 올라 안에다 던져 넣는, 이른바 육탄돌격으로 알려진 처절한 전술로 대항해야 했다. 말이 육탄돌격이지 전차의 기관총 사격 화망을 무릅쓰고 접근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전술로, 사실상 자살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실제 전과를 확인해 봐도 실질적인 피해는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일단 1952년에 집계된 256대 파괴전과 중 전차포 97(37.9%), 북한군 유기 63(24.6%), 로켓포 및 무반동총 35(13.7%), 항공기 29(11.3%), 포병 28(10.9%), 수류탄 3(1.2%), 미군 지뢰 1(0.4%)다
다만 춘천-홍천 전투의 말고개 전투 사례와 같이 이러한 육탄돌격으로 인해 전차의 기동을 방해하거나 돈좌시킨 사례도 있으며, 개전초기 혼란에 빠진 국군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데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약간의 시간을 끌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미약하나마 L-4, L-5, T-6같은 연락기나 훈련기도 간이 무장을 달거나 후방석 승무원이 폭탄 등을 던져 T-34를 몇대 해치웠다.
물론 육탄특공에서 크게 성공한 경우들도 있는데 T-34의 약점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공략하여 전차를 무력화시켰다. 일단 해치가 열려있을 경우 안에 수류탄이나 화염병을 던져넣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해치가 잠겼을 경우엔 궤도에 박격포탄을 밀어넣어 파괴해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포탄이 불발이 날 경우는 취약한 엔진 상판부위를 노리기도 했고, 연막 등을 이용해 관측을 방해하여 강제로 해치를 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에 도로정비가 되지 않아 거칠고 울퉁불퉁하며 좁은 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마구 운전하다가 전차가 돈좌 또는 전복되서 기동력을 상실하면 치명적이었다. 국방부 전쟁사 관련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T-34의 또 다른 취약부위는 관측용 잠망경이었는데, 여기에 진흙을 발라 앞을 가리는 방식으로 무력화한 사례도 있다. 수기 잠망경 부분이 의외로 마무리와 내구도가 허접해 전차에 달려있는 보수용 망치나 돌 등으로 강하게 때리면 비틀려서 공간이 생기는데, 이 약점을 이용해서 공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타 참고자료 다른 취약점은 통풍구 부분이었는데 이곳을 노려 안에다 수류탄이나 화염병 등을 집어넣는 방식의 공격도 행해졌다.
그러나 북한 육군의 전차운용 방식과 훈련미숙 등의 병크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모되던 중 미 육군이 M4A3E8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를 투입한 이후엔 풍비박산이 났다. 만약 북한 육군이 개전 초의 절대우세에 전차를 집중적으로(일명 기갑웨이브) 운용했다면 낙동강 전선이란 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국군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북한 육군의 전차운용은 능숙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초기의 탱크 쇼크 효과에 맛을 들인 북한 육군은 전선 강행돌파시에 전차를 자주 동원했다. 이는 소련군의 작전기동군 교리에서 많은 점을 참조한 것이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충분한 화력지원과 후속 증원부대의 신속한 투입이라는 점은 빼먹고 기습과 탱크 쇼크의 시너지만을 고집하여 충분한 화력지원 없이 전차와 자주포, 보병만 일회성으로 덜렁 보내곤 했다. 전사를 살펴보면 야간에 전차나 자주포가 뜬금없이 갑툭튀하여 국군과 UN군이 필사적인 항전을 펼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지만 포격이 동반되거나 돌파구를 후속부대가 확장하여 전선 깊숙히 침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에 반해 한국전쟁 초기의 혼란을 수습한 국군은 낙동강 전선이라는 천혜의 방어막과 UN군의 막강한 지원화력을 십분 활용, 강행돌파 예상지점에 화망을 미리 구축해놓고 T-34가 걸려들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있는 화력을 모두 끼얹어 버렸다. 특히 낙동강 방어전 당시 북한 육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복절까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적화통일을 이루고자 초조하게 서두르고 있었기에 이는 큰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이러한 양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전차병들의 숙련도도 낮은 편이어서, 미군이 투입한 이지에잇은 제원상으로는 T-34/85에 열세였으나 승무원들이 2차 대전에서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어본 베테랑들도 조준장치도 더 좋아서 T-34/85에도 우세를 점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한 이후 북한 육군의 전차는 미 육군의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들에게 다 터져나갔다. 북한군의 전차는 1950년 겨울 즈음엔 거의 전부 소모된 상태였으나, 중공군이 개입시 전차도 갖고 왔기에 T-34/85는 전선에는 계속 나타났다.
참고로 3.5인치(89mm) 슈퍼 바주카의 보급에 힘입어 바주카포로도 전차의 전면에서 충분한 타격을 줄 수는 있게 되었다. 물론 미 육군의 퍼싱이나 영국 육군의 센츄리온 같은 신형 전차들이 왔으니 T-34/85는 더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육군은 6.25 전쟁 동안 총 3대의 T-34/85를 노획했으며 미 육군식 위장에 태극기를 그려 피아식별을 하였다. 다만 노획전차의 특성상 부품과 탄약공급문제 등으로 인해 오래 사용하기 힘들었고, 여기에 전황 변화 등이 겹쳐서 마지막에는 이중 단 한 대만이 남았다.
알게 모르게 현재 한국 육군의 전략, 전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차로 K-1 전차의 개발과 배치를 위시한 국군 전차전력의 강화엔 이 T-34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전쟁 초기 T-34를 앞세운 북한 육군의 빠른 공세에 아무 것도 못하고 밀려난 경험은 지금까지 국군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고, 그것이 각종 신형 전차와 대전차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대전차 방호벽 또한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북한 육군 기갑부대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있는 것이다.
T-34/76은 오랫동안 북한 육군에 없었다고 알려져 왔다.[53] MBC 드라마에서 T-34/76을 사용하는 장면이 방영되어 고증오류라고 까이기도 했다. MBC 드라마의 등장 장면
그런데 누군가가 BBC의 다큐멘터리의 한국전쟁에 투입된 T-34 중 76형 모습을 발견했다! 또, 아래쪽 현대 문단에서 보듯 북한 매체에서 북한 육군이 T-34/76으로 추정되는 전차를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인 OT-34는 T-34/76을 개조해서 차체전면 기관총자리에 화염방사기를 부착하는 동시에 76mm 주포는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 전차이다. 소련군에는 T-34/85 사양의 화염방사전차도 존재했지만 T-44와 T-54의 화염방사 차량이 당장 없는 상황[54]에서 이 전차들은 소련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소련군이 공격용으로 화염방사전차를 줄 경우에는 OT-34/76을 줄 수 밖에 없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전쟁 중 대한민국 육군 제6보병사단에서 열차 안에 있던 T-34를 노획한 적이 있다.#
8 현대
파일:Attachment/T-34/T-34 Tank Yugoslavia.jpg
태어난지 환갑이 다된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꽤 널리 사용되었다. 유고 연방군은 소련과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T-34를 수천대 보유하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철십자 훈장에 나오는 T-34는 모두 유고슬라비아에서 로케이션을 한 것일 정도로 관리도 잘하고 있었는데, 유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대다수의 T-34는 세르비아 민병대 손에 넘어갔고, 내전에 사용되었다. 내전의 성격상 중화기가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병들을 상대로 의외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고. 유고 내전에 동원된 T-34의 가장 큰 특징은 포탑 큐폴라의 뒷쪽에 M2 중기관총 장착 마운트가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근대에 T-34를 공여받은 국가중 일부는 마개조를 강행하기도 했는데, 윗 사진의 T-34 전차는 쿠바군 소속으로 포탑 앞부분을 잘라내고 D-30 Soviet 122mm 곡사포를 달아놓은 사양이다.
북한에서도 전쟁 발발시 남한의 특수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후방에서 아직도 T-34를 운용중이라고 한다.일선에는 배치되지 않고 러시아처럼 창고에 박아두고 퍼레이드 등에서 꺼내 쓰는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85mm 주포는 북한 해군에서는 연안 고속정 전용 함포로도 쓴다. 이쪽은 제2연평해전에서 그 악명을 떨치며 국군에게 T-34 Re-쇼크를 먹여주었다. 85mm는 대공포로 태어나 때때로 야포와 대전차포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전차포로 전용되어 나치를 쳐부수고 결국 노년에 북쪽의 돼지 삼대에게 넘어가서 함포로 쓰이게 된 기구한 운명의 포다. [55]
그런데 영상에서 북한군이 T-34/76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56] 그 외 이런 사진도 나왔다.
2006년 10월 23일에 헝가리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가 박물관을 습격, 무슨 생각을 한건진 모르겠지만 1956년 헝가리 시위당시에 소련이 진압하면서 썼던 물건과 같은 전시한 T-34/85에 경유를 넣었다.[57] 그런데 엔진이 돌아가고 무한궤도가 움직이는 말도 안되는 사태가 발생. 참고로 박물관 전시품은 행사 때 가동시키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윤활유는 커녕 외관 정비 외에는 별로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연료를 넣었다고 해서 움직이는 일은 보통은 없다. 시위대는 마침 시위도 한창이겠다 싶었는지 타고 나와서 신나게 굴러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시물이었기에 엔진은 있었더라도 포탄이나 기관총탄은 없었으므로 사격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동영상을 보면 조종한 사람의 실력도 수준급이라 인명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NBC 방호 따위 생각도 안했던 물건이었던 만큼 결국 운전수는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제압당했고, 탱크는 찰나의 외출(?)을 마치고 엔진을 제거시킨 후 다시 박물관에 돌아갔다고 한다.
2015년 예멘 내전에서도 후티 반군 소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경제신문에 의하면 T-34는 러시아의 주력전차라고 한다.(사진설명에 주목할 것)
9 장단점, 기타
9.1 장점
- 300km가 넘는 탁월한 항속거리
- T-34의 경쾌한 주행 능력과 함께 최대 300km가 넘는 항속거리(서울-부산 직선거리정도)는 독일군에게 상상도 못할 속도의 대규모 포위기동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43년 가을부터 45년 2월까지의 독소전쟁은 소련군의 대규모 포위기동이 성공하느냐와 독일군이 이를 저지하거나 성공적으로 탈출하느냐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T-34로 편성된 전차군들이었다. 독일 전차들은 항속거리가 100~150km 수준인데다가 그 거리를 T-34처럼 쉬지않고 기동하다가는 주행계통이 고장나며 퍼져버렸다.[58]
- 가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 독소전 중기 이후에는 T-34 하나에만 거의 몰빵하듯 생산하면서[59]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여 값이 더 떨어졌다. 이 가격은 전쟁 초반에 26만 루블에서 19만 루블까지 떨어졌는데, 당시 티거 1의 가격이 25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당시의 환율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외국 밀덕들의 가격 평가에 의하면 가격비가 1:4~5 정도이며, 4호 전차와의 가격비는 1:1.5~2, 판터와의 가격비는 1:2.5~3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같은 가격을 써서 티거 한대에 T-34 4~5대가 달려드는 셈이니 왜 T-34가 전장에서 떼로 몰려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60] 당장 T-34의 궤도와 독일제 Sdkfz.251의 궤도를 비교해 보자. 심지어 T-34의 경우 궤도들을 연결하는 핀이 좌우로 미끄러져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없다! 차체 안쪽에 작은 돌출부위가 있어서 안쪽으로 빠지는 않게 도로 쳐넣는 기능을 했지만 바깥쪽으로 빠지는 건 막는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만큼 마무리가 거칠거나 성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실전에서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또, 전차전의 경우와 달리[61] 대보병전에선 T-34도 위력이 충분한 만큼 T-34 5대가 티거 1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실제 전장에서는 대전차전보다 대보병전이 훨신 많이[62]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는 굉장한 장점이다.
- 그 당시 소련의 평균적 기술수준을 능가하는 신뢰성 높고 연비 좋은 디젤 엔진과 크리스티 현가장치로 험지에서 장거리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이 디젤엔진은 공돌이의 본가 독일도 카피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끝까지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석유자원이 부족한 독일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반대로 소련은 원유는 풍부한 반면 정유기술이 부족하긴 했지만, 디젤엔진에 사용되는 경유는 고도의 정유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소련 기갑부대는 연료가 모자르다고 느끼거나 모잘랐던 적이 거의 없었다.
- 훈련을 부실하게 받은 병사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간단하다.
- 사실 소련군은 직전의 농업집단화때문에 농민으로부터 수십만의 트랙터 운전사들을 양성했는데 이들을 모두 전차병으로 징집하여 적어도 전차의 운전병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63]
9.2 단점
- 승무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구조와 승무원의 배치. 실제로 T-34의 내부는 온갖 장비들이 꽉차서 지나치게 비좁았고, 승무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포탄 피격 및 관통시, 최소한 3명은 중상 또는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장갑재의 품질로 인한 방어력의 저하. 좀 더 설명해보자면, T-34 계열중 가장 장갑이 두꺼운 생산형인 T-34/85의 차체 장갑은 45mm/45도로,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이나, 특유의 장갑재 붕괴로 인해 실 방호력은 80%로 감소하고, 거기에 취급이 중형전차인데도 장갑의 두께가 너무 얇은 나머지 경사장갑의 효과가 빛을 발하지 못해, 실제로는 경사장갑을 채용했음에도 수직 장갑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실전 사례로, 실전 사례를 찾아보면, 독일 전차병들은 장포신 75mm 포로 T-34/85를 먼 거리에서 단 한 방에 격파한 경우가 수두룩했다.
- 2인용 포탑을 사용하므로 전차장이 포수의 역할도 해야하기 때문에 사격시에는 주변관찰이 안되고, 주변관찰시에는 사격이 안되므로 독일의 전차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이점 때문에 T-34는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동등한 4호 전차는 물론,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T-34가 우위인 3호 전차에게도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문제는 T-34의 개량형인 T-43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하여 해결되었으나, T-34보다 기동성이 나빠서 생산되지 못했으므로 결국 T-34/85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해서 해결한다.[65]
- 부실한 조준장치의 문제가 있었다. 렌즈의 시야가 왜곡되고 상이 흐리게 나오며 사격시 충격으로 깨지는 등 전반적인 품질이 뒤떨어져 조준에 크나큰 지장이 있었다. 이전 버전엔 소련 역시 바이마르 공화국 및 나치독일과의 일시적인 협력시기에 자이스[66]사의 기술을 전수받아 렌즈 제작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독소전쟁 초기의 급격한 전선변화로 품질관리에 차질이 생긴 것을 가지고 과장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렌즈란 물건 자체가 고난도의 재료 및 가공기술을 요하는 물건이다. 가공기계만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 조금만 삐둘게 깎아도 상이 왜곡되거나 희미해지는 문제가 생기므로 숙련된 기술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대량생산 시엔 이런 품질을 유지할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국과 더불어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독일은 이미 충분한 기술적 노하우를 쌓은 후여서 전쟁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후발주자였던 소련은 이런 기술적 토대가 부실했다. 더욱이 렌즈를 제작한다고 해서 좋은 조준경을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인 것이 조준경은 포발사 시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내구성 및 조준 정밀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노하우를 요구하는 건 똑같았다. 애버딘에 보내져 테스트 받은 차체는 소련이 특별히 신경 써 보내준 물건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 조준장치의 문제와 겹쳐 관측용 잠망경의 품질과 시야확보가 상당히 부실했다. 넓은 시야와 주변 관측은 전차전이건 대보병전이건 생존성과 방어, 선제공격 등 여러가지와 직결되는 부분인데, 잠망경의 시야가 20~30도 정도만 확보 가능할 정도로 끔찍하게 좁았고 진흙 등의 이물질이 묻는 것에 매우 취약했다. 게다가 보이는 영상의 품질까지 엉망이라 기동중에 흔들거리면 잠망경을 통한 주변 관측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로 인해 평상시는 물론 전투중에도 해치를 열고 운전하거나 시야를 확보하려 하는 막장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전차장갑에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점까지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 부분을 공격받아 파괴당한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참고자료와 잠망경 사진포함
- 트랜스미션 레버가 옆의 무전수(및 전방 기총 사수)의 탄약고(기관총 탄약을 넣어두는 곳)와 가까워서, 레버가 앞으로 가 있으면 기총수가 기관총 재장전을 할 때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또한 이 전방기총사수용 관측창은 오로지 손가락만한 기총 조준구밖에 없었다.
-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 포탑이 너무 앞으로 치우친 관계로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 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작아서 시야 확보가 힘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위사진과 개요의 영상처럼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이 약점을 노린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포에 당하기도 했다.[68]
- 해치의 수량이 모자라고 위치가 빠른 탈출에 적합하지 않다. 포탑의 전차장 해치와 조종수/보조 조종수겸 기관총수 바로 위의 해치를 합쳐서 총 3개의 해치를 설치한 M4 셔먼과 다르게, 이 쪽은 해치가 2개밖에 없으므로 탈출을 제 때 못하다가 승무원이 유폭으로 사망해버리게 된다. 특히 전면 조종수 해치는 구조적인 약점이었으므로 일반적인 해치보다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키가 큰 현대인들은 전면 해치를 열어두어도 탈출하기 버거울 정도다. 바닥에는 조종수용 탈출구가 있었지만 크기가 워낙 작았으므로 실효성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방연합군에서 T-34에 대비되는 M4 셔먼에 비해 압도적으로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낮았는데 특히 조종수는 거의 90% 확률로 사망하였고 전방기총사수도 조종수보단 낫지만 어차피 도찐개찐으로 생존율이 낮았다. T-34가 격파될 때마다 생존하는 승무원은 평균 2~3명밖에 되지 않았다.
- 트랜스미션 자체가 소련의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 덕분에 수명이 매우 짧았고 조작하기가 힘들어 어떤 때엔 기어 자체가 안 들어가 망치로....때려 넣어야 했다.[69] 따라서 운전수는 망치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점이 비좁은 운전석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기동력을 저하시켰다.
- 전차 내부가 비좁아 내부에서 이동이 상당히 제약되었다. 전술한 것과 같이 조종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처럼 있어야 조종이 가능했다. 3인용 포탑을 채용했지만 전차장은 좌석에 앉을 경우 무릎이 포수의 등에 닿아 방해가 되었고, 장전수는 딱히 앉을 공간도 없이 탄약 상자 위에 서서 허리를 숙여 탄을 장전하는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 같은 내부공간 협소로 인해 체구가 평균적으로 작은 동양계를 선호했다.[70]
- 이건 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되지만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단순하고 고장안나는 이미지의 소련군이 무색하게 잔고장이 심했다. 그래서 소련군은 아주 단순무식한 해결책을 내는데 그냥 고장난 부품을 현장에서 교체한 후 고장난 부품은 그냥 버린다.라는 해결책이었다. 고장난 부품을 갈아 끼우는것은 흔한 일이지만 여기서 교체하는 부품은 캐터필러나 탐조등 같은게 아니라 바로 엔진 그 자체였다! 게다가 브레이크 라이닝 등 툭하면 고장나는 부품은 아예 고장날 것이라고 간주하고 해당 부위 전체나 예비부품을 전차에 탑재한 상태로 출격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보통 고장난 곳을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련군은 야전 수리능력이 딸려서 나름대로 현장에서 응급처치가 쉽고 간편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71] 이런 잦은 엔진 고장의 원인은 초기형에 사용하던 공기 필터가 대기중 부유물을 걸러내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만 차단하는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출력 자체가 낮아지고, 걸러지지 않은 모래는 실린더 내부로 끼어들어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버딘 시험장에서 평가를 받은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스파이가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설계를 엉망으로 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는 언급까지 있다. 이 문제는 1943년형 등 후기형에서 일명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서야.... 해결되지 못했다.[72] 심지어 1942년도에 생산된 T-34/76의 경우에는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Studies 28-1호에 실렸던 보리스 카발레르칙의 Once Again About the T-34 에서 설계상 보장시간이 100시간밖에 안 되었으며 이것마저도 야전에서는 고작 70시간 정도뿐이라는 매우 뒤떨어지는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까였다. 애초에 소련의 공업화 수준이 낮았는데다가, 이를 감안하지 않은 단기간에 이룩한 과도한 공업화에 따른 부작용, 낮은 공업화 수준을 통한 전시 대량생산을 시도했고, 이는 전차 대량생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또한 2차대전 당시 엄청난 삽질을 벌였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다고 봐야한다. 이런 T-34와 반대로 셔먼은 고장이 적어 호평이었는데 T-34가 T-34/85로 전환되는 과정에 수천대의 구형 T-34/76 재고를 안고도 전선에는 전차가 부족한 공급문제가 생겼을 때가 있는데 이때 랜드리스로 들어온 2000여대의 M4 셔먼을 부족한 T-34 대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주었으며 전차병들은 셔먼을 무고장 전차라며 사랑했다. 심지어 T-34보다 한단계 체급이 아래인 경전차에 불과한 스튜어트와 발렌타인을 T-34보다 더 선호했다고 한다.[73]
- T-34는 중기형 까지 무전기가 없어서 각 전차들에게 무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전차장은 해치를 열어 다른 전차에게 손짓이나 작은 깃발로 지휘를 해야만 했다.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상부의 지시를 수신받을 지휘차량만 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차량간 긴밀한 전술 이행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으므로 차량간 통신은 수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주변을 관측할수 있는 관측장비가 부족했다.[74] T-34에 무전기가 일찍이 장착되었더라면 적어도 손실율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모델에도 전 무전기를 장착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우랄 산맥 너머로 공장 이전중이었다) 다수를 투입할 수가 없었기에 지휘 차량에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급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전 차량에 설치하게 되었고(대략 43년 중반) 1944년에 나온 85모델은 차체에 있던 장비를 포탑으로 옮겼다.
10 독일에서의 평가
독일군이 노획한 T-34/76. L-11 장착형으로 극 초기형이다
독일군이 노획해 운용한 T-34/85. T-34/76은 독소전쟁 초반에 소련군이 패주했을 때 많이 노획해 사용예가 많으나 소련군이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한 이후에 나온 T-34/85는 노획 사용 예가 거의 없다.
독일식 위장무늬까지 칠해서 운용중인 독일군의 T-34/85.
포탑을 제거하고 4연장 기관포를 장착한 'Flakpanzer T-34' 대공전차. 3대가 제작되었다.
독소전쟁 발발 1년전에 히틀러는 독일의 3, 4호 전차 생산공장에 소련 기술진 방문을 허가해 주었는데, 소련 기술진과 무관들은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이 전차를 보고 "이것은 T-34나 KV-1으로 해볼만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도리어 "독일놈들이 페이크로 한물간 놈을 우리에게 보여준게 아닐까?"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독일측에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장래를 위해 3호 전차에 5cm 60구경 장포신 전차포를 빨리 장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소련의 신형 전차로 실제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 지는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앞서 언급한 충격을 받게 된다.
독일군의 기갑부대 지휘관들이나 일선 전차병들도 대부분 T-34를 꽤 위협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몇 가지 기계적인 문제가 있지만, 여태까지의 독일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며 이 전차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했다. 회고록 "기계화 부대장"의 모스크바 전투를 기록한 부분에서도 T-34 때문에 독일 기갑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판처 클라이스트"라고 불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 또한 "지금까지 나온 전차 중에서 가장 좋은 전차"라고 인정했다. 또한 독소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군 기갑부대와 싸워본 프리드리히 폰 멜란틴 중장은 후에 저서에서 "우리에겐 T-34에 맞설만한 것이 없었다."고 호평을 했다. 심지어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조차 동부전선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T-34라고 기록했다.
사실 대전 초반 독일군에게 T-34보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KV-1 전차였다. 하지만 KV 전차는 구식 방식으로 바른 떡장갑만 빼고는 독일의 기술진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전차였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느린 속도와 둔중한 반응속도, 게다가 중전차 주제에 T-34와 동급의 주포를 장착해서 화력이 빈약하다는 약점까지 있었기에 일단 초기의 충격을 이겨낸 독일군에게는 T-34와 비슷하거나 약간 처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단, KV 전차 때문에 독일 전차의 중장갑, 중무장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사실이다.[75]
그렇지만 나라 사정이 도통 전쟁을 치룰 상황이 아니었던 소련군은 초기 생산분의 기계적 결함과 숙련병 부족, 전황의 악화로 인해 멀쩡한 T-34를 비롯한 자군의 장비를 대량으로 유기했고, 독일군은 이렇게 득템한 T-34중 상당량을 'Panzerkampfwagen T-34 747(r)' (r은 러시아라는 뜻)이라는 제식명을 붙이고 열심히 굴렸으며, 독일식 큐폴라를 설치한 T-34 747(r)도 있다.
제23장갑사단 소속 T-34 747(r). T-34-76의 포탑을 보면 독일식 큐폴라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이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용했다는 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인데, 대전 말기 독일군은 서부전선의 연합군 차량도 노획한 적이 있지만 적성장비 시험용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군이 노획한 다음에 전선에 투입한 적군 전차는 T-34뿐이다. 또한 독일에도 T-34 에이스가 있는데 바로 스위스 태생의 에밀 자이볼트란 이로 무장친위대 다스 라이히 사단에 입대하여 종전 때까지 노획한 T-34를 타고 적 전차 65대를 격파하여 세계 최고의 T-34 에이스 전차장이 되었다. 그밖에도 1941년 여름에는 노획한 T-34 중 3대를 핀란드에 판매한 적도 있다.
11 파생형
(위에도 설명된 T-34/57, T-34/76과 T-34/85의 년도별 바리에이션은 제외)
- 소련
- T-34M : A-43
- T-43 : KV-1과 T-34를 통합하는 주력전차 계획에서 T-34를 개량하여 발전시킨 모델 차량. 채택되지 않고 T-34/85에게 포탑을 건네준다.
- OT-34/76(85) : 화염방사전차.
- SU-122 : T-34 차체를 이용하여 122mm M-30 곡사포를 장착한 다용도 중형 자주포 모델.
- SU-85 : T-34 차체를 이용하여 85mm 대공포를 전용한 전차포를 장착한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SU-100 : SU-85에서 장갑등을 개량하고 100mm D-10을 올린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SU-100M-1 : 우랄 중기계공장에서 T-34/85의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전투실은 전차 후면에 있었다. 양산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는 T-44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SU-100M-2가 더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T-34/100 : 2종류가 만들어졌었는데 183번공장에서는 T-34/85에다가 100mm ZiS-100/D-10T을 올린 시제 T-34를 만들어 보았으나 별로라는 취급을 받고 탈락하였고 92번공장에서는 T-34/85에다가100mm LB-1(D-10T의 친척)을 올려서 만들었는데 이쪽은 그럭저럭 평은 좋았으나 아예 새로설계된 전차( T-44 , T-54)를 뽑는게 좋겠다는 판정을 받고 대량생산은 되지 못했다.
- 중국
- 58식 : T-34/85의 중국 복제판. 전차장 해치와 큐폴라를 개량하고 더한 58식-I와 58식-II이 있다. 양산되지 않았다.
- 63식 : 58식을 베이스로 63식 대공자동포를 쌍열로 사용하는 대공자주포. 베트남 전쟁 당시 월맹군 장비로 사용되었다.
- 이집트
- T-100(T-34/100) : 이집트에서 T-34에 포탑을 마개조하고 100mm BS-3 대전차포를 올린 버전. 오픈탑이며 목돌이다.
- T-122(T-34/122) : 이집트에서 T-34에 포탑을 마개조하고 122mm D-30 곡사포를 올린 버전. 오픈탑이며 목돌이다.
- 나치 독일
- Flakpanzer T-34 : 노획한 T-34에 2cm 대공포를 올린 자주대공포. 시험기만 만들어졌다.1944년 중반에 653 중구축전차대대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 폴란드
- T-34-85M1/M2 : 폴란드에서 개량한 T-34, 각각 소련의 T-34 Mod.60과 Mod.69과 흡사한 개량이 되었다.
- 시리아
- T-34/55 : 현대화 사양.
- T-34/122 : 시리아에서 또 T-34에 122mm D-30 곡사포를 올린 자주포. 이집트 버전과는 달리 포탑이 없고 포와 포방패만 있다.
- 지휘용, 구난전차, 소방전차[76], 등등의 (상대적으로) 비전투 모델은 제외함.
12 총평
적당한 성능과 최고의 생산성으로 조국을 구한 전차
전차 자체의 성능만 보면 왜 이 전차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차 중 1위를 기록하는지 의문이 드는 전차일수도 있다.
그러나 T-34가 이처럼 인정을 받게된 것은 T-34의 존재가 소련군의 절망적인 소프트웨어, 한세대 뒤떨어진 하드웨어를 만회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해준 무기였기 때문이다. 상대방인 독일군의 수많은 명장들마저도 T-34를 극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절한 시기에 대량으로 등장해서 전쟁의 향방을 바꾼 전차이기 때문이다.
전쟁무기로써 우수한 전차란 전차 자체의 능력뿐 아니라 생산력, 유지보수능력 등 제반사항까지 포함하여 판단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점을 무시하면 최강의 전차는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몇 안되는 초중전차들이 독점하게 될 것인데, 누구도 그런 것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능은 동급의 돌격소총과 비교해 고만고만한 AK-47이 왜 M16과 함께 최고의 소총으로 군림하는지 생각해보자.
거기에 T-34의 대량생산에 무기대여법을 통한 서방연합국의 지원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것도 이야기도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무전기등 부속설비의 장비에는 서방연합국의 지원물자가 요긴하게 쓰였고, 또 다른 장비의 생산에 투입될 노력이 T-34에 집중되며 생산량 증폭에 크게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T-34 자체가 원래부터 생산성이 높은 전차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T-34가 첫 생산된 1940년 9월부터 독소전쟁 발발 직전까지 렌드리스는 꿈도 못꾸고, 전시체제도 아닌 평시상황에서,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쿨리크 원수의 지속적인 방해속에서, 단 2곳의 전차공장에서 9개월간 생산된 T-34의 수량이 1,220대였는데, 독소전이 가열되던 1943년 한해 동안 독일이 생산한 (숫적 주력인) 4호 전차의 총 생산 수량이 3,013대였던 것을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77]
단지 단일모델 일변도의 대량생산을 통한 최고 효율의 규모의 경제[78]를 유지하기 위해 소련군은 나치 독일에 비해 개량사항이 상당히 늦게 반영되는 편이라 화력강화가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결정되었으므로 불필요한 희생이 컸으며, 독소전쟁 후반기의 소련의 진격속도를 느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전장에 적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전차를 대량으로 쏟아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인데, T-34는 이 기준에 거의 완벽히 적합하며, 소련 정부와 노동자들이 이 전차를 대량 생산 및 대단위로 전선투입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영국 전차기술학교에서 1944년 작성한 T-34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본 전차의 전체적 설계는 효율적인 전차에 필수적인 요소와 전쟁 상황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끌어모아 러시아의 병사들과 지형, 생산 설비에 맞게 적절하게 조정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산업화가 아주 최근에야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러시아의 공업지역 대부분이 적에게 점령되어 있는 상황, 그리고 공장 시설과 숙련공 상당수가 손실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토록 우수한 전차를 설계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양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최고 수준의 공학적 업적이라 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T-34는 개별성능은 독일군 전차를 압도하지 못했으나 쓸만한 성능에 낮은 생산가와 높은 생산성, 낮은 운용비 등을 충족시키면서 소련군의 기갑전력이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승리의 견인차이자 조국을 구한 전차가 될 수 있었다.
13 매체에서의 등장
영화, 에니메이션, 웹툰, 게임, 프라모델 등 왠만한 곳에서 등장한다.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기제한다.
13.1 영화,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미국, 소련, 러시아 영화들에서는 아직도 주행이 가능한 T-34가 그대로 등장한다. 한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켈리의 영웅들에서는 외형이 적당히 개조된 T-34가 독일군의 티거 역을 맡았는데, 포탑이 약간 앞으로 달려 있어서 포르셰 티거와 비슷하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는데 M48 패튼이 대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단, 로드 넘버 원의 경우 76mm포 탑재형의 레플리카를 만들어서 촬영을 하였다.[79] 그리고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서부전선에서는 몇 몇의 오류를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T-34/85가 등장하였다.
#!HTML <img src="http://cfile10.uf.tistory.com/image/221B33475666356610137B">
369번 T-34/85가 북한군 전차병 영광(여진구 분)의 전차로 나온다. 진짜는 아니고 원형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한 레플리카. 예고편 중에서는 남복(설경구 분)의 바주카와 교차사격(…)을 가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때문에 포신이 망가지게 되며 이후 남복과 영광의 자가용 겸 아지트가 된다. 거기다가 고장난 포신으로 F-51 전투기를 농락하는등의 활약을 보이다 마지막에 대한민국 국군 포병대에 의해 격파된다.
#!HTML <img src="http://mcafethumb2.phinf.naver.net/20160209_205/parkth0924_1455011022627xRB2a_PNG/Screenshot_2016-02-09-18-43-04.png?type=w740">
- 번개맨 극장판
위의 서부전선에 나온 T-34/85 레플리카가 공식 예고편에서 작 중 악당인 잘난마왕이 해치를 열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씬으로 등장한다. 개봉 이후 추가바람. 번개맨:너 이 자식 퍼싱맛을 못봤구나
대런 크로스가 과거 냉전 시절 행크 핌의 활약상이 담긴 흑백 영상을 보여줄 때 배경에 153번 T-34/85가 등장하며 승무원을 던져버리고 그 전차를 탈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에는 행크 핌 박사의 열쇠고리에 달려있는 자그마한 전차 모형으로 등장하는데...후반부에 시한폭탄이 장치된 핌 테크놀로지 밀실 안에 갇히게 될때 그 전차모형을 딸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행크 핌이 과거에 탈취해서 축소시킨 진짜 T-34/85였고, 이후 그걸 원래 크기로 돌려놓은 후 안에 탑승하고 조종하여 그 밀실을 탈출한다.[80] 참고로 레플리카가 아닌 오슈코시 군사 베테랑 박물관에서 가져온 진짜 T-34이다.
이미지 추가바람.
13.2 애니메이션, 웹툰
#!HTML <img src="https://img-fotki.yandex.ru/get/62935/2670595.f8/0_12ff88_43a36099_orig"?width=100%>
프라우다 고교소속으로 등장하는데 76mm포 탑재형과 85mm포 탑재형이 모두 등장한다.
- 알파캣의 역사웹툰
76/85형 가리지 않고 거의 전편 등장한다. 2차대전 그중에서도 독소전을 주로 다루다보니 4호 전차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것 같기도. 일단 물량빨을 보여주지만 가끔 각성(?)하면 판터나 티거도 잡는다.
도깨비 탱크 T-34라는 이름으로 나오긴 하는데 T-34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거 치고는 생김새도 전혀 다른 모양이라 연관성은 불명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화에 등장하는 토오노 시키 쟁탈 두근두근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나이스어택 상품으로 귀전차(鬼戰車) T-34가 경품 목록에 등장한다. 물론 MVP상인 '시키씨와 둘만의 개인실 숙박권'에 그냥 넘어간다.
13.3 게임
- '전차'의 기본 모델로 T-34/85가 등장한다. 참고로 독일은 '팬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티거의 외형이다[81]. 게임 특성상 동급 보병과 기동성 말고는 아무런 보너스가 없기 때문에 도시 막타용으로나 쓰지 잘 안쓴다. 석유는 다른 필수 유닛들이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 워게임 : 에어랜드 배틀에서 동독군과 폴란드군이 끌고다닌다. 스팸용 전차라서 수도 엄청나다. 후속작 워게임 : 레드 드래곤에서는 북한군과 소련군도 T-34-85를 끌고 나와, 이론상 T-34만 운용할 경우 160대라는 미친 물량을 보여줄 수 있다.
- 또한, 워게임: 유러피안 에스컬레이션에선 폴란드군 소속 유일한 폴란드군 전차로 나온다.(당시 시대배경이 60-70년대사이에다가 폴란드는 1980년대 바웬사 정권도입전까지 공산정권이었으니 당연하다.그외의 체코같은 나라들은 탱크도 없다.)
-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해 주포가 매우 강력하며 2차대전 버전이든 60년대 후반의 개량형이든 상관없이 85mm 주포의 관통력이 1575m에서 무려 8이나 된다. 채피의 75mm포가 관통력 4, 판터의 75/70 주포를 개량하여 사용하는 AMX-13/75의 75mm가 관통력이 6이며 보통 소련제 85mm와 자주 비교되는 미제 76mm를 장착한 헬켓의 관통력도 6에 불과하여 소련의 85mm에 밀린다. 앞의 전차들은 심지어 사정거리도 T-34와 동일하다. 사정거리 문제로 실제 관통력은 T-34에 비해 조금 더 높지만 단순하게 사정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T-34와 관통력이 동일한 차량을 찾아보면 가관인데 일반적으로 확실히 85mm보다 상급으로 평가받는 미제 90mm 주포를 장착한 잭슨이나 초기형 M48, 일본의 61식 전차, 기타 서방제 90mm포를 가진 카노넨야크트판터 등도 역시 T-34와 동일한 관통력 8이며[82] 심지어 센츄리온 mk5의 20파운더도 85mm와 동일한 8의 관통력을 지닌다.[83]즉 이 게임에서 T-34의 85mm 주포는 일반적으로 밀덕들에게 박힌 이미지와는 달리 화력에 한정하면 1세대급 주력전차들에 준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관통력과 화력을 자랑한다. 역시 이 강력한 주포는 레오파르트 같은 물장은 물론이고 초기형 T-55나 M48 같은 방어에 신경 쓴 전차들의 전면도 뚫어낸다. 심지어 M1IP 같은 3세대 전차들도 T-34에게 측면을 보여주게 되면 T-34의 최대사정거리인 1575m에서 뚫리기 때문에 이에 몇몇 유저들은 T-34가 T-72와 동일한 거리에서 M1IP 에이브람스를 격파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지상 병기 소련 트리 | |||
중(中)전차 라인 | 프리미엄 전차 | ||
2 랭크 | 2 랭크 | ||
T-34 1940년형 L-11장착형 | T-34 1941년형 | T-34 1941년형 (제1근위전차여단) | |
T-34 1942년형 | T-34E STZ | T-34E | |
3 랭크 | |||
T-34-57 | T-34-85 D-5T장착형 | T-34-85 | |
4 랭크 | |||
T-34-100 | T-34-85E | ||
지상 병기 독일 트리 | |||
프리미엄 전차 | |||
3 랭크 | |||
T-34 747(r) |
- 워 썬더/지상 병기/소련 트리/중(中)전차 라인과 프리미엄 전차에서 2~4 랭크에 거쳐 많은 T-34 파생형이 등장한다. 2랭크에서는 T-34 1940~42년형과 T-34E STZ가 등장하며, 3랭크에서는 T-34-57과 T-34-85 D-5T 장착형, 4랭크에서는 T-34-85이 등장한다.
- 프리미엄 전차에서는 2랭크에서 T-34 Prototype과 T-34 1941년형 (제1 근위전차여단), T-34E, 3랭크에서는 T-34-57 1943년형, 4랭크에서는 T-34-100와 T-34-85E가 등장한다.
- 이 수 많은 바리에이션의 T-34들의 장점은 모두 다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장갑이라는것. 다만 경사장갑의 효율이 상당히 좋은 게임에 포탄의 경사장갑 착탄각에 따른 관통력 감소가 APCBC기준으로 60% 가까이 감소되는지라 88mm Kwk43의 APCBC도 방심하고 쏘면 도탄이 날 수도 있다. 1942년형 이전의 형들은 차체 전면 상단 우측의 조중수 해치를 맞으면 한 방에 갈 수 있다.[84] 또한, 절대로 측면을 내주면 안 되는 이유가 공구상자와 예비장비가 있는 차체 전면 쪽에 가까운 상부 양쪽에는 연료탱크가 있는데, 이걸 맞으면 활활 불탄다(...) 소화기로 진압을 못하면 유폭하거나 소화기를 쓸 틈도 없이 바로 유폭이 되기도 한다.
- 다만 T-34/57이후로 독일군 못지않은 탄속과 관통력을 가지게 돼서 공격력만큼은 좋은편이 된다...지만 57mm는 철갑탄 무게가 3.1kg이라 펀치력이 영 좋지않다. 85mm 부터는 확실히 펀치력이 88mm가 부럽지 않을 정도.
T-34/76 | T-34/85 |
T-34/85M | T-34/85 루디 |
T-34/85 Victory |
- 소련 테크트리의 5,6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5티어는 76밀리 탑재형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57밀리를 쓴다. 6티어는 85밀리 형태. 다른 나라의 5티어 탱크, 특히 같은 중형인 셔먼이나 4호전차에 비해서 앵벌머신이라는 이름은 듣지 못하지만 크레딧 벌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유의 경사장갑때문에 장거리 포격시 도탄 확률이 좋다. 57미리 속사포로 꾸준하게 데미지를 줄수도 있고, 76미리로 한방을 노릴수도 있다.(보병을 상대할 일이 없어 고폭탄 사용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임 특성상 속사 화력이 좋게 설정된 57mm의 평가가 원본 76mm보다 더 좋다. 응?) 다만 장갑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며 동티어 전차들중에선 고티어방에 끌려갔을 시 화력부족으로 가장 약해지는 전차이기도 하다.[85] 중국산 T-34도 있는데 거의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 6티어의 T-34-85는 동티어 중에서도 가장 좋은 중형전차에 속한다. 준수한 기동성과 높은 화력이 합쳐져서 36,01이 중전차가 된 이후 6티어 최고의 중형전차로 꼽힌다. 물론 포탑장갑만 5티어에서 강화되어 장갑은 약하지만 중형전차에 장갑을 요구하는것이 모순이다.
- 원판 T-34는 엔진 마력 수치와 추중비에 비해 가속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원본이 지녔던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한 기동성의 악화를 약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조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전차로는 독일의 판터가 있다.
- 기프트샵 전용 골드탱크로 T-34/85M도 있는데 포는 T-34/85보다 약하지만 전면 장갑이 강화된 형태다.
- T-34의 후속작으로 거론되던 T-43과 T-44 등은 2차 중형 트리로 갈라져나왔다. 둘 다 성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Type T-34 | Type 58 (58식 중형전차) |
T-34-1 | T-34-2 | T-34-3 |
- 중국은 T-34의 중국버전인 Type T-34를 5티어부터 운용하게 되며, 6티어인 Type 58 역시 소련 T-34-85의 모양까지 똑같은 중국버전이다.[86] 오만가지 마개조를 하여 원판과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7, 8티어 T-34-1/T-34-2/T-34-3까지 T-34의 이름을 쓴다.
- T-34/76을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무기고에서 85mm 주포 업그레이드를 마치면 T-34/85를 사용할 수 있다.
- T-34/76이 등장하며 독트린에 따라서 T-34/85를 호출하는것이 가능하다.
- T-34/76형이 등장한다. 세계대전 때부터 지을 수 있는 군사기지를 지으면 1개 분대, 총 3대가 지원된다. 공격력과 체력이 높지만 이동속도가 느리다. 냉전 때 반응장갑 업그레이드를 통해 체력을 높일 수 있다.
- 라 푸에르타에 있는 한 고철상에 가면 T-34/85형 고철이 있다.[87]
13.4 프라모델
2차 대전의 대표적인 전차다 보니 왠만한 회사에서는 다 내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 티거와 마찬가지로 가장 많은 T-34 바리에이션을 낸 메이커이다. 심지어 '1940년형' 극초기형도 발매하였으며, 각 형식과 공장생산 차량을 충실히 발매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T-34를 수집하고 싶은 사람들은 드래곤을 선호하는 편. 매직 트랙과 에칭 등 내용물도 충실했다, 그러나 DS궤도(...)와 에칭을 뺀 채(!) 재발매된 킷의 수준은 충격과 공포 수준.또한 T-34/85 독일군 노획형은 박스아트의 형태를 재현할 수 없는 황당한 오류마저 보여주고 있다. 블랙 레이블 시리즈와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드래곤의 병크 중 하나.
- 최근에 1/35 스케일의 T-34/85 1944/45년형 112공장제와 한정판으로 183공장제의 베를린 전투버전을 발매했다. 문제는 112공장제와 183공장제 둘 다 꽤 많은 오류들이 존재한다(...)
특히 포탑과 용접선또한 전면의 조종석 해치와 포탑의 환기구 등의 주조질감 재현이 너무 과장되어 많은 모델러들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실차와 비교해 보았을때 실제로도 상당히 주조질감이 거친 모델들도 있어 논란이 되는 부분. 여하간 많은 모델러들이 고대하던 아카데미제 T-34임에도 불구하고 포탑 문제로 인하여 상당히 논란이 되었던 키트이기도 하다. 특히 183공장제는 포탑프로포션도 뭔가 어색해서 더 비판받는 부분이 있다. 가격은 3만원 미만으로 아카데미답게 국내에서는 싼 편이라, 오류를 감수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T-34/85를 장만하고 싶은 초보자라면 하나 쯤은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트랙은 반 연결식으로 재현되어 있으며, 에칭도 들어있기는 하다.183공장형은 베를린 전투 버전으로 베드스프링도 에칭으로 함께 들어있으니 나름 가치가 있긴 하다. 특이하게 여분 부품중 우랄공장형 곡면 펜더가 들어 있더 다른 바리에이션 확장을 염두하고 있나 예측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16년 2/4분기 신제품 예고에서 T-34/76(1943년형) 독일군 노획 개량 버전 (큐폴라가 4호전차 전차장 큐폴라.) 을 발매했다. 이번 T-34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 다양한 스케일로 40년형(1/100),42년형, 43년형, 43년형 마인롤러 장착형, T-34/85이 발매되었다. 1/100 1940년형은 5개(...)의 부품으로 1940년형 T-34를 그럭저럭 재현했으나, 공축기관총이 없어서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 에이스모형
- 1/72 T-34-85를 발매했다.
- 1/35 스케일의 T-34/76과 85의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타미야 답게 품질이 준수하지만 가격 대비는(...) 구난용 목제와 애칭을 포함한 1/24 스케일의 T-34/85 한정판[88]을 최근 발매했는데 가격이 후덜덜하다. [89]
- 무려 1/16 스케일에 내부를 완벽 제현(!)한 T-34/76 1942년형과 1943년형, T-34/85 1944년형 174공장, 183공장제 등 총 4가지가 있다. 크리스티 현가장치 구현과 금속 애칭 세트, 준수한 품질 등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 답지 않게 괜찮다. 대신 12만원대라는 저렴하지 않는 가격과 생각 이상의 많은량의 도색 필요, 김치통 만한 작지 않은 사이즈, 예비 부품마저 없어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멘탈이 깨질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를 요한다
- AFV클럽
- 의외로 대만메이커인 AFV클럽에서도 T-34/76 42년형부터 T-34/85까지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발매하였으며, 내부 재현에 클리에 외장까지 제공하는등 생각보다 구성이 충실한 키트다. 키트 프로포션이나 품질에 대해서는 추가 바람.
- Revell
- 독일메이커 레벨에서도 T-34를 발매 했는데 동구권 메이커 재포장인지는 확인 바람.
- ICM
- 동구권 메이커 ICM에서도 1943년형 T-34/76을 초기 후기형의 2가지 바리에이션으로 발매하였다. 자세한 정보는 추가 바람.
14 둘러보기
소련의 주력전차/소련식 분류 | ||||
시대별 세대 구분 | 1세대 전차 | T-34, T-44 | ||
2세대 전차 | T-54, T-55, T-62 | |||
3세대 전차 | 1세대 주 전차 | T-64 | ||
2세대 주 전차 | T-72 | |||
3세대 주 전차 | T-80 | |||
MBT 기준 세대 구분 | 1세대 MBT | |||
2세대 MBT | T-64(BV/BMU · EU), T-72(B/BA), T-80(B/BV · | |||
※ T-34부터 T-64(Object 432)까지 중형전차, T-64A(Object 434)부터는 주력전차로 분류 ※ 윗첨자U: 소련 해체 이후 개발된 차량 ※ |
제2차 세계대전기의 소련군 기갑장비 | ||
전차 | 경전차 | T-26, T-27, T-37, T-38, T-40, BT 전차, T-50, T-60, T-70, T-80 |
중형전차 | T-28, T-34, T-44 | |
중전차 | T-35, KV-1, KV-85, KV-2, IS-1, IS-2, IS-3 | |
장갑차 | D-8, BA-3/6, BA-64, 소련군 반궤도 차량 | |
자주포 | ZiS-30, SU-122, SU-76, SU-152, SU-85, ISU-152, ISU-122, SU-100 | |
다연장로켓 | 카츄샤 다연장로켓 | |
차량 | T-20, GAZ-64, GAZ-AA(AAA), GAZ-MM, GAZ-M1, GAZ-03-30, ZiS-5, ZiS-6, YAS-6 | |
모터사이클 | M-72 | |
랜드리스 차량 | M3/M5 스튜어트, M3 리 / 그랜트, M4 셔먼, 발렌타인, 처칠, 마틸다, SU-57, 브렌건 캐리어, CCKW, 윌리스 MB, 포드 GPA | |
노획 및 개조차량 | 3호 전차, 3호 돌격포,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6호 전차 티거S, 6호 전차 B형 티거 2S | |
프로토타입 | S-51, SU-14, KV-220, KV-3, KV-13, A-20, A-32, A-34, A-40, A-43, A-44, T-43, T-46, SMK, T-100, T-150, SU-100Y, IT-45, IT-76, SU-122-44, T-54C, IS-4C, IS-6 | |
페이퍼 플랜 | KV-4, KV-5, 소련의 기갑병기 설계안 중 일부, ST-1, LTP, MT-25, LTTB | |
그 외 | KV 전차, 스탈린 전차, 소련군 경전차/기타, 소련군 중(中)전차/기타, 소련군 장갑차/기타, 무선전차 | |
※ S: 노획하였으나, 운용하지 않음 ※ C: 프로토타입 상태로 종전 후 양산 됨 |
'겨울전쟁'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기의 핀란드군 기갑장비 | |||||||||||||||||||||||||||||||||||||||||||||||||||||||||||||||||||||||||||||||||||||||||||||||||||
전차 | 경전차 | 르노 FT-17 "Koiras"/"Naaras", 카든 로이드 Mk.VI, 카든 로이드 M1933, 비커스 Mk. E/T-26E, BT-5SO, BT-7SO, T-26A/B/CSO, T-50SO, T-37SO, T-38SO | |||||||||||||||||||||||||||||||||||||||||||||||||||||||||||||||||||||||||||||||||||||||||||||||||
중형전차 | T-28SO, T-34/76SO, T-34/85 "Sotka"SO, 4호 전차 J형 "Ravistin" | ||||||||||||||||||||||||||||||||||||||||||||||||||||||||||||||||||||||||||||||||||||||||||||||||||
중(重)전차 | KV-1E "Klimi"SO | ||||||||||||||||||||||||||||||||||||||||||||||||||||||||||||||||||||||||||||||||||||||||||||||||||
화염방사전차 | OT-26SO, OT-130SO, OT-133SO | ||||||||||||||||||||||||||||||||||||||||||||||||||||||||||||||||||||||||||||||||||||||||||||||||||
장갑차 | L-182, FAISO, D-8SO, BA-3SO, BA-6SO, BA-10SO, BA-20SO, BT-43 | ||||||||||||||||||||||||||||||||||||||||||||||||||||||||||||||||||||||||||||||||||||||||||||||||||
돌격포 | 3호 돌격포 G형 "Sturmi", BT-42 | ||||||||||||||||||||||||||||||||||||||||||||||||||||||||||||||||||||||||||||||||||||||||||||||||||
자주포 | SU-76SO, SU-152SO, ISU-152SO | ||||||||||||||||||||||||||||||||||||||||||||||||||||||||||||||||||||||||||||||||||||||||||||||||||
자주대공포 | 40 ItK/38 | ||||||||||||||||||||||||||||||||||||||||||||||||||||||||||||||||||||||||||||||||||||||||||||||||||
화포견인차 | T-20 콤소몰리예츠SO | ||||||||||||||||||||||||||||||||||||||||||||||||||||||||||||||||||||||||||||||||||||||||||||||||||
※ 윗첨자SO: 소련군에게서 노획(운용 수량이 1, 2대 수준에 불과한 차량이 많으니 제식여부는 별도로 알아보자) |
냉전기의 소련군 기갑장비/소련식 분류 | ||||
전차 | ||||
시대별 세대 구분 | ||||
1세대 전차 | 中전차 | T-34-85, T-44 | ||
重전차 | IS-2, IS-3 | |||
2세대 전차 | 中전차 | T-54, T-55, T-62 | ||
重전차 | IS-4, | |||
경 수륙양용 전차 | PT-76, | |||
미사일 구축전차 | IT-1 | |||
3세대 전차 | 1세대 주 전차 | T-64 | ||
2세대 주 전차 | T-72 | |||
3세대 주 전차 | T-80 | |||
MBT 기준 세대 구분 | 1세대 MBT | T-62(B/M), T-64, T-72(A) | ||
2세대 MBT | T-64(BV/BM/E), T-72(B/BA), T-80(B/BV/A/U)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BTR 시리즈 | ||
궤도장갑차 | MT-LB, BMD-1, BMD-2, BMD-3, BMD-4, BMP-1, BMP-2, BMP-3 | |||
차량 | 소형 | UAZ-469, GAZ-64 · 69, UAZ-452 | ||
트럭 | ATS-59, GAZ-66, ZiS-151 · 157, ZiL-131 | |||
자주포 | SU-100, ISU-122S, ISU-152, SU-122-54, ASU-57, ASU-85, 2B1 오카,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시아, 2S4 튤판, 2S5 Giatsint-S, 2S7 파이온, 2S19 Msta-S | |||
자주 대공포 / 대공 미사일 | ZSU-57-2, ZSU-23-4 쉴카, 9K35 스트렐라-10, 9K33 오사, 9K330 TOR | |||
다연장로켓 | 카츄샤 다연장로켓 시리즈, BM-21, BM-27, BM-30 | |||
기타 | 소련의 기갑병기 설계안 | |||
※ T-34부터 T-64(Object 432)까지 중형전차, T-64A(Object 434)부터 주력전차로 분류 ※ |
냉전기의 국가인민군 (동독군) 기갑차량 | ||
기타전차 | KPz T-34/85M, IS-2 | |
MBT | 1세대 | KPz T-54(Z/AZ/AMZ), KPz T-55(A/AM1B · 2B · 2PB) |
3세대 | KPz T-72(M/M Übergangsversion/M1) | |
경전차 | PT-76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SPW-152K, SPW-40, SPW-40PA, SPW-40P2, SPW-60PB, SPW-70, PSzH-IVGT |
궤도장갑차 | SPW-50PK, MT-LB, SPz BMP-1, SPz BMP-2 | |
차량 | 소형 | GAZ-69, UAZ-469, UAZ-452, IFA P3GT, 트라반트 퀴벨GT |
트럭 | GAZ-66, Robur LO 1800 · 2002, ZiL-131GT · 157, Ural-375D, 타트라 T-813/815, KrAZ-255B, IFA W50L/A | |
자주포 | SU-76, SU-100, Sfl-Hb 2S1, Sfl-Hb 2S3 | |
자주 대공포/ 단거리 대공 미사일 | Fla-Sfl 57-2, Fla-Sfl 23-4(W1/M) Schilka, Fla-Kom Strela-10, Fla-Kom Osa | |
다연장로켓 | BM-21, BM-24, RM-70 | |
※ 윗첨자GT : 국가인민군 국경수비대 (Grenztruppen der DDR)에서도 같이 사용했던 차량들 KPz = Kampf Panzer (전투 전차) SPW = Schützenpanzerwagen(장갑차) SPz = Schützenpanzer (보병전투차) Sfl-Hb = Selbstfahrlafette Haubitze (자주포) Fla-Sfl = Fliegerabwehrkanone Selbstfahrlafette (자주대공포) Fla-Kom = Flugabwehr-Raketenkomplex (대공 미사일) |
냉전기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1951~1992) 기갑차량 | ||
기타전차 | T-34/85, M4 셔먼, 4호 전차C, 3호 돌격포C | |
MBT | 1세대 | T-55AI Igman, M-47 |
3세대 | T-72M, M-84(A/AB/ABN), | |
경전차 | PT-76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M-8, BTR-152, BTR-60, BRDM-2, TAB-72, BOV |
궤도장갑차 | 하노마크, OT M-5, MT-LB, OT M-60, BTR-50, BVP M-80 | |
차량 | 소형 | 피아트 1101 · 1107, 핀츠가우어 |
트럭 | TAM-110 · 150 · 260 · 4500 · 5000, FAP 2026 · 2832, ZiL-131 · 157, MAZ-537 | |
자주포 | SO-100, SO-105, SO-76, SO-90, SO-122 | |
자주대공포/
단거리 대공미사일 | ZSU-57-2, M53/59, BOV-3/30, 9K31 스트렐라-1, 9K35 스트렐라-10M, RL-2 프락카M | |
다연장로켓 | M-63 Plamen, M-77 Oganj, M-87 Orkan | |
※ 윗첨자C : 노획 차량 ※ 윗첨자M : 개조 차량 ※ |
냉전기의 체코슬로바키아 인민군(1954~1990) 기갑차량 | ||
기타 전차 | T-34, IS-2 | |
MBT | 1세대 | T-54(A/AM/AR Reika), T-55(A/AM1 · M1B/AM2 Dyna-1 · M2B/AMB) |
2세대 | T-62, T-72(M1/M1CZ · M2CZ)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OT-64(A/C), OT-65, BRDM-2 |
궤도장갑차 | OT-810, BPzV, OT-62(A/B/Vydra), BVP-1 · OT-90, BVP-2 | |
차량 | 소형 | 스코다 1101 VO, UAZ-469 |
트럭 | 타트라 148 · T-813 · T-815, 스코다 6L · RSO · 706, 프라가 V3S | |
자주포 | SU-100, ISU-152, ShKH vz.77 Dana, 2S1, 2S7 파이온 | |
자주대공포 / 단거리 대공 미사일 | Vz.53/59 PLDvK, STROP-(1/2), PLRK S-1M2, PLRK S-10M, 9K33(M2/M3) 오사 | |
다연장로켓 | BM-24, RM-70 | |
※ 이텔릭체 : 외산차량 |
한국전의 북한군 및 공산군 기갑차량 | ||
전차 | 중형전차 | T-34/76, T-34/85 |
중전차 | IS-2 | |
장갑차 | BA-64, BA-3/6 | |
자주포 | SU-76, SU-85, SU-100 | |
다연장로켓 | 카츄샤 다연장로켓 | |
차량 | GAZ-64, GAZ-AA(AAA), ZiS-5, ZiS-6 | |
모터사이클 | M-72 | |
노획 병기 | M5A1 스튜어트, M4A2 셔먼, A27M 크롬웰, 95식 경전차 하고, 97식 전차 치하 |
베트남전기의 베트남 인민군(월맹군) 기갑장비 | ||
전차 | 경전차 | PT-76, 62식 전차 |
중형전차 | T-34/85 | |
MBT | T-54, T-55, 59식 전차 | |
APC | BTR-60, BTR-50, BMP-1, 63식 장갑차 | |
자주대공포 | ZSU-57-2, ZSU-23-4 쉴카 | |
기타 | SU-100, IS-2 |
현대의 중국 인민해방군 기갑차량 | |||||||||||||||||||||||||||||||||||||||||||||||||||||||||||||||||||||||||||||||||||||||||||||||||||
MBT | 1세대 | 59식 전차 | |||||||||||||||||||||||||||||||||||||||||||||||||||||||||||||||||||||||||||||||||||||||||||||||||
2세대 | 69식R · 79식 전차, 80식R · 85식R · 88식 전차, 96식 전차 | ||||||||||||||||||||||||||||||||||||||||||||||||||||||||||||||||||||||||||||||||||||||||||||||||||
3세대 | 90식 전차, 99식 전차 | ||||||||||||||||||||||||||||||||||||||||||||||||||||||||||||||||||||||||||||||||||||||||||||||||||
경전차 | 62식 전차R, 63식 전차 | ||||||||||||||||||||||||||||||||||||||||||||||||||||||||||||||||||||||||||||||||||||||||||||||||||
장갑차 | 63식 장갑차, 77식 장갑차, 89식 장갑차, 90/92식 장갑차, WZ-523, 04식 보병전투차, 09식 장갑차, ZBD-2000 | ||||||||||||||||||||||||||||||||||||||||||||||||||||||||||||||||||||||||||||||||||||||||||||||||||
자주포 | SU-100R, ISU-152R, PLZ-05 자주포, 83식 자주포, 07B식 122mm 자주포, ZBD09(09식) 8X8 차륜식 122mm 자주포, 89식 122mm 자주포 | ||||||||||||||||||||||||||||||||||||||||||||||||||||||||||||||||||||||||||||||||||||||||||||||||||
다연장로켓 | PHL03, WS-1/2, 83식 다연장로켓, 63식 다연장로켓, 81/89/90/식 다연장로켓 | ||||||||||||||||||||||||||||||||||||||||||||||||||||||||||||||||||||||||||||||||||||||||||||||||||
기타 | IS-2R, 58식R, | ||||||||||||||||||||||||||||||||||||||||||||||||||||||||||||||||||||||||||||||||||||||||||||||||||
※ 윗첨자R : 퇴역 차량 ※ |
현대의 폴란드군 기갑차량 | ||
기타전차 | T-34/85M1R, IS-2R | |
MBT | 1세대 | T-55(A/L/AM1 · M2) MéridaM/R |
2세대 | T-72A | |
3세대 | T-72(M/M1 · 1D) Jaguar, PT-91(MA/MA1) TwardyM, 레오파르트2(A4/A5) | |
3.5세대 | (레오파르트2 PL) | |
경전차 | PT-76BR, PL-01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KTO Rosomak, BRDM-2, SKOT-(1A/2A · AP), BTR-40R |
궤도장갑차 | TOPASR, BWP-1(C/D), BWP-2(D)R, MT-LB | |
차량 | 소형 | Skorpion-3, Tarpan Honker, Tumak, 디펜더, 벤츠 GD 290/250, UAZ-469B(WD-43) |
트럭 | 벤츠1017A · 우니모크 1300L, ZiL-131 · 157, 이베코 스트라리스 · 트래커 · 유로카고 · MP720 시리즈 · M40.12WM, Star 200 · 244 · 266(M) · 660(M) · 944K ·1466ML · 1444, Jelcz P/S662D · P662D · P642D · C642D · C662D · P/S862D · P/S842D 타트라 T-815, KrAZ-255B, Ural-375D · 4320, GAZ-66 | |
자주포 | SU-100R, ISU-152R, 2S7 PiwoniaR, 2S1(M/T) Goździk, wz. 1977 DANA-T, (AHS Krab), (AHS Kryl) | |
자주대공포/ 대공미사일 | ZSU-23-4MP BiałaM, (PZA Loara-(A/NG)), 9K31 Strzała-1R 9K35 Strzała-10MR, ZRK-SD Romb(9K33M2)R · 9K33BM3 ŻądłoM | |
다연장로켓 | BM-24R, BM-21R, WR-40 LangustaM, RM-70/85, (WR-300) | |
※ 윗첨자R : 퇴역 차량 ※ 윗첨자M : 개조 차량 ※ (괄호) : 도입 예정 차량 |
현대의 조선인민군 기갑차량 | ||
기타전차 | T-34-76/85WPRG | |
MBT | 1세대 | T-54, T-55, 59식 |
2세대 | T-62, 천마호M | |
2.5세대 | 폭풍호, 선군호 | |
경전차 | PT-76, PT-85M, 62식 전차, 63식 전차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BTR-152, BTR-60PB, BTR-80A/Y, BRDM-2, M-1992 WAPC, M-2010 WAPC |
궤도장갑차 | BTR-50P/PK, 63식, BMP-1, VTT-323, M-2010 준마 | |
차량 | 소형 | GAZ Vodnik, GAZ-69, UAZ-469, BZ-2020SJ, 갱생-68/85 |
트럭 | ZiL-130 · 131 · 135 · 151 · 157, MAZ-7310, Ural-4320, 로만, 승리-58/61WPRG | |
자주포 | 자주대전차포 | SU-76WPRG, SU-100WPRG, M-1974 85mm, M-1972 100mm |
자주곡사포 | M1978 · 1989 곡산, M1977 100mm, M1992 122mm, M-1975 · 1981 · 1991 122mm, M-1977 · 1992 130mm, M-1974 152mm | |
자주 대공포/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 ZSU-57-2, ZSU-23-4 쉴카, M-1985 37/57mm, M-1992 30mm, 번개-3 | |
다연장로켓 | 63식, M1977 107/122mm, M-1977 · M1985 · M1993 122mm, BM-11, BMD-20, BM-24, M-1989 · 1991, KN-09 | |
※ 윗첨자M : 개조 차량 ※ 윗첨자WPRG : 준군사조직인 로농적위군 (Worker-Peasant Red Guard)에서 사용하는 차량들 |
현대의 이집트군 기갑차량 | ||
MBT | 1세대 | T-55, 람세스 II |
2세대 | 마크 III, M60A1, M60A3 | |
3세대 | T-80(U/UK), M1A1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OT-64C, BRDM-2, BTR-60PB, BTR-152K, BTR-40, SPW-40Chs, BMR-600, Tiger Kader-120 |
궤도장갑차 | M113, BMP-1, BTR-50, BTR-50PKM, BTR-50PK, EIFV, YPR-765 PRI | |
자주포 | SU-100, ISU-152, M109A5, M102A2, SPH 122, M110A2 | |
다연장로켓 | BM-21, BM-24, 구룡, RM-51, 63식 다연장로켓, VAP-80, M270 MLRS | |
기타 | IS-3, T-34-85, T-34-100(자주포 개수형), T-34-122(자주포 개수형) | |
현대의 시리아군 기갑차량 | ||
기타전차 | PT-76, T-34/85, T-40/75 | |
MBT | 1세대 | T-55(MV/AM/AMV) |
2세대 | T-62M/K, T-72(A/AV) | |
3세대 | T-72(M/TURMS-T/M1 TURMS-T/B/BM) | |
3.5세대 | T-90(A) | |
장갑차 | 장륜장갑차 | OT-64 SKOT, BRDM-2, BTR-60PB/PU-12, BTR-152, BTR-40 |
궤도장갑차 | BMP-1, BMP-2, BTR-50 | |
자주포 | SU-75, 4호 구축전차*, SU-100, T-34(D-30),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시아 | |
자주대공포 / 대공미사일 | ZSU-23-4 쉴카, ZSU-57-2, 9K33 오사 | |
다연장로켓 | BM-14, BM-24, BM-21 그레드, BM-27, BM-30 스메르치, 63식 다연장로켓, 카이바, 파자르-3, 파자르-5, Ra'ad, 팔라크-2 | |
* 예비물자 |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 (1914~1945) | 냉전기 (1945~1991) | 현대전 (1991~) |
- ↑ 서방식 세대구분법과는 다르다.
- ↑ 떼-뜨리 치띄리
- ↑ 사실 A-43은 T-34 초기형에서 단점으로 거론되었던 2인용 포탑 대신 3인용 포탑을 사용하고 여러가지 설계상의 문제점을 고칠 목적으로 개발되던 것이라 완전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Zaloga, S., Sarson, P., T-34/76 Medium Tank 1941-1945, 1997, 13) 개발이 T-34의 생산과 같이 진행되어 방해를 주지 않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쿨리크 장군 본인의 사사로운 호불호 때문에 T-34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키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
- ↑ 2인용 포탑이기 때문에 포수다.
- ↑ 포방패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 ↑ 무전과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 ↑ ZiS-2 대전차포를 전차포로 개조한 것이다.
- ↑ DP-28 경기관총을 1929년에 기갑차량용으로 개선한 것이다.
- ↑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과 포탑 장전수석에 각각 1정씩 있다.
- ↑ 3,087발까지도 적제되었다는 소리가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 ↑ T-34-57은 단 50대만 생산되어졌다. 1943년형 프로토타입까지 포함하면 51대
- ↑ 어느 정도냐 하면 BR-271P 포탄 기준으로 100m 거리의 관통력이 88mm 전차포와 맞먹는다.
- ↑ T-34/57 의 주포는 원래 대전차전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ZiS-2 대전차포였기 때문. 기술이 모자랐던 2차 대전 당시에는 일반적인 고폭탄을 탄속이 빠른 장포신 포에 넣고 쏘면 포탄이 포신 안에서 자폭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단포신 곡사포를 쓰거나 포탄의 벽을 두껍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포탄 벽의 두께를 늘리면 그만큼 들어가는 작약의 양은 줄어들어 위력도 감소한다. 영국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겪어서 2파운더용 고폭탄은 포 자체가 도태되기 전까지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고 6파운더와 17파운더용 고폭탄 역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 ↑ L-11 전차포를 장착한 초기형으로 쿨리크 원수의 방해공작 때문에 1940년에는 117대만 생산되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 F-34 전차포를 장착한 사양으로 1941~42년에 생산되었다.
- ↑ 1942~1943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포탑이 육각형으로 변경된 후 방어력이 올라가고 내부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 ↑ 이란 방면을 통한 랜드리스는 42년이 되어야 운영되기 시작하며 랜드리스의 혜택은 이미 소련이 우세해진 43년이 되어서야 재대로 누리게 된다. 그리고 43년이면 이미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막 끝나고 독일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 ↑ 철갑탄을 아예 지급받지 못해서 대전차전에서 별 소용이 없는 고폭탄만 쏘거나, 심하면 포탄이 아예 없어 동축 기관총만 쏘다가 산화되기 일쑤였다. 이 역시 쿨리크가 포탄 생산을 방해해서 벌어진 사태이다.
- ↑ Zaloga, 10-11
- ↑ 당시 소련 육군 전차 승무원들이 스펙상으론 T-34보다 못한 영국이나 미국제 전차를 좋아했다는건 이러한 경향이 크다. T-34보다 기계적 신뢰성이 훨씬 뛰어나 운용하기 편했고 상대적으로 뒤떨어져보이는 장갑방어력이나 화력등은 본가인 영국 육군이나 미 육군에겐 불만이었지만 해당전차의 기대치가 그 전차의 체급에 맞는 수준이었던 소련 육군 입장에선 그리 큰 불만요소가 되지 못했다. 사실 일선 장병들은 T-34가 한 방 맞고 터져나가는걸 보고 매우 불만을 표했으나, 알다시피 숙청의 위협 때문에 찍소리도 못했다. 영/미군에겐 셔먼전차가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에게 털려나가는게 큰 문제가 되지만 소련 육군 입장에선 셔먼이 판터나 티거를 상대못하는게 당연한 거라서 판터나 티거에겐 일단은 더 크고 자체 실험상(...) 더 강한 85mm포가 달린 T-34들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소련도 독일처럼 중전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의 중전차는 독일의 중전차와 다르게 대전차전 용도보다는 전선 돌파나 보병 지원용으로 목적이 더 크며 교리상 대전차전은 T-34와 SU-85/100이 우선시되어 투입되었고 IS-2와 ISU-152는 필요하다면 대전차전에 투입되는 정도였다.
- ↑ 500대 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의 방해 공작으로 프로토타입을 포함한 117대만 생산되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 초기엔 무전기가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이라 불릴 정도로 차체 전방기총을 발사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보통은 뻑뻑한 5단 변속기를 조중수와 함께 변경하거나 전차장에 조수 역할을 했다.
- ↑ 독소전쟁 초기에 대다수가 투입되어 소모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운용기간을 알 수 없다.
- ↑ 소련에서 생산한 기간이다.
- ↑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면허 생산한 기간이다.
- ↑ 유고슬라비아에서 면허 생산한 기간이다.
- ↑ 소련에서 25,000여 대 정도가 생산되고, 나머지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에서 면허 생산된 것을 포함한 것이다.
- ↑ 단 이것은 소련의 운용기간으로 현재도 여러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M4 셔먼과 함께 현역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 ↑ 현재도 예비용으로 T-34/76과 함께 운용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군 병사들을 T-34/76 위에 태운 채로 운용하는 영상이 찍혔다.
- ↑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후면장갑은 40mm 혹은 45mm였다.
- ↑ 3인용 포탑이기 때문에 더 이상 포수의 역할을 병행하지는 않지만, 포수 또는 장전수가 전투 불능 시에 포수 또는 장전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 ↑ 포방패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 ↑ 무전과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 ↑ 1943년 초부터 1944년 3월까지 생산된 전차에 장착되었다.
- ↑ 1944년 3월부터 1951년초까지(소련에서 생산 종료된 시기) 생산된 전차에 장착되었다.
- ↑ DP-28 경기관총을 1929년에 기갑차량용으로 개선한 것이다.
- ↑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과 포탑 장전수석에 각각 1정씩 있다.
- ↑ 3,087발까지도 적제한다는 소리가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 ↑ 실제로 85mm의 APCR 관통력은 175mm 내외였고, Pak 40의 APCR 관통력은 180mm 수준이었다.
- ↑ 1920~2010. 1939년에 대학을 마치고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40년 장교로 징집되었다(당시 소련도 임박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을 확장하고 있었으나, 장교부족 사태 때문에 대학생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에게 속성교육을 시키고 학사장교로 임관시켰다. 전쟁이 터진 후에는 아예 조금이라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조리 장교로 임관시켜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맡겼지만, 이렇게 군사훈련을 전혀 안받은 전술적 무학자들이 소대나 중대를 지휘하다가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이들도 짬밥이 생기면서 베테랑이 되고 소련군의 전력은 급상승한다). 기갑병과로 배치된 그는 1941년에 독소전쟁이 터지자 T-26을 몰다가 이후 T-34/76을 거쳐 T-34/85를 몰게 된다. 1942년 큰 부상을 당해 후방으로 이송된 그는 회복되자 기갑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시인 8월 12일 그는 독일군 티거2 전차 3대를 격파하고 1대를 나포해서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서 중령까지 올랐고, 1971년 퇴역후 전차설계에 종사했다.
- ↑ 게다가 이 경우 소련이 공격, 독일이 방어하는 입장이며 방어자가 더 유리한데도 대등한 손실비를 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만큼 소련군의 기갑부대가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 ↑ 단, 1:1 설은 과장의 여지가 존재한다. 독일군의 병력 가용규모는 글랜츠, 오렌스타인 저서에 따르면 전차와 돌격포를 다 합쳐도 1330여대 규모 정도이나, 당시 소련군이 동원한 전차의 규모는 글랜츠와 하우스 저서에서는 5,818대, 프레이저 저서에서도 대략 4,000여대 수준이며, 당시 소련군 전차+돌격포 손실량은 크리보쉐프 저서(Soviet Casualties and Combat Losses in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Greenhill Books. ISBN 1-85367-280-7.)에 따르면 2,957대. 당시 참전한 독일군 전차가 전부 터졌다고 쳐도 교환비는 애초에 1:1이 될 수 없다.
- ↑ 독일의 쉬르첸처럼 만들어질 때부터 있는게 아니라 현지에서 임기응변으로 농가의 닭장 등을 뜯어서 개조한 것이다.
- ↑ 참고로 첫번째 사진의 전차문양인 K230은 월드 오브 탱크에도 구현되어있다. 워 썬더에는 저 사진 그대로 모델링된 K230 골탱이 있다.
- ↑ 이 사진의 전차병의 군장의 변화에 주목할만하다. 원래 소련군 전차병은 헬멧을 제외한 피복이 보병과 다를바 없었으나(그래도 추가로 정비병 마냥 검정색 커버롤(coverall)이 지급되기는 했었다), 소련이 승기를 잡아가고 군복이 대폭으로 개편되면서 전차병은 흑색 가죽제복을 지급받는다.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소련군도 전차병은 엘리트병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독일군처럼 보병과 차별화된 제복을 입게 된것이다.
- ↑ 사실 이 유명한 자막은 오역이다. 실제로는 해당 발언의 원문은 "T-34 is an ugly tank, but the T-34 is an easy tank to make. The Soviet Union is frightening Hitler, they started make T-34s, and they just make a lot of them(T-34는 아름답진 않지만 생산성은 좋았습니다. 소련은 T-34를 생산하게 되면서 T-34를 단지 많이 뽑아내는 것만으로도 히틀러를 두렵게 하였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된 적이 있는 Top Ten-Tanks 편에서 언급된 말이다. 원래 just가 나타내는 뜻은 번역문의 볼드처리된 부분으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와는 전혀 다른뜻의 문장이다. 실제발언의 앞뒤 다잘라낸 것도 모자라 해당 문장 마저 오역한 사례지만 해당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 자막이 T-34의 미칠듯한 생산력과 묘하게 잘 어울려서 국내 네티즌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 ↑ 실제로 41년 소련의 전차 손실은 약 2만대인데 42년까지 2만 5천대를 생산해서 버텼다.
- ↑ 이 상황에서 소련은 랜드리스로 받은 셔먼을 T-34 대신 전방 주요 부대들에 투입했고 이 셔먼들은 동부전선 버전의 론슨 라이터를 쓰게된다. 그리고 셔먼을 받았던 이 부대들은 곧 T-34/85로 다시 교체된다.
- ↑ 가장 큰 이유다. 독소전은 물론 양측의 병력 손실 규모도 어마어마한 전쟁이었으나 그 막대한 병력손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저 슬라브인 민간인들을 더 저렴하고 간단하게 더 잘, 더 많이 죽일 수 있을까에 대해 엄청나게 연구하던 나치 정부의 적극적이고 계획적이며 체계적인 슬라브 민간인 학살로 인한 피해가 더 심각했다.
- ↑ 독소전쟁중의 인원수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보병계열은 무식하게 가르쳐줘도 수만이든 수백만이든 보병으로 징집이 가능한데 비해, 전차를 운용해야할 전차병을 보병 가르치듯 가르쳐주고 투입하면 팀킬은 물론 각종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안봐도 뻔한 경우가 많다. 근데 T-34는 배우기가 몹시 쉽다.
- ↑ 저 T-34는 독일군이 노획하다 방기된 전차다. 3컷에서 철십자가 보이며 결정적으로 전차장 큐폴라가 독일제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
- ↑ 전임 대대장에 대한 불만으로 보복을 하려다 실수로 막 전입온 신임 대대장 일가족을 도끼로 참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형수 고재봉이 죽기 전에 기독교에 귀의하게 만든 종교인이 개전 당시 M8 장갑차 승무원으로 참전하여 37mm 포로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를 파괴하였으나 결국 피탄되어 부상을 당한 분이다.
- ↑ 위 내용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T-34/85가 개발된 이후 76mm 장착형은 생산이 중지되고 이미 있는 재고들은 전선에서 소모되면 상태에 따라서 그대로 폐기하거나 쓸만한 부품을 몽땅 떼내어 유용한 다음 폐기하곤 했기 때문에 1945년 종전 시점에서 76mm 장착형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T-54가 47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하여 1950년에는 두가지 형식을 합하여 2천여대가 뽑혀나온 상황임에 반해 T-54의 화염방사 차량인 Object 481(OT-54 또는 TO-54)은 55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했으며 주포를 완전히 화염방사무기로 변경한 완전한 화염방사전차인 Object 483은 당연히 취소되었고 T-55사양의 화염방사 전차인 TO-55, Object 482는 60년 또는 61년에 양산하기 시작하여 10대 정도가 생산되었다. 전부 합쳐서 100대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전체 T-54계열 생산량에 비하면 한줌 수준이며 한국전 당시에는 양산되지 않아서 의미도 없다.
- ↑ 2002년에 탈북한 탈북자 백요셉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도 T-34를 전방에서 굴린다고 한다.
- ↑ T-34/76 Obr. 1943 후기형 버전
- ↑ 현재 헝가리는 자본주의화 친서방 우경화가 된지 오래되었는데, 2006년 시위대는 이에 불만을 가진 좌익 성향 시위대였다고 한다. 아마도 좌익 친 구소련 성향 때문에 구 소련군의 유물인 T-34를 시위에 끌어내려고 한것으로 보인다.
- ↑ 대전 중반부터 불거진 치명적인 문제로 사실상 독일 기갑부대가 거덜난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손꼽힌다. 티거나 판터나 기동계통이 약해 장거리를 이동할 때엔 반드시 철도수송을 해야 했는데 갈수록 악화되는 전장 상황에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고 결국 이런 중전차들은 퇴각하는 아군을 따라 같이 가지 못하고 뒤에 남겨져 소련군의 진격을 최대한 막는 데 사용되었고 그것으로 끝났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고 7월 한 달 동안에만 티거가 무려 130여대가 손실되었고 이것이 티거 전투단의 마지막이 되었다.
- ↑ 독소전 초기가 지나면 소련군 전차생산 라인은 그냥 T-34 생산에 몰빵되었으며 일부 라인에서 중전차 한 시리즈를 뽑는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중전차는 효율이 구리다고 완전히 퇴출될 뻔 하기도 했다. 나머지 중기갑병기는 자주포들 뿐이며 이 자주포들도 체급과 주포차이만 있을 뿐 가장 늦게 만들어지고 체급에 비해 양산된 숫자도 적은 SU-85와 SU-100을 제외하면 여러 목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용도 만능형 자주포들이었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크게 받지 못한 나치와 비교했을때 소련의 산업시스템은 애초부터 압도적으로 물량을 쏟아내기 좋은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였다.
- ↑ 참고로 T-34의 대량 생산 경험이 나중에 T-54/55의 기계적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유용한 피드백이 되었다.
- ↑ 물론 대전차전에서도 티거1 1대가 T-34/85 4~5대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양쪽 모두 한방만 제대로 맞으면 끝장인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 ↑ 심지어는 대전차전을 상정하고 운용된 미국의 대전차 자주포들도 고폭탄을 철갑탄 만큼 넣고 다녔고 소련의 엄청난 전차물량을 소수의 전차로 방어해야하는 나치의 전차들도 AP와 HE의 비율이 5:5수준이었으며 상대할 전차의 숫자가 적은 소련은 대전 후기에도 전차에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더 많이 싣고 다녔다. -출처:월탱붕미 공홈-얼망겜의 20가지 구라
- ↑ 물론 전차운전이 트랙터보다 어렵긴 하지만, 적어도 무에서 양성하는 것보단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 ↑ 왼쪽이 전차장 겸 포수 자리,오른쪽은 탄약수 겸 동축기관총 사수.
- ↑ 소련 전차의 1인 2역의 역할은 PT-76에서 드디어 끝난다.
- ↑ 자이스는 지금도 광학장비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 ↑ 영화 서부전선 예고편의 한 장면. 참고로 해당 영화에서는 T-34 내부 모습을 판터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크게 묘사했다.(승무원들이 정좌세로 앉아있고, 안에서 일어서기까지 한다.)
- ↑ 제대로 된 전면전에선 생각외로 큰 약점이 아닌데, 해치만 노리고 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후기형의 경우 해치의 두께가 전면 장갑보다 더욱 두껍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해치를 여는걸 돕기 위해 전용 스프링 장치가 달려있어서 해치를 열 때는 스프링의 힘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전면 장갑에 저렇게 큰 구멍을 뚫을 경우 전면 장갑의 강성과 내구성이 전체적으로 약해지고, 당연히 전차의 전체적인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후기형 전차인 IS-3와 T-44에서 전면 해치를 없앤 결정적인 이유이다.
- ↑ 영화 서부전선 초반부에서도 이 점이 잘 표현되었다. 조종수가 기어(동력방망이)가 뻑뻑해 들어가지 않자 망치로 패댔는데 결국 기어가 부서졌다.
- ↑ 그래서 월탱에서 연재되던 웹툰인 붉은 마녀에서 동양인 병사들이 승무원으로 나오며, 영화 화이트 타이거: 최강전차군단에서도 T-34의 탄약수로 동양계 병사가 등장한다.
- ↑ 미국도 B-29 정비할때 저렇게 했는데 미국은 아예 비행시간 75시간마다 모든 엔진 교체로 고장을 해결했다.
- ↑ 소련이 미국에 운반을 위해 유조식 여과기에 오일을 제거한 것을 미국인들이 건식 여과기로 착각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기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험 평가 때는 실물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및 제원표도 같이 보내어서 평가받도록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신빙성이 낮다. 6.25 전쟁 당시 노획한 T-34/85를 미국이 애버딘에서 재평가한 테스트에서도 앞선 테스트에 비해서 나아진게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차량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 ↑ 참고로 스튜어트는 전차 자체와 내부부품의 신뢰성과 속도를 제외하면 T-34에게 밀리는 형편이며, 발렌타인 또한 장갑과 내부부품의 신뢰성을 제외하면 T-34에게 밀리는 형편이다. 독소전 후기에 가게되면 화력과 장갑이 부실한 스튜어트는 인기가 떨어지게 되지만, 장갑만큼은 T-34보다 두껍다고 할 수 있는 발렌타인의 경우 셔먼 못지 않게 전쟁 후반까지도 소련 전차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전차병의 선호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같은 전차는 T-34/85에 비해서 화력이나 기동성이 떨어지므로 지휘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차병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든 잘 고장이 안나면서도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 ↑ 중기형인 T-34/76까지 이랬고 T-34/85부터는 관측장비를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기총사수는 손가락만한 기관총 조준구밖에 관측장비가 없었다.
- ↑ KV-1 한대가 8.8cm 대공포까지 동원한 독일군의 공격에도 며칠간 버틴 사례가 있다. 이것이 독일에게 4호 전차의 후속 차 설계 사상을 확립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
- ↑ Big Wind. 포탑을 제거하고 MiG-21의 엔진 2개를 장착해서 대량의 물과 진화용 약품을 쏟아낸다.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의 유전에 불을 지르고 튀었을 때 투입되었다.
- ↑ 하지만 이 수치는 독소전쟁 발발 전 방해가 있기는 하였지만 정상적인 여건 하에서 생산되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전쟁 발발 후 전선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자 산업시설을 우랄산맥 근처로 옮기기 전이었으니 말이다. 후대에 성공적으로 옮겼다는 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전시 중이라는 것을 감안한 평이다. 실제로는 100퍼센트 다 옮기기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거나 다름없는 일이었고 실제로도 많은 시설물이 손실되었거나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으며, 옮겼다 해도 전기 같은 기본적인 시설 하나 제대로 없는 허허벌판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힘들었다. 렌드리스 항목을 보면 잘 나와있지만, 당시 미국은 소련에게 식량부터 시작해 군복, 석유, 경금속 등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품목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덤으로 무기까지 충분히 보내주었다. 렌드리스가 없었다면 T-34 단독생산량은 만 단위는 기록하더라도 9만대라는 수치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으며, 생산되어 나오는 제품들 품질도 안 그래도 안습인 품질이 더 수직낙하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최근의 전시무기생산량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무기의 생산량은 제품생산과정의 복잡성보다 그 나라의 산업총생산량 및 역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렌드리스는 소련의 생산역량이 중공업쪽으로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안정된 기반을 제공해주었으므로 렌드리스가 없었다면 변수가 많아져 T-34 또한 지금같은 평가를 못 얻었을 확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 ↑ 전시의 전차생산은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의 효율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알려진 자동차 산업보다도 훨신 규모의 경제가 잘 먹히는 분야다. 반대로 나치 독일은 잦은 형식 변경이 있었으며 용도가 상당히 겹치는 다양한 종류의 병기들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압도적으로 떨어지는 생산성을 선보이게 된다. 똑같이 100의 공업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1년에 한번씩 개선사항이 적용되는 단일 모델을 뽑으면 규모의 경제로 150만큼 뽑겠지만 몇달에 한번씩 있는 잦은 개량과 함께 여러 모델을 동시에 뽑으면 같은 공업력으로도 생산량이 총 50도 나오기 힘들며 소련과 나치의 생산 시스템을 비교하면 딱 이러하다고 볼 수 있다.
- ↑ 문제의 고증오류라고 까였던 그 전차 맞다. 허나 위에 써있듯이 현대 매체에서 북한이 76mm형을 쓴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 ↑ 게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왔을때 자세히 보면 열쇠고리의 고리까지 통째로 커져서 전차에 달려있다.
- ↑ 팬저는 Panzer 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뜻은 전차. 끝(...).
- ↑ 국군이 사용하는 M48A3등 개량형들은 같은 M41포라도 사정거리가 약간 더 길고 관통력도 85mm보다 1 높은 9다.
- ↑ 당연히 이 전차들은 최대 사정거리가 T-34보다 길기 때문에 T-34와 동일한 1575m에서는 1~2정도의 추가 관통력을 갖게 되어 T-34보다 실질 관통력은 더 높다.
- ↑ 고증대로 차체는 후기형인 T-34/85까지 거의 변화가 없지만 포탑 장갑은 두꺼워진다.
- ↑ 물론 골탄을 쏘기 시작하면 7티어도 못뚫을게 없고 정신나간 DPM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의외로 할만하긴 하다. 어차피 105mm 곡사포 쓰는 다른 5티어 중형도 고티어에 의미있는 데미지를 주진 못한다.
- ↑ 다만 Type T-34나 Type 58이나 소련제랑 모양과 스펙은 똑같은데 다만 한가지, 대륙의 기상 때문인지 소련제 원조와는 달리 포를 숙이지 못한다. 중국 특유의 종특인 부각이 극악이라 소련제보다 언덕전에서 다소 불리하다 할 수 있다.
- ↑ [2]
- ↑ 사실은 30년을 훌쩍 넘은 구제품의 재판이지만, 키트의 퀄리티 자체는 최초 발매 시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훌륭하다.
- ↑ 타미야의 XF-61 다크 그린은 냉전시기 영국군 차량에 맞는 짙은 녹색이고, 자사 컬러 기준으로 올리브 드랍(XF-62)보다는 올리브 그린(XF-58)이 낫다. XF-62는 1940년대 미군 전차에 사용된 갈색 기운 짙은 녹색이며, XF-58은 1943년 이후부터 사용된 황색기가 도는 짙은 녹색(모형계에서는 그 이전에 쓰던 밝은 녹색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전자를 러시안그린1, 후자를 러시안그린2라고 부른다)과 색감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체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