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용(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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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珍鎔
1920년 11월 1일 ~ 1991년 2월 16일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종교불교이다. 호는 비촌(飛村)이다. 본관은 전주로, 인조의 아버지 추존왕 원종의 아들 능원대군의 후손이다.[1]

1920년 경기도 양주군(현 남양주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고정훈 등과 한국 광복군에 몸담았다.

8.15 광복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육군본부 정병감(대령)이던 1956년 특무부대 김창룡 중장 암살 사건과 관련되어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었다.

5.16 군사정변 후인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복권되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그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강승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강승구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3선 개헌안 추진에 처음에는 김종필계로서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에 탈락하여 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윤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여 무소속으로 경기도 의정부시-양주군-파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박명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무소속의원회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박명근 후보와 신민당 김형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3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경기도 남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성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이에 합류하여 민주자유당 정책평가위원을 역임하였다.
  1. 즉,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전군의 양손자로 갔다가 파양당한 경평군 이세보와 전설적 연극배우 이해랑과 같은 파이며 넓게 보면 대한제국 순종황제영선군 이준용, 그리고 대림산업 前 회장 이준용, 前 내무부 장관 이순용과 같은 항렬이다. 본래 이들은 다 파가 다르지만 덕흥대원군의 자손들로 서로 가까운 집안으로 여겨 양자결연도 많이 맺었고 1868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덕흥대원군의 후손들은 모두 항렬을 통일시키켜 유대감이 더욱 끈끈해졌기 때문에 여기서 파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