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겸하는 보편 군주
아랍어로 할리파(خليفة, Khalīfah), 터키어로는 할리페(Halife), 영어권에서는 칼리프(Caliph)로 통칭된다. 예전에는 회교황제, 회교교황, 회황(回皇), 교주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표현은 칼리프이다. 'ㅋ' 부분은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인 무성 구개수 마찰음으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ㅎ'로 표기하기 때문에 한글 표기는 '할리파'가 맞다. 그러나 역사 용어로는 '칼리파'라는 표기가 굳어졌기 때문에 할리파라는 표기는 "부르즈 할리파"나 "셰이흐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카타르의 아미르)처럼 현대 이름에서나 쓰인다.
본래는 대리자 또는 계승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 풀어서 쓰면 할리파트 라술 알라(خليفة رسول الله), 신의 사도의 계승자를 말한다. 아미르 알 무미닌(أمير المؤمنين, 신자들의 사령관), 이맘 알 움마(إمام الامة) 등등의 별칭도 자주 쓰였다.
물론 맘루크 왕조와 같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시절도 있었지만, 전근대 기독교의 교황과 마찬가지로 종교뿐 아니라 정치까지 맡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1]. 그런데 사실 세계사에서 제정일치의 군주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 일본의 덴노가 그러했고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단군, 궁예 등 제정일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칼리파의 경우 동시대의 다른 제정일치 군주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흔히 칼리파와 비교되는 가톨릭의 교황같은 경우, 교황령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통치자였고, 가톨릭 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팽팽한 대결을 벌이기도 하였지만 교황의 경우 명목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모든 가톨릭 교권의 정치적 통치자는 아니었다. 설령 교황권의 전성기에 황제권에 대한 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했을지언정, 속계(정치)의 제 1인자는 황제였고, 교황은 종교계의 1인자로 그 영역이 명확히 갈려있었던 것. 이에 비해 칼리파는 원칙적으로는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였고,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에는 실질적으로도 이러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중세 가톨릭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칼리파의 위치는 교황이 아니라 교황+황제 정도에 해당한다.(교황이 교황령을 통치하는 세속 군주로써의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가톨릭 세계의 일부분에 대한 세속 군주의 측면도 가진 것을 종교 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명목상 이슬람권 전역의 최고 지배자로 여겨지던 칼리프의 권력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다른 제정일치 군주제와 비교할 경우... 사실 조직화된 종교에서 제정일치 체제, 그것도 교리적으로 공인된 제정일치 체제가 나타나는 사례 자체가 생각만큼 흔하지는 않다. 애초에 제정일치 체제가 제일 흔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성읍국가나 군장국가 수준의 초기 국가체제에서 사제나 제사장이 통치자를 겸하는 경우인데... 이건 사실 당시의 국가 단위(솔직히, 현대 기준으로는 그냥 동네 하나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할 정도로 작은 경우가 많다.)에서 제일 존경받고 똑똑한 웃어른인 제사장이 재판이나 분쟁조정 등의 세속적 정치 영역까지 담당하는 것이라, 세속적 권력이든 종교적 권위든 이후 시대의 국가나 종교만큼 체계화된 것이 아니었다.(위에 제시된 사례 중에는 대략 단군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궁예와 같은 사례를 본다면... 솔직히 불교 교리 어디에도 궁예를 미륵불로 인정하는 부분은 없다. 이건 말하자면 궁예가 일방적으로 미륵불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종교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통하여 권력을 강화한 사례이지, 공식적인 교리로 보장되는 제정일치 체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이슬람 세계에서야 '난 너 칼리파로 인정 안 해!' 라고 생깔지언정 칼리프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었던 데 비해, 궁예가 미륵불을 자처한다고 태봉 사람 말고 누가 그걸 인정해 줬겠는가.(...)
결국, 이슬람의 칼리파는 고도로 체계화 된 종교 및 정치체계의 제정일치 지배자로써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예인 것은 사실이다. 굳이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다면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정도가 아니면 비교하기 힘들다.
현대 이슬람주의자들의 목표 중 하나는 칼리파를 새로이 뽑는 것이다. 그들의 주 목표는 이슬람 세계의 단결이기 때문에 단결의 상징으로써 칼리파를 세우고 그 아래 단결하자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강고한 국민국가, 민족주의 체제 하에서는 거의 가망이 없는 소리다.[2]
1.1 칼리프의 계승(수니파)
1.1.1 정통 칼리프
처음에는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움마를 통치할 지도자를 지명하기 위해 '선출'되었다. (정통 칼리파 참조) 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가 암살되었다.
1.1.2 우마이야 - 압바스 칼리프
무아위야 1세가 칼리파 자리를 차지한 뒤, 세운 우마이야 왕조부터는 직위가 세습되기 시작했지만 선출의 관례는 계속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한 압바스 왕조 때부터 수니파는 무하마드의 일족 쿠라이쉬가에서 칼리프를 세습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었다. 시아파는 알리의 자손에게 칼리파의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했고 하와지리파는 사도의 혈통에 구애되지 않고 정통 칼리프 시대처럼 신앙의 독실함에 따라 선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다 중반부, 9세기 말 이후부터는 정치적 권력을 상실하고 명목화된다. 술탄이나 샤, 아미르들이 땅 차지하고 나면 확인 도장 찍어주는 역할. 이 때부터는 일본의 막부 시절 덴노와 마찬가지로 꼭두각시 신세. 셀주크 왕조가 붕괴한 뒤 잠시나마 권력을 되찾는 듯 보였으나 곧 몽골의 침입으로 압바스 왕조는 일단 멸망했다.(...)
1.1.3 카이로 압바스 칼리프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압바스조의 혈통 중에 어리버리한 놈 하나를 데려다가 칼리파랍시고 카이로에 모셔 놓는다.예토전생! 노예 왕조에서 정통성이 취약해 서로 죽고 죽이는 군벌간의 다툼이 많았던지라 정통성 강화 차원에서 얼굴마담이 하나 필요 했던것. 결국 그렇게 꼭두각시가 되서 조종 받고 살다가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후 오스만 술탄에게 칼리파 직위가 넘어갔다.
1.1.4 오스만 칼리프
오스만 제국은 칼리파 칭호를 정식으로 얻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사실 정식으로 양도받기 전에도 이미 자칭하고 있었다.) 그저 술탄의 수많은 칭호 중 하나 정도로 취급되었다. 다만 18세기 말부터 러시아와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내 정교회 신자와 가톨릭 신자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에 대항해 자국내 무슬림 밀레트의 대표자로써 칼리파라는 호칭을 재부각시켰고, 이를테면 러시아와 맺은 '퀴췩카이나르자(Küçük Kaynarca)조약'에서도 오스만측 국가원수를 '칼리파'로 칭하고있다. 이후 오스만 제국에서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고 있는 이슬람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의 칼리파를 그들의 대표자, 혹은 정신적 지주로 여기도록 외교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에서 보낸 밀사들은 인도, 중국같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이슬람지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때 밀사로 파견된 사람중에서 크림 출신의 압뒤르레시드 이브라힘(Abdürreşid İbrahim)은 중국에 거주하는 위구르를 비롯한 무슬림들에게 파견되는 와중에 조선과 일본을 들러 이 지역의 상황을 터키에 보고하기도 했다. 또한 칼리파를 오스만 제국이 계승하면서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도 한동안은 무슬림들이 메카를 순례할때, 고향을 떠나서 제일 먼저 칼리파가 살고 있는 이스탄불을 순례한 다음에 메카로 떠나는 풍습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자 칼리파)이였던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이 1922년 케말 파샤에 의해 퇴위당하면서 술탄제는 폐지되었지만, 칼리파 직위만은 사촌 압뒬메지트 2세가 이어받았다. 그러나 불과 1년 4개월 뒤인 1924년 봄 완전 폐지되어, 칼리파 직위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한때 메카 태수 후세인 빈 알리[3]가 칼리파를 칭하기도 했다)
1.2 병행 칼리프
1.2.1 파티마 칼리프
909~1171
시아파 이스마일 파에 속한다.
1.2.2 코르도바 칼리프
- 후우마이야 왕조(에미르 756 ~ 929, 칼리프 929 ~ 1031)
후우마이야 왕조는 당초 안달루스 지방의 에미르를 자칭했으나, 서기 900년대 초에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가 나타나서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확장해오자 이에 대항하여 자신들도 칼리프를 자칭하게 된다.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 다음으로 번영한 코르도바를 다스리고 초기 칼리프 우마이야 왕조의 후손인 자신들이, 갑툭튀한 파티마 왕조 따위도 칼리프 하는데 칼리프 못할게 뭐냐는 생각이었을지도. 아무튼 칼리프 칭호는 우마이야 왕조의 권위를 크게 높여주었다.
1.2.3 무와히드 왕조
1147–1269
얘들도 칼리프 칭호를 자칭했다.
1.3 현대의 칼리프
터키의 칼리파 폐지 이후로는 실권과 영토를 가진 정통파 칼리파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군소 교파나 이슬람계 이단 교파에서 칼리파를 자칭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양대 교파가 칼리파를 자칭하려면 아무래도 이슬람의 성지 세 곳(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의 수호자라는 실질적 지위가 붙어있어야겠으나, 현재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실효 점유하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 국가의 점유하에 있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정통파 칼리파가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1.3.1 수피 칼리파
1.3.2 아마디야 칼리파
1.3.3 다에쉬 칼리파
반면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에서 90여 년 만에 마침내 결국 칼리파를 부활시켰다. 다만 이슬람 국가의 칼리파는 여러곳에서 제대로 공인된 칼리파가 아니다. 즉, 자칭 칼리프 게다가 하는 짓도 그야말로 좋았던 옛날로 무작정 되돌리려다 망한 왕망급
1.4 칼리프 국
칼리파를 지도자로 삼았던 이슬람 국가(Caliphate, الخلفاء)들은 다음과 같다.[4]
왕조 명칭 | 연대 | 비고 |
정통 칼리파 시대 | 632~660 | 선출 칼리파 |
우마이야 왕조 | 660~750 | 최초의 세습 칼리파 |
아바스 왕조 | 750~1258 | 동서 이슬람 분열 |
후우마이야 왕조 | 756~1031 | 스페인에 위치. 929년부터 칼리파를 칭함 |
파티마 왕조 | 909~1171 | 이스마일파 왕조 |
카이로 아바스 왕조 | 1261~1517 | 오스만 제국 황제에게 선양. |
오스만 제국 | 1517~1924 | 터키공화국 종교부로 역할이 넘어감. 칼리파제 폐지. |
2 겁스 무한세계에 등장하는 평행계
칼리프(겁스 무한세계) 항목 참조.
3 원피스의 등장인물
칼리파(원피스) 항목 참조.
4 영화 및 음악 제목
La Califfa. 1970년 이탈리아 영화.
과부가 된 젊은 미망인 칼리파가 죽은 남편이 일하던 공장에 일하면서 거기 사장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영화보다도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은 음악이 더 유명하며 세라 브라이트먼이 노래로 불러서 국내 TV 광고배경음악으로도 나와 알려지기도 했다.- ↑ 교황도 근현대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황령 내에서는 국가원수였다
지금도 바티칸 시티의 국가 원수다. 게다가 잘 나갔을 무렵의 교황령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 대부분을 영유하는이탈리아 도시국가 기준으로대국이었다. - ↑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서방 국가들의 개입 능력 감소. 경제난과 독재의 결합으로 인해 폭발한 민심에 따른 중동 지역의 국가 막장 테크 진입. 여기에 본질적으로 세속주의보다는 종교주의에 가까운 이슬람 사회 특성상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 ↑ 하심 가의 당주로, 요르단의 압둘라 1세와 이라크의 파이살 1세의 아버지
- ↑ 빗금선 친 것은 역사에서 인정되지 않은
야매집단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