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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의 상징, 붉은 장미. 위 이미지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로고이다. |
社會民主主義 / Social democracy
목차
1 개요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확립한 사회주의 이념의 한 갈래. 무장봉기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표되던 마르크스식 공산주의의 폭력성을 반대하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 평등도 달성하자는 사상이다. 현대에 와선 중도좌파 이념 정도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2 상세
아동노동착취 등 무자비한 경쟁논리로 브레이크가 걸리던 19세기 중후반의 고전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오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의 평화적 달성을 표방하긴 했지만, 격동기였던 바이마르 시기에는 독일사민당도 나름대로 준군사조직을 갖추는 등 완벽하게 폭력을 지양한건 아니었다.
여담으로 부르주아를 배제하고 프롤레타리아 전정(專政)을 표방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단어이며 폭력혁명과 계급투쟁을 긍정한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폭력을 거부하며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관철시키려는 정치 노선을 추구한다. 참고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동의어다.
3 마르크스주의와의 차이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을 핵심 독트린으로 했다. 역사유물론[1]에 따라 역사발전의 기초가 생산활동이라고 보고 개개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역사는 생산활동의 단계에 따라 정해진 경로로 나아간다고 파악하였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하게 되면 그 스스로 모순이 쌓이고 쌓여 계급투쟁이 발생하여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자본의 수익률은 점점 낮아지고 불황이 발생하며 프롤레타리아의 수는 늘어나는 반면 그 생활 처지는 갈수록 열악해져 어느 순간 버틸 수 없는 때가 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다는 시나리오다.
이러한 사상에 따르면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는 자본주의의 성숙이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건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 혁명이 필요하고 초기 자본주의 사회라면 생산력의 발전이 우선 과제가 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다면 가장 발전한 산업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어쩌면 독일 정도에서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러시아 같은 경우엔 후진 농업국가였고 봉건주의조차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은 나중 일이고 먼저 제정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산업국가를 세우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레닌 같은 혁명가들은 그런 단계를 뛰어 넘어 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고자 하였는데 이런 흐름이 레닌주의나 모택동주의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종의 수정이었다. 이들은 선진화된 산업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제국주의를 통해 제3세계를 착취하기 때문에 모순의 폭발이 지연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한편 그와 다른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수정을 시도한 것이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주장한 개량주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였다.
정통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회이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혁명 밖에 답이 없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 예를 들면 노동조합운동을 통한 근로조건 개선 같은 시도들은 노동자들의 정치력을 높인다는 의미는 있어도 사회적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될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이런 개량적 시도들은 노동자들의 가중되는 처지에 대한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만 하며 자본주의의 붕괴를 지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혁명을 통한 체제의 전복이 아니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사회로 이전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와의 큰 차이였고 정치활동의 목표와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일이었다.
즉, 사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 독트린인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모두 부정한 사회주의의 이념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로부터 "개량주의자" 내지 "수정주의자"라는 혐오 섞인 조롱을 들어야 했다.[2]
4 사상의 흐름
사람에 따라서는 그 출발점부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명백히 구별하여 분류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중심이론은 물론 그 역사 및 발생계통에 있어서 사민주의가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한 갈래를 형성하여 진화해 온 이론이라는 것은 부정 못한다. 말하자면 애초에 사민주의의 등장 당시에는 "사민주의자"라는 용어 자체가 단지 "사회주의자"의 별칭에 불과했다.
애초에 "사회민주주의"라는 용어부터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빌헬름 립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이 창당한 "독일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SDAP)"에서 나왔고, 라살이 창당했던 전독일노동자협회가 (라살의 사후) SDAP의 립크네히트의 주도로 통합이 되면서 1875년, 오늘날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신이 되는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SAPD)"이 탄생하게 된다. 이 시점까지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오늘날 의미에서 사민주의의 분리가 시작되는데, 1876년 고타강령을 갖고 벌어진 마르크스(고타강령비판)와, 점진적 개량주의를 들고 나온 베른슈타인의 무한키배(...)가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현대에 와서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1959년의 고데스부르크 강령선언) 공식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와 결별을 고하면서 제도권 의회정치 내의 중도적 정당운동으로써 확실히 자리를 매김하게 된다. 즉, 하이델베르크 강령(1925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독일사회민주당은 "사유재산에 기반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소유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기본 목표로 제시하고 있었다.
베른슈타인이 들고 나온 개량주의는 폭력이 아닌 설득을 통해 체제를 개혁하자는 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와는 분명 거리를 두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보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하는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와 더 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는데, 특히 파시스트들이 활개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서로간의 관계는 앙숙지간이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즘이 집권하면 그들이 망한 이후 공산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사민주의자들을 '사회파시즘'(...)이라고 음해하는데 더 열중하였고, 반대로 사민주의자들은 독일에서 나치즘이 세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 오히려 그 기회를 틈타 공산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격멸하려 했다.나치부터 잡고 싸워 이것들아 왜냐면 애초에 이론 정립화와 결집과정이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한 사민주의자들과 마르크스 사이의 이론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가 곧 붕괴할 것으로 생각하였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자본주의 붕괴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던 사민주의자들의 대립이었다. 자신들의 생전에 예수가 재림할 것으로 생각하였던 초기 기독교도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5 현대의 사민주의 양상
5.1 유럽
오늘날의 양상은 형성 초기와는 양태가 현저히 달라서 생산수단의 국유화 대신 사유화를 중시하고 복지 개혁을 외치는 제3의 길[3]이 노동당(영국)과 민주당(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추세였다. 심지어 스웨덴[4],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사민주의정당들도 그보단 덜하지만 역시 일부 민영화와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정책으로 나가게 되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후반까지 이런 방향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었다.
그러나 이후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것으로 급진적인 좌파당에게 득표를 뺏기거나 중도 우파 정당의 중도화에 경쟁력을 잃게 되어 그들에게도 표를 잃게 된다. 제3의 길의 시작점인 영국 노동당조차 2010년 총선 패배 이후 제3의 길 노선에 비판적인 에드 밀리반드가 당대표를 역임하고, 이후 2015년에는 당내에서 급진 좌파로 평가받는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을 이끌게 되었다.
사민주의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의 정통주의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지지기반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대체로 중도좌파 정도의 포지션을 취한다 볼 수 있다.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현대 유럽 정치에서 좌우수렴현상, 특히 독일의 경우, 종전 직후부터 복지국가를 추구하였던 CDU와 SPD의 차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급진적 유권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해 좌파당(독일),녹색당, 해적당과 같은 정당들이 득세했다. 또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존 롤스와 같은 자유적 평등주의 이론가들과 결론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
어쨌든 유럽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지지를 받는 이념이자 호응을 얻는 방법론이다. 유권자들이 느끼는 거부감도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보다 훨씬 적다. 물론 북유럽 같이 40여년 장기집권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정치세력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년 기간의 연속 수권 기간이 있고 1880년대부터 따지면 프랑스 50여년, 독일 40여 년의 수권기간을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소득이나 국가의 재정상태가 안정적이어야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복지국가의 예산항목과 일본, 미국의 부채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채비율(빚)이 높을 수록 복지예산을 적게 책정한다. 일본, 미국, 그리스는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복지예산을 줄이는 추세의 국가이다. 일본의 부채비율은 234.1%로 세계 1위며 미국의 부채비율은 99.3%로 세계 13위다. 물론 이 두 나라는 재정이 바닥을 치는 다른 이유가 있으니 사민주의 정책을 했다고 해서 딱히 부채비율이 줄었을 것이라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복지정책이 부담이 되고 있다.
인구수 대비 GDP가 높은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국가들은 재정상태와 정치권과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일본보다 강력한 복지국가를 추구하며, GDP 대비 20% 예산을 복지예산으로 사용한다. 특히 스웨덴은 28.9%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부채비율은 41.3%로 세계에서 95위다.(그런데 청년실업률이 20%가 넘는다. 스페인 절반 밖에 안 되네) 덴마크는 29.2%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부채는 46.7%로 76위에 불과하다. 덴마크는 세계 1위의 GDP 대비 복지예산을 집행하는 국가이기도하다. 거기다가 호주는 18.0%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부채는 23.6% 136위에 불과하다. 한국의 복지예산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고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이므로 10.4%로 OECD 최하위며, 부채는 35.7%이지만, 이것은 국가가 져야 할 부채를 지방채나 공기업부채로 돌려서 국가부채를 좋게 보이게 한 일종의 분식회계에 의한 방법으로, 실질적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할 부채는 1600조가 넘는다. 이것은 국내총생산을 훨씬 앞지르는 수준의 규모이다.
GDP대비 인구수가 많은데다 IMF이후로 급속하게 증가하고 국가부채 및 가계부채가 상당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무상복지를 추구하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도 국가재정관련 비판을 받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인구가 많은 탓에 호주보다 복지예산을 적게 쓰지만 부채비율은 더 높다.[5] 물론 자원규모 등 직접적인 일대일 비교는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이 외에도 노령화 지표나 제도의 성숙성, 가령 국민연금의 재정을 보더라도 아직까지 지출액보다 기여금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있다.
특히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들이 있는데 낮은 인구비율로 재정이 안정적이어서 복지예산의 비율은 한국보다 높다. 물론 세율도 높다. 그리고 이런 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미국, 일본은 부채비율이 양호하지 않다. 이는 복지를 하지 않아서 재정상태가 나쁘다기보다는 인구비율 및 부채비율(빚)이 높을수록 복지예산을 적게 책정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한국은 사민주의보다는 민중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 분쟁이 상당하며 계급투쟁이라는 인식 때문에 수입과 경제구조 및 인구수와 국민소득은 고려하지 않고 국가총생산만 고려하여 복지예산이 적다는 류의 비판을 자주 받는 편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이든 국가총생산이 높더라도 국민소득이 낮거나 인구가 많은 경우 일본과 미국처럼 복지정책은 부담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나라들이 한국에 비해 국민소득이 1.4~1.5배가량 높고, 직접적인 전쟁위협이 낮아 국방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한국과의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국방비 부분도 영국, 프랑스 국가와 GDP만으로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인구수 대비 GDP로 감안한 국민소득의 차이가 큰 상태에서 동등한 수준인 것이다. 자세한 것은 복지국가/국방비 지출 문제 문서 참조.
5.2 북미
19세기 후반 들어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서 도시화 현상을 겪게 되었고, 외국에서 막대한 인력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렇듯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열악한 생활환경, 대기업의 독점과 노동자 착취 등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대중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단체가 창당되었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두당 모두 사회주의에 반감을 보이고 있었던 터라 세의 확산에 지장이 있었다.(19세기 후반에는 대중주의를 당강령으로 체택한 인민당이 제3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1년 미국사회당이 창당되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때에 시행된 진보주의 정책이 어느정도 성과를 얻으면서 사회주의에도 어느정도 호의적인 의견이 많아졌으며 1910년 들어 미국 사회당은 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고 1912년 대선에서 유진 뎁스가 6%의 득표를 확보하는 등 선전하기도 했다. 허나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다시 1920년대 중반까지는 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1920년대 후반 분열로 인해 의회 의석을 잃고 완전히 망했어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편으로 1918년에 미네소타주를 지지기반을 삼아 창당된 농민노동당이 한동안 하원에서 의석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미네소타주 이 외 지역에 뻗어가지 못해 의회에서 큰 세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29년 경제대공황으로 미국 경제도 파탄상태에 빠지면서 1932년 선거에서 5석으로 약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하면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사라진 노동농민당은 결국 1940년대 중반 들어서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처지가 되었다 다만 당 조직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연합하고 있는 이상 사실상 민주당 미네소타주 지부(...)라고 봐도 별 무리는 없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미네소타주는 미국내에서도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리고 미국 노동당이라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뉴욕주를 기반으로 한동안 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한 적이 있다가 매카시즘으로 당세는 줄어들어갔고, 결국 1956년에 해산하게 된다. 이후에도 미국에 사민주의 정당이 활동하기는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나 워싱턴 주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듣보잡에 불과하며 전국적인 정당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1940년대 중반에 일부 사회민주주의 정파를 흡수한 만큼 미국 민주당내에서 사회민주주의계 정파의 활동이 두드러지기는 하다. 물론 80년대-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경제정책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실제 경제정책상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클린턴 정부 들어서 부자증세 같은 법안을 시행하긴 했다. 근데 1994년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의석수에서 뒤졌고, 이 후 클린턴이 안정적으로 재선되었을 때도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다보니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그러다 21세기 들어 부시 정부가 여러 실책을 범하고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목소리를 높여가는 중. 특히 버니 샌더스가 주장한 사민주의적 정책이 민주당 지지층에게 큰 매력을 얻으면서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앞지른 적도 있다.
또다른 북미 국가인 캐나다에선 1960년대 중도 정당인 자유당과 별개로 진보 정당인 신민주당이 등장하면서 나름대로의 세를 자랑하고 있으며, 특히 2011년 총선에서는 신민주당이 기존 자유당의 자리를 빼았고 원내 2당에 등극하기도 했었다.
멕시코는 여당인 제도혁명당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해있고[6]에 가깝다., 원내 3당인 민주혁명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다.
5.3 동아시아
한국의 경우는 해방정국 때만해도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4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70%가 온건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1공화국부터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사회민주주의는 거의 멸망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윗동네에선 8월 종파사건과 그 이후의 숙청 작업으로 인해 사민주의자의 씨가 말랐다. 그나마 조소앙의 사회당이나 조봉암의 진보당이 어느정도 전진을 보이기도 했으나 각각 조소앙의 납북, 조봉암의 사법살인으로 세가 크게 위축된다. 그 이후로는 사회민주주의라는건 남북에서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나마 제2공화국 시기에 사회대중당이라는 혁신정당이 창당되어 나름 진전을 보이기도 했었으나 7.29 총선때 심각한 내분으로 대패하고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깡그리 전멸되었다.(...) 물론 그나마 김철의 통일사회당이 1967년 창당되었으며 제도권에서 허용된 유일한 좌파정당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활동은 못 했다. 2016년 현존하는 사민주의 진보정당은 정의당이 있으며[7][8] 더불어민주당에도 소수 존재[9]하나 영향력은 낮다.
일본에는 사민당이 있다. 지금 사민당의 입지는 이들의 리즈시절이었던 50년대 중반이나 80년대 말~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인데, 90년대 중반에 의원들 다수가 사민당을 탈당하고 지지기반인 노조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당세가 악화,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일본은 1901년에 아나키스트 운동가 고토쿠 슈스이, 사회주의운동가 가타야마 센 등이 모여 결성한 '사회민주당'이 일본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시초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바람이 대세였던 때라 사실상 묻혔고 일본 당국은 곧바로 탄압해 강제해체시켰다. 그것도 당일에(...). 그래서 일본 자료를 보면 창당일이 1901년 5월 18일인데, 해산일은 1901년 5월 20일이라고 쓰여있다. # 안습.
중화민국에선 민진당이 영국 노동당처럼 제3의 길을 추구하며 민주사회주의식의 중도/좌파로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시아권은 오랜기간 동안 뿌리깊은 반공사상 또는 반대로 원리주의적 공산사상[10], 사회의 보수성 등 사민주의가 뿌리내리기가 힘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가장 큰 요인은, 약한 조직노동 및 노동계급과 진보정당과의 연계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뿌리있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모두 20세기 초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성립되어 조직노동을 통한 조직표를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는 그런거 없다. 게다가 중국 같은 공산독재가 아니면 중도 혹은 개혁성향의 정당과 보수정당으로 정치세력이 양분되어 있고 대립도 극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한국, 일본, 대만의 국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자. 일부에서는 영국 자유당의 경우처럼 중도 정당들이 무너질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6 비판
- 흔히 사민주의의 이상으로 평가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복지에 충당되는 돈이 사실 오일머니와 개발도상국 국가들에 대한 착취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와 같이 이론상으로만 실현이 가능한 이론이라는 평가가 있다.
추가바람.
7 트리비아
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른 사상이다. 민주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지만 단순히 이를 폭력이 아닌 '민주적으로' 거부하려는 사상이고, 사회민주주의는 현대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점차 개량을 하려는 사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대충 통하니깐 큰 구별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11]
대개는 대리 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체제로 구상되었다. 우선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차별을 당하지 않을 자유와 생산수단의 소유주 또는 폭압적인 정치권력의 대리인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둘째로 법으로만 존재하는 정의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 정의를 포괄하고 모든 이들, 구체적으로는 육체·정신·사회적 장애를 겪는 이에 대한 동등한 기회, 평등을 보장한다. 마지막으로 불의와 불평등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 대한 동정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단결을 함의한다. 다만, 그 실제적 적용의 양태는 적용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현실을 잘 아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가끔 사회민주주의가 수정자본주의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회민주주의는 엄연히 사회주의가 맞다. 이름부터가 사회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로 잘못 읽기가 훨씬 쉽다는 점은 제쳐두고 즉 선거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는 정당이나 국가들이 정말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는지가 논란이 되는 것일뿐, 사회민주주의란 용어의 개념 자체는 사회주의가 맞다. 내용상 현대적 자유주의의 좌파 계열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 '좌파 자유주의'와 비슷해보여 헷갈릴 수 있는데 진보적 자유주의는 경제에 대한 간섭 및 복지 등을 통하여 불평등으로 인하여 자유가 침식되는 걸 막음으로써 '실질적인 자유'를 이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반면, 사민주의는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실천하자는데서 나온 것이다. 정책상 비슷해 보여도 뿌리는 엄연히 다른 셈이다.물론 현실에선 짬뽕으로 섞어쓰는 경향이 심하지만
그리고 이렇게 이론과 현실들이 두루두루 섞인 결과 현재 미국 민주당계 리버럴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행태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아이콘 국가 같은 경우 이미 30년대 이래 국, 공유화에 대해서 상당부분 포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공항 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SOC 등도 민영화가 이루어진 상태다. 사실 의외로 미국은 이미지에 비해서 다른 유럽권 국가들에 비해 민영화를 안 한 축에 속한다. 영미권 중에서 민영화를 적극 실천한 동네는 영국이나 뉴질랜드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경우, 웬만한 유럽국가들은 한국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세부담이 강하다 볼 수 있다. 물론 누진세제도 강하기는 하나, 절대적인 수준에서 볼 때 간접세나 기타 서민 증세의 강도 역시 강한 편이다. 일단 부가가치세율부터 한국, 미국과 유럽국가를 보면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 어떤 나라가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재원 부담 등의 측면에서부터 전국가적 합의가 필요하다 볼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해 저세금 저복지, 고세금 고복지 중에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전보다 복지가 선호되기는 하지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을 감수할 준비는 부족하다는 것. 정통성이 부족했던 식민통치와 독재정권의 통치 시기가 길었던 것의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매우 낮은 편인데 그것이 증세나 정부의 역할 확대에 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내가 낸 세금이 잘 쓰여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증세나 그에 기반한 복지확대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최근의 연말정산 사태나 담뱃값 인상처럼 법인세 외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세금을 올리려는 시도는 큰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하여 세심하고 꼼꼼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다. 특히 세금 내기 싫다는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야 하며, 이를 무시한 정책은 아무리 그 목적이 좋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지옥문을 열 수 밖에 없다. 연말정산 때에 늘어난 세금 부담 정도는 북유럽이나 다른 대다수 선진국들이 지는 세금 부담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인데, 그와 같이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증세에도 저항이 크다면 보편적 복지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북유럽식 사회모델(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등 사실상 저 4나라뿐)이 영미권식 사회모델(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등)보다 우월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형편에서도 가능한 것인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증세를 하냐마냐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총 복지비용 중 비율을 청년복지에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즉, 복지를 그냥 전세대에 죄다 때려박는(...) 개념이 아니라 저출산 극복과 청년 교육 등 취업을 위한 복지 확대에 초점을 맞춰 재투자 개념으로 사회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로 정책을 시행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만,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거대한 사회문제이고 정책 실효성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6년부터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소요된 전체 액수의 합은 123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저출산 노령화에 따라 부양해야 할 노인들의 수가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할 경우 증세가 없이 청년복지 비율을 늘림으로써 청년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망성 역시 날로 회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8 대표적인 사민주의자들
- 고토쿠 슈스이 - 아나키스트 운동가이면서도 사회주의자로 인식되어있으나, 현대 기준으로 보면 사민주의 성향이 강하다.
- 김약수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당시 제헌국회 의원을 지냈던 인물이다. 소장파 출신. 사상적으로 여러차례 노선변경을 하다가 마지막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입장으로 정착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때는 아나키즘 단체 흑도회에서 아나키스트들과 활동하다가, 얼마 후 사회주의 노선으로 바뀌어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해방정국 초기에는 한민당에 가담한 적이 있었으나, 이는 '반(反)박헌영파'였기 때문이었을 뿐이었다.(김약수는 일제강점기때부터 줄곧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해온 사회주의 운동가였다.) 이듬해 1946년 한민당 내부에서 토지개혁 문제를 비롯해 좌우합작 문제에서 한민당이 소극적 태도를 나타내자, 환멸을 느껴 한민당을 탈당하고 이후 김규식계열 중도우파로 갈아탄다. 이후 국회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다 납북되었다.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이론을 체계화한 사회민주주의의 거두.
- 쿠르트 슈마허
- 마틴 루서 킹 - 마틴 루서 킹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동조한 진보적 성향의 인물이었다. 즉, 킹은 유물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주의 역사 해석에는 반대했지만,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전형적인 약점들을 지적하고, 대중의 자의식 성장에 기여했고, 기독교 조직의 도의심에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찬성하였으며 자본주의야말로 인간을 생산도구로 여기는 유물론이라고 주장하였다.
- 클레멘트 애틀리
- 빌리 브란트
- 버니 샌더스 - 버니 샌더스는 자신을 '민주 사회주의'자라고 지칭했으나, 북유럽 모델을 주창하는 것에 비추어보면 사회민주주의자로 판단된다. 민주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지칭한것은 과거 냉전의 영향으로 동구권의 폭력을 기반으로한 '혁명 사회주의'와 다름을 어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넬슨 만델라
- 말랄라 유사프자이 -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 이 사람의 사회주의 발언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고(영문)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여운형
- 조소앙
- 조봉암
- 권영길
- 노회찬
- 심상정
- 금민
- 페르디난트 라살레
- 프랑수아 미테랑
- 레오넬 조스팽
- 올로프 팔메
- 헬렌 켈러
- 미하일 고르바초프 - 권위주의적이었던 소련 체제를 북유럽식 사민주의 모델로 바꾸고자 하였다. 물론 결과는...
9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 국제적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유럽연합 - 유럽 사회당, 사회민주진보동맹[12]
- 독일 - 독일 사회민주당 (SPD)
- 한국 - 정의당
- 스웨덴 - 사회민주노동당(스웨덴)
- 영국 - 노동당
- 네덜란드 - 노동당
- 벨기에 - 사회당 (왈로니아 사회당 [PS] / 플랑드르 사회당 [SP])
- 노르웨이 - 노동당
- 덴마크 - 사회민주당
- 오스트리아 - 사회민주당 (SPÖ)
- 핀란드 - 사회민주당 (SDP)
- 스위스 - 사회민주당
- 스페인 - 사회노동당 (PSOE)
- 아일랜드 - 노동당
- 이탈리아 - 민주당
- 일본 - 일본 사회민주당
- 러시아 - 정의 러시아당
- 프랑스 - 사회당[13]
- 포르투갈 - 사회당
- 터키 - 공화인민당[14]
- 멕시코 - 제도혁명당[15], 민주혁명당
- 캐나다 - 신민주당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아프리카 민족회의 (ANC)
10 관련항목
- ↑ 영어로는 Historical Materialism으로, 역사물질주의 정도로 직역될 수 있다. 역사는 "물질", 즉 경제(생산활동)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 ↑ 엄밀히 말하면 레닌주의도 수정주의지만 이들이 다수를 점하면서 그런 비판은 없었다.
- ↑ 20세기 막판 노동당(영국)과 민주당(미국)에서 제창된 이념으로, 영국 쪽에서는 기존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에서 이상적인 부분만을 추출해 체제 개혁에 도입하자는 일종의 중도실용주의.
- ↑ 다만, 스웨덴 사민당은 국유화 대신 임노동 기금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소유권을 주는 방식으로 우회적 국유화는 추진하였다.
- ↑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IMF때 2배 상승했다.
- ↑ 그러나 현재까지 사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고 현재는 그냥 협동조합주의
- ↑ 정의당의 경우에는 내부적으로는 사민주의를 추구하는 신규 파벌과 인천연합계열, 진보신당계 PD계열 그리고 참여계라는 4가지 파벌이 병존하는 분위기이다. 사민주의 파벌의 경우 가장 최근에 등장한 파벌로 대표성을 가진 인물도 딱히 없고 조직력도 약하지만 세가 어느정도 불어난 상황이라 과거 당 명칭 공모전때 당명칭에 사민주의를 넣는걸 상당히 밀어붙여서 성공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사민주의에 거부감을 가진 다른 파벌들의 반발에 의해 결국 실패로 돌아가기도했다.
- ↑ 노동당의 공식적인 이념은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이며 사민주의와는 어느정도 선을 긋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사민주의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노동당 강령 중에도 "복지국가라는 빛나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를 훼손하는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데 실패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또한 극복 대상이다."라는 문장이 들어있다.
- ↑ 2011년 이후 개혁세력파들이 이에 속한다.
- ↑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에서 묘사한 "동양으로 건너 오면서 아시아의 신비주의, 미륵 신앙과 요상하게 결합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 주체사상의 북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쥬 등 아예 이념적 광신성과 반지성주의는 스탈린치하 소련을 능가한 이상한 아시아식 공산권 말이다
- ↑ 뭔 말인지 그래도 이해가 안간다면 어폐가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밀크커피와 커피우유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용어만 비슷할 뿐 근본적인 주재료 자체가 매우 다르다.
- ↑ 유럽 사회당+이탈리아 민주당 등 무소속 사민주의 당으로 이루어진 교섭단체
- ↑ 프랑수아 미테랑과, 프랑수아 올랑드의 당
- ↑ 여긴 사회민주주의+케말리즘(공화주의(Cumhuriyetçilik), 민족주의(Milliyetçilik), 인민주의(Halkçılık), 국가주의(Devletçilik), 세속주의(Laiklik), 혁명주의(İnkılapçılık))이 짬뽕된 형태다.
- ↑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긴 하지만, 정강 정책으로 보면 사실상 중도정당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