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길가메쉬에서 넘어옴)

300px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엔키두 부조)

1 개요

Gilgamesh
기원전 24세기 무렵에 정립된 길가메시 서사시주인공.

아버지는 왕 루갈반다[1]. 어머니는 들소의 여신인 닌순. 황소자리라고 한다. 이건 그냥 생일 따라 정해진 게 아니라 춘분점에 맞춰 태어났다는 걸 강조하여 신성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 서사시가 시리즈물로 정리될 당시인 바빌론-아시리아 시대에는 양자리가 아니라 황소자리춘분점에 있었다고 한다.[2]

길가/메시의 길가(빌가[3])는 늙은이, 조상, 메시는 젊은이, 영웅이라는 뜻이다. 늙은이가 젊어지못하고 젊은이가 늙은이가 되는 운명임을 뜻하는 이름이다. 왕권은 받았으나 불멸은 그의 것이 아닌 운명이라고 한다.

2 신화

2.1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

수메르의 왕 목록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에레크(우루크) 왕국의 다섯 번째 왕이다. 수메르식 시간대에 따르면 에레크(우루크) 왕국은 대홍수 뒤에 세워진 두 번째 왕국이다. 길가메시가 등장하는 토판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4]

2.1.1 길가메시와 아카

대홍수가 있은 뒤 최초로 세워진 나라는 키쉬(Kish) 왕국이었다. 신흥강국 에레크(우루크)의 길가메시와 오래된 강국(대홍수 직후에 하늘이 인정한 왕권을 가진 나라) 키쉬의 마지막 왕 아카(아카드라는 말의 유래가 되는 이름)는 서로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키쉬의 왕 아카는 에레크(우루크)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에레크(우루크) 왕국을 포위한다. 그러나 강력한 길가메시의 저항에 부딪치고 아카가 패배하지만 결국 두 왕국은 화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그 이후로 하늘에서 내려온 왕권이 키쉬에서 에레크(우루크)로 넘어갔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이 토판에서는 어떤 신적 존재도 등장하지 않는다.

2.1.2 길가메시와 생명의 땅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위협은 죽음이다. 길가메시는 죽음 앞에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명의 땅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을 한다. 길가메시의 친구 엔키두는 생명의 땅을 찾기 위해 태양신 우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투는 길가메시의 모험은 너무 무모하기에 도움을 줄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완강한 요구에 밀려서 하는 수 없이 길가메시를 도와 험준한 일곱 산을 넘을 수 있도록 해준다.

길가메시는 거인 후와와(Huwawa)가 사는 삼목 산이 보이는자신의 목적지까지 도착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치열한 싸움 끝에 후와와의 목을 베고 삼목산을 지난다. 이후의 이야기는 토판이 부서져 있어 더 이상 알 수 없다.

2.1.3 길가메시의 죽음

길가메시는 엔릴이 꿈 속에 나타나서 신들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만은 명예, 부, 그리고 승리를 보장해 주었다는 신탁을 듣게 된다. 이 신화의 두 번째 단락은 장례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서 길가메시는 죽게 되며,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송가가 담겨 있다.

2.2 바빌론의 길가메시 신화

도시국가 우루크의 왕으로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만이 인간이었으며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반반씩 섞는 유전자 조합에서 어떻게 하면 2/3가 나오는지는 의문.[5][6][7] 일단은 기록된 서사시들 중에서는 가장 오랜(最古) 영웅.

그러나 워낙에 무개념이었기 때문에 온세상을 둘러보고 우루크로 돌아온 후,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에 취해 자만에 빠져 허구한 날 백성들을 괴롭히고 초야권을 만들어 결혼하는 처녀의 첫날밤을 자신이 치르는 등의 악행을 일삼아 참다못한 백성들이 천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할 것을 호소하자 이에 아누는 인간과 길가메시를 창조한 여신 아루루를 시켜 그의 짝을 만들게 하였다. 아루루가 손을 물에 넣어 씻고서 찰흙(검붉은 흙 adama)을 때어낸 후 그것을 대초원에 뿌리자 거기에서 용감무쌍한 엔키두가 창조되었다.

이후 장성한 엔키두가 길가메시의 악행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길가메시를 찾아가 결투를 벌인 끝에, 무승부로 싸움을 끝내고 친구가 되었다(아카드어 버전에서는 엔키두와 길가메시의 관계가 거의 동등해보이지만, 수메르어 버전에서는 엔키두가 하인으로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길가메시 서사시 참조.

두사람이 친구가 된 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조언을 받아들여 악한 폭군에서 부터 개과천선 하여 숲의 괴수 원바바(후와와)(훔바바)를 물리치는 등 개념 군주로서 탈바꿈한다.

막판에는 엔키두가 저주(질병)로 인해 사망한 후에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죽음이 두려워져서인지 죽음을 피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온 세상을 여행하며 지식을 쌓았다.[8]

홍수에서 살아남아서 불로불사가 된 우트나피쉬팀[9][10]을 찾아가지만 불로불사는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것[11][12]을 알고 좌절한다. 대신에 늙음은 피할 수 있는 불로초를 구하지만 그마저도 지나가던 뱀이 훔쳐먹어서 좌절해 다시 우루크로 돌아갔다고 한다.

길가메시는 비록 좌절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것의 헛됨을 깨닫고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3 1에서 따온 것들

4 여담

1. 이 서사시에 기록된 영웅이자 왕이 성경에 나오는 지상 최초의 권력자 니므롯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영국인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고대 도시 니네베에서 발굴돼 영국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수천점의 파편을 연구했으며, 이 점토판에 기록된 대홍수와 성경의 연관성을 비교 발표해 학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끈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1862년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이 서사시의 주인공이 성경에 나오는 니므롯이라 주장했는데, 당시 학자들도 그의 주장에 동의해 한동안 이 점토판의 내용을 '니므롯 서사시'라 불렀다.

하지만 바빌로니아 홍수 신화 발견을 선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연구했던 대홍수 신화는 아주 기다란 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서사시의 주인공은 자신이 주장했던것과 달리 니므롯이 아니며,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은 그 서사시를 길가메시 서사시라 부른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학계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니네베로 날아가 추가 발굴작업에 임했지만, 몸이 약했던 까닭에 36세라는 젊은나이로 발굴현장에서 요절했다.

2.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의 원형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게되면 엔키두와 함께 떠나는 모험은 헤라클레스가 겪는 12가지 고난의 원본이 되는 셈. 둘 다 황소를 격퇴하거나 사자를 죽이고,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쓰는 등 일부 공통점이 있기때문에 충분히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 서사시는 전체 모습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원형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증명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전 세계에서 수메르 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석학으로 추앙받는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Samuel Noah Kramer )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리스, 인도, 튜턴의 영웅시대가 수메르 영웅시대와 서로 내용이나 형식에서 놀라울정도로 유사하고 그것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셋 중 가장 오래된 그리스 영웅시대보다 무려 1500년 이상 앞서는 수메르 영웅시대에서 서사시의 기원이 확립되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라고 저술했다. 수메르고고학이란 학문을 근본부터 뒤집는 충격적인 발견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2016년 현재까지 학계에서 인정하는 가장 오래된 문명이기 때문이다.


3. 수메르 판본과 바빌로니아(셈족, 아카드어) 판본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엄밀히 말해 바빌로니아 판본이다. 수메르 영웅 서사시는 같은 인물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에피소드 별로 파편화 되어 있는데다, 무미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것을 가지고 후대인 바빌로니아 시인들이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웅의 개성이나 감정 묘사를 집어넣어 밀도있게 각색한 것. 물론 바빌로니아 판본에 상응하는 대부분의 수메르 점토판이 있는데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나 주제가 똑같기 때문에 그 기원이 수메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Samuel Noah Kramer )는 그의 저서에서 바빌로니아 판본에만 존재하는 부분이 그들만의 창작인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수메르 원전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13], 파편화 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세련되게 다듬어 통합된 이야기로 만들어낸것은 바빌로니아 인들의 혁신이요, 성취라고 추켜세웠다.
  1. 서사시와 달리 수메르 역대 왕조석판에선 길가메시의 아버지는 리라(나무위키에선 리루)라고 한다.허나 김산해의 길가메쉬의 서사시에는 리라가 영혼을 해석되어있다. 어떤 것이 정확한건지는 학자마다 다르겠지만...
  2. 각각의 길가메시 설화들이 별개로 발생하고 나서 수천년쯤 구전되다가 채록되고, 채록된 뒤에도 다시 수천년을 파편적으로만 나누어 기록되었다가, 기원전 24세기가 되어서야 바빌론에서 이걸 각색도 끼얹고서 짜맞춘다. 당연히 처음 채록된 시대 내지는 원형설화가 발생했던 시대의 춘분점은 달랐을 것이다. 아니면 별자리 개념이나 춘분점 개념 자체가 없었거나...
  3. 수메르인들은 그 당시 길가메시가 아니라 빌가메시라고 불렀다.
  4.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조철수, 수메르 신화(서해문집, 2003)를 볼 것.
  5. 신과 인간이 번갈아가면서(신과 인간이 결혼 → 태어난 자식과 신이 결혼 → 태어난 자식과 인간이 결혼 → 태어난 자식과 신이 결혼…) 혼혈을 반복할 경우 세대가 내려갈수록 2/3에 가까워진다.
  6.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는 그냥 당시 이야기에 흔했던 반인반신들보다 길가메시를 높일려고 이런 애매모호한 비율이 나왔다는 것이다. 소수설로는 혼령이 된 아버지와 여신인 어머니의 교접으로 태어났기에 3분의 1, 3분의 2로 계산한다는 주장도 있다
  7.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수메르 신화 지식이 살짝 필요한데, 길가메시는 우르크를 지배하던 왕조의 5대손이다. 그 왕조의 시조, 다시 말해 1대였던 왕은 수메르 신화의 주요신인 우투(샤마쉬)가 인간 여자와 관계해 낳은 반인반신이었다. 게다가 길가메시의 어머니 또한 하늘의 여신인 닌순. 한마디로, 왕조 가계도에 신이 무려 2명이나 포함된 것.
  8. 이때 저승까지 갔다는 전승도 있다.
  9. 여담이지만, 우트나피쉬팀의 홍수는 엔릴이 인간과 신의 혼혈 때문에 빡쳐서 일으켰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도 길가메시가 신과 인간의 혼혈인 걸 보면 신이나 인간이나 정신 못 차린 듯. 물론 홍수설화의 다른 판본으로는 그냥 시끄럽다고 인간을 싹 쓸어버리자는 정신나간 계획들을 세웠다고 한다.
  10. 엔릴은 신과 인간의 혼혈들이 늘어나면서 큰 문제를 일으키자 홍수를 일으켜 인간들을 쓸어버렸는데, 너무도 잔인한 그 광경을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내심 엄청난 후회를 한다. 그래서 우트나피쉬팀이 인간들을 보존한것을 알았을 때 입장을 바꿔 그 공로를 치하했고, 그동안 하찮게 여기던 인간에게는 본격적으로 문명을 전수해준다. 그리고 대홍수 이후에는 신과 인간들끼리 관계를 맺는것에 대해 암묵적인 허용을 해줬는데, 길가메시는 대홍수 이후에 태어난 반인반신이다.
  11.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점토판 손상 부분)에서 나오는 주문을 다 들으면 불로불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길가메시는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다 했지만 결국 3일을 채 못채우고 서서 잠들었다.
  12. 우트나피쉬팀은 대홍수때 자신이 세운 공로를 설명하며 '영생은 신들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한 것' 이라고 하자, 길가메시는 더 이상 자신의 힘만으로 영생을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에 절망해 그대로 쓰러져 7일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고 설명한 책도 있다.
  13. 실제로 '엔키두와 우정을 쌓는 과정', '엔키두의 죽음과 매장'은 바빌로니아 판본에만 있으며, '길가메시의 죽음'은 수메르 판본에만 있다, 게다가 '길가메시, 엔키두 그리고 저승세계' 같이 두 판본에 모두 존재하지만 바빌로니아 판본의 이야기 구조에는 전혀 맞지않는 에피소드도 존재하기 때문에 관련된 점토판의 추가 발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