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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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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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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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72
김민호(金敏浩 / Min-ho Kim)
생년월일1969년 3월 1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울산광역시 북구
출신학교월성초-신라중-경주고-계명대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3년 OB 베어스 신고선수 입단
소속팀OB-두산 베어스 (1993~2003)
지도자 경력두산 베어스 주루코치 (2004~2011)
두산 베어스 수비코치 (2011~2012)
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2013)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14)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2015)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6~)
1995년 한국시리즈 MVP
김용수(LG 트윈스)김민호(OB 베어스)이강철(해태 타이거즈)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42번
손병희(1991)김민호(1993~2003)방승재(2004)

1995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종범(해태 타이거즈)김민호(OB 베어스)이종범(해태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안경현
(2001~2002)
김민호
(2003)
안경현
(2004)

1 소개

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현재는 KIA 타이거즈의 수비코치.

2 프로 선수 시절

경주고등학교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OB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이 시절 그를 픽업한 감독은 윤동균인데, 항명사건때 신인급 선수인 권명철, 안경현, 김상진, 이종민 등이 줄줄이 짐싸서 서울로 올라갈 때 장원진과 더불어 윤감독옆에 남았던 소수의 선수중 하나이다.

프로 선수 때는 유격수였으며, 정수근이 만개하기 전 까지는 발이 빨라 주로 1번을 맡았다.

수비도 꽤 괜찮은 선수였으나, 두산의 팬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종범이나 유지현에게 기억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빛이 발하던 유일한 해가 그 둘이 방위병 근무를 하던 1995년, 하지만 그도 그해만은 역대 유격수 못지 않은 활약을 했다. .288에 47도루였으므로.. 하지만 그해 방위병 신분의 이종범이 63경기를 뛰고 거둔 성적을 보라.. 홈런왕 먹을수도 있었다

또 하나 추가하자면 93년 OB가 쌍방울 김원형에게 노히트노런을 당했는데.. 유일하게 볼넷으로 걸어나가 퍼펙트 게임을 막았다고 한다.

그 밖에 한국시리즈에 유난히 강해, 1995년 한국시리즈 MVP.[1] 다만, 2000, 2001년은 평범했다.[2]

2000년까지는 2할 7푼찍으며 제 몫을 해내던 선수였지만,2001년부터 타격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2002년은 주전 유격수임에도 1할대 타율을 찍고만다. 풀타임을 뛰었다면 97 박진만의 0.185의 기록을 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3년 시즌 중반부터 손시헌이 유격수 주전을 차지하기 시작하자 그 해 말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4년에는 두산 현역 선수 중 3번째로 은퇴식을 치뤘다. 이것도 한국시리즈 MVP의 힘인가? 동명이인 그분도 소속팀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역대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유격수 중 유격수 출장 비율(1075G/1113G)이 가장 높다.

그리고 이분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바로 폭행사건으로 입건한 적이 있다.

3 지도자 시절

3.1 두산 베어스

2004년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수비코치와 주루코치를 맡았다가 2012 시즌이 끝나고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두산 시절에 있던,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은근히 당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밴클이 터져서 성질부리는 뜨또를 다시 벤치로 불러들였지만 화가난 뜨또가 김코치를 몸으로 세게 밀쳐내고(....) 빠따를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공수 교대 중엔 관중석의 관중들과 캐치볼을 하기도 하였다.

두산 팬들은 김민호가 나가고 들어온 코치가 하필이면 한화 시절에 삽질로 유명한 김민재인지라 걱정스러운 반응이었다.하지만 김민재는 시즌 후 사퇴했다

3.2 LG 트윈스

LG 트윈스에서는 능력이 좋았지만 두산과 재계약하지 못한 김민호 코치를 낼름 영입해서 2군 코치진을 보강했다.[3][4]

LG 트윈스에서 박종호와 같이 2군 수비코치를 맡아 제 몫을 했으며, 그러다가 2014년 LG 트윈스의 1군 1루, 외야코치가 되었는데 LG 팬들 사이에서 라이벌 팀 출신이지만평가가 꽤 좋은편이다. 최태원을 몰아내고 다음년도 3루 작전코치를 해달라고 염원하는 LG팬들이 많은 편.

3.3 KIA 타이거즈

그런데 2014년 11월 2일, 김기태 감독의 부름을 받고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그 와중에도 김민호만 떠나고 최태원이 '또' 잔류에 성공해서 3루 코치를 맡게되자, LG 팬들 역시 김민호 코치가 떠나는게 아쉽다는 반응이다. 더군다나, 후임 1루 코치인 한혁수가 지도자 경력이 짧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있고.....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위아래 코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내-외야를 아우르는 수비코치 능력과 김민호 코치 특유의 학습방법이 동영상에 뜨면서 화제가 되었기 때문(...)

2015 시즌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는 KIA 수비진들의 안정화를 가져다 주면서 투수진의 평균자책점 하락을 동시에 가져온 공로가 인정되면서 능력있는 코치로 팬들의 신뢰를 받았다. 특히 팀 최소 실책 개수가 리그 2위라는 부분이 증명하듯 영건들의 수비능력 상승과 센터라인 부재의 수비 측면에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2016 시즌부터는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를 맡고 김창희가 1군 수비코치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능력 검증된 1군 수비코치를 2군으로 보내고 무능력한 2군 코치를 1군으로 올려서 자리를 보전해줄 생각을 한다고 프런트를 까고 있다. 생각해보니 롤링창희는 선동열 잘릴때 프런트로 갔는데 왜 다시 코치진으로 온거지?

결국 시즌 종료 후 다시 1군으로 올라왔고, 김창희 코치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만세

4 기타

아들 김성훈 군이 남양주 리틀야구단을 거쳐 경기고에서 뛰고 있는데 사상 첫 3연타석 홈런을 친 적이 있다고 한다. 두산 팬들은 유망주라고 기대했었고[5] 이후 타격부진으로 고교 3학년때 투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 선수가 되었다.두산팬들의 괜한 설레발

5 역대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3OB 베어스113272.2396582021281217.283.280
1994126426.275117130834571743.362.340
1995113400.28811524323079
(3위)
47
(2위)
42.378.353
19961559.271165006823.356.302
1997122467.238111135
(5위)
6347546
(3위)
52.325.314
1998112371.22684164119362226.299.276
1999두산 베어스132458.2731251763467037
(4위)
40.356.329
200099288.25072923324023
(5위)
26.326.311
2001109306.21666172429421438.324.299
200295160.156253121114715.225.223
200377193.218427001523515.254.268
통산11시즌11133400.2468381322529277472232317.326.308
  1. 2차전에서 대불상수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패전을 뒤집어썼는데 볼넷을 허용한 마지막 타자가 김민호였다.
  2. 오히려 2000년은 2차전에서 수비실책을 했다. 다만 홍성흔이 송구실책을 했던거인지라 김민호의 잘못은 아니다.
  3. 이 무렵 계형철신경식도 영입했고, 경헌호가 은퇴하면서 2군 코치를 맡게 되었다.
  4. 여러가지로 보면 김기태 감독의 인맥인 듯하다. 국대시절 이 둘은 코치로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도 경험했다.
  5. 경기고는 두산 베어스의 지역 연고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