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식(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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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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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LG 트윈스의 2군 코치로 합류한 신경식. 좌측 두번째, 왼쪽부터 계형철, 신경식, 김민호, 경헌호)

LG 트윈스 No.86
신경식(申慶植 / Kyeong-sik Shin)
생년월일1961년 8월 1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부산광역시
학력동성초-동성중-공주고-(제주산업대)
포지션1루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82년 OB 베어스 원년멤버
소속팀상업은행
OB 베어스(1982~1990)
삼성 라이온즈(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1993~1995)
지도자경력쌍방울 레이더스 코치(1996 ~ 1997)
두산 베어스 타격코치(2009 ~ 2011)
고양 원더스 타격코치 (2012)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13 ~ 현재)

1983년 1루수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용달(MBC 청룡)[1]신경식(OB 베어스)김용철(롯데 자이언츠)
1983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김용희(롯데 자이언츠)신경식(OB 베어스)김용희(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1번(1991 ~ 1992)
송광훈(1989 ~ 1990)신경식(1991 ~ 1992)한희민(1993)
쌍방울 레이더스 역대 주장
?
(?)
신경식
(1993)
최태원
(1994~1995)

1 소개

OB 베어스 출신 야구 선수이자 현재 LG 트윈스의 2군 타격코치. 등번호는 19번(OB) - 21번(삼성) - 26번(쌍방울). 좌투좌타 1루수.

코치로서는 우타자의 좌타 & 스위치 전향 성애자, 이성열최승준 등 별볼일 없는 타자들의 타격능력 향상이란 양면이 공존하는 양날검.

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부산 태생으로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상업은행에서 활동하였다.

2.2 프로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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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며 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입단했다. 당시 김영덕 감독은 공주고등학교 출신의 이근식[2]을 주전 1루수로 낙점하고 있었으나, 시즌 초반 이근식이 복통을 호소하며 결장하게 되자 신경식이 대신 1루수로 출장했는데 그날 당시로선 보기 드문 양 다리를 쫘악 찢는 포구동작과 깔끔한 수비를 선보이면서 이근식을 제치고 단박에 1루 주전을 꿰차며 그해 0.334라는 준수한 타율로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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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cm, 95kg의 체격 조건으로 당시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문 축복받은 거구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 체격 조건을 살려 앞서 말했듯 선수 시절 양쪽 다리를 크게 벌려 내야수들의 1루 송구를 포구하는 모습으로 학다리라는 별명을 얻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수비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반면 좋은 체격 조건을 가진 1루수임에도 불구하고 장타력은 다소 부족했다. 어째 서용빈이 떠오른다? 전형적인 컨택 & 스프레이 중거리 타자였다. 그러나 주루 실력은 빼어나서 매년 20개 이상의 도루를 했다. 스탯을 놓고보면 수비형 외야수의 스탯이었는데 어째서인지 1루를 보고 있다는 게 특이한 점. 물론 신경식의 1루 수비가 워낙 뛰어나기도 했지만 컨택형에 준족의 타자가 1루를 보고 있다는건 어깨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원년 선수들 중 이만수, 박철순 다음으로 가장 오랫동안 프로선수생활을 이어갔다.

MLB파크에서 팬 서비스 이야기가 나왔는데, 선수시절 못생긴 1루수 신모씨는 팬 서비스를 못했라는 소문이 있지만 또 잘해주고 매너가 최고였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팬서비스는 Mr.OB라고 불리는 김형석(야구)이 최고라는 평이 많다.

3 지도자 시절

3.1 쌍방울 코치 시절

은퇴하고 스승인 김성근 감독 밑에서 2년간 타격코치를 했다. 그리고 구단의 운영비 삭감으로 인해 1997 시즌 끝나고 해임된다.

3.2 자양중학교 감독 시절

2003년 자양중학교 감독으로 있었을 때 학교 문제로 야구를 그만 둘 뻔했던 오지환을 군산에서 상경시켜 발굴했다.

3.3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원, 코치 시절

2007년 전력분석원으로 친정 팀으로 돌아와 2009년 시즌 종료 뒤 타격코치로 승격하여 2011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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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식 투수 데뷔
ⓒ 경향신문 2011/05/10

그리고 뜬금없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는데, 5월 10일 석가탄신일날 KIA 타이거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당일 선발 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원정용 유니폼을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아 체구가 비슷한 신경식 코치의 유니폼을 빌려입고 등판했기 때문이다.

일단 두산에서는 2010 시즌엔 답이 없던 이성열의 파워 포텐을 터뜨려 24홈런을 치는 타자로, 무명 포수인 양의지를 20홈런을 친 신인왕으로 각성시켰고, 최준석을 3할-20홈런의 강타자로 만들어 2010시즌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일조했다. 다만 김현수를 무리하게 홈런타자로 개조시키려다 컨택능력을 깎이게 만든 건 흠. 그러나 11시즌에는 양의지는 장타력 상실, 이성열의 원래 모습 롤백으로 장기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아쉬운 점을 보였다.

3.4 고양 원더스 코치 시절

어수선했던 2011 시즌 후 두산을 떠나 2012년에는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타격코치로 있었다.[3]

3.5 LG 트윈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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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푸짐하고 아주 유능해보이는 2군 메인 타격 철밥통 코치의 위엄(...)

2013 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의 2군 코치로 부임했다.

그리고 2013년 LG의 2군 메인타격코치를 맡게 되면서 2012년에 전임 2군 타격코치였던 서용빈이 사멸시켜 버린 LG 2군 타선을 확실하게 부활시켰다. 저 시기 지도했던 선수들인 최승준, 채은성은 LG 팬들에게 우타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즌 이후 김무관 1군 타격코치가 2군 감독으로, 서용빈 2군 타격코치가 재차 일본연수를 떠나면서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는데 시즌 초반 장타력 부족과 병살타 양산 등으로 까이고 있으며, 2014년 초 1군 타선을 사멸시켰다. 결국 양상문 체제로 바뀌면서 김선진 보조 타격코치와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으로 다시 간 후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이 사람이 오지환 좌타 전향의 장본인[4]이었기도 하고 심각한 우타자의 좌타 & 스위치히터 전향 성애자라는거다. 2014년에는 우타 외야 유망주인 배병옥을 스위치히터로 전향시키는 병크를 터뜨리기까지 했다. 아마 감독 시절에도 이런 문제로 논란이 많았는데 프로에서까지 이런 지도를 했고 그렇다고 성공적으로 지도를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선수의 타격 정체성만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최종적으로 배병옥 스위치 병크는 KT의 지명으로 이어졌다는게 중론이다.[5]

퓨처스리그가 끝난 후에도 2군의 메인 타코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15시즌 스프링캠프 시 인터뷰에서 유망주를 키우는 데 구리보다 이천 챔피언스 파크의 환경이 좋으며, 유망주들이 올라오는 시간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리빌딩이 시작될 2~3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5월 22일 1군으로 올라온 나성용인생경기를 보여준 다음에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건 맞는 듯. 양석환 또한 집중적인 변화구 공략을 가르친 이후 1군으로 올려보내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16년 손주인, 김용의, 유강남, 양석환 외 많은 야수들이 2군을 갔다온 뒤 타격 전지표가 향상되는 활약을 보이자 재평가받는 중이다. 특히 타율 1할대, OPS 5할대를 찍고 2군에서 몸을 회복하고 온 오지환이 1군 복귀이후 OPS를 4할 가까이 올리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LG가 2015년 극악의 타격성적을 찍었다가 1년만에 평균이상의 타선을 보유한 팀으로 탈바꿈한데는 (그게 신경식의 공인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군만 내려갔다하면 타자들이 불방망이를 휘두르는 기현상이 컸다. 현재 주전 라인업에서 올시즌 2군물의 영향을 안 받은 선수는 박용택-히메네스-채은성 클린업과 정성훈 밖에 없다. 아무리 타고투저라지만 그 외 선수들이 이천밥만 먹었다하면 죄다 3할을 치고[6] 장타율마저 큰 상승폭을 그리고 있다보니 2016시즌 신경식은 팀이 이길때마다 그야말로 까방권을 흡입하고 있는 중이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82OB 베어스77293.334
(4위)
98
(2위)
21
(2위)
3454
(3위)
4014
1983100377.2681011515504710
19843191.2312150112153
1985110404.28011323
(3위)
4858
(4위)
5416
1986106380.271103155
(3위)
134376
1987102349.2699486
(5위)
339395
1988107378.2881091234384112
1989118422.275116
(3위)
25
(1위)
6
(1위)
8575525
1990117385.2559821
(5위)
25423814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1삼성 라이온즈126460.309142
(2위)
1537577120
1992117423.2671131523416117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3쌍방울 레이더스119418.2751151825493512
199493227.22050141226232
19954143.2099100330
통산13644650.2761282208385656055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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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82년은 수비를 기준으로 시상.
  2. 당시 OB에는 두 명의 이근식이 있었는데 내야수 이근식은 "큰 이근식", 외야수 이근식은 "작은 이근식"으로 구분했다. 참고로 이근식은 신경식과의 1루수 주전 경쟁에 밀려 벤치만 덥히다가 1982년을 끝으로 타율 0.185라는 부진한 성적만 남긴 채 은퇴했고, 작은 이근식은 1986년 까지 주로 내야 백업으로 선수 생활을 유지했다.
  3. 이건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다. OB 시절부터 김성근과 연을 맺었고, 김성근 감독이 삼성에 부임하면서 같이 이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삼성을 떠나면서, 신경식도 쌍방울로 축출되게 된다. 다만 재미있는건 쌍방울에서 선수 생활이 끝난 바로 그 다음에 김성근이 쌍방울의 감독으로 취임했다는 것.
  4. 그렇지만 몇몇 증언에 의하면 오지환은 우타석에서의 컨택능력이 시망이라 좌타로 전향시켰다고 한다.
  5. 다만 배병옥은 갓 1년차인 상황에서 언더, 사이드암 투수 상대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한정해 좌타석으로 돌린 것이며 후반에는 다시 우타석에 들어서게 했다.
  6. 오지환은 강등전에 타율을 너무 까먹어놔서 3할까진 회복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