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일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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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영 및 구성

아름다운 여의도 KBS에~ 유머 1번지로 터 잡으시고~ [1]

1983년 4월 2일부터 1988년 3월까지 KBS 2TV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50분, 1988년 4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40분, 1991년 5월부터 1992년 10월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50분에 방영된 개그 프로그램. 동시에 198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2]

초기에는 단편 코미디 프로들로 구성되어 있다가 나중에는 고정 코너들을 선정하고 틈틈히 단편 개그 코너들을 투입하는 유연한 진행을 보였다.

이 진행은 동일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식면에선 오히려 쇼 비디오 쟈키쪽이 더 가깝다고 봐야한다. 스탠딩 코미디나 애드립 혹은 순간의 자극보다는 콩트나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코메디 연기'를 하는 희극 같은 분위기의 코너가 많았다. 한 달 정도는 공개 코미디로 전향하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2 출연진

이 작품에서 배출된 스타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다가 쫄딱 망하고 범죄자가 된 심형래, 탤런트로 업종변경을 한 임하룡, 故김형곤등이 유명하다. 기본적인 진행 대본은 PD가 작성하였으며 세부적인 대본의 작성과 편집은 해당 코너의 담당 개그맨들이 참여한 당시로선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개그의 대표적인 마스코트인 영구가 탄생하였으며 군대에 대한 풍자와 개그를 다룬 코너인 동작그만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워낙 오래된 방송이라서 초기에 병풍이었던 최양락이 나중에는 주역으로 오르는 등 부침이 심했다. 6개월이나 1년 정도 장수 코너를 제외하고 모두 갈아버리는 것으로 재탄생했는데...

출연진은 아래와 같다.

심형래, 임하룡, 김형곤, 전유성, 최양락, 엄용수, 장두석, 김한국, 오재미, 이창훈, 김학래, 이성미, 김정식, 배삼룡, 정명재, 이상운, 이봉원, 양종철, 이경래, 손영춘, 조금산, 박승대, 임미숙, 서인석, 서원섭, 이선민, 김용, 김진호, 팽현숙, 김현영, 곽재문, 서현선, 윤혜영, 한정호, 김종국, 문영미, 성낙앙, 조문식, 최영준, 김의환, 최형만, 전효실, 김찬, 송영길, 최영준. 김호남 등이다.

3 대표 코너

3.1 아르바이트 백과

방영기간: 1985년 4월 ~ 1987년 7월
영악한 선배 장두석과 거기에 휘말려 늘 이용당하고 골탕먹는 후배 김정식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는 내용. 정식의 연인으로 나오는 개그우먼 임미숙이 오해해 김정식에게 날리는 멘트인 "짐~승~"은 코너에 시작되는 "아~ 아~ 아르바이트~"라는 멘트와 함께 나름의 유행어였다.

3.2 변방의 북소리

방영기간: 1986년 7월 ~ 1987년 9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임하룡장군, 심형래 등 여러 개그맨들이 군졸로 나와서 "군졸이~군졸이~ "[3] 라는 군가(?)를 불러 유행시킨 코미디. 개그맨 김용이 전령으로 나와 항상 실수 투성이 어명이나 정찰 상황을 전하고 장군에게 혼나다가 장군님~ 약오르시죠? 이 말하고 곱배기로 더 혼나기 일쑤였다. 가끔 전투씬이나 훈련씬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아군끼리 전투 훈련하는데 심형래가 성을 지키는 쪽을 훈련하고 다른 아군이 쳐들어오는 적군을 맡아 훈련하는데 성 안에서 임하룡이 무기를 던져라! 라고 명령하자 대포를 통째로 내던져서 밑에 아군들이 다 깔려버린다. 임하룡이 "임마! 대포는 쏴야지 그냥 던지면 어떻게 해!"라고 화내자 저것도 무기잖아요~~라고 말하는 심형래를 두고 임하룡이 으이구! 너때문에 속터진다! 이러고 끝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유행어로 경사났네 경사났어 등이 있는데, 현충일날 방영된 에피소드에선 이 대사를 그대로 쓰기가 그랬는지 좀 슬픈 이야기로 바꾼 적도 있다.

나중에는 코너명을 "승리의 북소리"로 바꾸었는데, 맨날 전쟁에서 패배하는 얘기만 나와 현역 군인들 사기에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훗날에 심형래 쇼를 통해 다시 부활했는데, 장군 역은 한참 후배인 김준호가 맡았다.

3.3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방영기간: 1986년 11월 ~ 1987년 4월, 1987년 7월 ~ 1988년 12월

3.4 북청 물장수

방영기간: 1987년 7월 ~ 1988년 12월
당시 신인이던 KBS 공채 2기 개그맨들을 주연으로 내세워서 제작한 코너로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북청을 무대로 청년 물장수 이봉원과 그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선배 물장수 장두석, 라디오 장수 김의환 등과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특히 이봉원과 장두석이 앉았다 일어나며 악수하는 "아이고~ 이 사장"(장두석) "아이고~ 장사장님"(이봉원) "반갑구만~"(장두석) "반갑십니더"(이봉원)가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유행어는 28년 후...

3.5 제7 병동

방영기간: 1987년 10월 ~ 1988년 4월
제7 병동의 남자 간호사 김정식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드라마나 영화를 베이스로 한 코미디는 있으나 반대로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다.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코미디쪽이 폐지되었다.

동명의 드라마는 개그와는 거리가 먼 메디컬 드라마(제작 여건등으로 인해 수술씬등이 적고, 환자와 의료진의 이야기 위주)로 종합병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름 있는 메디컬 드라마였으나 조기종영당해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고, 선구자 자리마저도 내어줬다. 여러모로 안습... 사실 80년대 초반 비슷한 메디컬 드라마도 같은 길을 걸었다.

3.6 남 그리고 여

방영기간: 1987년 ~ 1988년
가부장적인 남편 철민(최양락)과 순종적인 부인 현숙(팽현숙), 그리고 어리숙한 아저씨(전유성)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룬 코너. 유행어는 최양락의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최양락-팽현숙은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해 개그맨 1호 커플이 된다. 그리고 상황역전

3.7 영구야 영구야

방영기간: 1988년 4월 ~ 1990년 1월
본래 유머 일번지중 한 코너인 '원작따로 코미디따로'의 한 시리즈로 시작되었으며 드라마 '여로'를 베이스로 한 코너였다. 심형래의 주인공 캐릭터인 영구가 크게 인기를 끌어[4] 원래 영구야 영구야는 단편 몇주로 끝내고 다시 다른 작품을 베이스로 할 예정이었으나 원작따로 코미디따로는 사라지고 아예 영구야 영구야가 고정코너가 된다. 영구의 아버지로는 송영길이 출연. 영구의 이름을 지은 방법으로는, 01, 02, 03(...), 04..를 계속 해보다가, 07(영칠)은 너무 칠칠맞고, 08(영팔)은 이름이 너무 웃긴다고 하다가, 09(영구)가 괜찮겠다고 해서 지었다고 한다.

배경은 원작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제시대를 따르고 있지만, 영구는 우연히 김학래가 이끄는 독립군 비밀조직의 일원이 되어 첩보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임무를 하달받고 코피가 나도록 쾅! 뛰어서 큰절을 하는게 또다른 인기요인이 되기도 했으며, 영구는 당시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어 극장용 영화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도 나왔다. 영구의 동료인 조춘과 김유행 콤비의 일명 쌍라이트 형제도 큰 인기를 끌며 또다른 어린이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배삼룡이 이 코너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6.25 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공산화 운동을 펼치던 김삼룡 역이었다.

3.8 동작그만

방영기간: 1988년 6월 ~ 1991년 5월

3.9 청춘을 돌려다오

방영기간: 1988년 10월 ~ 1990년 2월
젊은오빠 임하룡이 손자손녀 다둔 할아버지로 분하며 친구 전유성과의 툭탁거리는 우정, 동네할머니 임미숙과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임하룡은 여기서 "내가 일주일만 젊었어도...아우!"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90년 초반 아이큐 점프에 만화로도 연재된 바 있다. 그리던 이가 개그맨 출신으로 만화도 그렸던 정명재였다.

3.10 고독한 사냥꾼

방영기간: 1989년 1월 ~ 1990년 6월
최양락이 말그대로 여자들을 꼬시는 시티 헌터(…)로서 활약하는 이야기. 매번 단골까페에 나올 때마다의 독백인 "내가 이 까페에 오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 멘트를 줄줄이 외우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본인은 신사를 자처하지만 실은 백수에다가 작업도 늘 실패해서, 농촌 처녀에게 집적대다 농부아저씨들에게 두들겨맞고 난폭운전 여성을 만나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극도의 남자혐오증+폭력범 여성을 만나서 여성공포증에 걸리거나 여름 되면 납량특집으로 처녀귀신에게 얽히거나 여경에게 끌려가 부천서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는 등 온갖 고생만 다한다. 무엇보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인신매매범 일당인 여자에게 당해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갔다(...) 나름대로 당시사실 지금도 이슈가 된 인신매매를 비꼰 멘트랄까. 그러다 보니 "에구에구에구 그 날 난 ~~~ 당했다."라는 독백성 멘트로 장식하는 게 현실. [5]

마지막회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인 명단에 이름이 실리지만 무사한 모습으로 명동에 나타나 똑같은 등장대사를 읊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3.11 탱자 가라사대

방영기간: 1989년 5월 ~ 1990년 10월

시사 코미디의 본좌인 故김형곤씨의 출연작으로 원래 제자 백가시대를 배경으로 한 '꽁자 가라사대'라는 코너였으나 어떤 이유로 갑자기 '꽁자'에서 '탱자'로 인물이 바뀌었다. 극중에서는 꽁자가 입시 비리가 적발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며 제자들을 내보냈다. 누가 부정 입학한 제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꽁자 曰"너희 전부". 그 제자들은 다음회에 탱자 밑으로 가있었다. 일각에서 이를두고 꽁자가 공자를 비하한다는 이유로 유림쪽에서 태클을 건 탓에 탱자로 바뀐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아마도 탱자나무와 관계된 드립 및 꽁자가 어감이 안좋아서 바꿨다는게 맞다. 당시 유림계는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미명하에 은근히 탄압받던 시기여서 이런 걸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탱자로 바꾸니까 가수 이택림이 자기 별명이 탱자인데 왜 쓰냐고 태클을 걸기도(...).

탱자라는 사이비스러운 스승과 그 제자들이 벌이는 이야기로 역시 당대 사회를 열심히 비꼬고 있다. 사회만 비꼬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행태도 비꼬는 게 있었다. 특히 명언 하나를 날리고 나서 "적어라, 적어!", "꼭 공부 안 하는 것들이~"로 시작하는 부분은 당시의 입시위주 교육과 그 속에서 당시의 중고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곧잘 핑계로 대던 미신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었다.

명절 특집으로 한번 故이주일 씨가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실제로야 출연진들이 고개도 못들 대선배이지만 여기서는 "머리 밀면 다 탱자 아니냐"면서 가짜 행세를 하며 탱자와 대결하는 바보 사기꾼 역.

제자로는 이자, 고자, 환자, 애자, 양자(오재미)가 출연했다. '이자'는 탱자가 잘못된 지식을 읊으면 딴죽을 걸어서 탱자로부터 '그래 니 잘났다, 니(네)팔뚝 굵다'라는 대사를 이끌어냈으며 이는 본래 존재하던 '그래, 니 잘났다. 니똥 굵다'라는 유행어를 재유행시켰다. 이후 잘난척하는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용도로 니똥샤프심, 니똥칼라파워[6], 니똥칼라 등의 유행어들이 새로 파생되었으며 봉숭아 학당에서 복학생이 이 유행어를 다시 들고 나왔다.

3.12 충무로 차차차

방영기간: 1990년 1월 ~ 6월
1950년대 충무로에서 영화배우 지망생인 심형래와 감독인 전유성, 그리고 임화수를 풍자한 제작자(김학래)가 나와서 벌이는 영화 제작 이야기들. 윤봉길 의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다가 진짜 폭탄을 던져서 다들 숯덩이처럼 새커멓게 멍하게 있는 장면도 나오기도 하고 암울한 배경이라 그런지 제작비를 아끼라고 허구헌날 끼어드는 무식한 제작자의 연기가 감초이다. 이를 본 임화수의 지인들이 임화수 병신 만들기라고 분노했으나 되려 그 시절을 겪은 이들에게 김학래의 재수없는 말투와 연기가 정말 임화수를 보는 모습이라고 감탄 및 심지어 임화수가 생각나서 치가 떨린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멍한 얼굴에 둥근 모자를 쓰고 엄청나게 큰 단추를 매달고 나온 심형래의 패션이 인상적이어서 심형래가 이 차림으로 신문광고에 나온 바 있다.

3.13 여자, 여자, 여자

방영기간 : 1990년 2월 ~ 6월
여자 세명이 사는 하숙에 들어온 사이코 예술가 임하룡의 이야기로 극의 실제 주인공은 여자 세명인 이희구, 임미숙, 김미화이다. 중간에 임하룡이 아이디어 부재와 비중 문제로 갑자기 점잖은 사람으로 출연하고 하차하면서 유야무야 종료되었다.

3.14 내일은 챔피언

방영기간: 1990년 11월 ~ 1991년 4월
볼수 있는 곳.

영구야 영구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심형래가 내놓은 새로운 코너. 권투체육관을 무대로 챔피언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청춘을 그리고 있지만 실은 관장부터 관생들까지 전부 다 바보.

관장 임하룡은 머리를 치면 텅 빈 냄비 소리가 나고 돈이 없어서 얼음으로 된 집에서 산다. 심형래와 양종철이 관장이 사는 집으로 갔다가 놀라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걸프전으로 인해 기름 못 때니 집이고 가구고 죄다 얼어붙은 것이다. 왕고참 양종철은 한국 라이트급 랭킹 13위라며 자랑하지만 설정상 국내 라이트급 선수가 딱 13명. 권투하겠다며 시골서 상경한 심형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기인 오재미는 감량에 실패해서 헤비급이 되었지만 국내에 다른 헤비급 선수가 없어서 시합도 못하고 매번 먹어대고만 있다.

실력은 다들 안습. 심형래는 감량하겠다며 한달 굶은 뒤 글러브를 빵으로, 오재미를 돼지로 착각해서 잡아먹으려 들고(!) 또 수행하겠다며 한달간 안 씻어서 냄새로 상대방이 기권해 승리하거나 한다. 이때 심형래의 별명 '칙칙이'는 또다시 히트했으며 약간 다른 제목(?)인 내일은 챰피온 이란 어린이용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인 전유성이 나중에 TV에서 이거 찍고 호되게 망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참패했다.

당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대 유행이었던 시기였고 동네 오락실에서 M.바이슨(복서)을 칙칙이라고 불렀다.

심형래 쇼에서 리메이크되었다. 관장은 임하룡에서 김준호로 변경. 나머지 멤버들은 유민상, 정태호, 신종령 등 후배 개그맨들로 채웠다. 줄거리는 관장님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권투체육관 멤버들이 이를 도우러 가나. 심형래는 짐을 올리다가 끈에 밀려서 계속해서 추락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처는 심해지지만. 관장은 놀러나갔다고 갈구기만 한다... 헌데 이 에피소드는 리메이크답게 이전에 했던 걸 그대로 했다. 다만 거기에선 심형래와 임하룡이 이삿짐을 올리다가 놓고 다른 이들이 연이어 추락하는데 올라올때마다 붕대 투성이가 된다.

3.15 맨손의 청춘

방영기간 : 1990년 7월 ~ 1991년 2월
출연: 최양락, 이경래, 이창훈, 김종국, 양종철, 전유성
맹구로 유명한 이창훈의 본격 코미디 출세작. 대중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엮는 휴머니즘 코미디이다. 목욕탕 사장[7], 이발사 병만이(최양락), 때밀이 달용이(이창훈), 구두닦이 칠성이 (이경래) 복덕방 직원 삼돌이(김종국)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특히, 달용이의 '난 짜장면 싫어, 난 짬뽕!', '난 절대 리바이벌은 안해'가 대표 유행어.

다만, 극중에서 묘사되는 목욕탕 업계와 현실의 목욕탕 업계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때밀이 달용이에게 갑자기 일을 하지 못할 급한 사정이 생기면 그냥 친구 김종국이 대신 일을 해주는데 현실에서는 때밀이들이 바쁘거나 일을 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목욕탕에서는 일용직 때밀이인 스피아를 구한다. 또한, 칠성이의 꼬드김으로 달용이가 대우가 좋은 호텔 사우나로 가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장인 양종철이 처음에는 해고하려고 하다가 달용이의 생계를 걱정하여 너그럽게 계속 같이 일하기로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또한 현실과 차이가 있다. 때밀이는 사용자인 목욕탕 사장과 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아니라 이발사,구두닦이처럼 보증금을 내고 목욕탕 시설을 임대하여 영업하는 자영업자이다. 월급제 때밀이도 목욕탕 사장이 아닌 때밀이 사장이 구두계약인 고용계약을 맺고 채용하는 것으로 목욕탕 사장이 채용과 해고를 할 권한이 없다.

3.16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 말려

방영기간: 1990년 7월 ~ 10월
심형래가 진행한 코너. 예쁜 여자 좋아하고 사고 뭉치 바보 왕세자와 궁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약삭빠른 내시 최영준[8]과 미녀 무수리 서현선[9], 맨날 나서다가 구박받는 추녀 무수리 김현영이 주로 나온다. 코너가 코너인지라 다들 나사가 빠진 캐릭터들이 많다. 마지막회는 거지인 오재미와 심형래가 뒤바뀐다는 왕자와 거지 같은 내용. 최영준의 '연습이었소~~'가 대표 유행어.

역시 심형래 쇼에서 리메이크. 여기서 심형래는 이제 왕이 되었고. 박성광이 왕세자로 나온다. 잠깐 슈퍼스타 KBS가 조선시대 버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3.17 꽃피는 봄이 오면

방영기간: 1990년 11월 ~ 1991년 10월
故김형곤의 시사 코미디로 자칭 고려의 왕손이라는 거지 왕초 김형곤과 그 휘하 거지들이 벌이는 이야기다. 원로 코미디언 故배삼룡도 이 코너에 참여했는데, 거지 왕초의 주책맞은 삼촌 역할로 나왔다. 항상 코너 마무리로 "꽃피는 봄이 오면... ***하겠지?"라고 약간은 기대를 담은 한 마디씩을 남겼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외압성 하차에 따른 김형곤의 반발도 들어가서인지 풍자와 비판이 더더욱 노골적이었다. 오죽하면 김형곤이나 등장인물들이 연말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몇 년전만 해도 이런 거 방영하다간 우리들 무사하지 못했죠라고 씁쓸하게 웃었을 정도였다. 이를테면 거지 왕초인 김형곤이 지팡이를 들다가 부러지자 "지팡이가 썩었어!썩었어! 이래놓고 뭐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거야!" 라고 돌직구를 날려 경찰을 비판했다.

3.18 추억의 책가방

방영기간: 1991년 5월 ~ 1992년 3월
내일은 챔피언이 끝나고 시작된 임하룡의 새로운 코너. 여기서는 70년대 까까머리의 일제식 교복을 입은 날라리 고등학생 '해룡이'로 등장하며, 그의 특기인 "다이아몬드 스텝"이 유래한 코너가 바로 여기다. 우등생이지만 멘탈이 찌질한 '조금생' 역에 조금산, 해룡이와 같이 다니는 친구 '걸레' 역에 이경래, 해룡이에게 구박 받지만 그를 열렬히 짝사랑하는 '오달자'역에 김현영, 무서운 담임선생님이자 오달자의 친오빠인 '게슈타포'[10] 역에 김진호가 출연했다. 해룡이가 사는 동네에 수학여행을 온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비를 붙는 적이 있는데, 그때 타학교생으로 나온 엑스트라가 바로 김용만남희석이었다.

엔딩은 담임선생님의 회갑 잔치에 금생, 걸래 부부가 온 가운데 해룡이만 늦게 나타난다. 그는 여전히 춤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못 말리는 가장이 되었는데 부인은 바로 오달자(..)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완전히 잡혀 살고 있었다.

3.19 부채도사


방영기간: 1991년
'부채신'을 모신다는 돌팔이 도사 이야기. 무릎팍도사에 영향을 준 코너이다.[11] 도사 역은 장두석이, 손님 역은 주로 김의환이, 보조 아가씨 역에 전효실이 나왔다. 원래는 손님 김의환, 도사 장두석 투톱 체제였는데 김의환이 SBS로 가버리자 그동안 부채도사가 엉터리점으로 사기를 치는걸 보다 못한 진짜 영험한 도사가 수행이 필요하다며 부채도사를 산속으로 끌고가 버리고 조수 아가씨는 몇십년이 되도록 도사를 그리워하며 기다린다는 조금 암울한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삽입곡으로 "실례 실례 합니다~"로 시작되는 "실례송"이 있다. 손님이 점 보러 들어올 때 나오는 노래로, 손님과 장두석이 한 소절씩 번갈아 부르는 것이 특징.

여담으로 김영하가 90년대 초에 아이큐 점프인가로 만화로 이걸 거의 베낀 걸 연재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도 욕처먹고 금새 연재를 끝난 바 있다.(제목 추가바람)

4 몰락

사실 인기가 없는 코너는 그때그때 바로 내려버렸기 때문에 개콘이 나오기 전까지는 KBS 간판코미디 프로였다. 신인인 최양락등이 이 작품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볼 정도였고 대학 개그제 출신의 유재석, 김용만등의 새로운 얼굴도 그때 그때 충원되던바.

문제는 SBS의 개국으로 인해 중추를 이루던 개그맨들이 대부분 SBS로 가는 바람에 코너가 하루 아침에 없어져버렸다. 구타는 심하지만 아주 무명부터 선배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올라와야 할 신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빈약한 실력으로 코너를 맡으니 결과적으로는 아이디어나 연기나 모두 떨어지게 되는 법, 그나마 간판을 지켰던 임하룡도 결국 연기에 뛰어들고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MBC와 KBS를 동시에 출연했다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정통 코미디보다는 일밤을 비롯한 버라이어티 예능쪽으로 코미디 방송의 대세가 바뀌면서 입지가 좁아진 것도 문제, 결국 간판 장수 프로그램인 유머일번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먼 훗날 김병만이 이렇게 망해버린 정통 코미디의 재건성 발언을 시상식때 수상소감으로 말해서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마지막회는 김정식이 SBS에 간 사람들에 대한 한풀이 배뱅이 굿을 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몰락한 사람들 뿐 아니라 SBS 이적 개그맨도 나중에는 용도 폐기되었고 나름 성공적으로 이적했다고 하는 최양락조차도 어느날 갑자기 잘리는 바람에 호주로 이민을 갈까 생각할 정도였다.

이후 KBS 개그는 '한바탕 웃음으로-명랑극장-코미디 일번지'로 근근히 명맥을 이었으나 '웃으면 좋아요'와 '웃으며 삽시다'를 내세운 SBS에게 지분의 일부를 내줘야 했으며 그마저도 90년대 중후반에 이경실, 박명수, 서경석, 이윤석, 김진수, 조혜련 등이 주축이 된 '오늘은 좋은날'과 '웃으면 복이 와요' 등을 내세운 MBC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며 암흑기[12]에 빠진다. KBS가 코미디계의 패권을 다시 되찾아오는 시기는 1999년에 개그 콘서트로 큰 히트를 치면서 부터다.

5 여담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때 나오는 음악이 프로레슬러 미사와 미츠하루의 입장 테마곡 (정확히는 성룡, 홍금보, 원표 주연인 홍콩 영화 쾌찬차(스파르탄X는 일본 개봉명)메인 테마음악이다.
  1. 2013년 3월 3일 개그 콘서트 - 코미디 40년 특집에서 마지막 무대로 꾸며졌던 코미디는 흐른다의 맨 첫 소절.
  2. 여담으로 199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옆 동네에서 방영했던 오늘은 좋은 날.
  3. 주로 동요 둥글게 둥글게의 노래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
  4. 엄청난 인기를 끈 결과 원래 "영구"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여로의 영구보다 심형래의 영구가 더 유명해지게되었다. 개그캐릭터로서, 그리고 개그맨 심형래의 페르소나로서의 영구가 국민적인 바보 캐릭터가 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로의 영구가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 이후로 잊혀지게 된 것도 다 이것 때문. 다만 여기에 뒷 사정이 있기는 한데 여로는 녹화 테이프를 알뜰하게 재활용을 했기때문에 방송자료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한 몫한다.
  5. 참고로 이 멘트는 윤다훈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나왔었다.물론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가 했었던 시간대에 방송한 것.
  6. 당시 출시된 아이스크림
  7. 사장 역은 원래 양종철이 맡았다가 극 중반에 전유성으로 교체되었다.
  8. 홍길동 시리즈의 하인 덜렁이, 반달가면의 나반장 역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1989)을 처음으로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 6시 내고향에서 여리꾼(연립꾼) 역할을 맡아서 토산물을 소개해주는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TBN 한국교통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9. 원로 코미디언 서영춘의 딸이다.
  10. 옛날 선생님들의 흔한 별명이었다.
  11. 물론 오프닝 - 오게된 이유 - 끝 이라는 구성만 계승한 것이지 무릎팍 도사와 부채도사의 웃음 포인트는 다르다.
  12. 그나마 코미디 세상만사 덕분에 코미디 프로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