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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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龍煥
1932년 2월 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호는 정암(靜巖)이다.

1932년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박정희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장관 등을 지냈다.

오늘날까지도 "고리대금업 단속"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헌법에 보장된 사유재산권 침해", 재벌감싸기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가 극명히 나뉘는 초법적인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1] 추진자로써 언론에 오르내리며 구설수에 올랐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김용환을 젊고 유능한 관료로 크게 신뢰하였다고 한다.

이후 제13대, 14대, 15대, 16대 국회의원(신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통일국민당, 신민당, 자유민주연합, 희망의 한국신당, 한나라당)을 지냈다.

1996년 10월 자민련 사무총장으로 김종필 총재를 대리해서 민주당 김대중 총재와 만나서 양당간 공조방안을 처음 의논하였다. 이후 자민련과 민주당은 합동 의원총회,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 등으로 협력관계를 다져가면서 결국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0월 대선후보 단일화와 당선후 국정 공동운영, 1999년말까지 내각제 개헌 완료를 내용으로 하는 DJP연합을 합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용환은 새정치국민회의 한광옥 부총재와 함께 막후협상을 통해서 DJP연합을 성사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2]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에는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맡아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재무부 관료였으나 오랜 기간 야인으로 머물고 있던 이헌재를 다시 불러들여서 신설된 금융감독위원장(현 금융위원회)에 앉히기도 하였다.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DJP연합에 앞장섰지만, 개헌시한이었던 1999년 김대중-김종필 양김 회동 끝에 내각제 개헌 연기 선언이 나오자, 이에 반발해서 자민련을 탈당하였다. 이때부터 명백한 반DJ, 반JP 노선을 걷는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하나회 출신인 허화평 등과 함께 희망의 한국신당을 창당하였으나 충남 서천군보령시 선거구에서 홀로 당선되었다. 1인정당의 한계를 느끼고는 2001년 한국신당을 해산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부총재가 되었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가 이회창-김종필 연대를 추진하자, 격렬하게 반발해서 무산시키기도 하였다.[3]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의원을 적극 지지하였다.

현재는 강창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자문단 격인 "7인회" 멤버이자 새누리당 상임 고문으로 있다.

이한구새누리당 원내대표와는 동서 지간이다.

DJP연합 초창기부터 정권 초기의 중요한 시기까지 김용환의 일처리를 지켜본 김대중은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완성된 자서전에서 김용환의 인재보는 안목에 찬사를 보냈다.

반면에 금융권을 틀어쥐고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한다는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 인맥 즉 모피아(Mopia) 그룹의 시초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김용환은 1970년대 재무부 장관으로 특혜금융, 정책금융을 법률적으로 제도화해서, 정권이 금융권을 통제하는 관치경제를 공고히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Mopia인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 언론에선 보통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모피아 인맥의 대부로 지칭하는데, 공직에서 물러난 후 오랜기간 변방을 떠돌던 이헌재를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시켜 준것도 김용환이다.

별명이 꾀돌이인데 김용환 본인은 이 별명을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나이 80 넘어서까지 자기가 꾀돌이 소리를 들어야겠냐면서(...)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대천시 보령군)신민주공화당-당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대천시 보령군)민주자유당-당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보령시)자유민주연합-당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보령시 서천군)희망의 한국신당-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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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과 사채권자의 모든 채권채무 관계는 72년 8월3일을 기준으로 무효화 한다. 둘째, 정부가 2000억원을 마련해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단기고리 대출금의 일부를 연리 8% 장기저리 대출(3년간 거치据置 후 5년에 걸쳐 분할상환)로 전환하도록 지원한다. 셋째, 월 3.84%, 연 46%에 달하는 사채 이율을 월 1.35%, 연 16.2%로 낮춘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의 평설.
  2.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97> DJP연합의 대선 승리.
  3. 이회창은 2002년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표를 끌어모은 노무현 후보에게 불과 57만 표 차이로 석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