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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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20(현재 감독)
파일:Attachment/doosan bears s.png김태형
(두산 베어스)
파일:Attachment/nc dinos s.png김경문
(NC 다이노스)
파일:Attachment/nexen heros s.png장정석
(넥센 히어로즈)
양상문
(LG 트윈스)
width=58김기태
(KIA 타이거즈)
파일:Attachment/sk wyverns s.png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파일:Attachment/hanwha eagles s.png김성근
(한화 이글스)
파일:Attachment/lotte giants s.png조원우
(롯데 자이언츠)
파일:Attachment/samsung lions s.png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파일:Attachment/KT Wiz s.png김진욱
(kt 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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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No.74
조원우(趙原佑 / Won-Woo Cho)
생년월일1971년 4월 8일
출신지부산광역시 수영구[1]
학력수영초-부산중-부산고-고려대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4년 2차 지명 5라운드 (쌍방울)
소속팀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9)
SK 와이번스 (2000~2005)
한화 이글스 (2005~2008)
응원가SK시절: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2]
한화시절: 동요《금강산》[3]
지도자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08~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1~2012)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13)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 (2014~2015)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5)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6~)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6번
최해명(1992~1993)조원우(1994~1999)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36번
팀 창단조원우(2000~2002)곽국희(2003)
SK 와이번스 등번호 9번
곽국희(2001~2002)조원우(2003~2004)조영민[4](2005~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27번
조영민[5](2004~2005)조원우(2005~2008)빅터 디아즈(2009)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김기태
(2003)
조원우
(2004)
강성우
(2005)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이종운
(2015)
조원우
(2016~)
아직 승부처가 아니다.

1 소개

KBO 리그 선수이자 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

2 선수 시절

외야수비의 달인

2.1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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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의 돌격대장, 마지막 선봉장 시절

부산 출신의 선수로, 부산고를 졸업하고 동기 강상수와 함께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여 故 임수혁, 마해영, 강상수[6], 故 박정혁, 심재학, 조경환 등과 함께 1990년대 고려대학교의 불과 같다고 표현되던 극강의 타선에 일익을 담당하던 선수였다.

이후 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7],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가 IMF로 인한 부도로 해체된 뒤 SK 와이번스에 인계됐고,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된 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화 이글스에서 몸담았다. 15년 동안 1368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282, 68홈런, 443타점, 123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쌍방울 시절인 1998년에는 149안타로 최다 안타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유일하게 그 해에 두자리수 홈런(12홈런)을 기록했으며, 또한 희생타 1위(39개)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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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시절

큰 기대를 가지고 0.314로 고감도 타격을 보여주던 1999년 5월, 수비 훈련 도중 공을 잘못 밟아 왼쪽 고관절 인대에 부상을 입었고 시즌 아웃되었다.[8] 조원우가 재활을 하는 동안 쌍방울은 재정난 끝에 해체되어 그 선수단을 이어받아 SK 와이번스가 창단되어 SK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SK 유니폼을 입은 첫 해인 2000년 부상에서 복귀하여 주전 외야수로 나왔으나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3년부터 타격감을 다시 되찾기 시작하였고, 그해 SK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보게 되나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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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조로켓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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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특유의 타격폼

2004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어 FA를 행사하였으며 4년간 17억 5천만원의 조건을 요구하여 원 소속팀 SK와 이견을 보인 끝에 시장에 나왔고, 김재현을 놓친 LG 트윈스정수근의 이적 이후 외야요원의 공백을 메꾸는데 실패했던 두산 베어스 등에서 조원우를 노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긴 했으나 요구조건이 너무 셌던 탓인지 다른 팀과 계약을 하지 못한 채 2005년 1월까지 FA 미아로 남아있다가 결국 원 소속 팀 SK와 계약 기간 2년 총액 4억 5천만원에 계약하였다.

FA 과정에서 미운 털이 박힌 탓인지 외야진의 핵이었던 채종범이 병풍으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로 영입된 박재홍이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고, 좌익수 자리마저 군에서 제대하고 합류한 조동화가 차지하며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고, 2005년 시즌 중 투수 조영민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1971년생과 1981년생의 트레이드였기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조원우가 연일 불꽃타를 휘두르면서 선전하였다. 시즌 후반 규정타석을 채우며 막판까지 이병규, 김재현과 함께 타격왕 경쟁을 하였다.[9] 이 분위기를 타서 한화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10] 조원우는 친정팀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11]를 휘두르면서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다.

한화에서 2006년과 2007년에 100경기 이상 출전하였으나 2005년의 모습과 같지는 않았으며 뱃스피드가 눈에 띄게 느려져 빗맞는 타구, 특히 수직으로 높이 뻗기만 하는 내야 플라이를 양산하였고 팬들은 로켓타구만 날린다하며 조로켓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1군 5경기 출전에 머물러 결국 2008년 10월에 방출되었다.

우승 경력은 없으며 준우승은 SK 시절인 2003년과 한화 시절인 2006년에 경험했고, 1998년에는 최다안타 부분 2위이다. 쌍방울-SK 시절 동료였던 김원형이 2007년 SK에서 우승을 맛보면서 조원우에 대해 아쉬워했기도 했다.

3 지도자 시절

주로 외야수비 코치를 맡은 그는 그의 손을 거친 외야수들의 수비가 꽤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3.1 한화 이글스

2008년 11월에 한화 2군 코치로 다시 합류했다. 2009년 1시즌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 코치로 활동한 후, 김태균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하면서 그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다.

3.2 롯데 자이언츠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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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연고로 하고 있는 팀으로 돌아온 후 외야 수비코치를 맡게 된 조원우.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 수비코치로 임명되었다. 이례적으로 기용된 1루 코치 겸 외야 수비코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훈련을 받았던 손아섭김주찬의 외야 수비가 가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 수비에선 답이 안 나오던 김주찬마저 7월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수비수로 바꿔 놨으니...# 이 때문에 수비코치지만 내야를 담당하는 공필성과 많이 비교되고 있는 상황. 7월 31일 경기에서 보살 2개를 기록했던 손아섭도 인터뷰에서 조원우 코치의 지도 덕에 수비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건 특급 좌익수 홍성흔 차례다!

# 코치님 날 가져요 헠헠

근성으로 불의의 부상을 딛고 일어난, 쌍방울 레이더스다운 선수.

다만 2012년에는 주루코치였는데, 3루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판단으로 롯갤이나 엠팍등지에서 좀 까였었다. 어째서 이 항목에 제대로 작성이 되지 않았었는지 의문.

2012년 10월 말 부로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다. #아이고 코치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의 퇴임이 조원우 코치의 사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3.3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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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3 시즌 두산 베어스의 외야수비 코치로 임명됐으나,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김민재와 함께 사의를 표명하였다.

3.4 SK 와이번스

2013년 12월 18일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조영민과의 트레이드 이후 8년만에 SK로 다시 오게 되었다.

2014년 SK가 막장이 되면서 이만수 감독을 포함 모든 코치들이 욕을 먹는 와중에 뛰어난 판단으로 김경기 타격코치와 더불어 욕을 안 먹는 코치가 되었다.

2015년부터는 외야수비코치로 임명되어 이명기의 막장 수비를 한번 맡겨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며, 결국 2015 시즌부터 주루코치와 외야수비코치를 겸하게 되었다. SK팬들은 이명기 수비가 만약 정말 좋아진다면 종신계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2015년 시즌 초반 이명기의 수비가 진짜 좋아졌다! 전년도에 비해 수비에 훨씬 안정감이 생긴 것은 물론 간간히 호수비도 보여주는 중. 오오 원우매직 이명기 수비 비포 앤 애프터

그리고 2015년 광복절에 김경기 수석이 재활군으로 강등되면서 1군 수석코치로 승진했다.

3.5 롯데 자이언츠 2기, 감독으로

2015년 10월 8일에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양승호 감독 재임 시절 이후 3년만에 롯데로 컴백했다. 이종운에 이은 외야수 출신 초보 감독이다. 계약기간 2년에 계약금 3억, 연봉 2억.

이종운 감독의 경질로 외야수 출신 감독의 맥이 끊길 뻔했으나 조원우의 롯데 감독 선임으로 다시 외야수 출신 감독의 명맥은 2016년에도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역대 최초 70년대생 감독이며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돌격대의 글자를 따 격동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솔직히 자 써서 돌동님만들 수는 없잖아. 뭐 못하면 돌자쓰겠지만.. 그외에 끈기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말에서 따 끈동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롯갤: 미친 또 외야수에 고려대 감독이냐 ㅋㅋㅋㅋㅋ
롯데의 대대적 구단 투자/개혁 아주 잘 봤습니다. 동빈대장은 무슨 그냥 시게미츠 아키오다
설마 조원우 감독도 이종운 감독처럼 델파이 기법으로 봅은 거냐
롯데는 초보감독 훈련만 시켜주는 곳이냐

취소선 반응처럼 팬들은 격노. 장성우 의혹 사건까지 겹쳐 아주 제대로 유전이 터졌는데 롯데 프런트로이스터도 후보군이었음 헤헷이라는 말로 감독 바뀔 때마다 하던 짓이지만 유전에 불을 붙여 팬들의 염통을 불살라버리고 있다(...) 이후 선임배경에 대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상황이 가관이다.

Q. 어제(7일)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렀다. 다음날 롯데 감독 사실이 발표됐다. 이미 얘기가 돼 있었던가.

A. "전혀 몰랐다. 앞서 롯데 관계자들로부터 '롯데 와야지'라는 농담같은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롯데에서 코치로 일한 적이 있으니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지금 SK 수석코치인데 어딜 가느냐’고 말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경기 끝나고 롯데 운영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롯데 오라고 하더라. '오늘 경기 진 사람한테 무슨 소리냐' 했더니 감독으로 영입하려 한다고 하더라. 잠시 고민 했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SK 숙소에 돌아와 함께 인천으로 이동했고, SK 코칭스태프와 맥주 한 잔 했다. 그리고 나서 롯데 단장님과 계약서에 사인했다"

원룸계약도 이따구로 졸속으론 안 하겠다.

김용희 감독한테 얘기는 하고 사인한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 근데 이창원 사장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파악해 선임했고 로이스터는 생각도 한 적 없음 ㅋ이라며 손발안맞는 언플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사장 인터뷰를 보면 위의 조원우 인터뷰와 전혀 말이 안 맞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놈의 구단은 잘 하는게 뭐냐 대체 그리고 SK 구단 관계자 인터뷰로 정말 감독에게 일절 얘기도 없이 감독행 한 게 밝혀졌다.

롯데 자이언츠는 8일 신임 감독으로 SK 조원우 전 수석코치를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원우 신임 감독은 바로 전날 밤 23시 8분께까지 SK 더그아웃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지휘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패배 바로 다음날 아침 다른 팀의 감독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히 사전 접촉이 의심될 만한 상황이었으나 SK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조원우 전 코치가) 어제 경기가 끝난 뒤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밤새 고민을 하셨고 오늘 오전에 (롯데행을 결정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SK 입장에서는 물론 아쉽지만 (프로야구 감독직은) 일부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3년 계약을 해서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렸다"고 설명했다.

조원우 인터뷰와 SK 관계자 인터뷰의 내용이 같은 것으로 보아 이창원의 인터뷰가 뻥이 된다. 사장부터 전후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엠팍 등을 위시하여 프런트는 프런트대로 조원우는 조원우대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알음알음 형성되고 있다. 시작부터 엉망.

다만 감독 자리라는 게 야구인 생활 평생 한번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는 있다. 보통 김성근을 생각하지만 김성근은 커녕 선동열 정도만 돼도 감독으로서는 크게 성공한 축에 속하는 것이 현실이다[12] 그리고 프로구단 감독 경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체 야구인들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사람이며 그렇기에 수많은 감독 후보군들이 1년짜리 감독이라도 해보려고 줄을 서는 것이 현재 프로스포츠의 현실이다. 즉 구단이 철저하게 갑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구단측을 상대로 어느 정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감독도 있지만 김성근 등 특급 정도. 그나마도 마지막 임기 성적이 안좋으면 김재박처럼 감독 복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조원우는 기존에 감독 경력조차 없었고 그만한 인재는 야구계에 충분했기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거나 조건 때문에 망설이거나[13] 구단측에서 다른 후보군을 알아볼 생각을 하면 나중에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전혀 없었다. 즉 당시 제의를 곧바로 승낙하는 건 조원우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3.5.1 2016년

승부처 성애자
그는 수비코치가 한계인가? 아니면 1군 감독으로서도 충분한 인물인가?

감독감이 부족한 KBO에서 그의 행적은 KBO의 비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2016년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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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2017년

작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 팀을 가을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자이언츠를 나락으로 이끌어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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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경기정규리그포스트시즌
2016롯데 자이언츠144667808위-
2017144
통산14466780­

4 기타

참고로 조원우의 부친이 육상선수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조원우 역시 발이 빠른 편이었다. 정확한 컨택트 능력을 생각한다면 2번 타순에 기용하는 것이 적당하나 나름대로 클러치 능력도 있어 주로 6번 타순에 기용됐다. 1번 타자로 출전한 적도 적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컴투스 프로야구 2013에서는 조원우98카드가 SK 레전드 카드가 아닌 한화 레전드 카드로 되어 있다.

SK 와이번스로 인계되어 첫 시즌을 마친 2000년에 결혼했다. 그의 부인은 공인회계사라 한다.

SK 시절인 2004년에는 등장곡으로 숫자송을 사용했는데 시즌 중후반엔 응원가 원곡이기도 한 어제밤 이야기로 등장곡을 변경하기도 했다.

별명은 쌍방울 레이더스 타선의 주축이자 이후 4번타자 김기태 등으로 이어지는 쌍방울 득점라인의 선두였기 때문에 팀명인 레이더스(돌격대)의 선두라 하여 붙여진 돌격대장. 선수생활 말년에는 조로켓이라는 눈물나는 별명도 얻었었다. [14]

하지만 쌍방울 시절에는 1번 내지는 3번타자로, 96-97 쌍방울의 전성기에 조원우-김기태-심성보-박경완에 이르는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 타선을 구축했다. 1997.98 연속 3할을 기록했으며, 1997년에는 3루타왕(9개)에 98년에는 홈런 12개를 기록할 정도로 장타능력도 있던 선수다. 게다가 그때는 박경완과 심성보까지 있었으며, 97년에는 쌍방울이 팀 득점과 홈런에서는 해태에 밀린 3위를 기록했지만 타율 출루율 장타율은 해태보다 좋은 2위를 기록하였다. 그 중심에서는 조원우가 있었다. 큰 경기에서도 나름 좋았으며, 97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무능하다고 까이는 어느 대구지방의 투수코치에게서 선두타자 홈런을 치기도 했다. 그해 비록 쌍방울은 삼성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지만, 그의 한방으로 쌍방울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불태울 수 있었다. 지금처럼 삼성이 OB 베어스와 와일드카드전 한번 했어야 했다

커리어 최다홈런이 12홈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홈런을 뻥뻥 치는 거포는 아니였고, 발이 느린 편은 아니지만 도루 20개를 넘겨본 적도 한 번 밖에 없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번개같은 발을 가진 선수도 아니였으나, 매시즌 10+ 개 정도의 2루타와 도루를 기록하며 2할 7푼 이상을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교타자였다.

이 선수에게는 세계 1위의 대기록이 하나 있으니, '외야수 부문 연속 경기 무실책'이다. 2001년 7월 5일 청주 한화전을 시작으로 이어진 이 기록은 팀을 한화로 옮긴 후인 2006년 5월 23일 대전 삼성전에서의 중계플레이 실책을 범하면서 마감했다. 총 494경기 연속 무실책. 한화 시절에는 실책이 나올 플레이를 안 해서 실책이 없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야 수비의 달인 중 한명이였던 것은 사실이다.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대런 루이스의 392경기, 종전 기록은 김종모의 265경기였다. 실제로, 통산 실책 개수가 12개이다. 1시즌당 평균 1실책도 안 했다는 뜻.

여러모로 김기태와 비슷하다. 전주가 아닌 타지역 사람이며,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둘다 정확도 높은 타자였고, 그 후 SK 와이번스에서 재회했고,[15] 감독으로 임명될 당시 최연소 감독 타이틀을 얻었다는 점도.. 둘의 차이점은 조원우는 수비가 월등하고, 홈런치는 능력은 김기태가 월등하다는 점.. 그리고 조원우가 부상으로인해 전성기가 짧아서 최근 팬들에게는 임팩트가 없다는 점...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4쌍방울 레이더스86223.2746151413261513.359.312
19953887.2302051171435.345.272
1996122284.268767122939827.320.328
1997126424.321136189
(1위)
549611526.441.355
1998126479.311149
(2위)
2041262802342.445.365
199947188.3145992622251113.479.358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0SK 와이번스2977.2211700110506.260.267
2001111307.2447515173943746.368.339
2002116297.269808283642423.391.320
2003128452.281127180848651349.374.349
2004119386.27710717233559553.355.361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5한화 이글스95351.30210617164243735.407.362
2006106341.2679110012548635.305.332
2007114319.2668515142636630.357.329
200855.20010000000.200.200
통산(15시즌)13684220.28211901642568443586123403.381.342
  1. 출생 당시에 부산직할시 시절 동래구였다.
  2. (어젯밤엔 난 네가 싫어졌어) 안타!조원우!(x2)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 가슴 아팠지) 안타! 조원우!, 훗날 조동화가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3.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안!타! 조원우! (X2)
  4. 참고로 투수인데도 1번이 아닌 한자릿수 등번호를 단 특이한 케이스이다.
  5. 조영민-조원우 트레이드로 등번호 교환
  6. 아마추어 시절엔 타자로써의 재능이 뛰어났다.
  7. 1994 드래프트에서 쌍방울이 유일하게 건진 선수가 조원우 한 명이다. 흠좀무
  8. 조원우의 시즌 아웃은 당시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심성보의 이탈로 약화된 외야진과 김기태심성보가 모두 이탈한 타선에 큰 악재였다. 거기에 김원형까지 장종훈의 타구가 얼굴을 정면 강타해 시즌 아웃되자 완벽히 환승역 없는 8호선 신세가 된다.
  9. 그해 타격왕은 결국 이병규가 차지하였다.
  10. 2001년 이후 4년만
  11. 21타수 9안타, OPS 1.097
  12. 김성근은 현재 논란이 많은 감독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1000승 이상+5할 이상과 우승반지 5개(OB 베어스 1+지바 롯데 마린스 1+SK와이번스 3)는 그냥 얻어지는게 절대 아니니, 신임 감독과의 비교 선상에 놓일 수가 없다. 선동열의 경우 지금은 감독 커리어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또 언제 감독을 맡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감독 하면서 두 번 우승 해보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13. 연봉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고령도 아니고 만 45세로 젊은 초보감독의 계약기간이 고작 2년이었다. 그나마 이종운의 예로 볼 때 지켜줄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14. 로켓같이 빠르다던가같은 긍정적인 별명이 아니다. 늘상 로켓같이 부웅 뜨는 내야 플라이 타구를 날린다 하여 로켓이다(...)
  15. 조원우는 쌍방울 해체 후 선수단을 이어받아 창단한 SK의 창단 멤버이고, 김기태는 쌍방울 시절 트레이드로 삼성에 이적했다가 이후 SK로 재트레이드되어 재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