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후 주일미군 기지로 복귀한 후의 모습. |
월북미군 겸 북한이탈주민으로 월북과 탈북을 모두 해본 몇 안되는 인물이다.
1940년 2월 18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다. 주한미군 육군 보병하사[1]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게 두려워서 10여 캔의 맥주를 마신 이후에 만취하여 국경 순찰을 돌겠다며 핑계를 대고 휴전선을 넘었다.충공깽.[2]
냉전 당시 독일에서 소련군과 대치 중이던 미군들 중 일부는 죽음이 두려워서 탈영하여 동독군에 잡혔고 동독은 이들을 소련에 넘겼다. 소련군은 나중에 이들을 미군에 잡혀있던 소련 스파이와의 교환협상물로 사용하였고, 탈영병들은 그렇게 귀국하여 징역형을 받았으나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젠킨스는 이를 알고 있었고 자신도 탈영하면 북한이 자기를 소련에 넘겨줄 줄 알고 결국은 경계선을 넘어갔다.[3]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젠킨스를 비롯한 월북 미군들의 이용가치를 알고 있었고 끝내 젠킨스는 원하던 바와는 달리 소련군에 넘겨지지 않아서 평생토록 이를 후회했다고 한다. 게다가 본인이 한국말을 빨리 배우지 못해서 적응도 쉽지 않았고 북한 생활을 제일 힘겨워했다.[4] 탈북하는 순간까지도 한국말을 거의 한마디도 못하는 수준이었고 불만도 많아 자주 담당자들에게 불만을 토로해서 드레스녹의 불만을 샀다.
상당한 노안으로, 드레스녹은 젠킨스가 월북했다는 소식을 듣자 저런 나이도 많은 하사관이 왜 월북한거지?라고 의아해했으나... 알고 보니 드레스녹보다 고작 1살 많았다고 한다.
당시 미군의 제식 소총인 M14를 들고 월북해서 다른 월북자들보다 대우가 좋아 은근히 차별의식이 생겼고, 본인은 부사관인데 다른 월북 미군들은 다 병이다 보니까 본인이 계급을 내세워 대장노릇을 하려 해 주위 다른 미국 출신 월북자들과 자주 티격태격했다.
젠킨스가 계급을 내세워서 드레스녹을 휘어잡으려고 할 때마다 드레스녹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는 최고로 뛰어난 방법으로 젠킨스를 제압해왔다. 그 방법이라는 게 바로 현피였다. 거진 2m에 가까운 거한인 드레스녹은 젠킨스에게 힘으로는 꿀릴 일이 없었다. 그래서 특히 드레스녹과 사이가 안 좋은데 드레스녹과 싸운 것을 북한이 자기가 말을 안 들을 경우 폭행하게 시켰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드레즈녹은 그 말에 사실이 아니라고 길길이 날뛰기는 했다. 둘이 같이 사진을 찍은 것을 보면 젠킨스가 은근히 드레스녹의 눈치를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젠킨스의 말에 의하면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커다란 감옥이라고 한다. 팔에 U.S.Army라는 문신을 제거하기 위해 마취없이 칼로 뜯어냈을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마취약이 적어서 총상자 치료에만 썼다고 한다. 제임스 드레스녹은 그 문신을 북한 당국에서 허락을 받아서 떼냈고 마취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뭐... 드레스녹이 북한에 살면서 예, 그 말이 맞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음을 감안한다면...
북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미국의 방첩기관[5]' 의 장으로, 악의 축으로 발악하다가 털리고 자살하는 역할로 유명했다. 역에 출현 당시에는 앞대머리 분장을 했으며 드레스녹은 비열한 역할임을 설명하면서 젠킨스에게 딱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씹어대기도 했다.
납북 일본인 여성, 소가 히토미[6]와 북한에서 결혼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 부인의 방일이 허용되었는데 부인은 당연히 일본에 돌아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젠킨스는 부인이 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 미국과 범죄자 인도 협정이 되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부인과 만나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그대로 돌아오지 않고 일본으로 갔다.[7]
결국 주일미군에 잡혔는데 젠킨스의 아내가 일본인이란 점이 일본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조지 W. 부시에게 관대한 처벌을 요구할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동정을 샀다. 부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탈영병을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에 난색을 표했으나 부시 정권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젠킨스는 30일 징역형을 받는다. 그래도 부대에 있을 때 누릴 것은 누리면서 부대 내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부대 내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보직도 배당받아서 월급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부인의 고향인 일본 사도 섬에서 살면서 <고백>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판했다. 부부 간의 금슬은 대단히 좋은 편이라고 한다.
주일미군 기지에서 그간 밀린 급여 등에 대한 수령 확인서에 서명하는 젠킨스 하사. 젠킨스는 법적으로 미합중국 육군 부사관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피복류 일체를 다시 지급해줬다.
2015년의 모습. 정정하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할인마트의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 그의 계급은 Sergeant로, 국군의 병장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론 하사에 가까운 계급이다.
- ↑ 막상 그 부대는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
결국 쓸데없이 지옥에 들어가버린 꼴 - ↑ 사실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밀당을 하며 외교를 하고 있었다. 박노자 교수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소련에게는 "필요할 땐 말 안듣는 우방국"(...)이었다고 한다.
- ↑ 위에도 언급된 대로, 처음부터 북한에서 살려는 작정으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영화 속의 정식 명칭이다.
그럼 어디야? - ↑ 납북될 당시 19세의 간호조무사로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다녀오다 납치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일본 귀국을 허용할 때 소가의 어머니는 그 명단에 없었다.
- ↑ 냉전기에 소련에 납치되거나 소련에 망명한 미국인들이 다시 자유세계로 합법적으로 넘어오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물론 그 와중에 높으신 분들의 막후합의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