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 카우보이스 No.9 | |
토니 로모 (Antonio Ramiro "Tony" Romo) | |
생년월일 | 1980년 4월 21일 |
출신지 | 위스콘신주 벌링턴 |
대학교 |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 |
체격 | 188cm, 102kg |
포지션 | 쿼터백 |
프로입단 | 2003년 언드래프트 |
소속팀 | 댈러스 카우보이스(2003~) |
1 소개
NFL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
NFL 최고 명문팀인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지만 안습한 팀 성적과 언론 및 팬들의 집중공격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NFL 최고 안습남. 차라리 소속팀이 잭슨빌 재규어스같은 듣보잡 팀이거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애리조나 카디널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같은 처음부터 기대치가 낮은 안습팀이었으면 주목은 좀 덜 받아도 쓸만한 쿼터백 소리는 듣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금처럼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까이지는 않았을 거다.
고등학교때는 주목받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FBS내의 어느 학교에서도 장학금제의가 오지 않아 I-AA(간단히 말해 2부리그)의 이스턴 일리노이로 진학해 쿼터백으로 뛰었으며 2부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월터 페이튼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지만 결국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그 잠재력을 높이 산 션 페이튼 現 뉴올리언스 세인츠 헤드코치(당시 댈러스 카우보이스 쿼터백 코치)이 로모를 적극 추천해 댈러스 카우보이스로 입단시켰고, 션 페이튼의 지도하에 기량을 갈고 닦은 로모는 당시 퀸시 카터, 채드 허친슨[1], 비니 테스타버디, 드류 헨슨[2], 드류 블레드소[3]등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막장 쿼터백 경쟁구도를 뚫고 살아남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2부리그 학교 출신의 무명 쿼터백이 부단한 노력으로 기량을 갈고 닦아 명문 프로팀의 주전 쿼터백을 차지하는 인간승리의 미담 취급을 받을 수 있었으나(...)
2 까야 제맛의 시작
2006년 개막때는 드류 블레드소의 백업이었지만 용장 빌 파셀스가 시즌 중반 쿼터백 교체를 선언하며 당당히 2부리그 출신 선수로써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주전 쿼터백을 차지한다. 그리고 로모는 이에 보답하듯 신인으로써 활약해 337회 시도에서 220회 패스성공, 패스 거리 2,903야드, 19 터치 다운, 13 인터셉트, 쿼터백 레이팅 95.1 등등 준수한 기록을 남겼고 카우보이스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그러나...
시애틀 시호크스와의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4쿼터 종료 3초를 남기고 20:21에서 필드골 상황. 성공만 하면 경기 종료와 함께 역전승이 확정되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갈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여기서 공격팀의 키커가 킥을 하기 편하도록 공을 잡아주는 역할인 홀더로 나온[4] 로모가 롱스냅된 공을 더듬는 바람에 킥에 실패하고 허겁지겁 엔드존으로 달려가봤지만 태클을 당하고 실패. 팀의 홈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팀을 탈락시킨 대역죄인이 되고만다. 이때부터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
자기 실수로 팀을 탈락시킨 멍에를 뒤로 하고 2007년에는 리그 정상급 쿼터백으로 맹활약하여 쿼터백 레이팅이 톰 브래디, 벤 로슬리스버거, 데이빗 가라드, 페이튼 매닝 다음인 5위에 랭크될 정도로 뛰어난 패싱을 선보였다. 팀은 2006년보다도 더 좋은 13승 3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팀은 지구 라이벌 뉴욕 자이언츠를 만나 17-21로 뒤지고 있었고, 마지막 공격기회를 잡은 로모가 던진 패스는 뉴욕 코너백의 인터셉트로 끝나며 또다시 1라운드 탈락하고 만다.
이때부터 큰경기 울렁증,새가슴논란이 인 로모는 2009 플레이오프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44-6으로 대파하고 간만에 2라운드에 진출해 새가슴 QB딱지를 뗄 찬스를 맞았지만, 2라운드 미네소타 바이킹스전에서 인터셉트,펌블 2개등 3개의 턴오버를 범하면서 팀도 패배. 새가슴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만다(...) 그리고 2010년 이후부터는 팀의 디펜스가 점점 하락세로 접어들고, 본인이 좋은 경기를 해도 수비가 받쳐주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한끝차로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지 못하는 안습한 기록으로 동네북수준으로 까이고 있다(...). 그런 이유로 구글에 토니 로모 새가슴(tony romo choking)이라고 검색해보면 주옥같은 결과물들이 쏟아진다. 거의 까야 제맛의 단계까지 갔다.
3 비난의 원인
이는 로모의 플레이스타일에서 기인하는데, 로모는 사실 새가슴과는 정반대로 과단성이 있고 공격적인 패싱을 한다. 또한 모빌리티도 있어서 패스공간이 없으면 직접 뛰어서 야드갱신을 할 수 있는 발을 갖췄다. 그리고 러닝스로우가 의외로 정확하고 어깨도 좋은 편이라 위기상황에서도 빅플레이를 만들수 있는 능력도 있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2부리그의 원맨팀을 이끌었던 버릇이나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과신때문인지 경기중 갑자기 오펜스라인이 뚫리거나 리시버들이 자기 자리에 없는 돌발상황이 왔을때 침착하게 대응해서 최악의 경우 펌블이나 인터셉트등 공격권을 넘겨주는 상황을 피하는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로모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해결하려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며 돌발상황에 몰릴때 임기응변으로 스스로 해결하려는 버릇이 있어서 무리한 플레이를 시도하다가 턴오버를 범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특히 상대가 로모의 스타일을 알고 잘 유도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턴오버를 자주 저지르기 떄문에 새가슴,큰경기 울렁증 논란이 심한 것. 실제로 로모의 4쿼터 기록 전체를 보면 컴백 승리(뒤지고 있다가 마지막 공격권에서 역전승)가 현역 5위 19회[5]에 달하며 기록도 탑클래스 쿼터백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특유의 도박적인 경기운영과 돌발상황 대처능력, 그리고 공격진의 리더로써 팀을 확실하게 통제하는 능력 부족으로 엘리트 쿼터백대열에 합류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거기다 댈러스 카우보이스 문서에도 기술되어있지만, 카우보이스의 공격진은 전체적으로 피지컬은 준수하지만 두뇌플레이가 약한 선수들이 많다. 타이트엔드 제이슨 위튼 정도를 빼면 돌발상황때 믿고 의지할 리시버가 없다. 이런 팀원들의 풋볼 IQ 부족은 최근 신예 리시버들이 등장하여 해소되면서 2014년 이후부터는 팬들의 믿음에 부응하는 S급 쿼터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덩치가 작고 나이가 들어 발이 느려져서 부상이 잦아지는 것이 우려되는 점.
4 기타
한때 유명 팝가수 제시카 심슨과 연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로모가 먼저 외도하여 깨졌다.
- ↑ 이 선수는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투수 유망주로 투잡을 뛰었지만 결국 어느쪽도 정착 못하고 망했다.
- ↑ 당시 풋볼 올인을 선언하고 휴스턴 텍산스 소속이었는데 앞에 언급한 비니 테스타버디와 3라운드 지명권을 맞바꿔 받아왔다.
- ↑ 1993년 드래프트 전체 1위 쿼터백으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주전이었지만 톰 브래디에 밀려났다. 그때문에 버팔로 빌스를 거쳐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들어와 2005년 주전으로 뛴다.
- ↑ 최근에는 보통 필드골 상황에서 키커를 보조하는 홀더의 역할은 펀터가 맡는 경우가 많으나, 예전에는 주로 백업 쿼터백이 이 역할을 맡아서 했다.
- ↑ 1위 페이튼 매닝, 2위 톰 브래디, 3위 일라이 매닝, 4위 드류 브리스등 초 엘리트 쿼터백뿐이다.
3위의 경우에는 소속팀 팬들조차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어쨌든 우승 반지를 두개나 낀 쿼터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