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튼 매닝

2012년 시즌 시상식에서
이름Peyton Williams Manning
생년월일1976년 3월 24일
국적미국
출신지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체격196cm, 104kg
포지션쿼터백
출신대학테네시 대학교
프로입단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소속팀인디애나폴리스 콜츠(1998~2011)
덴버 브롱코스(2012~2015)
2003년[1], 2004년 NFL 정규시즌 MVP
리치 개넌
(오클랜드 레이더스)
페이튼 매닝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숀 알렉산더
(시애틀 시호크스)
2008년, 2009년 NFL 정규시즌 MVP
톰 브래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페이튼 매닝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톰 브래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2013년 NFL 정규시즌 MVP
아드리안 피터슨
(미네소타 바이킹스)
페이튼 매닝
(덴버 브롱코스)
애런 로저스
(그린베이 패커스)
제41회 슈퍼볼(2007) MVP
하인스 워드
(피츠버그 스틸러스)
페이튼 매닝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일라이 매닝
(뉴욕 자이언츠)
201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르브론 제임스페이튼 매닝매디슨 범가너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영구결번
No.18

1 개요

Congratulations Peyton, on a incredible career.
</br>You changed the game forever and made everyone around you better. It's been an honor.
</br>
</br>톰 브래디, 페이튼의 은퇴 선언 후 페이스북에서

톰 브래디와 함께 21세기 최고의 쿼터백이자 역대 최고의 쿼터백 자리를 경쟁하는 대선수

NFL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덴버 브롱코스에서 활동했던 前 쿼터백.

3형제중 둘째로 막내동생으로 뉴욕 자이언츠의 쿼터백인 일라이 매닝이 있다. 아버지 아치 매닝 역시도 NFL에서 활약한 명 쿼터백으로서 비록 약체 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에서 뛰는 바람에 슈퍼볼 근처도 못 갔지만, 팀내 통산기록은 거의 다 보유한 세인츠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자. 무엇보다도 아치 매닝은 아들 둘을 자신보다 뛰어난 쿼터백으로 키웠다.

이같은 풋볼 명문가 매닝 집안의 차남[2]으로서, 댄 마리노, 브렛 파브 등을 뛰어 넘어선 NFL의 기록의 사나이이다. 톰 브래디와 더불어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한 2000년대를 빛낸 명 쿼터백 중 한 명.

2 플레이 스타일

NFL에서 선정한 페이튼 매닝 top 10게임. 구할 수 있다면 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NFL이 원하는 쿼터백 완전체

이 문단이 작성시점이 은퇴경기인 2016년 슈퍼볼 50 이후다보니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으며, 슈퍼볼 50만 봤다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페이튼 매닝만 봤겠지만, 그는 명백히 NFL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중 1명으로 이름을 올릴만한 선수이다.

기본적으로 발이 느린편이고 어깨가 강한 편이 아니며 러닝 스로우를 정확히 던질만큼 육체적으로 기민한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쿼터백 집안에서 태어나면서[3]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 차원이 다른 구력에 그 스스로가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지능적으로 플레이하는 덕에 포켓 안에서 매우 침착한 것이 장점이다. 일단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고, 작전 이해도와 수비수들의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는 감각이 뛰어난 쿼터백의 멘탈에 있어서는 완전체에 가까운 선수인 것, 또한 쿼터백으로써 기술적인 기본기인 패스 동작이나 드롭백 스텝 밟기, 제구 능력등 모든 면에서 기본기가 완벽하고 연습량이 갖춰졌다.

페이튼 매닝의 독보적인 영역이자 흉내내지 못하는 오디블

그러다보니 전술을 자기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넣고 즉석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조정하거나 변경하는 오디블 플레이에 매우 능하다. 본인 스스로가 공격코치의 지시 없이 혼자서 다 운영할 정도의 능력이 되어있기 때문에 전술 노출도 거의 되어있지 않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공격을 무기로 삼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팀에서 버티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런 천재성을 가지고도 항상 노력하고 성실하게 연습하는 연습벌레다. 이때문에 인성이나 성실함등이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리더의 전형인 인물. 이때문에 페이튼은 커리어 내내 여러 코치를 만났지만 경험이 쌓인 2년차 이후부터는 사실상 공격코디네이터는 말동무 내지는 외장 하드 수준의 병풍(...)으로 직접 공격작전을 지휘할 수 있을 정도.[4] 아마 은퇴후 당장 지도자로 나와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중 1명. 심지어는 이미 선수 시절에 거의 코치급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도자 생활보다는 한 차원 높은 구단 경영 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있을 정도.

3 아마추어 시절

쿼터백이던 아버지 아치 매닝의 아들답게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 유망주였다. 고교 시절 이름을 날리며 무려 60여개의 대학팀들로부터 장학금 오퍼를 받았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가 아버지의 모교인 미시시피 대학교올 미스 레벨스로 진학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 예상을 깨고 같은 컨퍼런스테네시 대학교 발런티어스을 선택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5]

1994년 1학년 시절에는 팀내 3번째 쿼터백이었지만 시즌 첫 경기 주전 쿼터백이 부상당하고, 4번째 경기에서는 두번째 쿼터백까지 부상당해 금방 주전의 기회를 맞게 된다. 참고로 이 때 테네시 대학에서 페이튼 매닝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상급생 쿼터백은 이후 백업으로 떨어진 풋볼대신 야구에 전념하게 되는데, 그 인물은 바로 1995년도 메이저리그 1라운드 8번픽으로 데뷔해 콜로라도 로키스의 레전드이자 정신적 지주로 활약했던 토드 헬튼. 여하튼 미래의 슈퍼스타감으로 각광받았던 풋볼계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답게 1학년임에도 걸출한 실력으로 팀을 이끌어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했다. 지금 테네시 대학의 상황을 보면 이런 학교를 챔피언쉽에다가 올려놓을 정도였으니 레전드라 불릴만 하다.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팀을 이끌게 된 2학년 1995 시즌에는 아예 테네시를 SEC의 강팀 반열에 팀을 올려놓으며 전국의 주목을 받는 활약을 펼친다. 라이벌 앨라배마를 격파하며 무패행진을 달리지만 같은 컨퍼런스 디비전의 플로리다에 시즌 초반 당한 패가 유일한 패로 발목을 잡으며 전국 우승에는 실패한다. 그러나 사이트러스 보울에서도 오하이오 스테이트잡고 전국 3위에 개인적으로도 하이스만 트로피 후보에 오르는 선전을 했다.

이어진 3학년 시즌 내셔널 챔피언쉽 우승을 위해 칼을 갈고 나오지만 또다시 시즌 초반 플로리다전에서 인터셉션을 4개나 던지는 등 부진한 끝에 석패하며 우승 행보에 적신호가 켜진다. 그리고 시즌 중반을 넘어가며 멤피스 대학교전에서 약 300야드를 던지는 활약을 펼치고도 업셋을 당하며 또다시 우승 도전이 물거품이 된다. 3학년 시즌이 끝난 1997년은 고교를 떠난지 3년이 되어 NFL 드래프트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해였으며 조기 졸업을 위한 학점 이수도 마친 상태에 이미 지난 3시즌 동안의 활약으로 전미 최고의 쿼터백 유망주이자 전체 1번픽 후보에 올라 학교를 떠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매닝은 모교를 우승시키기 위해 졸업을 1년 늦추고[6] 마지막 대학 풋볼 참가 자격의 4학년 시즌에 테네시로 돌아오기로 결정한다.

1997 매닝의 대학 마지막 시즌은 또다시 시작부터 플로리다에 잡혀 결국 대학 시절 내내 한번도 꺾어보지 못한 천적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해나가고, 매닝의 첫 컨퍼런스 챔피언쉽에 진출해 어번 타이거스를 꺾고 대망의 시즌 무패팀인 네브래스카 대학교와 오렌지 보울에서 만나게 되어 드디어 대망의 내셔널 챔피언쉽 우승 기회를 잡게 된다.[7] 그러나 이 드라마틱한 매닝의 우승 도전기는 네브래스카의 러닝 플레이에 팀이 처참히 무너지며 42-17로 대패를 당한다. 더욱 아쉬운 것은 매닝이 떠난 직후인 1998년에는 테네시가 마침내 플로리다를 꺾는 등 무패행진 끝에 내셔널 챔피언쉽 무패 우승을 이룬 것.안습

아무튼 이렇게 대학 무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마친 매닝은 1998년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입성하게 된다.

4 커리어

4.1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시절

콜츠에서 그는 들어오자마자 주전 쿼터백으로 자리잡고 NFL 유일한 AP MVP 4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으며, 무엇보다 마리노에게 없는 41회 슈퍼볼 우승반지를 콜츠를 우승시키면서 얻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98년 데뷔후 슈퍼볼 첫 출전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으며



한때 이런 비아냥까지 들었을 정도.[8]

98년 데뷔한 이후 98년과 2001년을 제외하면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이때의 콜츠는 본인의 능력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가 잘한 시즌이었고 라이벌인 톰 브래디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3번의 슈퍼볼 우승을 자랑하는 초 강팀이었다.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페이튼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직접 좌절을 안겨준 팀은 샌디에이고 차저스뉴욕 제츠 같은 복병 팀들이었고 이들 때문에 뉴잉글랜드와 직접 붙을 기회는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2002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슈퍼볼 우승때 수비진을 지휘하던 덕장 토니 던지를 헤드코치로 영입하여 전력을 키우고, 패트리어츠가 주축 수비수들의 줄이탈로 전력이 약화된 틈을 놓치지 않고 2005년 정규시즌에서 패트리어츠 원정경기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고, 2005년 플레이오프에서 벤 로슬리스버거가 이끄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일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다음해인 2006년 패트리어츠를 AFC챔피언쉽에서 꺾으며 슈퍼볼 41에 진출해 그대로 우승해 커리어 10년만에 처음으로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슈퍼볼 우승 전까지는 정규시즌에는 강하나 큰 경기에 약한 새가슴 쿼터백의 대명사로도 통했다. 실제로 플레이오프 기록이 정규시즌에 못미친다. 거기다 반대로 큰경기에서 맹활약하며 4번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2년 후배 톰 브래디와 비교되어 본인도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듯. 이는 200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초특급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데릭 지터와의 관계와 닮아있다.

슈퍼볼 41 우승 이후에는 우승을 위해 쇼미더머니를 시전한 후유증으로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 및 복병들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뉴욕 제츠,볼티모어 레이븐스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패하거나, 3년만에 다시 진출한 슈퍼볼 44에서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일격을 당하는 등 페이튼 역시 반지 하나를 더 추가하기가 어려웠다. 브래디 역시 동생에게 슈퍼볼 42에서 일격을 당하는 등 두 쿼터백에겐 고난의 시간.

NFL이 파업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2011시즌 5년 9000만 달러의 새 계약을 맺었다. 기존의 연간 2천만달러 이상의 캡스페이스를 줄여서 팀의 샐러리캡 부담을 덜어냈다. 사실상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뼈를 묻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계약하고 나서 악화된 목 부상[9] 때문에 2011년 시즌을 포기해버렸다(…). 먹튀? 덕분에 브렛 파브의 연속경기 선발출전 기록에의 도전도 좌초해버렸다.

덕분에 콜츠도 2011년은 완전 포기하고 시즌 최종성적 2승 14패로 동률인 램스를 제치고 리그 전체 최하위가 되었다. 따라서 2012년 드래프트 1순위는 확정. 2012년 드래프트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앤드류 럭이라는 걸출한 쿼터백이 나오던 해였던 터라 만약 콜츠가 앤드류 럭을 지명하면 천만달러 이상의 고액연봉 쿼터백을 두명이나 보유하게 된 꼴이 되었는데, 만인의 예상대로 콜츠는 앤드류 럭을 지명했고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브렛 파브애런 로저스의 관계처럼 되는게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다.

결국 페이튼 매닝은 자신의 현역 연장을 위해 2012년 3월 7일부로 기자회견을 열고 콜츠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앤드류, 뭘하고 있는 것이냐? 쿼터백자리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페이튼. 부상이 문제이기는 하나 그것만 없으면 여전히 최고의 쿼터백인지라 장기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이애미 돌핀스, 워싱턴 레드스킨스 등등이 자유계약 신분이 된 페이튼 매닝을 매의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페이튼도 적절한 새 직장을 찾아보기 위해 덴버 브롱코스를 필두로 이팀 저팀을 방문하면서 새 직장 선정작업에 나섰고, 결국 3월 19일에 덴버 브롱코스로 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티보 타임은 어쩌라고... 티보 타임은 뉴욕으로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는 14년 간 전설적인 기록을 남기고 떠난 매닝을 기념하여 매닝의 등번호 18번을 매닝이 떠나자마자 바로 영구 결번 처리했다. [10]

4.2 덴버 브롱코스 시절

4.2.1 2012 - 2013 시즌

그리고 2012년 오랜 공백을 깨고 덴버 브롱코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선발 출장해 팬들앞에 다시 섰다. 부상 공백과 36세의 나이로 인한 노쇠화의 전조가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리그 최고의 쿼터백이었던 경험과 카리스마로 덴버를 이끌었다. 바이위크 전까지 성적은 3승 3패. 페이튼이 이끄는 브롱코스는 항상 전반에 손발이 맞지 않아 초반 대량실점하며 고전하지만 손발이 맞기 시작하는 후반전만 되면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미친듯이 추격해오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중반을 지나가면서 새 팀에 완전히 적응이 된 듯 왕년의 실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면서 팀 공격을 이끌고 있었는데, 결국 매직넘버 1을 남긴 13주차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7연승으로 가뿐하게 AFC 서부지구 우승 확정. 작년의 쿼터백이 1승만 더 거두면 지구우승을 확정짓는 상황에서 연패 행진으로 마지막 주에 세 팀 간 동률을 허용하고 타이브레이커까지 동원해서 간신히 지구우승을 차지한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역시 최고의 쿼터백답다. 결국 11연승으로 시즌을 마치며 브롱코스는 AFC 1번 시드를 거머쥐었다. 최종 성적은 13승 3패. 2012년 매닝은 가장 유력한 MVP 후보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 볼티모어 레이븐스한테 광탈... 그래도 한때 은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슬럼프가 있었던 지난 세월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해서 2012시즌 올해의 재기선수(Comeback Play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

또한 덴버에 온 만큼 자신이 밀어냈던 테네시 대학교 선배 토드 헬튼을 응원하러 쿠어스필드에 오기도 했다. 토드 헬튼의 은퇴식 때도 가족들을 데리고 구장에 나타나서 선후배간의 관계가 여전히 돈독함을 과시했다. 덴버에 새집을 구할 때 헬튼이 많이 도와줬다는 얘기도 있다.

4.2.2 2013 - 2014 시즌

그리고 2013시즌 어이없이 플레이오프에서 광탈한 한풀이라도 하듯이 상대 수비진을 미친듯이 폭격하면서 시즌 터치다운과 패싱야드 기록을 갱신하면서 팀을 다시한번 AFC 1번시드로 이끌더니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오던 샌디에이고 차저스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면서 팀을 15년만의 슈퍼볼 진출로 이끌었다. 특히 2013시즌의 덴버의 수비진은 매경기 평균 20점에 가까운 실점을 하는 자동문 수준이라 이러한 수비를 공격으로 커버하면서 팀을 이끈 페이튼의 활약이 더욱 빛을 발했다. 커리어 5번째 MVP까지 수상하면서 개인적인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2월 2일 (미국시간) 벌어진 제 48회 슈퍼볼에서 매닝은 생애 최악의 경기를 펼치며, 시애틀 시호크스에게 8-43으로 NFL 기록에 남을 대패를 당했다. 35점차의 점수 차이는 1990년 제 24회 수퍼볼에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55-10로 덴버 브롱코스를 대파한 이후 역대 두번째로 큰 점수차.[11] 경기 시작 12초만에[12] 어이없는 세이프티 실수로 2점을 헌납하면서 불길한 예감을 주더니, 이후 1쿼터 총 전진 야드가 1 야드에 그치고, 첫 First down을 2 쿼터 후반에 가서야 성공시키는등 시애틀의 철벽 수비에 완벽히 가로막힌데다가, 두 개의 인터셉트까지 당하며 3 쿼터 중반까지 0-36으로 뒤지는 굴욕을 당하는 등 경기 내용조차 이견이 없는 완벽한 참패.

이로서 매닝은 수퍼볼 우승만 했다면 그 어느 해보다 화려할 수 있었던 2013-14 시즌을 최악의 배드 엔딩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13]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커리어 전체에서 흑역사로 기록될 수준의 참패.

4.2.3 2014 - 2015 시즌

"Move over Brett Favre, and made roof of the new king!
Peyton Manning! Now has, more Touchdown Passes than any other player, in NFL History!
"
</br>
</br>509 터치다운 패스 달성 직후 캐스터의 멘트

2014 시즌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덴버 브롱코스는 6주차까지 5승 1패를 기록, AFC 동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6주차 경기였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509번째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하며 브렛 파브의 통산 508개의 터치다운 패스 기록을 경신하여 통산 터치다운 패스 부문 1위가 되었다. 뒤이어 다시 한 번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하며 매닝의 통산 터치다운 패스는 510개가 되었다. 이 활약에 힘입어 6주차 경기에서 42-17로 대승을 거뒀다. 509 TD 패스 달성 현장 영상(Mic'd Up)

시즌 최종 16경기 4727야드 패스, 터치다운 패스 39회로 불혹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쿼터백임을 몸소 증명해냈다. 팀도 매닝의 활약에 힘입어 디비전 플레이오프로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디비전 라운드에서 1쿼터에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키며 가볍게 선취점을 따낸 것은 좋았지만 그 후로 시즌 막판에 보여줬던 불안한 모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차례 색(Sack)과 결정적인 펌블로 공격권을 넘겨주었던데다 와이드 리시버와의 호흡이 맞지 않아 패스가 와이드 리시버의 키를 훌쩍 넘기는 장면이 수차례나 발생하여 사실상 포스트시즌 광탈의 원흉이 되었다. 지역 언론에서도 대차게 까는 상황.

4.2.4 2015 - 2016 시즌

결국 존 폭스 감독은 경질되었고 현지에서는 "매닝의 복귀가 불투명하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2015년 3월 4일, 400만 달러의 연봉삭감을 감수하면서[14] 2015년 시즌에도 현역으로 뛴다고 발표했다. 단, 2014년 와이드 리시버 에릭 데커와 러닝백 노숀 모레노를 FA로 잃은 데 이어, 2015년 시즌에는 주 타겟 중의 하나이던 타이트엔드 줄리어스 토마스 마저 FA로 잭슨빌 재규어스로 이적함에 따라 페이튼의 공을 받아줄 우수한 공격진들이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2015년 시즌은 2014년 시즌 이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천하의 매닝도 세월의 힘은 이길 수 없는 지 2015년 시즌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진 모습이다. 브롱코스가 리그 탑급의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2015년 11월 8일 현재까지 7전 전승으로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미 몸상태가 과거처럼 직접 필드를 주무르면서 공격을 지휘할 정도가 못되었기 때문에 헤드코치 개리 쿠비악의 공격콜을 따르는 게임 매니저로 입지가 강등된 상황. 작년에 16경기 15인터셉션을 내준 반면 2015 시즌은 7경기 동안 무려 11개의 인터셉션을 내준 것은 기량이 명백하게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그리고 2015년 11월 15일 생애 최악의 경기력 (0.0 레이팅) 을 기록하고 4개의 인터셉션을 내줬다. 더 놀라운 건 이날 패싱 야드 기록 역대 1위로 올라갔지만 이날 이후 지난 시즌 말 문제가 되었던 발목 부상의 재발로 잔여경기 아웃, 덴버 쿼터백은 백업이었던 브록 오스와일러로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팀은 수비진의 활약으로 페이튼의 부진에도 착실히 승수를 쌓은 덕에 계속 AFC 서부지구의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샌디에이고 차저스전에서 오스와일러가 이끄는 공격진이 턴오버 5개를 기록하는 눈이 썩는 경기를 보여주자 경기 중반부터 투입되면서 복귀를 알렸다. 투입된 후에는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패트리어츠의 막판 부진을 틈타서 12승 4패로 AFC 전체 1위를 확정지어 1라운드 부전승을 확정지었다.

그 덕에 디비저널 라운드부터는 회복하여 다시 선발 출전하고 있다. 디비전 라운드 피츠버그 스틸러스전에서는 부상결장 이전을 연상시키는 불안한 플레이로 4쿼터 종료 3분전까지 끌려갔으나 수비진의 도움과 막판 분전으로 역전승을 거뒀고, AFC 챔피언십에 진출하여 톰 브래디와의 17번째 대결을 하게 되었다. 매닝의 다음 시즌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패트리어츠가 유리하다는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예전같은 시원시원한 패싱을 선보이진 못했지만 강력한 수비진의 도움을 까먹지 않을 정도의 게임 리딩을 보여주며 브래디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었던 대결을 승리로 장식하고 NFL 역사상 최초로 을 두 번 이상 슈퍼볼에 진출시킨 최초의 쿼터백이 되었다. 그리고 슈퍼볼 50(Super Bowl 50)에서 24:10으로 승리를 이끌어 사상 최초로 두 팀을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쿼터백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은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일단 (MVP를 수상한) 본 밀러가 한턱으로 쏠 버드와이저부터 한잔 마시면서 생각해 봐야겠다."면서 굳이 브랜드명까지 거론하면서 확답을 피했다. 명불허전 광고의 제왕. 만약 이것이 매닝의 현역 마지막 모습이라면 콜츠에서 떠밀리듯이 나온 매닝은 자신이 팀을 가리지 않고 강팀으로 이끌 수 있는 진정한 탑 클래스 쿼터백임을 덴버에 재적한 4년동안 4년 연속 지구우승 + 1번시드 3번, 2번시드 1번 + 슈퍼볼 2회진출 및 1회 우승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15]

그러나 사실 15-16 시즌은 평균이하 쿼터백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철벽 수비진이 없었으면 덴버는 올해 우승은 커녕 포스트시즌 진출도 못했을 것이다. 슈퍼볼에서도 OME급 경기력을 보이며 팀을 역캐리할 뻔했으나(특히 4쿼터 펌블) 캠 뉴튼의 역캐리와 덴버의 철벽 수비진 덕에 우승할 수 있었다.

4.3 전설의 퇴장

슈퍼볼 끝나고 나서 매직 존슨으로부터 "덴버는 떠나야 되지만 혹시라도 현역 생활을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다음 시즌에 램스로 오라."라고 진지하게 제의를 받았다.[16] 명불허전 3년 전에 브렛 파브에게 전화하던 구단(...) 본인은 그렇게까지 해서 현역을 연장할 생각은 없는 모양.

그리고 한국시간 2016년 3월 6일, 대다수의 예상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서 18년 간의 기나긴 커리어를 마쳤으며 그 마침표를 슈퍼볼 우승으로 찍었으니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둔 셈.

NFL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페이튼의 통산 기록. 539 TD패스 / 251 인터셉션[17]. 저기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페이튼은 플레이오프 경기까지 합쳐 통산 200승을 달성하고 떠났다. 그것도 마지막 200승은 슈퍼볼 우승으로.

5 이모저모

5.1 광고의 제왕

커리어 내내 큰 기복 없이 본인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성적을 내는 백인 천재 쿼터백에다가, 사생활이 깨끗하고 성실하며 연습벌레라서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도 손꼽히는 모범생이다. 이 때문에 NFL의 얼굴마담으로서, 각종 광고로도 줄곧 얼굴을 내민다. 미국 마스터카드 광고의 대표 모델이다.[18] 요즘은 파파존스 피자의 모델로 발탁되어 회사 창업주와 함께 광고에 나와서 아저씨개그를 한다. 이미 덴버 지역에 파파존스 체인점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측의 모델 제안을 받아들인거라고 한다.


<페이튼이 출연한 광고 모음>


<2013년 동생과 찍은 DirecTV 광고 Football On Your Phone> 아...... 마실나온 동네바보형...

5.2 동생과의 비교

일라이와 비교했을때 이미지 면에서 무게감있고 점잖아서 "역시 형은 형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 둘은 아마도 미국에서 제일 많이 비교되는 형제일 듯. 커리어를 비교해보면 슈퍼볼 우승에서는 일라이가 2회로 1회인 페이튼을 앞서지만 페이튼은 MVP를 다섯번이나 수상한데다 쿼터백 포지션의 역사상 최고 선수로 꼽힌다. 여러모로 일라이는 안습... 더군다나 2016년 페이튼이 슈퍼볼 우승을 추가하면서 우승횟수도 똑같아졌다.

5.3 짤방 소재

페이튼과 일라이가 일이 안풀리면 짓는 특유의 시무룩한 표정을 "Manning face"라고 한다. 미국의 전국구 스타들답게 매닝페이스만 모아둔 웹사이트도 있다


원래는 이렇게 점잖은(?) 이었으나... 페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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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적한 덴버는 해발 1900m 콜로라도 산골 야외구장인지라 겨울에 엄청 춥기에 훈련때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너무 엽기적이라서(...) 이 사진 한장으로 미국판 필수요소에 등극한다. 이제 Manning face라고 하면 이 짤방을 뜻한다. 영화 펄프 픽션 막판에 나오는 Gimp와 비슷하다고 또 BDSM드립이 엄청 양산되었다.

특히 얼굴부분만 크롭한 이미지는 Reddit의 NFL 게시판[19]에서 낚시짤로 엄청 유명해졌다. 13/14시즌에 페이튼이 한시즌 패싱야드/터치다운 기록을 경신했을때 누군가가 기록 경신한 장면을 움짤로 올린척하고 이 짤에 링크를 걸어서 수십만명이 낚였다. NFL한정 함정카드짤이라고 생각하면 될듯.

그 외에도 이마가 엄청나게 큰걸로도 놀린다. 이 사진은 뽀샵질을 한건데 맨 위의 사진과 비교해보자(...). 비비스와 벗헤드가 생각나는건 그냥 넘어가자

5.4 약물 의혹?

참고

알자지라 방송국이 특별 다큐를 통해, 2011년 목 수술후 회복 과정에서 성장호르몬[20]을 맞았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많은 NFL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본인은 극렬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인데, 몰래카메라에서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던 약사인 찰리 슬라이가 곧바로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들이면서 혼란스러운 상황. NFL 역대 최고급의 선수라고 불리우는 매닝의 위상은 야구의 데릭 지터, 축구의 리오넬 메시, 농구의 코비 브라이언트와 비견될 정도이기 때문에 만약 약쟁이라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NFL이 받을 충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매닝의 전성기 때가 아니라 신경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알려진 2011년에 필사적인 마음으로 재활하던 기간이었다는 점에 그 이전의 업적에 대한 타격이 줄어들 수는 있겠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든 약물을 복용한 선수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충격일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깨알같은 라이언 하워드. 약빨고 그성적이라니. 못치게 하는 약물도 있나?

2011년 매닝의 소속팀인 콜츠가 위치한 인디애나의 노화방지 치료 전문인 Guyer Institute에 매닝이 왕래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성장호르몬을 자신이 직접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매닝의 부인의 이름으로 성장호르몬이 배달되었다는 의혹이 있는데, 성장호르몬은 처방을 받으면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또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 이렇게 부인의 이름으로 구입한 성장호르몬을 매닝이 사용하였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매닝의 부인이 진정 성장호르몬이 필요한 질병이 있었는지가 관심사이나, 개인의 건강 사항은 법으로써 철저하게 보호되므로 이는 본인들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알아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매닝의 약물 의혹은 의혹으로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MLB와 NFL이 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찰리 슬라이는 방송에 나올 줄 몰랐다. 내 말은 거짓이었다.라는 말을 하는데, 실명까지 거론하며 누가 무슨 약을 타갔는지를 안다고 자랑을 하다가 방송에 나오자마자 한순간에 말을 뒤집은 꼴이 되었다.

현재 페이튼 매닝은 이 의혹에 대해서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역겨운 발언"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2016년 7월 NFL 사무국은 페이튼의 약물복용에 대해서 무혐의로 결론을 지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페이튼 매닝은 약물복용 의혹에서 벗어난 셈.

6 페이튼 매닝 vs 톰 브래디

톰 브래디 항목에도 나와 있듯, 톰 브래디와 페이튼 매닝은 2000년 이후 NFL의 한 시대를 지배한 양대 쿼터백이기도 하고, 두 팀이 만나면 명승부가 되는 일이 많아 그 둘 가운에 누가 최고인가 하는 것은 미국 사상 최대의 논쟁거리이다. 이 때문에 위키피디아에 해당 항목까지 만들어져 있다. 17전 11승 6패로 톰 브래디의 우세. 허나 톰 브래디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적은 열세긴 하지만 두 선수가 맞붙는 가장 큰 경기인 AFC 챔피언쉽에서 페이튼이 3승 1패로 이기고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톰 브래디의 우세라고 할 수 없을 정도. 상대적으로 페이튼이 팀 전력 부침이 더 심한 편이었고 수비쪽의 지원을 커리어 후반부에 더 받으면서 따라잡은 것이 원인. 따라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본다면 페이튼 vs 브래디는 페이튼이 은퇴하고 브래디만 뛰게 되는 2016~17시즌 이후부터 얼마나 격차를 벌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50:50으로 볼만한 최강자 떡밥으로 남아있는 상태.
  1.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스티브 맥네어와 공동수상
  2. 사실 큰형인 쿠퍼 매닝도 풋볼 강호인 미시시피 대학의 와이드 리시버였다. 다만 이 쪽은 심각한 등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끝난 케이스.
  3. 개요에 나와있듯이, 아버지 아치 매닝(Archie Manning)이 뉴올리언스 세인츠에서 활약했던 명쿼터백이었다.
  4. 실제로 페이튼은 총 4번의 슈퍼볼에 출전했는데 그 4번 모두 각각 다른 감독 밑에서 팀을 슈퍼볼로 이끌었다.
  5. 그의 형도 전도유망한 와이드 리시버였지만 올 미스 진학을 앞두고 치명적인 질병이 발견되어 일찍 선수 생활을 접어야했다. 동생 일라이 매닝은 올 미스에서 뛰었다.
  6. 여기에는 페이튼 매닝 개인의 하이즈먼 트로피 획득은 물론 모교 테네시 대학교의 내셔널 챔피언 욕심도 있었지만, 1997년에 나왔다면 전체 1번 지명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아버지 아치 매닝의 만류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휴스턴 텍산스의 마리오 윌리엄스 관련 각주를 보면 알겠지만, 전체 1번이 못되면 날아가는 계약금&보장금액이 상당하다. 실제로 1997년은 페이튼이 나올까말까 고민하던 이유로 1번 픽 후보가 유동적이었었고 이때문에 중간에 한번 지명권이 트레이드되었으며, 명예의 전당을 예약한 NFL 역사상 3명뿐인 공격라인맨 출신 전체 1번 올랜도 페이스(前 세인트루이스 램스 소속)가 지명을 받았다.
  7. 다만 이 때는 내셔널 챔피언쉽 게임 시스템이 정착하기 전 마지막 해로, 다른 보울 게임의 우승 후보팀의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받는 상황이었다.
  8. 위 상황은 2001년 시즌 12주차때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상대로 페이튼 매닝이 인터셉트만 4개를 던지며 21:40으로 대패한뒤, 경기 종료후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헤드 코치인 짐 모라 시니어가 잔뜩 열받은 상태로 인터뷰한 것이다. 내용을 번역하면, "우선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합시다. 우리 수비수들은 까지 마쇼. OK? 난 상대가 고교팀이건 전문대팀이건 대학팀이건 심지어 NFL팀이건 상관 안해. 우리는 5번이나 턴오버로 공을 뺏겼고 그중 4번은 (페이튼 매닝의) 인터셉트, 한번은 터치 다운까지 먹었고 세번은 전부 터치 다운을 퍼주는 찬스였지. 당신들은 내가 뭘 말하건 까지마쇼, 아무도. 알았소? 그리고 내가봐도 거지같이 못했소. 우리는 게임을 집어던졌고 그냥 방치했다고. 그리고 관광당했지. 내가 봐도 거지같아, 제기랄! (편집이후 기자의 질문에) 뭐...? 뭐?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지금 날 놀리는 거요? 플↘레이오↗프? 당신 농담해? 플↘레이오↗프? 난 제기랄 당장 이기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다음 게임에!" 한편 이 인터뷰의 마지막 대사인 P↗layoff↘? Are You Kidding Me? P↘layoff↗?(플↘레이오↗프? 당신 농담해? 플↘레이오↗프?)는 당시 전미를 강타한 유행어로 지금도 종종 쿠어스 맥주등의 광고카피에도 쓰이는 명대사이자 페이튼 커리어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
  9. 위에 언급된 큰형 쿠퍼 매닝의 부상 부위와 가까이 있는 쪽이다. 때문에 가족력이라는 설도 있다.
  10. 한편 18번은 브롱코스에서는 페이튼이 입단하기 전에 이미 영구결번으로 되어 있었다. 팀 역사상 최초의 주전 쿼터백인 프랭크 트리퍼카(Frank Tripucka, 재적 1960-1963)의 등번호로 프랜차이즈 최초의 주전 쿼터백을 기념하여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것이었는데 매닝이 브롱코스에 입단한다고 하자 트리퍼카 본인이 자신의 영구결번으로 되어 있는 18번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가를 했고 페이튼은 자신의 현역시절 등번호를 새 팀에서도 달 수 있었다. 영구결번 처리된 번호를 부활시킬만큼 페이튼의 역대급 기량과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인정한다는 얘기.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은 케이스로는 제리 라이스가 있는데 제리스가 현역 커리어 말년 시애틀 시호크스에 입단할 때 본인의 등번호인 80번은 팀 레전드인 스티브 라전드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던 상태였다. 비록 현역 말년이라 기량이 많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리 라이스가 입단한다고 하자 라전드는 흔쾌히 자신의 번호를 달아도 좋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제리 라이스도 고락을 같이한 80번을 은퇴할 때까지 달 수 있었다.
  11. 그것도 처음부터 워낙 게임이 일방적으로 흘러서 4쿼터에는 시애틀이 설렁설렁 플레이해서 이 정도 였지, 맘먹었다면 최다 점수차 기록 갱신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 이로서 덴버 브롱코스는 수퍼볼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의 1,2위를 독식(?)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12. 수퍼볼 사상 최단 기록. 예전은 14초
  13. 실제로 이번 수퍼볼에서 우승했다면 쿼터백 역대 1위도 노려볼만 했다는 게 중론.
  14. 정확하게는 삭감이 아니라 옵션으로의 전환이다. 보장액을 400만 달러 깎은 대신, 팀이 슈퍼볼에 진출하면 200만 달러, 슈퍼볼에서 우승하면 추가로 200만 달러를 받는 옵션으로 제50회 슈퍼볼에 진출하면서 삭감된 액수의 절반인 200만 달러는 확보했다. 그리고 슈퍼볼 50에서의 승리로 나머지 200만 달러도 챙겼다.
  15. 슈퍼볼 50의 우승은 덴버의 수비진들이 압도적으로 활약했고 캠 뉴튼을 박살내놓았다. 매닝은 부진했던지라 두 팀을 우승시킨 쿼터백이라는 타이틀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도 있다. (하지만 일단 웬만한 매체들은 다 붙여준다. 아무래도 그 쪽이 더 간지가 나니까.) 다만 그 위치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의 매닝의 공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2015년 마지막 주 경기인 샌디에이고의 경기에서 오스와일러와 공격진이 5개의 턴오버를 기록하면서 홈필드는 고사하고 하마터면 와일드카드로 밀려날 뻔했던 상황에서 경기 중간에 투입되어 분위기를 잡고 흐름을 바꿔서 역전승을 일궈냄으로써 1번 시드와 슈퍼볼 진출에 중요한 홈필드 어드밴티지를, 그리고 자신의 컨디션 회복 시간까지 확보한 것도 매닝이었고. 뉴잉글랜드와의 AFC 챔피언십 게임에서도 초반에 2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키면서 기선을 제압하고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도 매닝이었다. 단지 시즌 중의 삽질과 피츠버그와의 플레이오프와 슈퍼볼에서의 활약이 지지부진했다고 페이튼이 덴버의 우승에 공헌이 없었던 것처럼 평가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한 평가이다. 무엇보다 2015 시즌의 페이튼이 평가받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팀이 우승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해서 개인의 욕심은 최대한 억제하고 오로지 팀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스타일까지 바꿨다는 점이다.
  16. 매직 존슨 본인은 램스 구단 운영하고는 아무런 연관은 없다. 다만 램스의 LA 이전이 확정되고 나서 1빠로 시즌 티켓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관심을 표명하기는 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램스가 세인트루이스로 떠나기 전부터 팬이었다고. LA 레이커스의 전설인 매직 존슨은 LA 지역의 스포츠 레전드답게 은퇴 후에도 LA의 스포츠팀들에 대한 애정과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다저스, 레이커스, 스팍스(여자농구팀), 램스 모두 한 번씩은 매직과 관여된 적이 있다. 킹스는? 하키팀 LA 킹스와는 특별한 접점이 있었던 적은 없지만 킹스 구단에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홈구장 스테이플 센터앞의 매직 존슨 동상에 킹스 유니폼을 입혀놓은 적이 있다.
  17. 패스가 상대에게 인터셉트당한 횟수
  18. 출연한 광고들마다 뛰어난 개그실력을 보여주는데 선수로서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비교해 상당한 대조가 되므로 흥미롭다. 본인은 재미있어서 한다고 한다.
  19. NFL 시즌중에는 레딧에서 제일 북적이는 게시판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듯하다. 명경기나 막장경기가 나올경우 NFL게시판의 트래픽만으로 유저 수백만의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
  20. NFL에서는 2011년부터 CBA협상을 통해 성장호르몬을 금지약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