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검열 | ||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 |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대혁명, 중국/문화 검열 | 북한의 도서정리사업 |
이 지구상에 북조선만큼 철저하고, 무지막지한 노력 투하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북조선 땅이 아무리 좁고 인구가 유한하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모든 책의 페이지가 검열 대상이 된다면 그 페이지가 어느 만큼이겠는가. 같은 제목의 100권의 책이면 그 100권 모두가 검열 대상이다. 페이지에 있는 글줄이 모두 검열 대상이라고 쳐 보라. 글자 하나하나가. 도서 정리는 당에서 문제라고 제기하는 내용과 어투, 인명을 삭제하는 작업이다.
1 개요
※ 1분 32초부터 도서 정리 사업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
1967년 5월 2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의 "5.25 교시"로 시작되어, 김정일이 정식 후계자로 선포 된 1974년 무렵까지 계속 된 북한의 대대적 검열, 문화말살작업. 8월 종파사건과 함께 지금의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 북한을 만든 결정적인 사건.
가히 분서갱유와 문자의 옥, 문화대혁명의 재림.
어찌보면 대륙의 인해전술을 소수정예로 맞받아치는 북반도의 병맛나는 위엄
비록 스케일 면에서는 위의 세 사건에 묻혀서 덜 주목받지만, 병맛도는 비교 당한 중국에게 미안할 정도로 최고를 달린다. 북한의 인구가 좀만 더 많았으면 그 스케일이 저 세 사건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중국문화를 좀먹인 또라이 집단도 오히려 강요했으면 강요했지 공산주의 서적을 불태우는 개막장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이 사업으로 조선로동당에서는 최후의 분파인 갑산파까지 완벽하게 제거되었으며, 주체사상으로 명명된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가 완벽하게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멸망했다 북의 인텔리들은 "인텔리 혁명화"라는 구호 속에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이 부분은 주체사상 항목 참조.
2 내용
성혜랑의 회고에 의하면, 이 사건 이전까지 북한은 그냥 살기 나쁘지 않은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였으나, 반수정주의의 태풍하에 대대적 인텔리 제거, 인텔리가 만든 '문화'에 대한 총공격, 좌경극단주의에 의한 반문화 혁명이 휩쓸고 갔다고 한다. #
실제로 8월 종파사건과 더불어 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만 해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답게 제한적이지만 민주적인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있긴 있었다. 이전에는 이러한 시처럼 무언가가 떠오르면 지는 거다 어느 정도 조직 비판도 자유로웠고, 북한에서 인민위원회/최고인민회 투표도 자유선거로 실시되었으며 남한처럼 비밀선거가 치뤄져 밀폐된 공간에서 후보를 자유롭게 찍어냈다. 게다가 그때는 여행증 그딴 거 없이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도 가능했다.어 정말로?그러나 도서정리사업이 일어나 김씨 일가의 1인독재가 되면서 모조리 "그런 거 없다"가 되었다.
이는 분서갱유, 문자의 옥,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역대급 검열 사건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는 사건으로, 모든 개인 서적은 불태워지거나 도서관에 들어갔다. 러시아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마르크스 서적도 얄짤없었다. '도서정리사업'이 실행되면서 전국 모든 가정, 직장의 책이 한 페이지마다 한 권도 빠짐 없이 샅샅이 검열을 받아 수령 우상화, 항일무장투쟁 절대화, 계급 혁명, 반부르주아 사상에 저촉되는 모든 문구에 먹이 칠해지거나 딱지가 붙었고, 심지어 페이지 째로 잘려나가기도 했다. 살아남은 책이라고는 수령 찬양용 정치 서적, '수령님 노작'[1], 교시집 정도였다. 중국으로 따지면 기존의 책이란 책은 모두 불살라지고 분서갱유 당시의 진시황, 문자의 옥 당시 역대 청나라 황제들, 문화대혁명 당시의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책들만이 남겨진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검열 사건이 일어난 그 당시의 중국까지도 검열과 숙청은 저때 당시의 북한 이상으로 심하게 했을지언정 최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서적만 남기고 모든 서적을 사실상 없애버리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 당장 이 분야에서 본좌(?)로 손꼽히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조차도 실생활에 필요한 농업, 공업 등의 실용 기술서는 손대지 않았다.
역사 교과서에서 이순신이나 을지문덕, 세종대왕 등 역사적인 인물들은 아예 사라지거나 김일성보다 못한 인물로 기록되었고, 김일성은 순식간에 역사 인물 중에서도 킹왕짱이 되었다. 외국 음악은 소련이나 위성국 것일지라도 금지됐으며, 수많은 문화재가 박살났으며 서양화 화가들은 "현실 체험"이라는 미명하에 지방 농촌으로 쫓겨났다. 천리마 운동 시대에 크게 인기를 끌던 판소리는 "쌕소리"로 규정되어 춘향전, 심청전, 베벵이굿 전승자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외국의 과학 기술 도입은 수정주의가 되고 선진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조차 비판 대상이 된다. 어? 이것 때문에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IT 기술도 한 동안 자본주의의 요물로 취급받은 적이 있으며[2] 영어와 일본어 등도 원쑤의 나라의 말을 배워서는 안된다고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가 나중에 2000년대에 들어서 영국식 영어를 들여오게 된다. 잠깐 영어는 영국 언어인데 6.25 전쟁 때도 참여했고 명색이 제1세계 리더급인데 원쑤 맞지 뭘[3] 게다가 북한군의 교리 중에 적국 무기를 노획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괴상한 군법도 여기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사실 이건 일본군의 적군무기에 대한 괴상한 군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4][5]
인정받는 것은 김일성의 위대성을 찬양할 수 있는 것 뿐인데, 리승기가 만든 비날론에 주체섬유라는 이름을 붙여 김일성의 공인 양 미화해 버리는 식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 사전에는 이 도서정리사업의 근원이 된 '5.25 교시'가 발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가 기록에서 빠져있다. 정리했다는 내용을 정리하는 위엄 "또한 사회에서는 좀 ‘개명적인 취향’이 있는 친구, 나쁘게는 정치성이 부족한 만문한 사람의 별명은 ‘부기사’라 부르는 은어"(성혜랑)가 생겨났다. 이는 각종 영화, 소설, 예술 작품에서 '충신'으로 나오는 기사, 지배인, 실장과 대립되는 부정적인 인물이 항상 부기사, 부지배인, 부실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선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조차 비판 대상이 되는 주제에 2009년 CNC를 자체개발했다고 크게 자화자찬한 것처럼, 여느 막 나가는 사이비 체제가 다 그렇듯 북한의 도서정리사업도 모순점이 대단히 많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중앙도서관[6]이 이관하면서 인민대학습당으로 개칭되었는데 북한 당국에서 이때 감추어졌던 책들까지 빠득빠득 모으면서까지 인민대학습당을 꾸미려고 했고 그 덕분에 도서정리사업 당시 사라진 서적들이 다시 빛을 보기도 했다. 다만 역시 북한이 아니랄까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건 마찬가지라 이 당시의 서적을 보려면 몇 주 이상은 꼼짝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3 관련 링크
4 관련 항목
- ↑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 명의의 논문에만 붙는다.
- ↑ 사실 이는 외부 문물 도입이나 개방에 대한 문제에도 한 몫을 했다.
- ↑ 태평양 전쟁 때 구 일본 제국이 적국어를 쓰지 말라면서 비슷한 짓을 하긴 했다.
- ↑ 사실 이 마저도 그 일본군조차 중일전쟁때 처벌을 각오하고 Vz.26을 노획해서 무장한 적이 있었고, 나중에 북한군도 이 군법이 바보같다는걸 알고 있는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기점으로 대남 공작원들이 아무런 각인 없이 불법 복제한 M-16을 무장하면서 이 군법을 (일단 대남공작 간첩 한정으로나마) 공식적으로 폐지한 것으로 보인다.
- ↑ 그러면서 적국 민간인의 약탈은 용인하며 정식 교리에 편입시켰다. 보통 국가의 군대와는 완전히 반대로다.
- ↑ 남한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