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 선

1 개요

프랑스어 : Ligne Maginot
영어 : Maginot Line
일본어 : マジノ線

고사성어가 아니다. 어감이 한자어 같은 탓에 고사성어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으며 한글로 옮기면 네 글자라서 더 그런 면이 있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프랑스독일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독일 국경에 설치한 대형 요새이다. 건설비만도 160억 프랑이라는 실로 막대한 수치였다. 이름은 건설을 제안한 육군성 장관 앙드레 마지노(André Maginot)의 이름에서 유래한 거지만, 실제로 이 계획을 실현시킨 사람은 후임인 폴 팽르베(Paul Painlevé)였다. 이 사람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정치가지만, 아마도 우리에겐 그의 정치적 업적보다 '팽르베 방정식'이 더 유명할 것이다. 그가 장관으로 있던 1926년에 계획을 입안했고 이듬해인 27년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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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철갑을 두른 포탑은 마지노 선을 구성하는 기관총탑 중 하나. 저런 게 마지노선 전체에 수두룩하게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2 왜 만들어졌나?

프랑스 침공에 의한 무력화로 인해 후대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별개로, 당시 프랑스에게 마지노 선의 건설은 군사전략적으로는 물론, 국가전략상으로도 매우 합리적이며 현명한 선택이었다. 후대의 비판을 받더라도 당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건설할 만한 이유가 많았다.

1차대전 서부전선은 개전 첫 1달을 제외하면 전쟁기간 내내 참호전으로 유지되었다. 포병과 기관총의 화력지원 속에 상대 참호로 돌격하여 참호를 점령(반대로 돌격해오는 적을 막아내어 참호를 사수)하는 것이 모든 군사행동의 기반이 되었다. 20년대 군사전문가들의 사상은 모두 참호전에 기반하였으며, 때문에 참호선을 몇 단계나 강화시킨 거대한 요새선은 돌격해오는 적군에 맞서싸우기 최적의 시설물이었다.

후대에서 공군과 기계화부대라는 요소를 간과했다고 비판받았지만, 1920년대 기준으로 공군 및 기계화부대 모두 초창기 수준이었다. 공군기들은 복엽기, 삼엽기가 주력이었고 폭격능력에 심각한 제약이 있었으며 기계화부대는 탄생하기도 전이었고, 전차는 여전히 초창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 프랑스의 인구사회 구조 - 인구의 역전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인구를 가진 국가였으나 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이 통일국가를 이루고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그리고 프랑스의 출생률이 저하되는 등의 이유가 겹치면서 인구가 역전되고 만다. 인구는 병력은 물론 노동력 등 생산인구, 그리고 경제와 국가조세 등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기에 프랑스로선 민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전 전 독일의 인구는 6천 5백만 명에 육박했는데, 프랑스의 인구는 고작 4천만 명으로 1.6배의 차이가 났다. 물론 식민지 인구까지 합치면 프랑스가 압도적이겠지만, 인도차이나 식민지의 베트남인이나 서아프리카 식민지의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실질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구가 아니다.

더구나 1차대전으로 프랑스는 135만의 전사자와 426만의 부상자(+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자 30~40만)를 내었다. 독일이 전사자 203만, 부상자 421만(+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자 10~60만)을 내어 피해가 더 크긴 했지만, 독일은 19세기 이래 역전한 인구를 바탕으로 이 피해를 어느정도 메꿔내었던 반면 프랑스는 출생률 감소 및 식민지로의 이민 등으로 인구증가세가 크게 꺾였기에 130만이 넘는 전사자가 가져오는 인구충격을 흡수하기 버거웠다. 대전으로 잃은 인구 비율은 프랑스가 4.32~4.39%로 독일의 3.39~4.32%보다 높았다.

이런 상황에 놓인 프랑스로선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전략은 국가의 미래를 망가트리는 무모한 짓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미래전쟁이 참호전이라고 생각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프랑스는 국가인구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젊은 청년층의 추가적인 인명 피해를 피해야 했고, 그러면서도 다가올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이겨야 한다는 딜레마에 놓였다.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방어전에 올인하여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규모 요새선의 건설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고 비판받지만, 프랑스 미래 인구를 위한 예산 투입이었다.

  • 프랑스의 국가적 자존심 - 영토 절대사수주의

1870~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은 철저히 찢겨져 나갔다. 이는 독일과의 전쟁시 주력을 모아 알자스 로렌 방면으로 총공세를 펼친다는 1차대전 이전의 작계(17계획)에서도 드러난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알자스 로렌을 되찾았으나, 프랑스인들에게 여전히 1871년의 굴욕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고, 그때와 같은 일을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열망이 있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바로 영토 절대사수주의로 발전하여 국경을 따라 건설되는 요새선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영토 절대사수주의는 단순한 트라우마와 자존심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1차대전의 주전장은 벨기에와 프랑스 동북부 지역이었고, 이들 지역은 4년여에 걸친 전화로 완전히 초토화되어 전후복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자국 영토가 전쟁으로 초토화되는 것을 경험한 프랑스로선 영토 절대사수주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3 화려한 스펙

제1차 세계대전의 지옥같은 참호전을 통해 든든한 방호벽 뒤에서 아군의 소모는 최소화하고 적군에게는 소모를 강요하는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에 항구적인 방어 시설을 계획하게 된다. 원래 요새지대 설치의 기안자인 마지노는 적 공세에 대한 조기경보와 지연전을 수행 할 수 있는 단촐한 전초방어선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실제 기획자인 팽르베에 의해 다중 철조망과 대전차호, 각종 포대와 기관총좌에 지하에 마련된 지휘소, 탄약고, 식량창고, 내부철도망 등 당시의 축성기술의 정수(精粹)를 모은 최고의 시설과 상당한 종심을 가진 거대한 요새선으로 완성 되었다. 요새의 방어력은 가장 얇은 콘크리트 보루의 두께가 3.5m일 정도로 압도적인 우주방어를 자랑해, 이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군대는 당시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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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실상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군은 룩셈부르크-아르덴 숲-스당을 통해 넘어와 버려서 마지노 선의 병력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프랑스 항복과 함께 투항,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자세한 건 프랑스 침공 참고.

지금도 철거되지 못한 대형 벙커들이 다수 남아있어 대서양 방벽과 함께 관광상품이 되었다. 밀덕에게는 방문시 필수적으로 봐야 할 품목이며, 일반인도 볼만하니 프랑스를 방문한다면 한번 쯤 가볼만한 곳이다.

사실 마지노 선의 방어력이나 방어 구조 자체는 어마어마한 거라서, 전통적인 방식의 전술로는 도저히 돌파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공격자 측에서 병력을 얼마를 집어넣든 간에 대량살육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 된 독일군도 이걸 어떻게 돌파해야 되는지 굉장히 고민했는데, 만약 정면으로 뚫고 들어갔다면 천하의 독일군이고 뭐고 거기서 지지부진 하다가 이래저래 제1차 세계대전 꼴 났을 가능성도 높다.

4 지름길이 없으면 돌아서 가면 되지

한국에서 엿장수 불러올까요?

-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트 편 中.

그러나 널리 알려진 한심한 프랑스의 이미지는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사실 프랑스도 1차 대전의 전훈을 통해 프-독 국경의 방어뿐 아니라 벨기에 방면의 방어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마지노선의 건설 계획단계에서는 벨기에 국경까지를 포함하는 프랑스 동부 국경지대 전체의 요새화가 목표였었다. 하지만 벨기에가 이를 극렬히 반대하였기 때문에 프랑스는 어쩔 수 없이 벨기에 방면의 요새화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벨기에가 프랑스의 자국 국경 방면의 요새화를 반대한 것은 당시 군사력이 약한 벨기에는 혹여나 독일군이 공격해 올 경우 프랑스군의 지원 없이는 독일군을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장차 대독전이 발발한다면 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독일은 벨기에를 침공할 것이 명확한데, 만일 벨기에 국경 방면에 요새선이 존재한다면 프랑스는 요새선의 방어를 고수할 것이고 벨기에는 어떠한 군사적 지원도 기대 할 수 없게 될 것으로 여겼던 것. 결론적으로 벨기에의 국운을 건 징징 요구에 결국 마지노선은 독일군의 주공일게 뻔한 벨기에 방면이 뚫려있는 불완전한 방어선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벨기에의 징징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라인란트 재무장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는 독일군의 전력을 오판하여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비무장 지대인 라인란트가 완전히 독일군에 넘어가는 걸 방관한 프랑스에 경악한 벨기에는 자신들에 배신때린 프랑스에 강한 불신감을 갖게 된다.

벨기에 측에서도 나름대로 시간을 벌기 위해 독일과의 국경선에 에방 에말 요새를 건축하고, 전국의 철도망과 교량에 폭약을 설치해서 유사시 폭파함으로서 독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려고 했다. 여기에 벨기에 방면의 부족한 방어를 보강하기 위해 대독 개전시 프랑스-연합군의 주력은 벨기에 령의 알베르트 운하-뫼즈 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여 독일군을 방어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한편 이게 영 못미더웠던[2] 프랑스 측에서는 마지노선의 끝단에서 이어지는 참호선을 벨기에와의 국경과 인접하게 연장하고 지뢰를 까는 등 여러모로 강화하여 이를 연장된 마지노 선으로 가칭하였다.

물론 이런 조치들에 실제 마지노선을 제대로 연장한 것만큼의 방어 능력은 기대할 수 없었으며, 독일의 작전 변경으로 벨기에 방어선과 마지노 방어선의 연결 지점으로 방어가 취약한 아르덴을 돌파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결과는... 망했어요.

5 무용지물은 아니다

마지노선이 완전히 무용지물만은 아니었다.

우선 낫질 계획 자체가 마지노 선을 절대로 돌파할 수 없었기에 만들어진 계획이며, 독일군이 낫질 계획에 따른 루트를 통해 프랑스 본토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마지노 선을 지키는 병력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십수만에 달하는 독일군이 계속 마지노 선 앞을 왔다갔다 해야 했다.

즉, 알려진 것처럼 순식간에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요새 자체가 뭘 한 건 없지만..

사실 프랑스군 입장에선 마지노 선의 의미는 충분했다. 독일과 맞닿은 국경은 충분한 방어시설과 최소한의 병력만으로 수비하고 나머지 가용병력으로는 벨기에에서 독일군을 요격하려 했던 것이다. 독일은 프랑스 침공 당시 마지노선 방면으로의 공격은 포기하고 벨기에 방면 및 아르덴 산림지역으로 공세를 펼쳐야 했다.

전쟁에서 공격 측이 가지는 이점은 공세장소와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이점이 사라질 경우에는 방어측이 매우 유리해진다. 그리고 프랑스는 마지노 선을 통해 독일의 공세가능 구역을 마지노선 외의 벨기에 방면 및 아르덴 지역으로 국한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긴 했지만 덕분에 독일은 대 프랑스 전쟁계획에서 상당히 제한적인 공세 루트만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군의 실책은 마지노 선을 프랑스 영토 방어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절대 사수해야 하는 목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비병력으로 15개 사단만 깔아놓아도 충분한 마지노 선에 패전 직전까지 무려 40개 사단을 박아놓는 짓을 감행하였다. 덕분에 낫질 계획 1차 완료후 프랑스에게 남은 사단은 총 65개 사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독일군이 몰려올 프랑스 북부를 방어할 사단은 마지노 선과 이탈리아 쪽 국경선을 제외하면 고작 20개 사단이 되는 참상이 발생했다. 그렇게 해놓고도 밑에 따로 서술하지만 최서단 구역이 함락되었다.

이 엄청난 실책에 비하면 아르덴 지역은 전차가 통과할 수 없다고 자만했다거나, 독일군의 실력을 평가절하했다는 것은 애교로 보일 지경.

"프랑스 땅은 한뼘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국토 사상에 입각한 정치적 집착이 이런 참상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유럽의 전쟁에서는 전선의 유동성은 일상적인 일이고, 전후의 국경은 실제 전선의 배치와는 거의 무관하게 국력과 전황에 따른 외교적 협상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집착이었다.

6 골때리는 사실

마지노 선은 완성 당시에도 그다지 완벽하게 가동되지 않았다. 당장 건설시부터 프랑스 영토를 한뼘이라도 내주기 싫다는 것을 반영한 덕분에 연약 지반위에 무거운 콘크리트 구조물을 억지로 올린 곳이 많아 침하가 상당히 심했고 지하수 침출 또한 심각한 지경이었다. 요새 내부는 항시 습기가 가득했으므로 전기계통의 고장이 잦았고 누전에 의한 인명사고도 많았다. 지하수+오수+전기고장크리가 겹친 오수처리시설이 가동을 멈출 때가 많아 하수구 역류와 침출수가 뒤섞여 요새 내는 늘 악취가 코를 찔렀고 이는 근무하는 병사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덕분에 가동 후 1년 쯤 될 무렵엔 요새 안에 있는 숙사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지경이 돼서 사용금지조치가 내려졌으며, 근무시간에만 요새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당연하지만 요새에 설치된 화포 상당수도 습기 때문에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마지노 선은 그 명성과는 달리 그야말로 안팎으로 새는 바가지였던 셈.

그리고 마지노 선은 단 한 군데긴 하지만 돌파당했다. 마지노선의 좌측방인 라 페르테 요새가 강습공병에 의해서 뚫려버렸다. 소위 '지하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무슨 사건이냐면 독일군 중위 알프레드 게르머가 벙커에 폭탄을 던져서 화재가 일어났고 그게 프랑스군의 폭탄에 옮겨붙은 덕분에(…) 벙커의 강철 문짝이 찢어질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데다가 유독가스가 퍼진 덕분에 탈출하려고 했는데, 상부에서 사력을 다해 벙커를 고수하라고 지시해서 탈출을 막은 것이다. 이로 인해 107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역시 멍청한 놈들 중에서 제일 무서운 건 상부다. 게다가 더욱 비극적인 건 '애당초 이 공격이 스당의 주공을 은폐하기 위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아무 의미도 없고 작전술적으로도 전혀 효과가 없는 벙커 사수에 일반병들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흠집을 프랑스군이 두고 보지 않은 병크 때문에 독일군의 주공인 스당에서 병력을 빼내서 505장갑벙커를 구원하려고 시도했다.

7 형제자매들(?)

마지노 선이 커버하지 못하는 벨기에 국경은 벨기에군이 건설한 에방 에말 요새가 담당했다. 그러나 이곳은 건설시 독일 회사가 포함되어 이미 독일에 설계도와 구조가 다 노출된 상태였으므로 미리 작전을 세운 독일군은 공격개시 첫날 독일 공수부대의 기습을 했으며, 이게 먹혀들어가서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대전 말기에 독일이 만든 지크프리트 선도 마지노 선과 같은 꼴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지크프리트 선은 설비나 유지관리면을 따져본다면 기적적으로 정상적으로 기능했고, 정면으로 돌파당했다. 사실 지크프리트 선 자체가 프랑스를 막기 위해 긴급공사하다가 프랑스가 망하자마자 한동안 방치되는 등 이름에 비해서는 별 거 없었다. 대전말 지크프리트 선에 배치된 독일군 상태도 아르덴 대공세로 정예 병력과 장비를 날려먹어서 별볼일 없었고.

마지노선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요새선으로 핀란드에는 소련 방면 국경에 건설한 만네르하임 선(Mannerheim-linja)이 있었으며, 이것은 마지노 선 같은 당대의 최첨단 콘크리트 요새와는 거리가 멀었고 호수가 많은 복잡한 지형을 이용하여 무수한 비밀 벙커와 야전 축성 요새를 복합적으로 구축한 방어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의 -선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효과를 발휘했으며, 핀란드와 소련 모두 이 방어선이 무적이라고 선전했다. 핀란드야 자기네 방어선이니까 자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소련에서도 이 방어선을 무적의 요새라고 선전한 이유는 이 방어선을 돌파하느라 상당한 희생을 치렀기 때문이다. 별 거 아닌 방어선에서 그렇게 고전했다고 하면 소련군 체면은 팍 깎일 것이다.

8 파생된 것

후에 관용적으로 최후의 보루, 수단이 되는 말이 되었다. 배수진과 비슷한 의미. 하지만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필사의 저항을 의미하는 배수진과는 달리 "어쩐지 몰리고 몰리다 보니 이르게 된 마지막 지점. 결국엔 뚫려 버릴 것 같은 지점"이라는 묘하게 씁쓸한 어감을 지닌다. 즉 마지노 선을 넘는다, 혹은 넘었다는 말은 갈 데까지 갔다는 의미가 된다.

프로게이머 출신 스타크래프트 해설가 김동수가 자주 사용한 단어로 유명하다.

독일군의 구스타프 열차포는 원래 마지노 선을 까부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다 만들기도 전에 마지노 선이 무너져 버려서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도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실전참가는 했으니 다행?

9 대중문화에서의 마지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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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는 전차가 뻘에 빠지라고 요새 앞에 논을 만들어서 '마지논'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대량의 을 수확하여 아시아에 수출하고 있다고… 이는 밀리터리 갤러리의 떡밥 중 하나였던 "논에 탱크가 빠지면 꼼짝 못한다"에서 출발한 대전차 논밭술에서 온 것. 기갑 갤러리에서 이미 마지논이라는 표현이 완성되었다.

란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스 왕국마지노라인은 이것을 모델로 만든 것. 하지만 삽질만 잔뜩 하고 만든 실제 마지노 요새와는 달리 저 마지노는 나름 잘 써먹는 듯하다. 단 마지노라인의 이전에 만들었던 마제르라인이라는 게 조금 심각하게 삽질을 했었다.

메탈슬러그에서도 나왔다. 스테이지 자체가 탱크와 대형 포대가 엉키고 설키는 연출은 스펙타클이 뭔지 보여준다. 탱크가 없으면 상당히 많이 죽는 스테이지다.

웹툰 가우스 전자 460화에서 마지노 선을 설명하며 상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하필 그 상식이 잘못되었다. 마지노 선을 1차대전 때 지은 요새라고 설명해버린 것이다. 수 많은 밀덕들이 댓글을 달자 1차대전 이후 독일을 막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대사가 변경되었다. 링크

게임 Hearts of Iron 시리즈에서는 해당지역 프로빈스들인 알자스 로렌 지역의 지상요새화 수치가 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서 정면돌파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반영을 AI 알고리즘에 집어넣은듯, 프랑스가 지상군 주력을 모두 저 지역에 박아두기 때문에 베네룩스를 통한 우회공격으로 손쉽게 포위섬멸이 가능하다. 또, 게임 시스템적 문제로 독일 방면이 아닌 프랑스 방면에서 해당 지역을 공격해도 요새화 보너스가 적용된다.
  1. Troops of 51st Highland Division march over a drawbridge into Fort de Sainghain on the Maginot Line, 3 November 1939. Keating G (Lt) © IWM (O 227)
  2. 벨기에측 방어선이 에방 에말 요새를 빼고는 제대로 건설되지도 않았고, 유사시 운용할 계획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 탓이 크다. 실제 일이 터지자 해당 방어선으로 진격한 프랑스군은 천연의 강 외에는 아무런 방어시설이 없는 곳에서 열심히 참호 파느라고 한참을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