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리안

Mahlerian

1 개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열렬한 팬을 말한다. 말러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부른다.[1]

원조격 되는 바그네리안에 비하면 숫자 면에서나 행동 면에서나 한참 밀리지만, 최근 클래식 쪽에서 분 말러 열풍을 타고 그 수가 급상승 중이다.

다만 그냥 극성팬 수준으로 평가받는 바그네리안과는 달리, 클래식 커뮤니티(특히 클래식 갤러리)에서는 허세 오브 허세로 까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건 아무래도 말러가 과거에 난해한 음악으로 평가받다가 비교적 최근에 재조명을 받다보니 아무래도 있어보인다는 느낌을 주어서 그런듯하다.

아무래도 중2병 이미지가 강하고, 다른 팬들에게 자주 까인다는 면에서 클래식계의 달빠라고 봐도 될 정도

중2병적 말레리안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전 국회의원 홍정욱의 자서전에 소개되어 있는 허세 룸메이트의 사례처럼 미국에서도 우리보다 10~20년 앞서 갑작스레 말러 붐이 일면서 말러를 들으면 있어보인다는 이미지와 그로 인한 허세가 생겨난 듯.

2 탄생 배경

말러는 생전에는 지휘자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작곡가로서의 그는 논란 투성이였다. 그나마 생전에 그와 친했던 브루노 발터오토 클렘페러 등의 지휘자들에 의해 간간이 연주되었지만, 그나마도 나치의 유대인 탄압 정책과 금지곡 지정에 의해 유럽에서는 씨가 완전히 말러(...)버린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조지 셀 등 다양한 지휘자들이 말러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푸르트뱅글러의 경우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같은 가곡들을 주로 지휘했고 조지 셀은 간간이 교향곡도 지휘하기는 했지만 이는 그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실력 테스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랬던 그의 음악이 주목받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서이다. 미국 최고의 지휘자로 주목받는 그가 최초로 그의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고, 그가 주최하는 청소년 음악회에서까지 말러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말러 음악의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번스타인의 말러 교향곡 전곡은 최초의 녹음도 아니었고, 같은 시기에 모리스 아브라바넬,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라파엘 쿠벨릭에 의해서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번스타인의 파급력이 컸던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1960년대 미국, 유럽에서는 히피문화와 같이 정신적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바람이 일었고, 철학적인 소재의 말러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9년부터 2003년 사이에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여 크게 주목받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말레리안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말러 붐은 2010-11년 탄생 150주년, 사망 100주년이 겹치면서 다시 한번 크게 폭발한다. 전세계적으로 말러의 음악을 연주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향, 제주도립교향악단, KBS 교향악단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였다.

오타쿠계에서는 《은하영웅전설》에서 말러의 교향곡이 BGM으로 자주 쓰였고,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기의 마지막화 키스신에서 사용되어 말레리안이 된 경우도 있을지도?

3 말레리안의 길

일단 기본은 교향곡 전곡 감상. 게다가 말러의 교향곡들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하네스 브람스 등 다른 작곡가들의 교향곡에 비교해 긴 편이라[2] 참 멀고도 험한 길이다. 어쨌든 교향곡 1-9번과 대지의 노래(그리고 경우에 따라 미완성 10번까지), 이어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비롯한 연가곡을 또 전곡 감상해야 말레리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4 말레리안의 업적(...?)

위에서도 말했듯이 말레리안의 역사는 듣보잡 시절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에 더욱 눈물겹다. 그래서 이들의 덕질 역시 다른 클래식 빠들의 그것 이상인데, 오디오 장비는 기본이요, 실황 공연 한번을 위해 산넘고 물건너가는 일도 간간히 있다.[3] 거기다가 전도를 위해 클래식 커뮤니티에 말러 홍보글을 올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직접 오케스트라까지 빌려가며 지휘, 연주하는 사례도 있다!!!(아래의 길버트 카플란 옆의 각주 참조)

나무위키에도 이들의 업적은 남아있는데, 슈베르트, 차이콥스키 항목에도 없는 교향곡 전곡 항목이 있다.(...) 거기다 문서량도 엄청나다...

5 말레리안을 위한 변명

당연하지만,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게 비난거리가 될 수는 없다. 소녀시대 팬이 소녀시대의 비인기곡이나 일본발매곡까지 빠짐없이 듣는 건 당연한 일이며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위에서는 말러의 음악이 생전에는 그저 그런 취급 받다가 현대에 와서 붐이 일었다고 거품인양 설명하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 역사에서 소위 명곡으로 추앙 받는 곡들 가운데 초연에 망하고, 당대에 환영받지 못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듣는 사람'과 '말러를 듣는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다만 그 허세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상당히 주관적인 관점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1) 말러의 곡을 즐겨듣거나 잘 안다는 걸 갖고 근거없는 우월감을 보이거나, 2) 말러의 음악이 다른 음악가들(예: 베토벤, 브람스)보다 위대하다는 식 정도면 허세기가 있다고 볼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특정 음악을 좋아하고 듣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차라리 존 케이지4분 33초를 들먹이며 현대음악을 아는 냥 떠드는게 더 오글 거린다.

참고로 길버트 카플란이 해석한 버전의 교향곡 2번은 기존 지휘자들 이상으로 많은 연구를 했으며 당연하지. 오로지 이것만 팠으니(...) 레코딩 버전도 상당히 괜찬을 평을 듣고 있다.

6 유명한 말레리안들[4]

6.1 음악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완성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 레너드 번스타인 : 말러를 대중화한 지휘자. 영상 음반 합쳐 무려 세 번의 교향곡 전집을 출간.
  • 아르놀트 쇤베르크
  • 알반 베르크
  • 안톤 베베른
  • 임헌정(?) : 1999년을 시작으로 2003년까지, 국내에서 처음 말러 교향곡 전곡의 연주를 실현해냈다. 다만 임헌정 개인이 특별히 말러에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평.
  • 사이먼 래틀
  • 성시연 : 지휘자 입문 시절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14년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후 첫번째 연주곡을 말러 2번 교향곡 '부활'로 선택했다. 2016년 6월에는 말러 5번 교향곡 공연을 지휘했고, 연내 제작되는 경기필 공식 음반에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 정명훈 :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말러 전곡을 연주할 때 인터뷰에서 "말러에 비하면 우린 한낱 개미"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피아노에서 지휘로 전향한 이유 중 하나가 말러를 지휘하고 싶은 욕구였다고.참조 기사
  • 클라우디오 아바도 : 가장 탁월한 말러 지휘자로서 수많은 마스터피스를 남겼으며, 생애 마지막까지 말러를 지휘했다.
  • 오자와 세이지

6.2 비음악인

  • 구스타프 클림트(?) [5]
  • 김문경 : 국내의 유명한 말러리안으로 말러의 생애와 작품해설을 겸한 책을 출간했다.
  • 앙겔라 메르켈 : 페이스북에서 말러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
  • 테오도르 아도르노 : 미학자이자 철학자. 말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을 분석한 책인 '말러-음악적 인상학'을 집필하였다.
  • 토마스 만 : 그의 대표작인 '베니스의 죽음'의 주인공이 말러를 모티브로 했다는 설이 있다.

여담으로 위의 인물들 가운데 클림트, 토머스 만은 말러의 부인 알마 쉰들러와도 친분이라고 쓰고 연애관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3 애매한 인물들

  • 브루노 발터 : 가장 유명한 말러리안이라고 불리며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였으나 결코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지는 않았고 일부만을 레퍼토리로 삼았다. 말러가 저평가 받고 있는 동안 말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결코 말러를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 오토 클렘페러 : 말러의 제자로 말러 교향곡 제2번을 직접 피아노곡으로 편곡하고, 동곡을 말러가 지휘할 때 무대 밖 지휘도 맡았으며, 말러 교향곡 제8번의 초연을 도와주는 등 말러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지휘하지 않았고 말러가 저평가 받고 있는 동안 말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결코 말러를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클렘페러는 60년대 번스타인 등에 의해 촉발된 말러붐을 목도했는데, 사람들이 그전에 무시되던 말러가 갑작스레 열풍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며 사람들이 말러를 잘 알게 된 점을 반가워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말러의 모든 교향곡을 빨아대는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 길버트 캐플런 : 언론사 경영인으로 활동하면서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지휘 수업을 받고, 오케스트라까지 빌려 자신의 소망을 이룬 용자. 어찌보면 진정한 능덕이라고 볼수도 있겠다.참조 기사 다만 위와 같이 진정한 말레리안이라고 말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는 평생 말러 교향곡 제2번만을 지휘했고 다른 곡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 아돌프 히틀러 : 빈에 있을 때 말러가 지휘한 바그너의 오페라를 자주 관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히틀러가 말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가 열렬한 바그네리안이었고, 빈에서 바그너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말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말러는 이미 생전에 유태인으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히틀러가 진심으로 좋아했을 리 만무하다

이들 가운데 길버트 캐플런의 경우, 부활 교향곡을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말러 교향곡 2번의 악보 편집과 음악적 연구에 있어서는 상당한 권위자였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브루노 발터와 오토 클렘페러도 말러리안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을 수도 있지만,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말러 보급에 힘쓰기도 하고 말러의 음악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1. 사실 '부르크너-부르크네리안', '바그너-바그네리안' 처럼 '말레리안'을 쓰는 쪽이 발음상 옳은 편이다. 그러나 실제 국내에서는 '말러리안'이라는 표기가 훨씬 많이 쓰이고 있다.
  2. 가장 짧은 1번이 50분, 가장 긴 3번은 무려 100분이 넘어간다!!!!
  3. 2010년에 광주에서 교향곡 2번을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차타고 2-3시간 걸려 도착한 사례도 있었다.
  4. 가나다 순으로 정렬. 추측되는 인물은 옆에 (?) 표기.
  5. 반대로 말러 역시 클림트의 팬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