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역대 독일 총리
7대8대(현직)
게르하르트 슈뢰더앙겔라 메르켈(현직)
2015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15
에볼라 전사들
2014
앙겔라 메르켈
2015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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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Angela Dorothea Merkel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
출신 정당기민당
생년월일1954년 7월 17일 (62세)
신체A형
가족남편 요하킴 자우어, 아들 다니엘 자우어, 안드레안 자우어.[1]
임기2005년 11월 22일 ~ 2017년 11월 22일 (예정)
2005년 11월 22일 ~ 2009년 10월 28일 (1기)
2009년 10월 28일 ~ 2013년 12월 17일 (2기)
2013년 12월 17일 ~ 2017년 11월 22일 (3기/예정)

1 개요

독일의 정치인. 2005년 11월 22일부터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의 총리로 재임하고 있다. 독일 기민당(기독교민주연합) 소속. 현재까지 연립 정부(좌, 우대연정)를 이끄는 여성 수상

EU (유럽)의 여제.

2 정치 입문 전 생애


젊은 시절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되기 전까지의 경력이 굉장히 다이나믹하다. 일단,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출신이다. 다시말해 독일연방공화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다. (정확히는 태어나기로는 1954년 7월 17일 서독함부르크에서 태어났기에 동독 태생은 아니다.)

결혼 전 성은 카스너(Kasner)[2]였다. 아버지는 베를린 교외 출신의 교회 목사였고, 어머니는 함부르크 출신의 영어교사였다. 즉 아버지의 고향은 동독 지역이 되는 셈이다.

아버지가 동독으로 발령 나면서 앙겔라 카스너가 갓난아기일 때 부모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옮겨 가던 시절에 그의 가족은 특이하게도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케이스. 이에 따라 앙겔라 카스너는 동독에서 성장하고 경력을 쌓게 된다. 할아버지가 통일사회당원(동독의 공산당)이었다고 하나, 메르켈 가족은 동독의 지배층으로 출세하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종교에 냉담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목사의 가족이라는 점은 불리한 조건이었고, 또 외가가 서독에 있어 서독의 외가와 종종 왕래하기까지 한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까지 앙겔라 카스너는 종종 함부르크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외가 친척들이 동독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목회하는 동베를린에서 80km 떨어진 템플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냈다. 목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교사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동독의 학교(모두 국립)에서 일할 수도 없어서 당시 대다수 동독 여성들과 달리 직업 없이 가정주부로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민주의 성향이 강한 어머니 역시 사민당에서 활약하는 등 가족들은 집안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분분하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대다수 동독 학생들이 하는 공산당의 청년단에 가입하여 성년식을 하지 않았고, 도리어 개신교의 견신례를 받았다. 이 때문에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공부를 워낙 잘해서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거듭된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의 입당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이들을 감시해 보고하라는 슈타지의 협력 요구도 거절했다. 이런 양심적 행동 덕분에 동독 출신임에도 전혀 커리어에 손상을 받지 않고 통일 독일의 정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동독 정치가들 중 상당수가 슈타지와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가 통일 이후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 국민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버린 것과 매우 대조적인 상황.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하였다. 메르켈 부부는 동베를린의 연구소에서 일하였으나 부부관계가 악화되어 1982년 이혼하였다. 그 후 양자화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다른 화학 연구소에서 일하였다. 화학 분야 최고 권위지라고 인정받는 JACS에 쓴 논문도 있어서 정치 이전에 학자로서도 나름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1986년 함부르크에 사는 외가 쪽 사촌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는 번듯한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동독 당국으로부터 서독 방문을 허가받는 특권을 누렸다. 독신으로 살다가 통일을 맞이하였고, 통일이 되던 해에 기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1998년 동료 화학교수인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다. 재혼 후에도 계속 전 남편의 성을 쓰고 있고성을 또 바꾸기가 좀 귀찮은게 아니라서(...), 어쨌든 박사학위 소지자라 공식적으로 이름을 불러줄때 Dr.를 붙여준다. 독일인을 포함한 서방 권에서는 자신의 공식 명칭에 Dr. 같은 게 있다면 그걸 불러주는 것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한다.[3]

3 정치 입문 후

1991년부터 1994년까진 독일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94년부터 1998년까진 환경, 자연보호, 원자력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 4월 10일 부터 기민당 최초로 여성 의장을 지냈고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의석수를 줄였지만 기민당도 의석수가 줄어들었다. 당초 기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지만 선거막판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서도 정작 기업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공약이 논란이 되어 시민들의 지지율을 깎아먹었다. 결국 원내 제2당인 사민당과 내각 구성을 협력하는 좌우 대연정을 구성하여 2005년 11월 22일부터 독일의 제8대 총리를 지내고 있다.

사실 뚱뚱하고 남성스러운 헬무트 콜 같은 정치인을 좋아하는 독일 정서에서는 대단히 신기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만 해도 깨는 인물이었지만(...)

2009년 총선에서 자민당의 약진과 사민당의 대참패에 따라 우파진영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면서 사민당을 뺀 새로운 연정을 구성, 계속 총리로 재직중이며 경제 위기 이후 당 지지율이 나빠지고 있었는데 이후 지지율을 다시 회복중.

2013년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CDU)-기사당(CSU)이 사민당과의'대연정구성'에 성공, 메르켈 총리의 3연임이 확정됐다. 만약 4년 임기를 채울 경우 11년 7개월간 집권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제치고 유럽 최장수 총리가 된다.

2014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 양측 강국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자 양측 중재하느라 진땀빼고 있는 상황.

2014년 12월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며 총리로써 4선의 고지에 올랐다. 이때 이례적으로 사회민주당을 상대로 디스를 했는데, 이는 11월의 튀링겐 주에서 기민당이 튀링겐 주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좌파당-사회민주당-녹색당이 적적록대연정으로 기민당을 물 먹인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튀링겐주에 좌파당이 집권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주총리를 줘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독일의 연방하원의 경우에도 사회민주당, 좌파당, 녹색당 3당의 의석은 기민-기사연합보다 의석수가 많다. 즉 연방하원에서 흑적연정이 깨지고 적적록대연정이 이루어지면 당장에서도 메르켈은 정권을 내줄 상황이다. 아무래도 의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4]

3.1 메르코지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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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의류브랜드 베네통의 합성. "Unhate"란 주제로 각 대립국의 국가정상을 키스시키는 합성사진 시리즈의 일부이다.

그래서 똑같이 다문화를 비난하며 우익적 태도를 보였으나[5][6] 네오 나치 3인방의 터키인 및 독일 경찰 살해 및 은행 강도짓으로 충공깽에 빠지며 네오 나치 척결에 나서고 있다. 보수주의자가 네오 나치 척결에 앞선다고 의아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나치문제에 관해선 개막장이 아닌 이상 보수이건 진보이건 단호하게 대처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나서기 이전부터 독일정부는 네오 나치를 계속 예의주시하며 어떻게든 해산시키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젠 빼도 박도 못 하는 대의명분이 생겼으니, 해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이다.[7]

2010년부터 2012년에 이어 유로존 위기가 터지자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꼭 붙어 다니고 있었다. 이를 '메르코지 체제'라고 부른다. 이 체제의 요점은 한마디로 '다른 EU국가들에게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 지역의 시사 만화가들은 이 둘을 레이건-대처와 마찬가지로 부부로 표현한 만평을 쏟아냈다.

특히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려서 유로 존 위기의 근원점이 된 그리스에 대하여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 긴축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했다. 그리스 입장에서는 사실 요구라기 보단 명령에 가까웠는데, 그리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리스 정부의 부채를 대납해주기는커녕, 아예 유로 존에서 축출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 한마디로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날로 국가 파산으로 모자라, 유로 존까지 강퇴당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마냥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 막장 상류층의 탈세와 부정부패, 아테네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낭비, 여기에 유로 존 자체의 모순 등 결과적으로 그리스가 만들어낸 문제에 유로 존까지 끌어들이는 구도였기 때문. 그리고 그리스 정부가 독일이 직접적으로 개입을 해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 추진했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사 청산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중이지만, 나치아돌프 히틀러의 딱지가 아직까지 붙어 다니는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개입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독일편을 들고 그리스를 욕할 지경이면 그리스가 어지간히 진상이라는 이야기다.

긴축재정의 칼끝이 향한 이탈리아 또한 이러한 정책에 반발했다. 이탈리아 신문인 일 조르날레(Il Giornale)에서는 메르켈이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의 경제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두고 '이탈리아는 메르켈의 제4제국에 편입되었다'고 표현하였다. 히틀러는 당시 나치 독일 체제를 제3제국으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서 따온 표현이다. 한마디로 메르켈 총리를 아돌프 히틀러와 동일시한 그냥 모욕. 그런데 이탈리아는 나치의 동맹국 아니었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일 조르날레의 소유주인 파올로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동생이라는 것. 그 악명 높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동생이 형을 평소 열심히 까던 외국 정치가에 대해 내린 평가라면 대충 답이 나올 것이다.

9월 12일 그리스를 방문하여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와 환담하며 "긴축정책을 지지한다. 유로 존에서 남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했다. 반면 같은날 아테네에서는 독일 좌파당의 대표와 시리자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손을 잡고 수만 명이 바리케이트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2012년, 단짝처럼 지내던 사르코지가 프랑스에서 재선에 실패하고, 그와 비교적 대척점에 있는 중도좌파 프랑수아 올랑드가 당선되자 EU에서 고립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그래도 메르켈은 혼자서나마 꿋꿋이 버티며 올랑드의 당선 바로 다음날 전화를 걸어 긴축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거라고 못 박는 등 유럽연합 구조조정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EU 경제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프랑스의 새 대통령 올랑드 또한 '어느 누구의 압력도 없이 스스로' 프랑스 재정적자를 줄이는 고강도의 긴축재정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메르켈은 일단 사르코지 없이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쩔 도리가 없는 게 프랑스의 경우에도 PIGS처럼 부패 쩔고 유로존의 한계로 적자가 누적되며 부채가 쏟아져 들어오는 형태의 막장은 아니지만 역시 상당한 규모의 국가부채를 갖고 있어 자칫 디폴트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 사실 이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간 국가는 선진국 중에 미국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르켈 자신이 실각하지 않는 이상 유럽연합 긴축정책의 기조는 꺾이지 않을 듯하다.

이를 두고 '메르코지'에 이은 '메르콜랑드' 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물론 사르코지 때만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연합의 두 대국의 지도자가 일단 손발을 맞추었다는 의미다.

그 후에는 지지율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60%대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연이은 지방선거 패배와 자민당의 지지율 부진으로 인해 3선 여부가 불투명 했었다. 하지만 사민당 당수가 이탈리아 총선 결과 비아냥 사건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잦다보니 3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탈세 스캔들이 터지면서[8] 다시 정국은 혼미 중. 하지만 이번에는 사민, 녹색당과 좌파당과의 연립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3선이 확정되었다.[9] 그래서인지 제18대 독일 연방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해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좌파진영이 과반을 확보했음에도(기민/기사련은 승리하긴 했지만 과반수는 확보하지 못했다. 311/630석) 흑녹연합이나 흑적연합이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4 위기

독일 사민당 지지 역대 최저…쪼그라든 메르켈 대연정

'난민들의 엄마' 메르켈, 혹독한 가을

4.1 깽판치는

메르켈이 독일 총리로써 총리 임기를 시작한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적어도 유럽 입장에서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제외하고 그다지 크나큰 위기가 없어 독일과 유럽정치를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2011년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유럽 주변에 대형 악재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에 대처해야 하는 사실상 유럽 연합의 지도자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가 유로마이단을 구실로 크림을 강제 병합하자, 이에 대한 대처 부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같지 않을 동유럽 국가들 입장에서는 징병제를 선포하는 등 대처를 하고 있지만, 당장 러시아에 실질적으로 군사적으로 대응하기에는 군사적, 정치적 후폭풍이 크고, 그렇다고 해서 유럽연합의 실질적인 역량을 고려해 아무 것도 안하자니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주변국이 위기에 빠지는데도 방관한다라는 이미지만 심어줄 수 밖에 없다.
일단은 NATO발트3국에 군사를 배치시키고[10] 무역제제를 연장하면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경제제제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이 많다. 실질적으로 군사적,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여유가 전무한 유럽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에서 적당한 유화책으로 타협하면서 러시아가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도록 경계만 하고 있다. 러시아의 반응은? 핵미사일 '베를린 사정거리' 칼리닌그라드 배치

여기에 그동안 유럽연합에 불만을 느낀 영국이 2016년 국민투표로 탈퇴를 결정하고, 최근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구실로 에르도안 정부가 서방에서 벗어나 급격히 독재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내외적인 정치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4.2 난민 문제

시리아이라크의 내전으로 수백만명의 난민이 유럽과 터키로 몰려들었는데 메르켈과 유럽연합은 시리아 난민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혀왔다. 이탈리아, 그리스 등 1차 도착 지역 각국의 경제 상황이 막장이라 대규모로 수용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야 하며 또한 난민은 국제 사회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당시에는 도덕적이고 인도적인 행동으로 (일부의 반대는 있을지언정) 엄마 리더십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내전이 장기화되고 100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을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7월에 67%에 달했던 지지율이 12월 조사에서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정도. 난민 수용에 대해 유럽 국가들 사이에 내분은 특히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를 부추기고 있고 옆동네 프랑스에선 샤를리 엡도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충격적인 파리 테러가 일어남으로써 메르켈의 난민 포용 정책은 더더욱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독일 국내에서도 북아프리카 및 아랍계로 보이는 청년들이 쾰른연말 송년 행사에서 적게는 최소 수십명에서 많게는 1000여명의 피해자에게 집단 성추행과 성폭행등 성폭력을 저질렀다. 심지어는 여자 경찰에게 까지 성희롱을 저질렀다고 한다.난민 정책으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까지 선정되었지만, 메르켈 총리가 연내 퇴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압박 속에 메르켈도 결국 난민 규모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유입되는 난민 수를 가시적으로 줄이고 필요하다면 국경 통제도 할 것임을 시사했는데, 10분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을 정도(...)로 무분별한 난민 유입에 대한 독일인들의 시선은 좋지 않은듯. 이와중에 독일 고위층에서 난민의 이번 쾰른성폭행 문제에 대해서 공표하지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게 밝혀져 독일내 신 나치주의적 성격을 띄는 주장들과 시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메르켈은 난민 '안전지역' 설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링크 러시아와 친아사드 세력 입장에서는 안전지역이나 비행 금지 구역이나 다 그게 그거. 게다가 이제는 카다피 정권이 내전으로 붕괴되면서 정권을 장악한 반군 세력들끼리 권력을 놓고 내전이 다시 벌어진 리비아(비슷한 테크를 탔다)까지 내전을 피해 난민들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밀려들고 있다.[11]

2016년 7월 들어서 독일에서 1주일에만 4차례의 민간인을 상대로한 무차별 테러 행위가 발생하여(2016년 독일 열차 테러, 2016년 독일 뮌헨 총기 난사 사건 참조) 메르켈과 그녀의 온정적 난민 정책에 관한 비난여론은 폭주하고 있다, 이 4건중 3건이 난민 출신자들에 의한 소행이었고 나머지 한 건은 IS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가해자는 앞선 범인들과 같이 중동계의 이슬람교도였다. 정부는 난민들과 난민 정책을 비난하지마라고 하고 있다지만 며칠에 한번꼴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걸 보아온 독일 국민들은 이미 메르켈에게 사태 해결의 책임을 질것을 요구중이며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우리는 할 수 있다"(...)면서 난민 포용정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독일 국민들은 지지율 급락으로 답했다.[12]

다만 메르켈 입장에서 난민들에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독일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국가적 이미지 개선 차원 인 것이 크다. 현재 독일의 순수한 국가적인 역량만 따지자면 얼마든지라도 당장 난민들을 추방시키거나 감시, 격리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테러'를 저지를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추방시키거나 감시, 격리하던 때가 어느 때 일어나던 일인지 생각해본다면 단순히 도덕적이느냐 아니느냐를 떠나 독일 역사, 특히 법치적으로는 현재의 독일 헌법 차원에서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당장 독일이라는 나라가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국제 사회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으며, 그리고 그 도덕적인 잘못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새로 시작한 것이 현대 독일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최근 일어나는 테러에도 독일 정부가 난민들에게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독일이 이상적인 면을 지키고 노동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독일에게 역사적, 사회적인 저주가 되어버린 나치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13]

이는 현재 독일이 겪고 있는 난민 문제에서 엄청난 딜레마가 되버렸는데, 준비도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수의 난민을 단기간에 받아들여 버렸고, 이제와서 내치자니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인 과오까지 있는 나라라서 세계인들의 눈초리도 있거니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시대착오적 행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지라 정치인들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역량은 충분하지만 그렇게할 명분이 없다는 것. 그러나 지방 선거에서 분노한 독일 일부 국민들이 대안당에게 표를 주며 극우정당이 메르켈의 정치적 고향에서 선전하는 역효과가 났기 때문에 반대여론이 많은 유화정책 만으로 이 이상 밀어붙였다간 다른 의미로 역사의 재림에 기여하게 될 판이라 기존의 난민 정책에 있어서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실 연이은 테러 이후 부터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메르켈의 아군 정당 측에서도 보수파 정치인들이 난민을 너무 성급하게 많이 받았다고 메르켈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4.2.1 사면초가: 터키와의 관계와 내부와의 마찰

독일 코미디언 얀 뵈머만(Jan Böhmermann)이라는 인물이 공영 ZDF TV의 토크쇼에서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얼굴이 작게 들어간 터키 국기 앞에서 에르도안이 어린이 포르노를 보면서 소수민족과 기독교인을 탄압한다는 내용의 시를 낭독하여 터키에서 파문이 불었다. 뵈머만은 방송 당시 이 시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낭송을 강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터키 정부가 독일에 뵈머만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고, 메르켈은 뵈머만에 대해 검찰 수사를 허용했다고 밝혔다. 언론 탄압을 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터키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야당을 포함하여 이웃 서방 국가들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사 1 메르켈 총리는 이날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뵈머만이 유죄라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가 우선인지, 언론의 자유가 우선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부의 영역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독일 형법 103조는 외국 국가원수 등을 모욕할 경우 정부가 범죄 혐의 조사 여부를 판단하고 형사소추 절차를 거쳐 최장 3년, 특히 비방이나 모독 혐의가 인정되면 최장 5년 징역형에까지 처할 수 있게끔 법 규정이 있다.기사 2 하지만 이 규정은 있기는 했어도 써먹은 선례가 없었던데다 이번 뵈머만의 행위가 상식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의 풍자인지, 아니면 지나친 모독 행위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메르켈은 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잖은 이 규정을 오는 2018년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항구 떠난 배.

메르켈은 현재 터키쪽에 유럽으로 몰려오는 난민 해법을 크게 의존하는 상황이라서 터키 정부의 요구를 받아주면 국내의 지지를 잃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게 쉽지 않게 되는, 코뚜레 꿰인 송아지와 같은 처지에 빠졌다.

4.3 그래도 아직은 메르켈?

메르켈의 총리 연임은 힘들거란 예상이 많지만 그래도 현 여권 내에 메르켈에 버금가는 거물 정치인이 없고, 그의 권력 의지도 강해 결국 4선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지방선거에서 메르켈의 기독교민주연합이 계속 사민당(독일)한테 지고 있다. 심지어 메르켈의 지역구에서 극우 반난민 독일을 위한 대안한테도 지고있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선거 결과 # 베를린 선거 결과 #

사실상 2연속 패배라고 할만한 성적을 얻었는데 베를린 선거의 경우 사회민주당(21.7%)이 1위를 달리는 가운데 기민당(17.5%)은 2당을 차지했지만, 이는 기민당 역사상 역대 베를린 주의회 선거 성적중 최악의 지지율이었다. 메르켈 본인의 지역구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선거에서는 심지어 19%의 지지율을 얻으며 대안당에게 패배해 3위로 밀려났는데 이 역시 역대 최악의 지지율이었다. 반면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은 14.1%로 베를린 주의회에 사상 최초로 진출하고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선거에서도 메르켈의 지역구에서 메르켈을 이기고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으며 16개 지역구중 10개 지역에서 주의회에 진출, 사실상 지방선거에서 최대 승리자가 되었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메르켈이 선거에서 이런 결과를 거둔 것은 독일 내의 반발여론이 단편적인 지지율 급락에만 그치지 않았고 선거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데다, 극우정당까지 지지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심상치는 않다.

덕분에 메르켈의 정치적 파트너들도 메르켈에게 책임을 요구하며 난민정책의 수정을 요구하였다. 베를린 주의회 선거 이후에는 메르켈 본인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최초로 난민정책의 시행에 미흡한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여전히 반난민 정서에는 반대하지만 수년전으로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더 많은 대비를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하는 동시에 본인이 밀었던 정치 구호 '우리는 해낼 수 있다(Wir schaffen das)'가 많은 반발을 불러온 것을 언급하며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5 여담

  •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으로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뽑혔었다. 2010년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영부인미셸 오바마에게 1위 자리를 뺏기고 4위로 내려앉았었지만, 유로존 위기에서 여러 유럽 국가들에게 긴축재정을 강요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 메르켈이 결국 2011년에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실제로 포브스에서는 "논쟁의 여지없는 유럽연합의 지도자이자 유로 존 경제위기를 해쳐나갈 해결사이다"라며 2011년 메르켈의 1위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는 단지 농담으로만 보기엔 묘한 것이, 실제로 독일이 유로 존 경제위기를 이유로 자국 내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을 내정 간섭처럼 보며 싫어하는 남 유럽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남 유럽인들이 어떻게 화를 자초했나를 생각해보면 메르켈에게 정당성이 있는 게 사실. 게다가 그리스인들의 경우 히틀러 드립을 치는 등 병크를 연발하다가 있는 지지까지 날려먹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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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에 찍힐 때는 거의 항상 손끝을 붙인 포즈다.[14] 그래서 "접착제때문에 손이 붙었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 유명한 축덕이다. 독일대표팀 정도 실력이면 총리도 축덕할 맛 난다 유로 2012에서는 그리스와의 8강 경기를 직관하며 국채 더비의 흥행(?)에 일조하였으며, 이 경기에서 독일4:2로 넉넉한 승리를 거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독일과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1차전직관하는 위엄을 선보였다. 독일포르투갈을 상대로 4:0 완승을 거두자 응원석에서 일어나 박수치며 기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여러 번 잡혔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직접 탈의실까지 가 선수들을 격려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이 올라왔다. 총리님과 축구선수들 물론 브라질을 상대로도 적당히 란 말을 꺼내지 않는 독일의 절륜함에 감동하여 결승전 장소인 마라카낭 경기장을 찾아갔고 그 결과 독일이 마리오 괴체의 연장전 결승골로 아르헨티나에 1:0으로 승리하자 시상식에서 독일 선수들을 껴안아주며 격하게 기뻐했다. 이 승리로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A매치를 직관했을 때 독일의 성적은 11승 1패라는, 흠좀무한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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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결승전이 나오기도 전 미네이랑의 비극 이후 거대 예수상과 합성한 이 짤방은 실로 적절하게 되었다. 야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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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2년에 G8 회담 도중 이런 영 좋지 않은 일도 있던걸 보면 역시 직관을 해야 약빨이 먹히는듯...[15][16]

  •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협력 관계다. 양국의 무역 의존율이 높고, 둘 다 냉전을 거쳤으며, 푸틴은 독일어에 정통, 메르켈은 노어에 능숙, 또한 둘 다 보수 성향이니 죽이 잘 맞는다고. 비공식 만남에서는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오바마를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은 생까고 무시하는 푸틴도 이 사람의 말에는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걍 여자라서 기울이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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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부부라고 착각할 것 같다.

  •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각 국 남성 정상들이 메르켈에게 스킨십을 시도해서 골치라고 한다. 포옹, 어깨에 손 올리기 등등. 그런데 정작 메르켈 본인은 남성 정상들과의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젠가 조지 W 부시는 메르켈에게 뜬금없이 안마를 해줘서(...) 해당 이미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메르켈이 알아서 피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종류의 사진들을 보면 메르켈의 불편한 표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관련 기사 이 방면의 상습범들(...)은 프랑수아 올랑드블라디미르 푸틴이라고 한다.
  • 2012년 4월 노르웨이 오슬로의 새로운 오페라하우스 개장식에 참석하면서 아주 이례적으로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상당수의 남성들은 "메르켈에게 의외로 저런 슴이?"라 외치며 메르켈을 다시 보게 되었고, 또 상당수의 남성들은 "악! 내 눈!"류의 반응을 보였다. 메르켈은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 "과도하다"며 언짢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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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새해 초부터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의 여파로 인해 독일 내에서 반 무슬림 운동이 확산되자, 보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을 지지하며 이명을 받았다. 다만 유럽 난민 사태 당시에는 추방을 두려워하는 난민 소녀에게 독일의 난민정책과 현실을 그대로 설명해주어 소녀가 울어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 2015년 3월, 방일하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이 끝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질의된 질문에 대해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거론하며 "독일은 과거를 직시했으며, 주변국들의 관용이 있어서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모든 관계국들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평화적인 노력을 경주해야한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기시다의 말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물론 독일은 일본에 대해서 어드바이스할 입장이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사실 일본도 엄연한 주권국가인 만큼, 타국이 내정간섭할 수 없는 건 당연지사.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어떤 상황에서 전후 처리에 임했는지, 어떤 국가가 주변국인지(...) 등의 경위가 달라 양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라고 일축했다.
  • 별명이 독일어로 엄마라는 뜻의 '무티'라고 한다. 앙 기무티
그리스 현지 언론에서는 메르켈이 히틀러의 딸이라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1. 현 남편인 요하킴 자우어와 자우어의 전 부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 메르켈은 아이를 가진적이 없다.
  2. 폴란드 인인 루드비크 마리안 카지미에르차크(Ludwik Marian Kaźmierczak, 1896~1959)가 그녀의 할아버지다.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싸운 바 있던 그는 원래 포즈난(Poznan)에서 살았지만 이후 독일로 이주하여 경찰로 살았으며, 1930년 성을 독일식인 카스너로 고쳤다. 이후에도 폴란드의 본가와 비교적 자주 교류했다고.
  3. 근접한 문화권의 오스트리아에서는 복수의 박사학위자는 Dr.를 학위 숫자대로 불러준다고 한다. 물론 일평생 하나도 받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 박사학위인지라 그럴 일은 별로 많지는 않지만서도.
  4. 참고로 전술했다시피 메르켈은 동독출신으로 동독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진 인물이다. 특히 독일공산당 및 그 후신인 좌파 당에 대한 경계심과 증오심이 꽤나 깊은 인물로 메르켈정권에서 좌파 당은 헌법보호국에게 엄청난 표적수사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다. 이를 생각하면 딱히 의외의 반응은 아니다.
  5. 기존의 독일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선언한 적 있다
  6. 물론 나치라면 치를 떠는 건 우파도 대다수가 해당되는지라 메르켈의 정책은 이민제한 등의 정책적 경향 정도고 아무리 독일이라지만 이 정도까지 문제 삼지는 않는다.
  7. 당장 나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면 그리스의 모럴 해저드를 막기가 배는 어려워졌을 것이다. 나치 청산을 칼같이 하고도 여기저기서 원칙대로 긴축을 하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빌린 돈 갚기 싫은 남유럽 얼간이들에게 나치 드립을 당하는 판에 일본처럼 청산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8. 독일인들은 기본적으로 메르켈의 절약정신 및 긴축 위주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까지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9. 사민+녹색+좌파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기민/기사+자민당의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좌파당이 구 동독집권당인 통일사회당의 계보를 잇는데다가 슈뢰더 정권 시절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한 당원들 상당수가 좌파당으로 탈당한지라 그리 사이가 좋지 못하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가끔씩 연립정권을 수립하는 일은 있다.
  10. 다만 독일 내에서는 외무장관인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가 나토가 지나치게 군사적으로 나서는 것을 비판했다.출처
  11. 그래도 리비아는 시리아보다는 사정은 좀 낫다. 카다피 독재 정권 붕괴 후 권력 주도권을 놓고 내전을 벌이던 각 정파 세력들이 최근 유엔아프리카 국가들의 중재하에 통합 연립 정부 수립에 합의하는 등 어느 정도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슬람교의 교리를 멋대로 해석,왜곡하여 테러와 학살을 저지르는 테러리스트 학살 집단인 다에쉬알카에다등을 제외하더라도 아사드 정부나 시리아 반군이나 각자 타도를 외치며 양보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12. ARD가 8월 4일 조사한 결과로 전달보다 12%나 감소한 35%다.
  13. 이는 이스라엘 비판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14. 해외에선 이런 드립도 나오는 모양.
  15. 첼시가 승부차기로 바이에른 뮌헨을 누르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16. 사실 캐머런은 아스톤 빌라팬이다. 그냥 EPL팀이 우승해서 좋아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