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관직)

牧使

1 개요

고려, 조선의 관직. 아래의 (牧)을 관할하는 지방관이다. 목은 부-목-군-현의 순서대로 두번째로 높은 등급의 지방행정구역이고 목사의 직위는 지방관 중에서 현재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觀察使)[1]', 를 관할하는 '부윤(府尹)[2]' 다음이니 상당히 높은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2 일본 고전 문학의 등장인물

일본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졸라 짱 센 괴물. 모티브는 임진왜란 당시 일어난 1차 진주성 전투에서 3,800명의 관군+시민군 조합만으로 왜군 2만 명을 막은 진주 목사 김시민.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압도적인 병력과 수준차에도 불구하고 크게 참패한 일본은 진주성과 그 지휘관에 대해 이를 갈게 된다. 왜군은 복수를 위해 상대편 지휘관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김시민은 1차 진주성 전투 중에 맞은 유탄 후유증이 악화되어 사망한 뒤였다. 결국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목사' 라는 직위만 알아내게 되었는데 왜군에선 이걸 김시민의 이름으로 생각하고 '적의 지휘관 목사(...) 판관을[3] 쳐부수자!' 라는 쓸데없이 비장한 일념에 불타오르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괴물로 형상화된 것.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의도된 바였다. 진주성의 조선군은 김시민의 죽음 이후 그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몰래 가매장했다가 나중에 그의 고향인 천안으로 옮겨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지휘관의 죽음을 알게 된 왜군이 다시 몰려올 것을 우려해 단행한 조치였다. 김시민에 대해 극도로 적의를 품고 있던 왜군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어떤 참상을 벌였는지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대단히 현명한 조치인 셈.

이들의 착각은 전쟁이 1년이 지난 뒤에도 고쳐지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서(...) 제2차 진주성 전투때는 90,000명에 달하는 사실상 전병력에 지휘관도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우키다 히데이에, 콩라인 다테 마사무네 등 올스타급을 투입하여 조선군의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가까스로 성을 함락시키게 만들었다. 그리고 왜군은 김시민의 뒤를 이어 목사로 부임했던 서예원이름만 들어보면 꽃다운 여고생 느낌이지만[4]의 목을 벤 뒤 같은 '목사'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예원이 그 김시민인 것으로 착각, '드디어 우리의 원수 목사판관을 잡았다!' 며 희희낙락했다. 심지어 나중에 서예원의 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까지 바쳐졌다고 한다. 그만큼 이 '목사' 가 일본에서 얼마나 경계의 대상이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결국 왜군은 이미 죽은 사람을 이겨보겠다고 그 난리를 친 셈. 무슨 제갈량도 아니고

이런 의미에서 이름까지 완전히 적에게 알려진 리슌신이순신이 왜군에게 있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였는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데스노트라도 쓰고 싶겠지만 아무것도 없으니 안 될 거야 아마

물론 국토가 전장이 된 조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많다. 예를 들면 시마즈 요시히로를 심안돈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어서 임진왜란의 기록을 살펴보면 '여러 명의 시마즈 요시히로' 가 조선 남부를 유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은 한 사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이름을 제대로 몰랐던 탓에 각 전장의 지휘관들은 지들 꼴리는 대로 한자 이름을 장계에 써 보냈고 중국에선 외국인 이름 표기할 때는 지금도 그런다던데?[5] 이를 받은 조정은 전부 다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생긴 병크.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이 얼마나 혼돈의 카오스였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시스템은 중세 국가인데 전쟁의 규모는 어지간한 근/현대급, 그것도 국제전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1. '감사(監司)' 라고도 불렀다.
  2. 단, 한성부의 장은 '판윤(判尹)', 강화·개성·광주·수원부의 장은 '유수(留守)' 라 하였다. 또한 대도호부와 도호부도 있었는데, 이들의 수장은 대도호부사(府使), 도호부사라고 불렀다. 특히 도호부는 목보다 품계가 낮다.
  3. 이름으로 착각한 '목사' 에 관직명인 '판관' 을 붙여서 탄생한 듯하다. 일본식 발음으로는 '모쿠소 호간'이라고 읽는다고 한다.
  4.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감성이 지금과 같았을 거라고는 말 못한다. 정약용 친척 정정혜 엘리사벳이나 은애전의 김은애 등등을 보면 여자 이름에 있어서는 의외로 현대랑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편강탕의 그 편강한의원 광고에도 '예원 선배'란 이름의 남자 주인공(해당 광고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므로 광고 만화의 '나'는 주인공이 아님.)이 등장하는 걸 보면 또 모를 일이긴 하다. 단 '역사의아침'이란 출판사에서 낸 징비록에는 이 사람의 이름이 "서례원"으로 번역되어 있다.
  5. 한자문화권의 외국인 이름을 표기할 땐 한자표기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표기하고 한자표기를 알아내고 나서야 원래 한자로 불러준다고 한다. 한자문화권이 아닌 외국인이라면, 가차표기 중 널리 쓰이는 거 몇 개가 다같이 돌아다니는 방식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