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츠(전함)

width=100%
width=100%
width=100%
長門と陸奥は日本の誇り(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

1 개요

나가토급 전함 2번함으로 명칭 유래는 무츠 문서의 1번.

2 논란속의 출생

야마토나 나가토는 전투에 참여하기라도 했지만 무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무츠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더 황당할 노릇인데, 무츠가 건조될 당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당연히 영미 측에서는 무츠를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조약 기본조건이 아직 건조중인 전함 및 신규건조계획의 폐기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시 막 완성된 나가토와 메릴랜드는 해당사항이 없었으나 그외는 모두 폐기하거나 다른 함선(대부분 항공모함)으로 용도변경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조약에 따라서 16인치(406mm)포를 장착한 전함은 전 세계에 딱 2척인 일본의 나가토와 미국의 메릴랜드만 남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거함거포주의적 시각에서는 나가토를 실제 작전에 쓰려면 전대를 구성할 동형함이 1척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일본 해군에게는 이미 투입한 돈과 자재와 인원이 심히 아까웠다. 사실 무츠는 거의 완성직전으로 약간의 의장공사만 끝나면 되는 상황이었다. 만에 하나 워싱턴 군축협상이 조금만 늦게 시작되었으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해군은 해군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을 무츠의 의무실로 옮긴 다음에 "이미 취역했다능! 현역으로 활동 중이라능! 그런데 얘를 왜 해체함?"이라면서 징징거렸다. 한동안 옥신각신한 끝에 씁 어쩔 수 없지하면서 영미 측도 무츠를 인정...하긴 했다.

"그럼 불공평하잖아. 무츠 대신 우리도 16인치급 주포 실은 전함 두 척씩 더 찍어낼텐데 그래도 괜찮겠지?"라고 제안했고, 일본은 괜찮아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래서 영국은 넬슨급 전함 2척을 신규로 건조할 권한을 얻었고, 미국은 이미 건조중인 콜로라도급 전함 4척중 이미 조약으로 생존이 언급된 메릴랜드 외 2척[1]을 추가로 완공해서 총 3척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 16인치급 주포 탑재함 7척(나가토급 2척, 넬슨급 2척, 콜로라도급 3척)을 빅 세븐[2]이라고 호칭한다. 즉 일본 해군은 무츠 1척을 가지려고 가상 적국들에게 40cm급 주포 탑재 전함 4척을 준 것이다. 이뭐병……. 아마 일본 해군은 자신들의 우월한(?) 전략전술과 개함전투력으로 그정도 숫자의 차이는 극복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게다가 원래 조약대로라면 나가토는 콜로라도급과 비슷한 스펙에 속도가 우월하므로 1:1 대결에서 여유롭게 메릴랜드를 가지고 놀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저렇게 덜컥 허용해주는 바람에 숫자에서는 콜로라도급에게 밀리고, 방어력 및 신기술에서는 넬슨급에게 밀린다. 물론 넬슨급도 2척이라서 숫자에서도 동등하며, 단지 콜로라도급이나 넬슨급이 느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할 뿐, 미국이나 영국이 이미 지키고 있는 곳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덤으로 16인치 주포를 탑재한 전함을 1척 격침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갈 것인가 생각해본다면...이 때문에 조약 체결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의 일본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무리한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패전후의 일본에서도 이를 비판한다. 무츠의 안습한 최후와 맞물려 차라리 무츠 1척을 영미의 4척과 바꾸는게 더 대전과였을 것이라며 책상물림들의 삽질이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제안은 아니었는데, 해당 시점에서는 일본은 16인치 주포 탑재 고속전함을 2척이나 바로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상태로 보유해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지만, 미국은 동급 주포를 갖추었으나 속도가 크게 느린 전함을 건조중단 상태에서 계속 공사를 추가로 더 진행한 후에야 2척 더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영국은 아예 설계도도 없는 상황에서 16인치 주포 탑재 전함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넬슨급.[3] 그러니까 일본은 저 4척이 취역할 때까지는 전함 전력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우 그 몇년동안 1척의 우세를 더 차지하겠다고 4척이나 되는 전함을 만들게 둔 것은 지나치게 단기적 관점만 가지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조약 체결 당시 일본은 영국과 우호 관계였던지라 당장 미영 양국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가상적국 미국에게 신형전함 두 척의 쿼터를 더 내준 건 삽질 맞지만.

3 폭발사고로 맞은 허망한 최후

width=100%

역시 탱크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크고 아름다움이다

width=100%
width=100%
침몰 후 수십년 뒤에 건져낸 1,2,4번 주포탑
width=100%
박물관에 전시된 대개장 당시 빼내어진 4번포탑[4]

하지만 무츠는 위에 언급된 4척이 현역에 취역하기 전이나 그 뒤에나 제대로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츠는 1943년 6월 8일, 히로시마 하시라지마(柱島)에 정박했다가 오후 12시 10분쯤에 갑자기 폭발과 같이 침몰해버렸고, 승조원 1,474명 가운데 353명만 생존했다.

그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제기되었는데 연합군 잠수함에 의한 기습, 스파이에 의한 파괴공작, 탄약고 내의 자연발화, 폭뢰폭발설 등이 있다.

  • 우선 잠수함에 의한 어뢰 공격의 경우 침몰하기 전 3번 주포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다수의 증언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아닌 것으로 판정되었다. 게다가 태평양 전쟁이 한창 때에 연합군 잠수함이 전함을 격침시키는 대전과를 세웠다면 발표되지 않을리 없다.
  • 폭뢰설은 일본의 우익들이 지지하고 있는데 히로시마항에서 구축함 우시오가 실수로(!) 1년 반 전에 무츠가 있던 자리에 폭뢰를 떨어뜨리고 책임을 묻게 될까봐 이를 보고하지 않아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폭발했다는 것. 그러나 마찬가지로 3번 포탑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잠수함조차 직격을 맞아도 한 두발은 경우에 따라서 버틸 만큼 위력이 약해 격침보다는 침몰 직전으로 몰아 부상시키는 게 주 목적일 정도인 폭뢰가 터져봐야 전함은 페인트 벗기는 거 이상의 피해는 줄 수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팀킬이라고 인정하기 싫어서 전함을 폭뢰에도 골골거리는 어선으로 만드는 우익 클라스
  • 스파이의 공작활동으로 전함을 파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대단한 스파이가 실제 있었다면 연합군이 승전한 시점에서 지금까지 이런 엄청난 공적을 발표하지 않을리 없다. 정말로 무츠가 스파이 공작으로 파괴되었다면 그야말로 스파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전설적인 업적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한 의혹을 다룬 소설인 『무츠폭침(陸奥爆沈)』에서 가능성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을 뿐 주요한 소재가 아닌 상황이다.
  • 일반적으로 탄약고내의 포탄이 자연발화한 경우는 HMS 뱅가드(1909)가 있는데.[5], 1917년 7월 9일 스카파 플로우에서 훈련중 코다이트 MD 장약에 불이 붙어 폭침을 당한적 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이 쓰던 3식탄마그네슘과 가연성 소이탄이 내부에 들어있어 3식탄의 자연발화 가능성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함께 히로시마에 정박해있던 전함 후소의 함장 이하 목격자들이 3번 주포탑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니트로글리세린과 면화약이 주성분인 주포용 93식 1호장약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이 가능성도 부정되었고. 그리고 93식 장약은 독일 무연화약 기술을 받아들여서 센트랄라이트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섞어 들어간 장약은 왠만해서는 자기 발화 하지 않았고, 유틀란트 해전에서 불안정한 코다이트 Mk.1과 MD 장약으로 인한 유폭으로 고생한 영국해군도 센트랄라이트를 섞어서 쓸 정도였다.(코다이트 SC)

결국 잠수함도 기뢰도 스파이도 자연발화도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 탄약고에 접근하기 쉬운 수병이나 당직사관 등이 방화했을 것이라는 가설만이 남는다. 이들이라면 여분의 열쇠 한 개쯤 몰래 훔치거나 복제해서 손에 넣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기가 타고있는 전함에 불을 지르냐 하는 의문이 드는데, 사문회에서 제시된 가설은 3번 포탑 근무자 가운데 절도 범죄에 기소당했던 수병이 불만을 품고 탄약고를 터뜨렸다는 것이다. 일단 당시의 사고 조사반에서도 뭔가 증거를 찾아냈으나 갑자기 모든 수사를 끝내고 원인불명처리했다고 한다. 적군의 폭탄 설치나 여러가지는 증거를 찾지못했고 가장 먼저 연기가 치솟은 3번 포탑에서 폭발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갑작스럽게 군부 측이 사건조사를 끝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아군의 자침행위라는 게 알려지면 일본군의 위신이 추락할것을 꺼려해서였을듯 하다. 유족들은 그저 전투 중 격침 정도로 전해듣고 전사자 연금을 받았으며, 무츠가 폭침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패전 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무츠가 침몰한 원인은 3번 포탑 내 탄약고에서 난 불이 탄약고를 유폭시킨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는 사문회의 절도범 가설이 영어권 연구를 비롯해서 여러 자료에서 인용될뿐 아직까지 여러 이견이 존재하며 심지어 우리나라 밀덕 커뮤니티에서는 수병간의 가혹행위가 불러온 자살적 테러설이 널리 퍼져있다.

여기서 주포 탄약고에 불 좀 났다고 거함이 격침당할 수 있는가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실제로 군함간의 포격전같은 전투상황시 가장 위험한 사태중 하나가 탄약고에 불이 나는 것이다. 육상에 설치된 탄약고에서 불만 나도 초비상이 걸리며 탄약고가 폭발하면 장난이 아닌 피해를 입는데, 이미 범선 시절에도 탄약고에 불이 난 것이 확인되면 주변에 있던 아군 함선은 물론 적군 함선도 위험범위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썼으며, 거함거포주의로 인해 거대한 주포를 가지게 된 전함의 주포탑에는 탄약고가 집중배치되어서 내부에는 수백kg 이상의 작약과 주포탄이 수백발이나 적재되었으며, 주포탄을 발사할 장약도 대량으로 적재된 상태였다. 따라서 주포 탄약고에 불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거대한 전함이 두쪽 날 수준의 위력이 충분히 발휘한다. 탄약고의 주포탄이 일제히 폭발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위력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수준으로 엄청나다.[6]

이를 증명하는 예시야 밑도 끝도 없다. 진주만 공습 당시 전함 USS 애리조나는 주포 탄약고에 500Kg짜리 폭탄을 맞았는데, 폭탄의 원래 폭발위력과는 천지차이가 날 정도의 엄청난 유폭이 발생해서 배가 순식간에 굉침당했다. 후드의 경우에도 탄약고에 비스마르크의 주포탄을 맞고 유폭, 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순식간에 침몰해 생존자가 단 3명이었을 정도였다. [7]그리고 일본군의 공고급 순양전함인 공고도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수가 진행돼서 배가 기울자 퇴함명령이 내려졌는데, 기울어진 배 내부에 적재된 주포탄 몇 발이 탄약가대에서 밀려나와서 바닥과 충돌한 덕분에 배가 대폭발해서 퇴함중이던 승조원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후소급 전함인 후소도 전투중에 중앙주포탑 인근에 맞은 어뢰 덕분에 화재가 발생했고, 소화에 실패함에 따라 배가 두 쪽이 나면서 굉침당했고, 생존자가 없었다.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4번함인 HMS 버럼 역시 1941년 11월 25일 한스 티센하우젠이 이끄는 U-331의 어뢰 공격을 받고 기울면서 주포탑 유폭이 일어나 폭발해 전원 전사했다. 리토리오급 로마? 1943년 독일군의 프리츠 X를 주포탑 근처에 맞았는데 주포탑 유폭으로 두동강났다. 거대한 포탄을 사용하던 야마토급 전함은 폭탄을 얻어맞고 침몰해가면서 기우는 사이 탄약고가 유폭해서 버섯구름을 피어올리며 대폭발했다. 따라서 주포 탄약고에 불나면 아무리 거함이더라도 굉침당하는 것은 순간이다.

4 구조적인 문제

일본의 전함들은 야마토급 전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케이스메이트(현측 포곽에 부포배치) 방식을 사용하며, 이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설계/건조된 전함들의 보편적인 설계 방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건조된 전함들은 대미지 컨트롤, 특히 화재에 상당히 취약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포곽식의 경우에는 포곽 바로 뒤로 선체 내부가 노출되어 있고,다른 포곽들이 후방을 공유하기 때문에 포곽들 사이에 화재를 방어할 수단이 전무한 수준인데 일본 전함들이 쓰던 장약은 주포건 부포건 코다이트(…!)에 장약과 탄약을 동시에 이송하는 방식이다. 즉 장약과 탄약을 같이 대량으로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니 불 하나 잘못났다 하면 그대로 BOOM! 타국의 경우에는 기존 전함을 개장하거나 신형 전함을 건조할 때 부포는 따로 부포탑으로 독립시키는 추세였다. 물론 연합군도 포곽을 버리지 못한 전함들이 몇몇 있긴 했다. 영국의 경우 좋은 예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인데, 네임쉽인 퀸 엘리자베스와 3번함 밸리언트는 1938년 개장 때 부포를 신형 2연장 4.5인치 양용포탑으로 대체하면서 되레 포문 숫자까지 늘어 화력이 대폭 강화됐지만, 나머지 배들은 개장 타이밍 자체를 잡지 못했거나 다른 부분은 다 개장해놓고도 그 부분만 손을 못 댔다. 특히 다 개장해놓고도 부포만 못 바꾼 좋은 예가 바로 영국 해군 최고의 수훈함 워스파이트. 미국 역시 표준형 전함들 중 부포탑까지 개장할 시간이 없는 등의 문제로 몇몇 전함은 포곽을 달고 다녔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포곽을 포탑 형식으로 바꾸거나, 포문을 줄이는 식으로라도 방어력 향상을 꾀했다. 일본도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이세급 전함의 경우 항공전함으로 개장하며 포곽을 철거했다.

5 침몰 이후

폭발사고에서 살아남은 무츠의 승조원들은 수백명에 이르지만 전원 중부 태평양의 해군기지로 보내졌다. 그리고 이런 곳들은 말이 좋아서 해군기지지, 마셜 제도나 매리아나 제도에 있는 해군 근거지대였다. 이들 지역은 일본군이 옥쇄 아니면 굶어 죽어나가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비밀 보호를 명목으로 무츠의 승조원들에게 보내진 우편물들은 "극비 출동중"이라는 명목으로 반송처리했다.

일본군은 처음에는 무츠를 인양해서 수리 후 재취역하려고 했고, 공사기간도 3개월 정도면 다시 전력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주포탑 폭발로 굉침한 선체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전쟁기간중에는 무츠는 방치상태로 버려졌으며, 전쟁이 진행될수록 연료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 이르자, 1944년 7월에 무츠의 연료 탱크에서 중유를 600톤 정도 회수했다.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난 후, 1948년에 서일본 해양산업 주식회사라는 업체가 무츠에 탑재된 물자나 고철을 회수할 목적으로 인양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래 허용범위를 초과하는 무리한 작업끝에 사고가 발생해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는 무츠가 침몰한 위치가 내해긴 하지만 조류가 빠르고 시야가 좋지 않아서 잠수 및 인양작업이 매우 곤란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인양은 1970년에 후카다 구조 건설공사 주도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때 함수의 일부와 주포탑 등의 무장 일부, 승무원의 유품등을 인양했다. 인양작업의 초창기에는 1500t 크레인으로 함미도 인양하려고 했으나, 와이어가 끊어지는 등의 사고로 인해 포기했고, 다시 시도한 끝에 1971년 3월 15일에 함미부분도 인양했다. 동시에 4번 주포탑도 인양했으며, 내부에 있던 승조원의 유골도 몇 점 수거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인양한 결과, 함체의 약 70%를 인양했으며, 해저에는 함교부위와 함수부를 제외한 전함의 함체 전반부가 남아있다.

일본 각지의 관련 박물관에는 무츠의 포탑 등 여러가지 부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침몰한 무츠에서 건진 것도 있지만, 예비부품으로 남은 물건도 섞여있다. 원래 전함은 장기간 운용시 수리를 빠르게 하고, 손상된 부품을 빠르게 교체하기 위해 여유가 되는 대로 예비부품을 만들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무츠용 부품이기 때문에 진품인 것은 확실하다.

c0026297_58076048c0b70.jpg

도쿄 오다이바의 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무츠의 주포.

또한 무츠에서 회수된 강철 중 일부는 '무츠철'이라 불리며 일본에서는 방사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는 정밀기계의 부품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당시의 제철/제강 과정에서는 철에 자연방사능 성분 이상의 방사능 성분이 들어가지 않았고, 바다에 가라앉아 있었기에 원자폭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철이기 때문이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철들은 제조과정에서 미량의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므로[8] 정밀기기용으로는 부적절하기 때문.

일단 타국에서도 방사능 측정 기기등 특수한 물건에 한해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때 침몰한 독일 함선에서 철을 뜯어 쓰는 경우가 있긴 하다.#1#2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정밀한 방사능 측정을 위해 가급적 자체 방사능이 적은 자재가 필요한 경우에 한하며, 꼭 무츠뿐만 아니라 핵폭탄이 사용되기 전에 가라앉은 침몰선이라면 모두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국과 일본의 함선들이 많이 가라앉은 아이언 바텀 사운드 같은 곳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다[9]. 그리고 이런 이유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보통 극소량만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소 몇백년 이상은 소요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무츠를 재활용한 건 무츠가 딱히 특별한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일본 본토 연안지역에서 침몰했으므로 적은 비용으로 자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6 기타

히라가 유즈루라는 조선 기술자는 설계과정 중 무츠는 3연장 포탑 2기와 2연장 포탑 2기를 혼용해서 16인치 포를 총 10개나 달자고 제안했으나 양산 효과가 떨어져서 거부되었다. 만약 히라가의 제안이 받아들여 졌다면 설계변경 등으로 건조 시점이 대폭 늦어 졌을 것이므로 워싱턴 회의 시점에서 무츠는 완공 직전이 아니라 진수 직전/직후 상태가 되어 폐기가 확정되었을 것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무츠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1970년에 NHK에서 제작한 무츠에 관한 다큐다. 건조모습과 폭침에 대한 증언, 폭발실험, 그리고 인양작업등이 나온다.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지만 같은게 3번 반복된다는 것이 함정.
  1. 콜로라도와 웨스트버지니아인데 콜로라도급 전함의 웨스트버지니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웨스트버지니아는 진주만 공습에서 침몰한 이후 Mk 8 초중량탄을 당시의 최첨단 레이더인 SG, SK로 관제사격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야간전에서 웨스트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급 2척 그리고 무츠가 겨룰 경우 무츠는 구식 사통기구 땜에 미군 전함의 Mark 6 (노스캐롤라이나급)과 Mark 8 (Mark 7바로 아래 Mark 6보다 위, 웨스트버지니아)의 레이더 관제 사격을 받고(30km거리에서 관통 가능, 무츠는 이 세 척을 관통 불가) 격침당할 위험이 매우 높다. 웨스트버지니아와의 1:1포격전위 경우, 주간에는 호각(누가 먼저 선빵을 갈기느냐, 자세한 건 콜로라도급 전함 항목의 5-5.느린 속도의 각주중 나가토와 웨스트버지니아를 비교한 걸 참고 바란다.)이고 야간에는 신형 사통 기구 덕에 웨스트버지니아가 더 유리하다. 재수 없는 경우 야간전에서 레이더 성능의 열세로 인해 개장 후 최첨단 레이더를 갖춘 14인치 테네시급의 일격이탈 전략에 의해 부포 장갑이 뚫려 피해를 입거나 굉침 당할 수 있다. 안습
  2. 빅 세븐이란 호칭은 일본에서밖에 쓰지 않는다.
  3. 영국답다면 영국다운(?) 설계로 함의 밸런스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전쟁중의 영국이 쓸 수 있는 최신형 전함이다보니 전쟁이 끝날 때는 기관부가 파열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4.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전함 주포로는 현재 무츠의 것만이 남아있다. 나머지는 모두 미군에게 넘어가거나 스크랩된 상태.
  5. 뱅가드급 전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인트 빈센트급 전함이다.
  6. 그래서 교전 중 전함의 포탑이 적의 공격으로 무력화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해당 포탑에 물을 채우는 일이었다.
  7. 다만 이는 구조된 생존자가 3명이란 얘기로 실제 굉침당시 생존자들은 더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구조된 인원이 3명이고 나머지는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유는 당시 주변에 후드의 생존자들을 즉각 구조할만한 함정들이 없었다. 후드와 짝을 이룬 프린스오브웨일즈는 후드가 굉침하면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오이겐에게 집중공격을 당하고 있었고 독일의 2척은 프린스오브웨일즈를 패는 중이라 후드의 생존자들을 구조할 여유가 없었다.
  8. 용광로의 수명측정 용도로 용광로의 내부에 방사성 물질인 코발트-60을 발라놓는다는 모양이다. 용광로 외부에서 방사능을 측정해서 수치가 높게 나오면 용광로의 수명이 다됐다는 뜻이라고.
  9. 다만 배는 침몰한 뒤에도 원래 소속돼있던 국가나 회사의 재산으로 취급되는지라 아무나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