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1 대한민국의 의사, 칼럼니스트

%EB%B0%95%EA%B2%BD%EC%B2%A0%204.jpg

대한민국의 의사, 대장항문외과&외상외과 전문의, 부검의, 타칭 주식고수[1]. 칼럼니스트, 방송인,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1.1 의사 박경철

덕원고등학교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후 여러 병원을 거쳐서 2001년 고향 안동에서 개업하였다. 한때 개인병원 전국 환자 수 3위를 달릴 정도로 성공했으나[2] 현재는 다른 여러가지 활동 때문에 주말에만 진료한다. 주중에는 같이 개업했던 동료들이 맡아서 운영.

2007년 한때 의사협회 대변인을 맡아서 일했다. 빈민층을 위한 의료복지 확대와 각종 의료제도 개선을 주장했으나, 결국 3개월만에 사퇴했다. 당시 보수언론과 일부 대형병원 의사들은, 주식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거둔 시장경제 신봉자 박경철을 좌파로 몰아붙였다. 당시 박경철은 여러 인터뷰에서 "의료행위로 돈 벌려고 해서는 안 되고[3], 돈 못 벌고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빈민층에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부분의 의사들이 아직 그 정도 양심[4]은 가지고 있다"고 말했으나, 돌아온 건 좌파의사라는 비난이었다.[5] 그외에도 당시 약제 성분명 표기를 가지고 시민단체와 충돌하기도 했다. "복제약은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리지날을 써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1.2 작가 박경철

이러한 의사 생활의 경험을 바탕[6]으로 2005년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선 본인과 주변의 의사들이 실제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2011년 가을에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란 에세이집을 출판하여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외에도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1.2》등의 서적을 출판하였다.
2013년 2월엔 페르시아 문명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이란에 취재를 가 있다. 트위터 보면 관련 사진들이 많이 올라온다.[7]

1.3 주식 고수 박경철

대학 재학시절부터 주식에 관심을 가져서 독학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주식투자 예상을 선보였다. 특히 주요 고비때마다 맞아 떨어지는 예측을 몇번 하여 많은 개미들이 신뢰하는 투자분석가가 되었다. 이런 공로로 2006년 증권사가 선정한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업계 종사자가 아닌 외부인으로 최초라고 한다. 박경철이 했던 주요 예측을 살펴보면

  • 1999년 성장주와의 이별 - 2000년 닷컴버블 붕괴에 따른 주가 폭락을 예상하면서 모든 주식을 팔아치웠다.[8]
  • 2001년 향후 10년 내에 이 가격으로 삼성전자주를 살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는다 - 1998년 금융위기와 2000년 닷컴버블이후 폭락하던 주가가 이 시점을 저점으로 찍고 대세상승기에 접어든다.
  • 2007년 한국 주가 고점론 - 주가2000을 찍은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경계로 폭락.

박경철의 예측이 엇나가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2008년 이후 그는 매도론을 설파했지만, 2년 후 종합지수는 2300까지 상승했다. 이를 두고 박경철의 영향력 때문에 거기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책임론이 있는데, 정확한 이야기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얘기한 시점에서는 이미 주가가 상당히 극단적인 고점에 가까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매도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2008년 부터 2009년 사이 시장은 800 선까지 하락했기 때문에 이때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관심을 끊거나 깡통계좌가 속출했으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박경철의 증시 분석은 주로 [9]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비 전문가 또는 아마추어가 주식투자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신뢰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투자기법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주식에 유명한 이론인 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 을 근거로 하여 그 주식에 대한 고유 가치(intrinsic value)와 시장 가치(market value)를 비교하는 고유 가치 분석 (fundamental analysis technique) 또는 그래프 분석을 통한 기술적 가치 분석 (technical analysis technique)이다. (CAPM의 주요 골자는 시장 포트폴리오 즉 주식 시장의 주식 구성 비율대로 주식을 구성하는 것이 주식 투자에 있어 가장 최적의 균형이자 최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CAPM이 투자론에 있어서 기초 지식이기는 하지만 CAPM이 절대적인 주식 시장의 법칙이라면 워렌 버핏 같은 투자의 귀재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박경철의 매수와 매도 시점에 대한 것은 이러한 전문적인 이론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기관 투자자의 기법과 거리가 멀다. [10][11]

기관 투자자들은 이러한 전문적인 지식들, 특히 CAPM을 근거로 한 기본적인 수학적인 지식을 3차에 걸친 CFA 시험을 치루어 합격하는데다 이쪽으로 빠지는 학생들은 주로 비즈니스 과목 출신으로 대학에서 회계에 관련된 지식도 필수적으로 배운다. 하지만 박경철은 회계 장부에 대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이러한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적다는 점과 이런 애널리스트로서 기본적인 자격증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증시 전문가로 언론에 소개되어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전문적인 조언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12]

개미시점에서 몇번 맞아 떨어진 예측과 투자전망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고, 많은 강연요청을 받게 된다.

여담이지만 주식관련 세미나중에 주식관련이 아니라 의학관련일로 강연을 해보는게 소원이라 했다고 한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2007년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작고한 주식 재야고수 故 시골국수와는 다른분이니 햇갈리지 말자.

1.3.1 시골의사 박경철이 말하는 투자

그의 전제는 언제나 이렇다. 개인투자자라면 투자를 하지 마라. 그러나 정 하고 싶다면 이정도는 알아야 겨우 면허를 딴것과 같다. 그렇게 내놓은 그의 책들은 분량도 두툼해보이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만든다. 박경철은 개인투자자들이 시장구조와 심리상 절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개인투자자의 욕심이 그들을 주식시장으로 향하게 만들 것임을 알기에 자신의 지식을 정리해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는 시장이 끊임없이 강세와 약세를 반복하면서 그 모습이 변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의 입장으로는 단순하게 시장을 파악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의 책에 나오는 핵심은 '변동성'이다. 가치란 일관되지 않고 계속 변하는데 이때 가치가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것을 사전에 알아차릴 계량적인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급등과 급락을 포착하지 못하면 이득은 못 보고 손해만 커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가 쓴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는 이 변동성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비법이란 없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생각해서 찾아내야하는 것이 투자의 방법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고 지식도 많기에 알량한 지식만을 내새우는 불쏘시개자기개발서 취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1.4 강사/방송인 박경철

주식 관련 글을 쓰다가 방송에 나오게 되었는데 얼굴을 가리기로 한 방송국이 약속을 어겼다. 의도치 않은 얼굴 공개로 인해 어찌어찌 방송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다시 쓰는 기술적 분석이다. 이 강의 시리즈 마지막에서 하는말이 결국 주식 하지 마라는 것이여서 어쩌면 황당하게도 들리지만 실제로는 진실된 조언에 가까운 말로 받아 들일 수 있다. 이점이 다른 수많은 자타칭 고수와 다른 점인데 기술적인 것을 알려주더라도 나처럼 하면 돈을 번다거나 오른다 떨어진다 따위의 예측으로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들지 않는 인물. 유명세가 더 늘어서 박경철은 주식분석 고수로서 경제관련 방송과 신문사설등 다양한 방식으로 칼럼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출연하고 있으며 각종 강연에도 다니고 있는데 교육·공공기관을 우선순위에 두고있어 차비를 빼면 섭외료가 남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2011년 현재 월 평균 30여회의 강연과 20여개의 고정칼럼 연재, 그리고 매일 오전 KBS1 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를 진행하다가 그만두었다.

특히 2010년 봄부터 안철수 원장과 함께 전국 대학을 돌면서 개최하고 있는 2인 강연 <청춘콘서트>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김제동, 윤여준, 김미화 등 다른 게스트까지 대동하게 되면서 규모도 커지고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는다. 2011년 9월 대구 영남대를 마지막으로 청춘콘서트는 당분간 막을 내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처음에는 이화여대의 요청으로 하게된 1회성 행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경철이 안철수에게 지방대생에게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게 되고 안철수가 수락해서 2010년 전국을 돌면서 2인강연 행사를 하게 되고 이걸 2011년 정토회 법륜스님의 도움을 받아 조금더 체계화 한것이 청춘콘서트이다.[13]

1.5 정치활동

주식 고수로 대중에 알려진데다 합리적인 중도개혁 이미지 때문에 정치권의 영입제안을 여러차례 받았다. 그러나 계속 거절해 오다가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 전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2008년 4월 총선을 대비해서 각 지역별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를 심사해서 결정하는 자리. 이 작업 후에 "내가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욕망을 지난 4일간 보았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한마디로 정치인들 더럽게 욕심부리고 뻔뻔하더라 공천심사위 활동만 하고 실제 선거에 참여하지는 않았다.[14]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을 한 경력이 있는데, 그 당시에 한 인터뷰에서 호남출신 김효석 의원을 칭찬하면서 호성 드립(...)을 쳐 지역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서울 출마는 낙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당의 명령이면 호남 지역구 버리고 서울 출마라도 하겠다는 김효석 의원의 대답에 대한 상찬의 의미로 이호성(...)을 언급하였으나 공적인 인터뷰에서 난데없는 살인범 이름 언급이 참 뜬금없을 뿐더러, 살인마 이호성과 정치인 김효석 사이에는 같은 호남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박경철에게 反호남 성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인터뷰 공개된 시점이 이호성 사건이 일어난 직후이고 그 당시에는 소위 dcinside에서 호성 드립이 호남 비하로 쓰이기 이전에 나온 인터뷰이므로 일방적으로 호남비하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내용으로 나왔지만 공천심사를 당시 한나라당에서 제의를 받았다면 민주당보다 더 열심히 했을거라며 일종의 반한나라입장을 표명한바있다.정치적으로 안철수와 함께 정치적으로 각광 받는 시점에서 호남비하론,개인의 여러 깍아내리기 공세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나온 시점이 우연히도 일치한다.나꼼수에서도 나온적있지만 이 시기 보험,리베이트 등의 조사가 이루어져 힘들었다고 한다.공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으나, 여러모로 실언이며, 해당 의혹에 대해 박경철은 그 이후로 해명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참고로 김효석 의원은 결국 호남 공천을 받았고 2012년 총선에는 서울 출마를 선언한 상태이다.

1.6 안철수의 절친 박경철

이전부터 안철수 교수와 인연이 있었던 박경철이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한 때는 2011년 5월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진행한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부터이다. 안철수와 같이 지방 젊은이들의 기를 살려준다는 목적으로 청춘콘서트를 기획했다. 이 과정에서 정토회 법륜과 정토회 산하의 평화재단 윤여준 이사장, 탤런트 김여진 등도 함께 하게 되었다. 이 청춘콘서트에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면서 박경철은 주식 고수가 아닌 젊은이들이 존경하는 사회인사로써 명망을 얻게 된다.

실제로 안철수 교수와 친분을 주고받는 300여 명의 인물 중에서도 최측근 위치에 있는 박경철은 2011년 9월 1일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통해 불거진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던 5일 동안 안철수 교수의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고,

52329_33889_826.jpg

안철수 교수의 불출마 선언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에도 동석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우는 이유를 기자들이 묻자 "예쁘잖아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짤이 임펙트가 셌는지 MBN의 개그프로 개그공화국 셰프를 꿈꾸며 코너에서 자주 패러디 되었다.
산골의사(...)라고 하며 안철수의 패러디인 안 원장 캐릭터 옆에서 무슨 말만 하면 아름다운 양보에요~ 하면서 혼자 눈물을 질질짜며 이승만 옆의 신성모 마냥 안철수를 끌어안는 모습만 보이며 안원장에게 바람을 넣는 역이다.
본인을 이렇게 희화화 시키는 것에 대해선 정작 언급을 안하는 편.

그리고 그가 유명해지고 나서 벌어진 상황을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 밝혔다.
그가 운영했던 안동 신세계 연합 병원은 갑자기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받았다. 다만 처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세무조사는 아니다. 성형외과나 치과 같이 큰 현찰 박치기를 많이 하는 병원 말고는 세무조사의 타겟이 잘 되지 않는다. 다 전산상에 잡혀서 세무조사를 못하는 게 아니고 할 필요가 없다는 모양. 그럼 무슨 압박인고 하니, 보험사기관련조사, 의약품관련리베이트수수의혹, 의료보험진료액과다청구의혹 등 병원에서는 세무조사보다 더 무서운 정치보복조사들이 줄줄이 가해졌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박경철 원장에 대한 주가조작여부와 주식거래내역 등 털 수 있는 건 다 털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 하나 나온 게 없어서 기사화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박경철은 안동신세계 연합병원의 경영에서는 손을 뗐다.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해프닝이 벌어진건 최초 세무조사 의혹을 공개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저 이야기를 듣다가 조는(...) 바람에 "조사"라는 단어 밖에 못 들었고 숙명여대 가서 강의하다가 세무조사라고 잘못 떠벌인 것. 그리고 이것을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 중에 또 떠들어서 기사화된 것이다. 참고로 통화 중에 기자가 기사로 쓸 거라고는 안 했다는 모양. 그리고 당연히(?) 안철수 교수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나 털었음에도 불구하고 꼬투리 하나 나온게 없는게 더 무섭다. 아직 정계진출도 안 한 사람을 미리부터 털어주시는 높으신 분들의 세심한 배려도 무섭다

최근 새누리당종합편성채널측에서 안철수의 정치적 결정의 배후라고 지목하면서 뉴스에 등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본인은 부인하였다.# #
친안의 대표주자인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 금태섭 변호사 역시 저서인 <이기는 야당이 갖고싶다>에서 '비선실세'로 표현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2015년 12월 현재 연락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겼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의기투합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어찌될진 모르는 일.

1.7 저서

2 대한민국의 군인

22155_30780_2115.jpg
1963년생. 좌측의 인물이다. 우측은 김요환 육군대장.

대한민국 육군의 12대 육군주임원사를 지냈다. 1984년 8월 보병231기로 임관했다. 부소대장으로 경력을 시작했고 육군보병학교 훈육관, 육군부사관학교 참모학 교관, 육군보병학교 주임원사, 육군교육사령부 주임원사 등 교육부대에서 주로 근무했다. 2014년 11월에는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정춘성 원사에 이어 육군주임원사로 지명되었다. 야전군 주임원사를 거치지 않고 군단급 주임원사에서 바로 육군주임원사로 영전했다.

학력사항으론 광주보건대학을 다니다가 2001년에 조선대학교 법과대학에 편입해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2004년에 전남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2월에는 원광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
  1. 본인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정체성을 주식전문가가 아닌 의사에 둔다고 여러차례 밝힌바 있다.
  2. 경찰관이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종합병원 의사 월급으론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자 어쩔 수 없이 개업했다고 한다. 이때도 주변 동료들이 적금을 깨거나 대출을 받아 도와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고, 1년 365일 쉬지 않고 진료하는 성실성 덕에 성공해서 모든 빚을 청산했다고.
  3. 의사가 직업이라는 사실을 전면 부정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4. 단어 선택은 좀 부적절한 듯.
  5.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진보적인 발언을 일삼으면서 개인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은 우파라고 주장을 했다. 사실 정통 우파 좌파 같은 건 세상에 없다.
  6. 원래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쓰던글을 책으로 옮긴것.
  7. 트위터 얘기가 나와서 추가하자면 박경철 선생은 밤마다 야식 트윗을 올려서 팔로어들에게 악마의 유혹을 날리기로 유명하다?
  8. 무릎팍도사 때 나왔던 "50배를 벌었다" 발언이 이 주식 매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상황.
  9. 정확히 말하면 자기만의 철학적 체계
  10. 물론 CAPM 등으로 대표되는 금융공학적 분석이 수학적 체계는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이른바 '감'에 의한 투자에 비할 때 절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보장한다는 실증적 증거는 많지 않다. 물론 개인이 직접 투자를 할 때는 이러한 이론적 근거를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 (실제로 이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은 한국 대학에도 많지 않다. 그러나 경제학이나 수학, 공학 등의 기본적 지식이 있다면 번역된 교재를 통하여 공부할 수는 있다), 투자가를 평가할 때는 그 운용자의 역사적 수익률을 우선해야지 금융공학적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절대시해서는 안된다. 제도권 내의 펀드매니저들 가운데도 박경철 류의 개인투자자보다 못한 실적을 내는 사람이 태반이다. WWE의 전직 프로레슬러였던 JBL은 특별한 경제학위나 경력이 없는 개인투자자지만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그경험으로 투자자문서도 쓰고 FOX뉴스의 경제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다. 주식투자는 이론과 감을 떠나 실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1. 사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 즈음 케이블 주식방송을 통해 주식의 가치 분석, 기술적 분석, 금융공학적 분석 등에 관한 TV 강좌를 장기간 진행하기도 했으며, 그 후 주식 투자 관련 서적에서 갖가지 분석 기법에 관한 내용을 저술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가 주식시장에 대한 분석 근거를 '감'에만 둔다고 단순히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가 세상에 알려질 무렵 자주 기술적 분석이나 가치 분석을 공을 들여 설명하던 것에 비해 근래에 들어서는 부쩍 원론적 가치 투자 위주로 이야기하고, 주식 직접 투자를 권하지 않고 되도록 간접투자 하도록 권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12. 물론 진짜 기관투자자들은 절대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증시의 기본은 누구보다 먼저 사고, 누구보다 먼저 파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 증시 전문가의 기법 중 오드랏 기법(odd-lot thorey)이라는 것은 아예 개미투자자들이 투자한 것의 반대 방향으로 투자하는 기법이다. 코미디 같으나 이 기법은 굉장히 유명하여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이것을 수치화한 것을 잡지에 실고 있다
  13. 일부에선 윤여준 평화재단 이사장이 기획자라고 하나 이건 오해이다. 윤여준은 2011년 청춘콘서트에 게스트로 몇 번 나왔을 뿐이다.
  14. 한나라당, 민주당의 경우 국회의원 공천심사에 외부 명망가를 자주 참여시킨다. 자기들끼리 하면 이해관계가 얽혀서 제대로 되질 않으니 누가봐도 인정할만한 중립적 인사를 세우는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의 경우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