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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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대 대한민국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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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강현욱10대 윤여준11대 최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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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기자 출신의 정치인이다

2 이력

1939년 충청남도 논산시 출생. 경기고등학교, 단국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동아일보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있다가 1977년 주일본대사관 공보관에 임용되었다.

이후 1983년 귀국해 문공부 홍보조정실 보도담당관, 국회의장 공보보좌관, 청와대 공보수석실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제6공화국에서는 정무비서관과 정무장관 비서관, 안기부장 특보를 지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1994년 청와대 대변인 겸 공보수석을 지냈다. 1997년 제10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0년 한나라당의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원내 입성한다. 2002년 이회창의 선거 전략가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른바 보수의 장자방.# 근데 어째 실제 행적은 범증(...)과 비슷하다는 게 함정.[1]

다만 생각보다 선거 승률 낮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프레임 싸움을 통해 불리한 구도를 엄대엄으로 만들거나, 기적적으로 역전시키는 등 굉장한 폭발력을 일으키는 데에 상당한 능력이 있다.[2] 그간의 성과를 들어 보면 선거 패배가 예상되던 16대 총선에서 이회창을 끝없이 설득해 고참급 의원들을 다수 날리는 개혁공천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고, 16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캠프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자 이른바 '수도권 공동화' 프레임을 짜며 기어이 엄대엄 상황을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3] 윤여준의 선거 커리어에서 가장 큰 패배였던 17대 총선에서는 난데없는 거대 여당 견제론, 무조건 읍소 전략으로 최대한의 선방을 이뤘으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기어이 출마하지 않겠다는 안철수에게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구도를 만들자고 하여 군소후보였던 박원순을 지지율 1위 주자로 만들고 퇴장하기도 했다. 그가 맡은 선거 중에서 딱히 뭔가 보여주지 않고 마무리한 선거는 뭘 해도 이길 만한 선거였던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정도..

이후에도 2003년 여의도연구소 소장,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캠프 공동선대위원장, 2012년 민주통합당 국민통합공동위원장, 2014년 안철수의 새정치추진위원회위원장, 2016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3 소개

안철수의 참모 경력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민주당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결별하게 된다.

최근 안철수의 신당 창당 움직임으로 인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썰전에서 안철수에게는 '현실주의적 참모'로 이 분과 강용석 전 의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근데 후자는 불가능할 것 같다. 본인은 별로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며 사양의 뜻을 펼쳤지만 아예 합류를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라서.....

그리고 예상대로, 안철수 의원이 접촉을 시도하는 중이다. 윤 전 장관 본인도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결국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자리를 수락했지만, JTBC 뉴스룸에 출연한 한상진 공동 창준위원장의 말에 의하면 건강상의 이유로 같이 일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1월 22일, 그동안 건강문제로 모습을 드러내보이지 않았던 윤여준 창당준비공동위원장이 기조회의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회의 복귀 이후 국민의당이 직면한 현안들에 대한 질문에 여유롭게 대답하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이후 안철수에게 실망하여 비판을 하고 거리는 두는 모습을 보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비례 대표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20대 총선이후 인터뷰에서 안철수에게 칭찬과 쓴소리성 격려를 하는 걸로 보아서는 국민의 당에서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고 아마 당의 컨설턴트 식으로 남을걸로 전망이 보여진다.

2016년 4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추진단장에 공모지원했다. 사실상 추대형식으로, 윤여준 본인은 총선 전부터 정해진 것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4 저서

저서로는 <대통령의 자격>, <윤여준의 진심> 등이 있다.
  1. 선거 승률이 높지 못한것 외에도, 자신이 보좌하는 후보들과 마찰을 빚다가 결별하는 일이 잦았던 점을 빗댄 것이다. 심지어 이회창과 결별할 때는 이회창의 아내와 마찰이 있어 결별하기도 했다.
  2. 야권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로 꼽히는 이해찬의 경우에는 표계산에 상당히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다만 16대 대선에 대해서 윤여준 본인은 "자신은 선거 1년 전에 이미 이회창과 결별했다. 나는 왕따였다"라고 한 적이 있다. 또한 대선 정국에서 최규선게이트 문제로 계속 조사 받던 사람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 하는 시각도 있기는 있다(있다고 보는 측에서는 수도권 공동화 프레임이 선거 막판에 돌아온 윤여준의 원기옥 한방으로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