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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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비교적) 젊은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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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모습. 상당히 후덕해졌다.

블로그 : [1]

오슬로 대학 학생들을 위한 사이트(영어) : [2]

1 개요

러시아계 귀화 한국인. 유대계 혈통 백인이다. 진중권, 홍세화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계열 지식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러시아어한국어, 노르웨이어, 영어 4개 국어를 구사하고 있다. 귀화하기 전 이름은 블라디미르 티흐노프(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한국 이름은 한자로는 朴露子라고 쓰며 한마디로 러시아의 아들이란 뜻이다. 성은 대학 시절 은사인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땄다. 개명한 이름은 아니고 한국이름도 티호노프 블라디미르이다. 외국에서는 그냥 블라디미르 티흐노프라는 원래 러시아 이름을 사용하며, 오슬로 대학 홈페이지에도 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러시아 레닌그라드 출신.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1]하였다. 원래는 인도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소련 말 인도학과는 정신의 안녕을 찾으려는 인문학적 지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리는 최고 인기 학과였으며 빽 없이는 입학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춘향전으로 인상 깊었던 조선학과를 썼다고 한다.[2]

러시아로 돌아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대학원 한국고대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한민국에 돌아왔다. 1995년에 대한민국 바이올린 연주자 백명정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1996년 경희대학교 러시아어 전임강사로 근무하다가 2000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 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로서 근무 중이다. 2001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다.

2 한국에 오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대한민국의 부조리에 대해 다룬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한국에서 대박난 이후로, 《한겨레》에서 정기적으로 연재, 기고를 한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글을 쓸 때는 외국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말하는 것은 러시아 억양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어 토종 한국인은 듣기가 다소 거북스러울 정도로, 활자로 그를 먼저 접한 보통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확 깨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외에도에 외국어 고유 명사나 외래어의 한국어 표현에 익숙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보이도 한다. [3] 심지어 '이황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창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지만 음주가무 중에서 가무엔 능하지 못하다고. 그리고 취미가 나무하고 말하기라고 한다.

3 성향

본인의 주장으로는 탈국가, 탈민족을 주장하는 아나키스트적인 사회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라고 한다. 그 외에도 불교신자이며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몰락 이전과 이후로 발화 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 전에는 서구 좌파의 입장에서 한국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거의 사회주의자적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한윤형은 이에 대해 진중권과 비교하면서 말했을때 오른쪽으로 간 사람과 왼쪽으로 간 사람으로 둘을 비교했다. 당연히 박노자가 후자.

노동당의 당원으로 본래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으나 2008대선 이후 NL(자주파)과의 문제로 진중권, 홍세화 등과 함께 분당을 주장하였다. 2012년 총선에 '티코노프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을 써서 진보신당의 6번째 비례대표로 출마하였다.[4]

근대 비판주의자로 현대 대중문화의 폭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정작 자기 아들은 그 폭력적인 문화를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족주의 풍조와 관련해선 제국주의와의 위험한 이종교배를 우려하는 편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를 본래 의미보다는 나치와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강자 중심의 국가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할 것을 주장한다. 2002년 당시의 월드컵 열기를 '광기'로 표현했다. 또한 징병제 반대론자로서 한국의 군사 문화에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군사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 비판적인 편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사회가 심지어 종교의 교단에서 조차 근대화되면서 그런 경향을 띤 것은 일면 이해가 가지만 서글픈 것이라며, 종교인이 계율을 어겨가며 군복무를 할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한국 불교계의 어떤 승려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였다.[5]

2015년 6월에는 한겨레 기고문에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우리 최대의 문제, 반사회적 지배층

노르웨이에서는 중도좌파 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온 사회주의좌파당의 당원이었으나, 사회주의좌파당이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한 것 때문에 탈당했다. 현재는 혁명적 좌파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적색당 당원이다.

이 성향들은 그가 노르웨이 기준의 좌파이고, 젊은 시절을 모스크바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4 비판

그의 발언과 글들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표현이 많이 있고, 그의 사상이 굉장히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박노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극도의 반미국까 내지는 모두까기 인형[6]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인임에도 혐한으로 취급하는 의견도 있는데 일부러 귀화한 다음에 깨시민 행세 하는 거 아니냐는 게 이유다.

가끔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특정 사건의 범인들에 대하여 옹호적인 칼럼을 쓸때가 있는데 특히 군이 개입한 사건일 경우엔 더더욱 이런 논지가 심화되는 편이다. 이런 논지의 칼럼은 박노자 본인에 대한 호불호와 관련없이 비난 받는 편이다. 후술된 아덴만 여명 작전 관련 칼럼과 월북자 사살 사건 칼럼이 그 예시.

특히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난하는 칼럼은 수준이하의 상식을 보여주었는데, 무조건적인 인간애와 생명중시를 위시하여 한국도 옛날부터 외세에 시달려왔으니 소말리아 같은 못사는 나라를 보고 해적들도 이해해줘야한다는 충공깽의 논리를 보여줬다. 사실 이 칼럼의 진짜 문제점은, 소말리아 해적과 같은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그 범죄자가 검거된 것을 기뻐했다는 이유만으로 "외세에 시달려본 한국인들은 과연 그들의 아픔을 약간이나마 이해해줄 만한 아량마저도 없는 것인가?" 라고 애꿎은 국민들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전개됬다는 데 있다. 이때문에 감정적 공감대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비난까지도 받았는데, 범죄자의 불우한 가정환경 등을 거론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의도는 그 범죄자를 합리화하거나 동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런 범죄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병폐를 되돌아보자는 목적이고 이것마저도 사회 구성원들의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이지, 자기 기준에 합당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박노자는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단지 '해적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검거에 안도하는 사람들 조차도 비난하고 있는데 이건 합리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 옹호에 가까운 논조이고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실례가 되는 행동이다. 때문에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한국의 다원성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것 정도의 평가를 받지 탁월한 주장을 한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02년 시사잡지 한겨레21에 "나치 포로는 사람도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미군을 비난하는 칼럼을 쓴 바 있는데 그 근거중 하나에 James Bacque라는 인물이 쓴 소설이 포함되었다(...). 단 그와 별도로 미군이 독일군의 대량 항복 당시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이는 당시 전쟁 말 상황에 대해서 짚어보고 넘어가야 한다. 독일군의 대량 항복이 발생한것은 나치 독일의 패배가 확실시 되가던 전쟁 말기인데, 이당시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몰려오는 소련군을 막는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서방측 연합군도 막아내야 했으나, 잡히면 굴라그행과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소련군대신에 그나마 인간 취급을 해주는 서방측 연합군에게 잡히거나 투항하길 원했다. 때문에 독일군은 소련군을 상대로는 죽기살기로 싸웠으나, 서방측 연합군에게는 기본적인 저항을 펼친 후 항복을 하거나, 아니면 자진 투항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전 말기에는 대다수의 피난민과 독일군, 국민돌격대등이 섞여 다량으로 연합군에게 투항하기 위해 이동했고, 이렇게 섞여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패잔병과 난민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미군은 대다수의 투항한 독일군을 무장해체 후 조사하여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으면 그냥 돌려보냈다. 이때문에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는 포로를 학대하거나 가혹행위를 시키는등의 어떠한 ' 행위 ' 로서 대우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닌 포로를 잡아 포로의 ' 신분 ' 으로서 대하지 않았다는 말이므로서 이는 당시 상황을 보면 그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박노자의 출신국인 러시아가 포로의 대우에 대한 논란에서는 더 많은 잡음이 들린다.

2009년 10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노벨 전쟁상, 그리고 사민주의자들의 순진한 세계정치론으로 비판했으나 문제는 "우리 상국의 천자가 후국 노르웨이로부터 '평화상'을 조공으로 받았다"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2009년 진보 인터넷 매체에 동북공정을 옹호하며 "한국경제 대안은 중국 영향권 편입"이란 주장을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다만, 해당 주장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비판에 대한 재반박이 있다. 박노자 왈, “한반도가 중화권 안으로 흡입이 돼가는 것이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지 '좋은 일'로 보거나 '긍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하였으나 진보신당 내에서는 쓴소리좀 들었다.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3] 관련 기사] 판단은 알아서...

2013년 9월 16일 낮, 일본에서 강제추방된 뒤 월북하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 거주했던 40대 남성이 임진강에서 부표를 매달고 월북하려다 대한민국 육군 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두고 사람 죽여놓고 이렇게 자축하는 이 존재들은 정말 인간 맞나 싶어요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람맞나 싶은 건 박노자가 아닐까.. 이 칼럼 역시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판한 칼럼의 논리와 비슷한 맥락이다. 군의 임무에서 사살한 것은 정당하다 쳐도 사람에 대한 애도가 없으니 사람이 맞느냐, 군은 이것을 철통경계라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에서 강력한 비판을 한 것인데, 국가의 헌법이나 질서에 따른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은 빌언이다 . 월북시도자 형편이나 사정을 내비치면서 동정을 유도하는 식의 말을 하면서 그것을 임무라고 죽인 군대를 비판하는 논조는 기본적으로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군의 입장과 일반인의 입장차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군대는 일반적으로 자국의 영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공격이 부여되는, 일반인들과 다른 특수성이 부여되는 곳이다. 다만 아나키스트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 국가가 부여하는 '특수성'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박노자도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왼용을 암살하려다 인력거꾼 박원문을 죽이게 된 이재명 열사의 행위에 대해 비판한 칼럼도 이야깃거리가 되긴 하는데 사실 칼럼 내용을 훑어보면 이재명 열사의 도덕성에 대한 고발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들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 합리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수 있고 김립 피살 사건에 대한 지적을 보면 오히려 꽤 괜찮은 칼럼이다. 다만 이 편에서 진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윤봉길의사의 홍커우 의거 사건을 위의 두 사건에다 갖다붙이고 일본 민간인들의 희생이 컸다며 이를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의 반미 테러 행각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난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홍커우 의거 당시 민간인 사상자는 기록된 바가 없었고 박노자 본인도 당연히 따로 증거나 출처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와 무장 독립 운동가들의 테러리스트 논란이 굉장히 민감한 이슈인 만큼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2014년 6월에는 세월호 사건을 '잘못된 사회구조에 의한 학살'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가체 후보생'이나 나름없는 이슬람 국가의 프랑스에 대한 폭력이나 프랑스의 시리아 폭격이나 민간인 학살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전자만을 슬퍼하고 후자에 대해서 관심이 덜 가는 것은 체제 논리가 그렇게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평화를 위해서는 유럽 국가들의 중동 침략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 자신은 어느 쪽 '국가'에 대해서도 굳이 편을 들 생각은 없다고는 하지만 편향성 문제로 비판받았다. 사실 IS나 알카에다에 의한 테러가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세계의 중동문제 개입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는 서방 지식인들은 박노자외에도 상당히 많다.

5 저서

저서로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2권,《나를 배반한 역사》,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열패의 신화》, 《우리가 모르는 동아시아》, 《비굴의 시대》 등이 있다.
  1. 졸업 당시에는 한국학과로 개명. 중간에 한소수교가 있었다.
  2.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북한의 다른 서적들은 소련에서 코미디 취급을 받았지만, 춘향전만큼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3. 어쨌든 외국 출신임에도 한국어를 잘한다. 강연회에 가보면 한국인들도 잘 쓰지 않는 고급어휘와 한자성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한다.
  4. 총선 출마자는 주민등록명을 써야 하는데, 상술된 대로 귀화 후의 등록명도 박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5. 박노자 <불교와 근대 한국사회>
  6. 이 사람은 자기가 거쳐갔던 나라는 다 깠다. 러시아도 까고 노르웨이도 까고 한국도 까고 미국도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