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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 → | 북원 | → | 오이라트 4부족 연맹 |
→ | 타타르(몽골) |
1 개요
명나라의 주원장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 북쪽으로 옮긴 원나라. 현대의 내몽골자치구의 전신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할만한 나라로 내외몽골과 부랴트까지 모두가 전신으로 삼는 몽골 제국과 달리 이쪽은 위치부터가 북만주 및 내몽골이었고 여기 살던 차하르 부족은 후금에 복속되어 만몽 연합제국 형태로 만주인들과 호흡을 같이해왔다. 내몽골과 달리 오늘날 몽골국인 외몽골은 할하 부족이 전신이며 그 땅 자체도 원 멸망 후 오이라트 인이 들어와 차지해서 양측이 분쟁 중이었다.[1]
1368년 순제는 대도를 버리고 만리장성 북쪽의 상도로 도망갔고, 응창에서 할거(割據)했다. 이로써 중원은 명나라가 장악하게 된다.
순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소종은 외몽골로 들어갔고 1372년에 명의 원정군을 격파했다. 하지만 소종과 코케 테무르 사후에 북원은 급격히 힘을 잃었고, 중국 진출을 단념해야 했다. 나하추가 명에 항복하자 북원의 세력은 더욱 쇠퇴하고, 1388년 브이르 노르의 동북에서 명군에게 대패하였으며, 소종의 뒤를 이은 동생 토구스 테무르도 도우라 강 기슭에서 살해되었다. 이후 아리크부카 가문의 조리그투 칸이 대칸을 이었으나 북원의 황제 지위는 본래 쿠빌라이 칸이 선포한 것이고 자신은 쿠빌라이 칸에게 권력경쟁에서 밀려난 아리크부카 가문의 후손이었으므로 잇지 않았고 북원은 붕괴, 차하르 부족으로 전락했다. [2]
이후에 오이라트와 세력을 겨루었으며, 오이라트 출신인 에센 칸이 토목의 변을 일으켜 명나라 황제를 사로잡거나 알탄 칸이 경술의 변을 일으키면서 명나라를 공격, 한때 허베이 성과 산시 성을 수복하는 등 예전의 기세를 많이 회복하였으나 17세기 청태종에 정복되어 복속되었다. 그 뒤에 청나라 황제가 대대로 몽골의 칸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청 황제는 한족에게는 중국식 연호를 썼으나 만주족 및 몽골인에게는 몽골식 칸호를 썼다. 한예로 누르하치는 후금을 건국하면서 중국식 연호가 아니라 몽골식으로 "텡그린 술데투"라고 연호를 선포했으며 홍타이지부터는 정식으로 칸호로 스스로 호칭했다. 청태종의 칸호는 "복다 카간"이다.
2 역대 황제
대수 | 묘호 | 재위 | 휘 |
11 | 혜종(惠宗) | 1333년 7월 19일 ~ 1370년 5월 23일 | 보르지긴 토곤 테무르(孛兒只斤 妥懽帖睦爾) |
12 | 소종(昭宗) | 1370년 5월 23일 ~ 1378년 5월 | 보르지긴 아유르시리다르(孛兒只斤 愛猷識理答臘) |
13 | 평종(平宗) | 1378년 5월 ~ 1388년 11월 | 보르지긴 토구스 테무르(孛兒只斤 脫古思帖木兒) |
3 역대 칸
중국식 황제 칭호를 버린 후 역대 대칸들에 대한 글이다. 대체적으로 동몽골의 칸들은 재위시절이 평탄하지 못한 편인데 개중에는 에센 칸이나 다얀 칸처럼 명을 위협했던 칸도 있었으나 대개 오이라트와 명에 시달리고 칸의 암살도 빈번했고 골육상쟁은 기본이었다...
대수 | 칸호 | 재위 | 휘 |
18 | 조리그투 칸(卓里克圖汗) | 1389년 ~ 1392년 | 보르지긴 이수데르(孛兒只斤 也速迭兒) |
19 | 엥크 칸(恩克汗) | 1392년 ~ 1394년 | 보르지긴 엥크(孛兒只斤 恩克) |
20 | 니구라스크치 칸(尼古埒蘇克齊汗) | 1394년 ~ 1399년 | 보르지긴 엘베크(孛兒只斤 額勒伯克) |
21 | 토요얀 칸(脱古罕汗) | 1400년 ~ 1402년 | 보르지긴 군테무르(孛兒只斤 坤帖木兒) |
22 | 울루그 테무르 칸(兀雷帖木兒汗) | 1402년 ~ 1408년 | 보르지긴 구리키(孛兒只斤 鬼力赤) |
23 | 울제이 테무르 칸(完者帖木兒汗) | 1408년 ~ 1412년 | 보르지긴 분야시리(孛兒只斤 本雅失里) |
24 | 델베그 칸(答力巴汗) | 1415년 | 보르지긴 델베그(孛兒只斤 答力巴) |
25 | 에세크 칸(額色庫汗) | 1415년 ~ 1425년 | 보르지긴 오이라다이(孛兒只斤 斡亦剌歹) |
26 | 아자이 칸(阿岱汗) | 1425년 ~ 1438년 | 보르지긴 아자이(孛兒只斤 阿岱) |
27 | 타이손 칸(岱總汗) | 1438년 ~ 1452년 | 보르지긴 토크토아부카(孛兒只斤 脱脱不花) |
28 | 오케크트 칸(烏格克圖汗) | 1451년 ~ 1453년 | 보르지긴 아크바르지(孛兒只斤 阿噶多尔濟) |
29 | 다이온타슨다이칸(大元田盛大可汗) | 1453년 ~ 1454년 | 오이라트 에센(衛拉特 也先) |
30 | 오헤크트 칸(烏珂克圖汗) | 1454년 ~ 1455년 | 보르지긴 마르코르기시(孛兒只斤 馬兒古兒吉思) |
31 | 멀런 칸(摩伦汗) | 1456년 ~ 1466년 | 보르지긴 토구스멩게(孛兒只斤 脱古思猛可) |
32 | 만도르 칸(满都鲁汗) | 1470년 ~ 1478년 | 보르지긴 만도르(孛兒只斤 满都鲁) |
33 | 다얀 칸(達延汗) | 1480년 ~ 1517년 | 보르지긴 바트몬크(孛兒只斤 巴圖蒙克) |
34 | 바르스볼트 칸(巴尔斯博罗特汗) | 1519년 ~ 1531년 | 보르지긴 바르스볼트(孛兒只斤 巴尔斯博罗特) |
35 | 알라크 칸(阿剌克汗) | 1519년 ~ 1547년 | 보르지긴 보디(孛兒只斤 博迪) |
36 | 구덴 칸(庫騰汗) | 1547년 ~ 1557년 | 보르지긴 다라이손(孛兒只斤 打來孫) |
37 | 자사그트 칸(札薩克圖汗) | 1557년 ~ 1592년 | 보르지긴 투멘(孛兒只斤 圖們) |
38 | 체첸 칸(徹辰汗) | 1592년 ~ 1604년 | 보르지긴 보얀(孛兒只斤 布延) |
39 | 링단 칸(林丹汗) | 1604년 ~ 1634년 | 보르지긴 링단(孛兒只斤 林丹) |
40 | 에제이 칸(額哲汗) | 1634년 ~ 1635년 | 보르지긴 에제이(孛兒只斤 額哲) |
- ↑ 몽골제국이 망한 이후 몽골은 크게 둘로 양분된다. 일반적으로 몽골과 오이라트로 분리되었다고 하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쿠빌라이계에 충성하는 원(元)조 세력과 반 쿠빌라이계 동맹인 오이라트로 볼 수 있다. 기실 양 집단은 민족적 구성으로는 그렇게 크게 다른 것은 아닌데 오이라트 역시 원 오이라트부족에 케레이트와 나이만 등의 부족들이 연합한 부족 연합체적 집단이었다. 몽골인들의 경우에는 여러개의 집단이 있었는데 이것이 다얀칸 때 6개의 대부락으로 정리 된다, 이 6개의 대부락을 6투멘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 그 구성은 차하르, 할하, 올랑한, 오르도스, 융셰부, 투메드이다. 이들 중에서 차하르가 내몽골의 중심부족이 되고 할하는 외몽골의 중심부족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 ↑ 이 때 이후 쿠빌라이 황통과 아릭부케 황통 그리고 우구데이 황통이 칸의 자리를 가지고 끓임없이 경쟁하다가 다얀 칸의 치세 이후 쿠빌라이 황통이 북원의 멸망 때까지 다시 칸의 자리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