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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칭기즈 칸 사후 몽골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4개의 칸 국 중 하나로, 1258년 훌라구의 정복으로 형성된 서아시아의 칸 국. '일 칸'이라는 칭호는 "대칸[1]에게 복종하는 칸"을 의미한다. 기존에 서아시아에 존재하던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국가를 소멸시키고, 룸 셀주크를 패배시킨 뒤 시리아까지 진격했지만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가로막혀 그 이상의 팽창은 중단되었다. 북쪽의 킵차크 칸국과 분쟁을 일으켜 대립했으며, 서아시아지방에 있는 국가이니만큼 페르시아인들을 대부분 관료로 등용해서 국정을 맡기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결국에는 그냥 페르시아 국가가 되었다. 1335년 칸 아부 사이드의 혈통이 단절된 뒤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2 약사(略史)

1253년 툴루이의 아들 훌라구가 군대를 이끌고 출정. 훌라구는 군량보급에 신경쓰며 몽골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천천히 진격했다.

1256년 훌라구가 이스마일파(아사신)와 대면, 갓 즉위한 신임교주가 항복하자 알라무트 요새의 잔당들을 소탕하여 몰살시켰다. 항복한 교주는 대칸 몽케를 알현하러 갔지만 거부당하자 돌아오던 중 살해당했다.

1258년 몽골군이 이라크로 진군, 칼리파에게 항복 권고. 당초 이를 묵살한 칼리파는 재상(바지르)의 설득에 항복하나 몽골군은 바그다드를 약탈하고 주민들을 살해한 뒤 칼리파도 죽였다.[2][3]

1260년 몽골군이 서쪽으로 진격해 시리아에서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나시르 유수프를 포로로 잡고,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점령. 안티오키아 공국과 트리폴리 백국이 몽골군에 협력. 1259년 큰형 몽케 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작은형 쿠빌라이와 동생 아리크부케의 분쟁에 대한 우려로 훌라구는 주력부대를 거느리고 정복지 페르시아로 귀환했다. 키트 부카(Kit-buqa)가 거느린 별동대가 시리아에 잔류. 이 부대가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대패하고 사령관 키트 부카도 여기서 전사했다. 이후 맘루크 군대는 시리아에서 몽골 세력을 축출하였다.[4]

1261~62년 훌라구와 베르케(킵차크 칸국의 칸으로 바투의 동생)의 사이가 악화해 두 칸국간 전쟁 발발. 킵차크 칸국은 일 칸국의 주요 통상로 및 페르시아의 목초지 획득에 관심이 있었다.[5] 또 베르케 개인이 무슬림이었기에, 칼리파를 살해한 행위에 분노한 탓도 있었다.[6] 이 시기에 다시 한번 맘루크를 치려고 시도했지만 북방의 병란(兵亂)이 이어지는 와중이라 실패로 돌아갔다.

1262년 무렵 훌라구가 프랑스 왕 루이 9세(1226~1270)에게 보낸 서한에, 시리아에서 철수한 이유를 '군대에 필수적인 마초(馬草)와 목초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 시기 이후 일 칸국은 서유럽 군주들이나 교황과 접촉하며 맘루크에 맞선 동맹 구축을 시도했다. 이에 유럽의 십자군 전쟁 때 지원병을 보내주었다.

1263년 캅카스를 점령하기 위해 수 차례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이는 결국 몽골 간의 내전으로 발전했다.

1265~82년 아파카 칸은 마라가에서 타브리즈[7]로 천도하였다. 아바카의 통치기에는 중과세로 토지에서 이탈하는 농민이 늘어났다.

1284~91년 아르군(Arghun) 칸의 치세. 티베트 불교를 신봉한 아르군은 여러 사원을 지었다. 유대계 무슬림인 재상 사드 앗 다울라(Sad al-Daula)의 개혁. 그는 귀족의 특권을 제한하여 수입을 삭감하고 정부재정을 늘리려 했다. 이같은 조치는 당연히 몽골인 귀족들의 반감을 사 사드 앗 다울라는 칸이 중병으로 눕자마자 살해당했다.

1287년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수도사인 랍반 사우마(Rabban Sauma)를 유럽에 사절로 파견. 사우마는 교황 및 각국 군주들과 만나고 유럽에 대한 인상기(印象記)를 남겼다.

1291~95년 게이하투(Geikhatu) 칸의 치세. 극심한 우역(牛疫)이 횡행. 지폐인 '교초'의 발행 및 유통 시도가 실패.

1295~1304년 가잔 칸의 치세. 가잔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제국내 모든 불교사원을 폐쇄시켰다.

재상 라시드 앗 딘(Rashid al-Din)의 개혁. 세율과 징세를 법정화하고 역참을 재편했으며, 화폐제도와 도량형을 개정했다. 또 무슬림 재판관인 카디(qadi)의 권한과 보수에 대해 규정하고, 황무지 개간을 장려하고 혜택을 주었다. 그 외에도 군대의 봉급 수단을 개편했다. 그 결과 국가의 1년 조세 수입이 1700만 디나르에서 2100만 디나르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가잔 칸이 죽은 뒤 그의 개혁은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이 외에도 농민을 토지에 묶어두려는 조치를 취했으며, 칸은 죽기 직전 이크타(iqta) 칙령을 내려 군대에 토지를 봉급으로 하사해 분봉시켰다.

1299~1300년 가잔 칸이 처음으로 맘루크 군대를 패배시키고 일시적으로 시리아 전역을 장악. 그러나 이를 계속 유지시킬 수가 없었기에 일시적인 정복으로 약탈품을 챙긴 뒤 도로 물러나야 했다.

1303년 샤크하브에서 맘루크와 최후의 전투. 맘루크 군대에 대패를 맛보고 결국 시리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304~16년 올제이투(Oljeitu) 칸의 치세. 기독교 세례를 받아 '니콜라우스'라는 세례명[8]을 가졌지만, 이슬람불교에도 흥미를 보인 군주였다. 타브리즈에서 술타니야(Sultaniyya)로 천도했고, 재상 라시드 앗 딘이 몽골족의 역사에 대한 사서(史書) 편찬을 마무리하도록 지원했다.

1316~35년 아부 사이드(Abu Said) 칸의 치세. 그의 치세는 가장 일 칸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내란과 음모로 쇠락한 시대라는 평가가 역사가들 사이에서 엇갈린다.

1322년 맘루크 왕조와 평화조약 체결. 이로써 일 칸국에서 서유럽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사라진다.

1327~35년, 라시드 앗 딘의 아들 기야스 앗 딘(Ghiyath al-Din)이 재상이 되어 통치했다.

1335년 여러 부인을 두고도 자식을 얻지 못한 아부 사이드가 죽자, 통치자가 사라진 일 칸국 정부의 통치력이 상실되어 칸국이 사실상 붕괴. 이후 티무르가 칭기즈 칸의 후손을 꼭두각시 칸으로 내세워 집권할 때까지 수십년 동안 혼란 상태가 지속된다.

3 역대 칸

대수칸호(휘)재위기간비고
초대훌라구1256 ~ 1265툴루이의 아들
2대아바카 칸1256 ~ 1265
3대테쿠데르1282 ~ 1284'무능한 칸'
4대아르군1284 ~ 1291
5대게이하투1291 ~ 1295
6대바이두1291 ~ 1295
7대가잔1295 ~ 1304
8대올제이투1304 ~ 1316
9대아부 사이드1316 ~ 1335
10대아르파 케운1335 ~ 1336

4 관련 항목

  1. 중국몽골 본토를 통치하는 칸
  2. 이 때 살해된 주민의 수가 80만에서 200만에 이른다는 사료가 있으나 신뢰성은 낮은 편이다.그 정도가 시내에 있었다면 서로 낑겨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듯
  3. 이 때 칼리파는 '고귀한 자'는 피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 죽이는 몽골의 관습에 따라 칼리파를 카펫으로 둘둘 만 뒤 때려 죽였다(혹은 말로 짓밟아 죽였다)고 한다. 흠좀무.
  4. 참고로 이 전투가 최초로 폭발하는 포탄이 사용된 전투 중 하나.
  5. 사실 장자에게 가장 먼 지역을 분봉하는 관습에 따라 이란 지역은 주치 울루스의 영역이었던 것을 구유크 칸이 바투가 임명한 지방관들을 몰아내었다. 그처럼 실지 회복이라는 측면도 있고, 다른 방면인 러시아 북부와 동유럽은 가난하기 때문에 확장할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6. 1251년 몽케가 즉위할 때 툴루이의 자식들이 오고타이 및 차가타이 쪽 혈족들을 대규모로 숙청한 데 이어, 1261~62년 사이 킵차크 칸국과 일 칸국이 정면충돌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군주들끼리의 혈연관계를 통해 통일성을 유지하던 '몽골 제국'은 사실상 소멸하고 개별 칸국들이 병립(竝立)하는 시대가 된다.
  7. 현대 이란 북서부의 대도시.
  8. 당시 로마 교황인 니콜라우스 4세가 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