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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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道心
1920년 10월 7일 ~ 1979년 8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20년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총학생회장으로서 고려대학교의 이철승과 함께 전국학생연맹에 속하여 신탁통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우익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그리고 전국학생연맹에서는 중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대한 학도 의용대 호국단 총본부 대장을 맡으며 휘하에 김영삼 등을 두었다. 1954년 잠시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강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같은 해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화성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의 입으로 불리며 황성수 등과 주요 연설 논객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서울신문 사장을 겸직하였다.

1960년 4월,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장인어른육군본부 경리감 이규동 준장 및 헌병감 이규광 준장의 부정부패를 폭로하였다. 이후 4.19 혁명으로 신도환, 박만원 등과 국회의원직에서 추방되었다.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1961년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추가로 정치정화법에 묶였다가 1968년에야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66년 자유당 정권의 국회의원으로 국민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화순군 탄광지역 등을 돌며 대한성서 공회의 협찬으로 무료 쪽복음으로 전도하였다.

1970년 자유당계 구 정치인들과 신민당에 입당하였다가 다시 탈당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경기도 화성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홍사승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5년부터 건설공제조합 이사, 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화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병희 후보와 신민당 유용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