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사
사람은 왜? 라는 말에 늘 대비해야 한다왜?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 모든 것은 왜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대비하라
진정해 그냥 '대비' 라잖아?
이유를 물을 때 쓰이는 부사.
그 외에 특정 사실의 확인을 요구하는 감탄사로도 주로 쓴다. 영어로는 Why? 바리에이션으로는 왜 뒤에 존댓말 느낌을 가미한 '왜요?'가 있다.
만 2 ~ 3살 가량의 유아들이 입에 달고 산다. 대답을 해 줘도 어린아이의 특성상 이해가 어려워 끝내 다시 묻고 마는 무한루프를 타는 것이 다반사. 그래서 답을 해주다가 그만 아이한테 짜증을 내는 부모도 있다. 이럴 때엔 그저 현실적인 사실보다는 유아들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 등을 써 설명해주면 이해시키기 편하다.
이런 식의 의미없는 질문이나, 자기가 무조건 옳다는 식의 정신승리적인 용법이 아니라면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것이 합리적인 민주 시민의 첫걸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국가에서 기를 쓰고 막으려 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인관계에서 이 표현을 자주 쓰면 나쁘다. 상대방에게 추궁받는다는 느낌을 줘 방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 즉 원만한 대화가 어려워지는 표현이므로 되도록 '어떻게' '어째서' 등의 표현으로 돌려 말하자. 예를 들어 유명한 질문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를 생각해보자.이건 추궁을 넘어선 단죄...
2번과 연관해서 왜요는 일본노래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다.여담이지만 왜를 조선시대식으로 읽으면 와이가 된다. Why 그러세요! 동남방언으로 하면 와요 라는 한본어가 된다.
왜 왜는 왜지?
유의어: 어째서
2 왜(倭)
『위서』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 ||||||||||
오환족 | 선비족 | 부여 | 고구려 | 옥저 | 읍루 | 예맥 | 마한/진한/변한 | 왜 | 주호 |
과거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을 가리킬 때 쓰던 이름.
왜(倭)의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것은 12세기에 우라베노 카네카타(卜部 兼方, うらべ の かねかた)가 지은 《일본서기》의 주석서인 《석일본기(釋日本紀)》에서 제기된 것으로, 일본어에서 1인칭 대명사 wa의 음차라는 것이다. 이것은 각종 원시부족에게 누구인지를 물으면 가장 먼저 1인칭 대명사를 말한다는 연구결과로 뒷받침한다.
초기에는 委 奀으로 읽으면 곤란하다로 쓰였던 것 같으나, 나중에는 뜻을 좁히고자 사람인변을 붙여 倭로 쓰이게 되었으며, 중앙집권적 국가가 성립하면서 의미가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생겨, 발음이 같은 和로 바꾸어 오늘날에도 和라 부른다(참고로 倭도 和도 모두 일본어 음독으로는 "와"로 읽으며 훈독할 때는 야마토라고 읽는데, 그냥 和보다는 大和라고 쓸 경우가 많다 한국한자음으로는 "와"와 "화"로 발음이 다르므로, 일본의 약칭으로 화(和)를 쓰지 않는다). 속설에는 矮(키가 작다)에서 온 것이라 하고 이 속설이 꽤나 널리 알려져 아예 한자가 같은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도 있으나,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본 항목에서는 중국사서에 나타나는 고대의 왜(倭)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하겠다.
중국사서에 왜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전한대에 성립이 완료되었다고 추정되는 《산해경》에서이다. 여기에서는 왜가 전국시대의 연나라에 신복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왜가 분명하게 인류의 역사에 족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후한 광무제 때로, 지금의 규슈 북부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노쿠니(奴國)의 왕이 후한에 조공하여 "漢委奴國王(한위노국왕)"의 칭호를 받고 나서이다. 그 후에도 후한 안제 때 왜왕 수승이 후한에 입조하여 공물을 바친 기록이 남아있다.
그 후로는 왜에 대한 기록이 한동안 없다가, 조위(曹魏) 시대에 야마타이국(邪馬台国, やまたいこく)의 여왕인 히미코(卑弥呼, ひみこ)가 낙랑군을 통해 조공의 의사를 밝히면서 왜는 다시 한번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여자가 다스리는 바다 건너의 섬나라라는 흥밋거리 때문인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왜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위의 공식문서에서 왜에 대한 기록이 비중이 높았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학설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손오(孫吳)가 왜와 결탁하여 위를 위협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석한다[1]. 히미코가 죽은 뒤 다시 남자가 왕으로 올라 통치하였지만, 오히려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가, 히미코의 손녀인 토요(臺與)가 왕위에 오르면서 다시 나라가 정리되어 서진에 입공하였다.
그 후 상당히 오랫동안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끊겨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다시 중국과 외교를 시작한 것은 소위 왜의 오왕(五王)시대로서, 찬(讚), 진(珍), 제(濟), 흥(興), 무(武)의 다섯 왕이 5세기 전반(全般)을 통틀어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특히 일본서기의 유랴쿠(雄略) 천황으로 추정되는 무가 유송(劉宋)에 보낸 국서는 전근대 중국의 외교문서의 전범으로 크게 일컬어질 정도였다.
왜왕 무가 죽은 뒤 왜와 중국간의 외교관계는 또 다시 한동안 암흑으로 빠졌는데, 남북조를 통일한 수양제 때, 쇼토쿠 태자가 "해 뜨는 나라의 천자가 해 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묻노니 무양하신가"라는 쇼킹한 국서를 오노노 이모코를 시켜 보내게 한 그 때가 왜가 다시 역사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는 왜가 국호를 일본으로 정하면서, 중국 정사의 열전에는 왜전(倭傳)이 사라지고, 일본전(日本傳)이 입전된다. 이때 중국에서는 일본과 왜의 관계에 대해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신당서에서는 "중국의 글 뜻을 제대로 알고 왜라는 이름을 꺼려서 일본으로 바꿨다", "일본은 왜의 속국이었는데 왜가 병합하고 이름을 모방했다[2]", "해 뜨는 곳에 가까워 일본이라고 했다"라고 하며 "사신이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고로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고 할 정도였다.
당(통일왕조)시대에 일본으로 국호가 바뀌면서 공식명칭은 日本으로 통일되었으나, 부정적인 뉘앙스로의 倭라는 명칭은 이후로도 계속 사용되었다. "잘해주면 일본국, 사고치면 왜놈"이란 표현은 그러한 인식을 대표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임진년에 왜놈이 들어와서 난리를 피운 사건.[3]
특히 이런 사고치는 경향은 임진왜란 같은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일본 본토 중앙정부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큐슈지방 영주들 등(대표적인 예가 대마도)이 설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여말선초가 전성기였는데, 이들은 멀리는 동남아와 명, 가까이는 조선(주 타겟)을 공격했다. 일본 중앙정부에게도 골치였는지 무로마치 막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그동안 활개치던 "왜구"들을 명나라와 함께 토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이 명과 함께 왜구를 토벌한다라니까 논리적으로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이다. 이 즈음 조선 태종이 대마도를 토벌하면서 이후 얼마동안 잠잠했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다시 발생, 삼포왜란, 을묘왜변 등으로 재등장한다. 자세한 건 왜구 항목 참조.
우리로선 거북한 말이지만 예전부터 호전적인 전투종족의 기질이 있어 끊임없이 주변국을 괴롭혔다. 조선은 왜관을 설치해 호전적인 왜인들에게 통로를 열어줌으로써 국방비 절감을 추구했고, 인조 즉위 1년후 일어난 이괄의 난에서는 "항복한 왜병"이란 뜻의 항왜 수백명을 앞세운 이괄군에게 조선군이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자 왜관에서 왜 용병 1천여명을 고용하려 했다가 신하들의 "이리를 쫓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일 순 없다" 식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영국 상관들은 왜인의 호전성과 전투력을 높이사 용병으로 데리고 다녔다.
고대 한반도에도 자질구레한 싸움에서 종종 왜인들이 언급이 되는데, 일본 우익에서는 이를 토대로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한반도계 도래인들의 일본 영향력보다 못 미치는 정도로서 고대 일본 지방세력이 한반도로 이주하거나, 약탈을 위한 침범 혹은 용병으로 동원되었던 정도로 생각되고 있다. 더욱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삼국 정립 이전이나 이후에나 일본계 정부에 의한 행정권이라고 할만한 영향력은 없었다. 우리가 도래인과 이주자들을 보낼 때 왜는 해적이나 지방유지들이 오간 정도, 라고 봐야 가장 적절한 셈. 고대시대 왜인들의 침입은 신라말기의 신라구가 보인 양상과도 비슷한데, 혼란시대의 한반도 일부 지방에서나 보일만한 중구난방 활동을 보면 그만큼 통제가 안 되는 여러 세력들이 집적거리면서 토벌되거나 이주자를 주고받는 식의 교류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인을 왜, 왜놈, 왜구라고 부르면 매우 싫어하는 듯. 1876년 일본의 억지 침공으로 맺은 강화도 조약 이후에 가정 먼저 하던 일이 왜관이라고 표기한 곳을 일본관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던 역사적 일이나 왜노 항목 등을 참고해도 알 수 있다.
3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의 한 코너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가 시즌2를 표방하며 새롭게 만든 코너. 개그 콘서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개그맨 김준현이 주인공이 된 프로그램이다. 어린 꼬마 여자가 건조하게 내뱉는 왜?라는 물음에 흥분하며 대사를 풀어가는데, 김준현 특유의 흥분하는 연기가 포인트.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같은데?
미드 럭키 루이 1화의 도입부 장면이다. 판권은 사왔나
4 민경훈의 솔로 1집 Im.pres.sive 수록곡
왜... 항목 참조.
5 동방신기의 5번째 국내 정규 앨범
왜 (Keep Your Head Down) 항목 참조.- ↑ 첨언하자면 한나라는 중국 본토 - 요동~한반도 북부(한사군) - 한반도 남부(삼한) - 왜로 이어지는 영향력의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 조위는 당연히 한사군을 이어받았고, 이 상황에서 왜가 손오와 결탁해 조위를 위협한다는 것은 이 루트가 붕괴한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도 손오는 요동 공손연 세력 및 고구려와 제휴하여 이 루트를 송두리째 파괴하려는 시도를 한 일이 있다. 허리는 길고 다리는 짧은 푸른 수염의 애송이의 삽질이었다는 게 밝혀지긴 했지만.
- ↑ 소가 씨 축출을 이렇게 이해한 것일지도? 자세한 것은 추가바람
- ↑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장초(초한쟁패 시절 진승이 세운 국명), 몽고, 토번 등등, 2글자 국명은 중국 본토의 제정 국가보다 한 단계 아래인 국가이거나 아예 중국에서 깔아보는 이민족임을 암시한다.(동,서,남,북 등 글자가 붙은 왕조명은 후세인들이 분류 편의상 붙인 것이므로 예외) 일본이 현대에 와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끝내 당시 사람들 스스로 현실적으로 중국과 동급이 아니라고 인정했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