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준(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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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0월 23일 ~ 2007년 10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사령관
초대 신현준2대 김석범

대한민국군인, 정치가경상북도 금릉군(지금의 김천시) 출신이며 최종 계급은 해병 중장이다. 종교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아킴이다.

부모를 따라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하얼빈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만주에 세운 봉천군관학교에 1936년 4월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에는 만주군 대위로 근무했으며, 이때 박정희보다 상관으로 같은 부대에 있었다. 그는 박정희를 비롯하여, 정일권, 백선엽, 이한림, 김석범, 원용덕, 김창룡 등과 함께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이었다.

만주군 복무만으로도 이미 '일제 부역'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가 간도 특설대, 그것도 창설 멤버였다는 점이다.[1]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간도특설대는 일본군, 혹은 만주군 소속의 조선인 병사들로 구성되어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등의 항일 부대 토벌을 주 임무로 삼은 '동족 배신' 성격의 부대였다. 때문에 친일 군인 중에서도 '단순 가담'을 넘어 '적극적 부역'에 해당하는 악질적인 부류로 평가된다. 해병대의 입장에서 초대 사령관 신현준의 과거 친일 행적, 그것도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 소속 활동은 감추고 싶은 흑역사일 수밖에 없는 일.

8.15 광복 후 잠시 광복군에 편입되었다가 귀국하여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한 뒤 해군 중위임관하였다. 같은 해 인천기지사령관을 거쳐 1948년에는 진해특설기지 참모장에 임명되었으며, 1949년 4월 15일에 약 380명의 병력으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될 때 초대사령관을 맡았다.[2] 당시 계급은 중령이었다.

5.16 군사정변 후 해병 중장으로 예편했다. 미국 네바다주립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여 초대 모로코 대사, 초대 바티칸 대사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10월, 향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해병대 초창기를 함께 이끌었던 후배 김성은 전 사령관이 세상을 떠난지 5개월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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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현준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다름아닌 만주군 동기생이자, 훗날 그의 후임으로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김석범의 저작 <만주군국지>다.
  2. 1948년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내용에 주목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본격화하게 되었다.